터키총리, 시위대를 ‘차풀주’로 부른 이유

2013-07-09     트리스탕 콜로마

“차풀주”(터키어 ‘약탈자’라는 뜻).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자신의 권위에 대항해 들고 일어난 수천 명의 시위자들을 그렇게 불렀다. 지난 5월 31일 이스탄불의 게지공원 파괴에 반대하는 시위가 발생해, 경찰이 과잉진압에 나서면서 반정부 시위로 확대되었다. 이후 소셜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차풀주의 영어 버전인 ‘차풀링’(Chapulling)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이 단어는 이제 ‘각자의 권리를 위한 싸움’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획득했다. 지금 터키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차풀링을 하고 있다.

현 상황은 터키 사회 내부에 파인 깊은 골을 드러내 보여준다. 이번 사태는 겉으로 알려진 사소한 단초, 예를 들면 게지공원의 나무 네 그루를 지키기 위한 시위나 젊은이들의 유쾌한 반란 같은 의미를 넘어서, ‘에르도안이라는 인물이 대표하는 사회 내부의 극심한 분열을 폭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스탄불대학의 정치학자 아이쎄굴 보잔의 말이다. 2002년 정권 잡을 때만 해도 경쟁자들을 싸잡아 ‘수구’로 몰아붙이며 ‘혁신’을 선언한 에르도안은 스스로 민족주의라는 오래된 망령을 불러들였다. 심지어 그는 현 사태가 “터키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국제적 음모”라면서 피해자를 자처한다.

국제 음모 강조하는 총리

이번 사태 이전인 지난 4월 1일, 그의 태도는 이미 강경했다. 에르도안은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해, “국회 헌법화해위원회가 개정안을 마련하는데, 실패할 경우 우리 정의개발당(AKP)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개정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여야 정당 대표들로 구성된 헌법화해위원회 대표 부르한 쿠주(정의개발당)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처럼 지각하지 않으려고 동분서주했지만 결국 국회 개정안 제출 시한인 2012년 12월 31일을 넘기고 말았다. 그는 “많은 부분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과연 그는 새 헌법을 통해 터키를 진일보한 민주주의로 향하는 도정에 올려놓을 수 있을까?

‘이상한 나라의 하트 퀸’처럼, 에르도안 총리는 헌법 개정이 이슬람적 정체성이 명하는 도덕적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더 많은 자유를 확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이토록 적극적인 개입에 나서는 것은 새로운 단계의 권력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소아시아연구소의 엘리즈 마시카르의 분석이다. “2011년까지 AKP는 다양한 반대 세력에 대한 공격과 통제에 집중하면서 군과 사법부를 장악했다. 이 작업은 거의 완수되었다.”(1) ‘거의’라는 말은 아직 남은 게(헌법 개정) 있다는 뜻이다.

현행 헌법으로 보면 군인, 변호사, 기자, 대학생과 교수들을 체포하고 법정에 세우는 과정은 모두 위헌적이다. 반대세력을 입막음하는 데 성공한 에르도안의 집권 다수당은 대통령제나 혼합대통령제를 도입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5~6월 반정부 시위가 격렬해진 것이 일부분 총리의 고압적 태도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집권당 내부에서조차 헌법 개정 계획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대두하고 있다. AKP 간부 중 상당수는 좀더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제한적 개헌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AKP는 2002년 11월 3일 총선에서 승리한 이래 선거 때마다 꾸준히 득표율을 늘려왔다. 하지만 집권을 거듭하면서 독재화되어 점차적으로 헤게모니를 잃었다. 일례로, 에르도안 총리는 2012년 12월 17일 콘야에서 한 연설에서 “권력분립이 정부의 행동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2002년 공표한 입장에서 한참 후퇴한 반민주주의적 태도다. 이슬람주의 정당으로 간주되어 활동을 금지당한 복지당의 개혁파를 규합해 AKP를 창당할 때 에르도안의 의도는 터키 정치 무대에서 중도우파로 입지를 굳히는 것이었다. 그 결과 문화적으로는 보수, 정치적으로는 민족주의,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이 탄생했다. 다음은 보잔의 설명이다. “AKP는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을 이용했다. 국가비전(Milli Görüs·이슬람주의 운동) 계열의 다양한 정파의 지지를 끌어냈을 뿐 아니라, 예전에는 이슬람 정당에 투표하기를 꺼리던 중도우파 유권자의 표심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일부 사민주의자를 포함해 자유주의 성향의 지식인은 AKP가 터키의 민주화라는 목표를 향해 대중의 여론을 동원할 능력을 갖춘 유일한 시민 권력이라고 믿었다.”

한편 10년 넘게 집권하는 동안 에르도안 총리의 영향력이 유지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 사이 터키가 급속한 발전을 이룬 덕분이다. 우선,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경제가 좋은 성적을 냈다. 2000~2010년 터키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평균 7%에 달한다. 인플레율이 떨어지고, 외국인직접투자(FDI)가 10년 사이 12억 달러에서 200억 달러까지 증가했고, 불평등이 감소했다.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한 국가 개혁 정책 덕분에 개인의 자유가 확대됐다. 에르도안 총리는 쿠르드족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세스를 통해 여당 내부에도 존재하는 급진 민족주의 경향의 확산을 저지할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입증했다.(2) 또한 군부 개혁을 통해 1960년 이후로 4회에 걸쳐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데 성공했다. AKP는 이어서 종교 중립적인 대(大)부르주아지들을 공격하면서 그 싸움을 민중과 엘리트의 대결인 것처럼 묘사했다.

터키 국민 절반에게 에르도안 총리는 계급투쟁을 구현하고 사회적 소외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하는 인물이다. 터키 콘다연구소의 조사결과를 보면, 2011년 6월 AKP 유권자들은 정당보다는 에르도안이라는 인물을 지지한 것(57%)으로 드러났다.(3) “AKP 당원은 개인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방식을 통해 여론 변화를 유도한다”고 정치학 연구원 딜렉 얀카야가 지적한다. “가령, 당신이 괜찮은 무슬림 신붓감을 원한다면 그들이 소개해줄 것이다. 석탄이 필요하거나, 병원에 입원할 일이 생겨도 그들이 와서 도와줄 것이다. 그들은 개인적 필요를 만족시켜주고 그 대가로 표를 얻는다.”

정치학자 앙드레 방크와 로이 카라다그의 분석에 따르면, “AKP는 앞장서서 시장에 대한 국가 개입을 철폐하는 세력이면서 동시에 소외된 이들을 사회에 재통합시키는 매개자 역할도 수행한다. 친자본주의와 사회적 복지의 가치를 동시에 확산시키고 있는 셈이다.”(4) AKP의 선거 전략 속에서 재분배 정책은 이슬람적 연대 원칙과 결합된 ‘조절적 포퓰리즘’(5)이라고 할 만한, 일종의 사회적 신자유주의 체제 정착을 용이하게 한다.

터키 정부는 집권당과 가까운 민간 기업, 특히 이른바 ‘아나톨리아의 호랑이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을 위해 복지제도를 해체하고 있다. 대부분 아나톨리아 지방 출신으로 신앙심이 깊고 보수적인 성향의 신세대 사업가들은 자영업자협회(MUSIAD)를 중심으로 활동한다.(6) 독립 사업가와 경영인들이 모인 강력한 단체로 정치적 이슬람주의, 즉 AKP의 주요 경제 파트너로 부상했다. 이를테면 종교중립적 엘리트에 대항한 ‘아래로부터의 터키’를 상징하는 단체다. 얀카야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에르도안 총리가 추진하는 정책은 아나톨리아 부르주아지들의 가치 체계가 이데올로기화된 형태로 볼 수 있다. 노동, 가족, 종교가 인습적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이룬다.”(7)

세계화 종교정치가로 행세

2002년 총선을 6개월 앞두고 창당된 AKP는 터키인 대부분에게 이른바 ‘하얀 터키인들’, 즉 이스탄불 출신의 대부르주아지나 군인 계급이 장악한 경제적 권력이나 정치적 권력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보였다. AKP는 모스크와 기업가 정신의 결합을 보장하는 정당이라는 인상을 준다. 에르도안은 ‘세계화에 발맞추는 종교적 정치가’라는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한다. AKP의 성공 비결은 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스스로를 민중을 위한 당으로 내세운 데 있다. 1985~2010년, 터키 정부는 민영화 과정에서 419억8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중 340억 달러는 2002년 이후 거둬들인 것이다. 100억4천만 달러 가치의 지분이 민간 기업에 넘어간 2010년은 ‘역사적인 해’였다. 터키 민영화 본부(OIB) 책임자가 직접 쓴 표현이다. 보잔은 “터키 국민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야기하는 결과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것을 볼 줄 아는 이들도 대책 없기는 마찬가지”라며 안타까워한다.

터키 진보노동조합총연맹(DISK)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터키 실업률은 17.01%에 달한다. 그러나 공식적인 실업률은 10%에 불과하다. 2002~2011년 생산직 임금은 15.9% 하락했다. 2011년 봄 재집권을 위한 유세 과정에서 이런 현실은 에르도안의 공약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최고조에 도달한 시점(2011년 1분기 11.5%)에서, 에르도안은 자신만만한 어조로 “실업률을 5% 선까지 낮추고, 터키 경제를 세계 10위로 끌어올리겠다”고 장담했다. 2012년 터키의 경제력은 세계 17위였다. 2000~2010년 GDP를 2배로 끌어올린 그로서는 ‘터키의 성장’에 대비되는 ‘유럽의 침체’를 마음껏 비웃을 만했다.

터키 지도자들이 유럽연합(EU)과의 관계에서 자주성을 강조하는 수사학을 구사함에도, 터키 경제성장의 상당 부분이 유로존과의 교역 덕분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한다. 두 지역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터키 지도자들은 2011년 대(對)유로존 수출이 46% 감소한 사실을 강조하지만, 그 절대량이 22% 증가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새로운 활로를 모색 중인 터키 기업들은 이른바 ‘경제적 오토만주의’의 일환으로 아랍 지역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자금력을 갖추었다고 해서 아랍 지역이 전통적 교역 상대인 유럽을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사실상 터키에 투자된 자금의 출처를 따져보면 75%가 유럽에서 왔다. 반면 2008~2011년 미국과 걸프만 국가는 각각 6.1%에 그쳤다.

터키의 경제적 성공은 외국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만큼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훨씬 취약할 수 있다. 경제지표와 예측을 봐도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경제성장률은 주춤하고 있고, 무역수지는 적자다.(8) 유로존의 경제 침체가 지속되면서 수출이 감소하고, 세금 포탈과 미신고 노동 증가로 인해 세수가 감소하고 있다. 가계 부채 증가(GDP의 70%)로 내수도 위축되고 있다.  그런데 한 나라의 번영은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고 조세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달성되는 것이 아닌가? 이 경우 정부가 기업주에게 환영받지 못할 개혁을 추진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탁심 광장에 모인 시위자들과 6월 중순 합류한 양대 노총에 대한 에르도안 총리의 경멸적 태도를 보건대, 앞으로도 MUSIAD 같은 보수적인 세력이 그의 가장 소중한 동맹자로 남을 공산이 크다.

글•트리스탕 콜로마 Tristan Coloma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프란츠의 레퀴엠> 등이 있다.

(1) 2010년 9월, AKP는 새 헌법안을 도입함으로써 사법부의 독립성을 박탈  했다. 이제 헌법재판소, 판검사고등위원회 구성원은 정부가 직접 임명  한다.
(2) 비켄 슈테리앙, ‘쿠르드 민족에게 찾아온 절호의 기회’(Chance    historique pour les Kurde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5월호.
(3) www.konda.com.tr/tr/raporlar.php.
(4) André Bank & Roy Karadag, ‘The Political Economy of Regional   Power: Turkey under the AKP’, German Institute of Global and Area   Studies, Hambourg, n°204, 2012년 9월.
(5) Ziya Önis, ‘The Triumph of Conservative Globalism: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AKP Era’, Koc University(Istanbul), 2012년 2월.
(6) 웬디 크리스티아나센, ‘터키의 중상주의자들’(Activisme Patronal),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5월호.
(7)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La Nouvelle Bourgeoisie Islamique: le    modèle turc>(새로운 이슬람 부르주아지: 터키식 모델), PUF, Paris,   2013 참조.
(8) 터키의 무역 적자는 80억 유로 이상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