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에 잠긴 크로아티아 조선업
크로아티아에는 19세기부터 배를 건조한 5개 조선소가 있다. 북쪽부터 풀라에 소재한 울랴니크, 리예카의 3마이, 크랄예비차, 트로기르, 스플리트가 있다. 이 조선소들은 연안 지역 경제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제조된 선박은 전 세계 바다를 누비고 있고, 그중에서도 크로아티아 달마시아 지역의 선박은 지난 몇십 년간 슬로베니아의 트리에스테, 프랑스의 생나제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세계적으로 경쟁해왔다.
또한 조선업은 사회주의 시대의 정치적 상징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요시프 브로즈 티토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은 1920년대 크랄예비차의 정비사 출신이었다.
스플리트도 조선소의 역사가 곧 도시의 역사와 같다고 본다. 스플리트에는 유명 축구팀 ‘하이두크’가 있어 프랑스의 ‘올랭피크 드 마르세이유’와 함께 대표적 축구팀 역할을 한다. 이 팀은 본래 1941년 달마시아 지역이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에 병합되자 공산당 레지스탕스에 가입하기로 결정한 조선소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조직이다.(1)
헐값에 팔리거나, 파산 위기에 놓이거나
조선업 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 중지는 크로아티아의 EU 가입 조약 제8장 ‘경쟁정책’에 명시된 것으로, EU집행위원회는 구조조정의 시행 역시 조건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조선산업 민영화는 예상 외로 훨씬 복잡했다. 적게 여기던 부채 규모가 드러나고, 구조조정 비용의 40%를 부담해야 하는 탓에 인수자들이 손사래를 치게 된 것이다.(2)
스플리트의 즈폰코 세그비츠 노조위원장은 “전 세계 어디서든 조선업 분야에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기 마련이다. 이탈리아의 핀칸티에리 조선소는 전적으로 국영이고, 프랑스 정부는 STX 애틀랜틱 조선소 같은 주요 조선소의 소주주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세계 최대 조선강국인 한국도 조선업에 정부 지원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하며 “전 세계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유럽 통합이라는 이름하에 크로아티아에서만 금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EU 가입을 몇 달 앞두고 결국 크로아티아 정부는 조선소를 헐값에 매각하려 했다. 그러나 인수자를 찾지 못한 크랄예비차 조선소는 결국 파산 위기에 놓여 있다. 트로기르 조선소 민영화만이 그나마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 크로아티아의 투자자 단코 콘카 회장의 인수 아래, 선박 제조는 계속 진행하면서 선착장은 요트 정박지 등으로 재탄생 시키기로 했다. 크로아티아 정부가 구조조정 비용 중 약 6천만 유로를 5년에 걸쳐 분담할 것이다.
지난 4월 중순 체결된 협정에 따라 직원 규모도 1200명에서 1900명으로 늘어났다. 트로기르 조선소 기술자인 슬라프코 빌로타는 “정년퇴직으로 인한 충원 효과도 있는 만큼 이는 낙관적”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스플리트 조선소는 상황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밝혀졌다. 스플리트를 50만 쿠나(약 6만6500유로)라는 상징적인 액수로 인수한 DIV그룹(회장 트미슬라프 데벨리야크)은 조선소 사업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DIV그룹은 지난 6월 초 3500명의 조선소 직원 대부분이 해고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중 알려지지 않은 기준에 따라 1500명만이 비정규직으로 재고용될 것이다. DIV그룹은 퇴직 근로자 5명도 재고용할 거라고 했지만 이 역시 비정규직 자리에 그칠 것이다. 스플리트의 철옹성 노조는 상황을 이대로 방치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인수자 측에서는 조선소 출입을 막는 노조 지도층을 ‘폭력 행위’로 고소한 상태이다.
관광업에 ‘올인’할 것인가
울랴니크 조선소는 이스트라 반도의 정체성과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거주 인구가 20만 명에 지나지 않는 작은 지역인데, 그중 약 3만 명이 직·간접적으로 조선업에 연관되어 있다. 이곳은 2006년 이후 정부 지원이 끊긴 이후에도 선박 제작을 한 번도 멈춘 적 없으며, 수주도 지속되고 있다. 울랴니크는 리예카 지역의 3마이 조선소의 인수 후보로 직접 나서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울랴니크 섬은 단순한 산업 생산을 넘어, 해변 산책로와 고대 로마 원형경기장 등이 있는 풀라만 정중앙에 위치해 관광객에게는 매력적인 곳이다. 현재 풀라의 관광도시로서 앞날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선박들을 위해 1859년 건립된 해군 기지가 있는 뮤질 반도에 달려 있다. 이곳에서 시민들은 산책, 일광욕, 낚시와 정기적으로 열리는 축제를 즐길 수 있다.
민영화와 더불어 2500실 규모의 호텔과 골프장 등 고품격 관광단지를 세울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결국 조선산업의 예정된 결말은 크로아티아의 탈산업화 과정의 마침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크로아티아가 과연 관광업에 ‘올인’할 수 있을까? 크로아티아 내 연안 지역은 대부분 실업 문제에 맞닥뜨려 있다. 공식 발표에 따르면, 실업률이 전체 경제인구의 22%, 25세 이하 인구의 3분의 1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많은 젊은이가 월급 200유로 정도의 저임금 야간 아르바이트에 만족해야 하는 실정이다.
즈폰코 세그비츠 스플리트 노조위원장은 “크로아티아가 ‘실질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채’EU에 가입하게 되었다”면서 “우리의 경제 상황은 처참하고, 북유럽 강대국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크로아티아는 EU 내에서도 다른 남유럽 국가처럼 2류 국가 중 하나로 전락할 것”이라고 했다.
글•장 아르노 데랑 Jean-Arnault Dérens
<발칸 통신>(Le Courrier des Balkans) 사이트 편집장. http://balkan.scourriers.info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문과 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Loïc Trégourès, ‘Croatie: le Hajduk Split fête cent ans de football et d'histoire’, <발칸 통신>, 2011년 2월 18일자.
(2) Diane Masson, ‘Coraite. Dernière ligne droite vers l'Union européenne’, <Grande Europe> 14호, La Documentation française, 파리,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