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금 축소된 극단, 초심으로 다시 출발선에
예술과 생존의 갈림길
연극 시즌이 시작된 어느 날, 극단의 상근 직원이 모인 시즌 첫 회의가 열렸다. 여기서 극단 직원이란 ‘연극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전일제 비정규직)과, 유일한 정규직으로 최저 임금 이상의 50유로를 받는 극단 경영자를 말한다. 예술 감독이자 연출가, 극단 공동 창단 배우, 홍보 담당자, 경영자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 극단은 시·도, 지역의회, 정부의 지원을 받는 덕분에 지역에서 재정이 넉넉한 편에 속한다. 지방문화청(DRAC·문화부 산하)과 지역의회, 시에서 3년 계약으로 5만 유로, 2만 유로, 2만 유로를 각각 지원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2년마다 한 번씩 도의회에서 창작물 지원금으로 4천 유로를 받는다. 이 예산 가운데 사무실 유지비, 직원 및 홍보 담당자 임금으로 5만 유로가 나간다. 나머지 4만 유로 정도 가지고 예술작품을 창작한다. 물론 몇 가지 의무가 뒤따른다.
계약에 따라 우리 극단은 이 지역에서 연극을 15회 이상 상연해야 한다. 하지만 공연 3회가 부족해 보조금의 나머지 20%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 액수는 상근 직원의 최소 두 달치 월급이다. 회의는 기분 좋게 시작했다. 우리 작품 하나가 새로운 축제에 팔린 덕분에 부족한 3일이 해결되었다. 착잡했지만 큰 위안이 되었다. 작은 마을의 저예산 작품에 자원봉사자 팀이라는 조건으로 공연은 최저가에 팔렸고, 액수는 배우의 개런티 정도 겨우 메울 수준이었다. 연출가나 기술자 없이 참가하는 축제에는 심지어 조명장비도 갖춰져 있지 않다. 하지만 작품은 이미 80회 정도 공연한 경험이 있고, 모든 공연 조건에 맞출 수 있도록 연출되었다. 배우가 연기하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을 것이다. 무대 입구 10m에 300석 극장이든, 무대 입구 5m에 50석 장소든 어디에서나 공연은 가능했다.
배우는 흔쾌히 추가 공연 제의를 승낙했다. 현재 그도 별다른 계약이 없었다. 연극을 지방에 보급하고 대중화하려는 비전을 갖고 인민전선(Front Populaire)과 레지스탕스 전국평의회(CNR)가 최초로 시행한 연극의 지방분산화 정신을 계승하는 기분으로 그는 트렁크에 무대장치를 싣고 축제장으로 향할 것이다.
문화부 지원 줄고, 비평가는 외면
회의는 점점 더 긴장된 분위기로 흘렀다. 여전히 계약 건이었지만 이번에는 문화부와의 ‘관계’가 문제였다. 정확히 말하면 계약이 만료됐는데 지방문화청이 이를 갱신하지 않는 것이다. 3회에 걸쳐 3년간의 창작활동 보조금을 지원받고 계약은 종료되었다. 이제 매년 5만 유로 대신 3만 유로를 받게 되었다. 보조금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된 극단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 극단은 지금까지 계약 사항을 성실히 이행했다. 정확한 활동 기간에 예술 활동을 추구하고 명백한 예술 노선을 띤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하나 혹은 여러 기관과 협력 과정을 통해 대중과의 관계를 유지했다. 매년 최소 작품 2개를 창작하고 3년간 공연을 120차례 올렸다. 물론 ‘조직적인 경영관리’도 빠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전화 통화로 지방문화청 담당자의 승낙을 받았음에도 사설극장과 공동 연출한 공연 일부는 고려되지 않았다. 또한 9년 걸려 겨우 정부기관의 지원을 받게 되었지만 여전히 기관의 큰 협력은 얻지 못했고, 공연권 판매도 급증하지 않았다. 실망스러웠지만 우리 작품을 사겠다는 구매자를 만나기가 만만치 않았다. 프로그램 편성자들은 하루 20개에서 100개가 넘는 서류를 받는다.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양이다. 게다가 정부에서 요구하는 ‘비용 절감’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대규모 극장 프로그램에 편성된 연극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결국 비평가들도 여기로 몰릴 수밖에 없게 되고, 완벽한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물론 보조금을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는 없지만, 어쨌든 25년 동안 꾸준히 연극 일을 해온 우리로서는 앞으로 어떻게 일을 지속해나가야 할지 막막하다. 지방문화청의 역할은 프랑스의 문화 개발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국가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방문화청은 창작품의 변화를 분석하는 지역 전문가 그룹의 의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식견을 갖춘 아마추어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가 위원회는 비공개 자문단으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위원회는 관람한 작품에 대해 예술적 측면을 비평하는데, 워낙 공연은 많고 전문가 인력은 부족해 관람할 수 있는 작품 수가 많지 않다. 물론 최근 우리 작품을 보러 온 전문가들도 많지 않았다.
관객, 익숙치 않은 작품 도외시
공연 판매원이 아니라 배우로
어쨌든 위원회는 비공개 토론을 거쳐 결정을 내린다. 친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연극과 그 역에 대한 견해를 어느 정도 공감해주는 지지자들이 있으면 유리하다. 새로 선정된 작품의 소식을 듣자마자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위원회의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역시 좁은 바닥에서는 모르는 것이 없다. 새로운 전문가들은 구시대적인 우리와 다른 가치를 선호함이 틀림없다. 국립민중극장(TNP)과 아비뇽 연극축제의 창립자인 장 빌라의 정신이 담긴 대사극은 진부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계약을 중단한다는 전문가 위원회의 투표 결과를 통보받았다.
낙담한 우리는 토론을 거쳐 결론을 내렸다. 예술 작품 제작에 대한 투자를 축소하고,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 전에 들어가는 ‘보이지 않는’연구 활동비의 지출을 없애며 극단 관리에 따른 행정 업무를 대폭 줄이기로 했다. 그리고 나이와 상관없이 조기 퇴직은 금하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극단을 계속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3년 프로젝트로 두 가지 작품을 창작했다. 첫 번째 작품은 ‘대중적’인 작품으로, 등장 배우가 적고 시사 문제를 다뤄 모든 팀의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두 번째 작품은 여성과 창조에 대한 낸시 휴스턴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조금 복잡하고 표현 양식이 까다로웠다. 배우는 6명이 등장하고 비디오 영상과 기술팀이 투입되었다.
경영자는 난색을 표했다. 역시 부족한 자금으로는 이 공연을 제작할 수 없을 것 이다. 홍보 담당자도 더 이상 낙관적이지 않다. 소설을 각색한 어려운 주제의 작품으로는 5~6회 공연권을 판매하기란 불가능하다. 국립 지방드라마센터조차 프로그램 편성자를 불러 모으기 어려울 것이다. 하물며 우리는 오죽하겠는가. 프로그램 편성자들이 점점 더 소심해져 관객에게 기대려 할수록 관객은 익숙지 않은 난해한 작품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공연장을 관객으로 채우고 전문가들의 마음을 얻기란 쉽지 않다. 어쨌든 지방문화청이 우리와 계약을 갱신하지 않으면 더 이상 공인받을 수 없고, 보조금 받는 극장들에 묻혀 사라질 것이다. 지금으로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단 한 가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간결한 무대 장식과 소박한 의상, 감봉을 실천한 <빈 공간>의 저자이자 위대한 연출가 피터 브룩(1)이 떠올라 절로 경의를 표했다. 어쨌든 향후 3년 동안 경영자와 홍보 담당자가 함께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계약 종료가 어쩌면 기회가 될지 모른다. 더 이상 판매부장 앞에 선 위탁 판매원처럼 느끼지 않아도 되고, “타협하지 말고 그저 공연을 팔라”는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권위적인 조언도 더는 받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획일적인 ‘결정권자’의 입맛을 맞추려는 경쟁 구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회의가 끝났다. 우리는 가능한 한 우리가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나갈 것이다.
글•파스칼 시메옹 Pascale Sim
주요 저서로는 최근 출간된 <이미지 전쟁의 오류> (Le Cercle d’Art, Paris, 2010)등이 있다.
번역•배영미 petite0222@hotmail.com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졸.
(1)피터 브룩, <빈 공간>, Seuil, 파리,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