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 오브 시티”
“여러분이 이용하는 기차역의 배경음악을 골라보세요!”
지난 5월 프랑스철도청(SNCF)이 일드프랑스 지역 노선을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하지만 이 제안의 이면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다소 불순한 속내가 감춰져 있다.
가령 모차르트 협주곡이나 쇼팽의 <녹턴>을 들려주는 것은 젊은이나 노숙자를 쫓아내기 위한 의도다.
도시의 청각적 세계를 모델링하는 작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다.
현재 이 작업은 다양한 시도를 낳는 동시에 수많은 의문도 함께 제기하고 있다.
“30년 전 프랑스에서는 개인이 가진 음향기기라고는 그저 카세트라디오 단 하나뿐이었다. 반면 오늘날 사람마다 보유한 음향기기 수는 수십 개에 달한다. 기기 수만 늘어난 게 아니다. 종류도 다양해졌다. 이제는 하이파이오디오 양쪽에 부착된 스피커 시스템만이 아니라 헤드폰, 초인종, 작은 음성인식 장치, 휴대전화에 이르기까지 각종 일상 용품 속에 수많은 스피커가 장착돼 있다.”(1)
사운드 디자이너 롤랑 카엔이 지적한 이 현상은 인공지능도시와 증강현실이 유행하는 요즘도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인공지능도시니 증강현실이니 하는 것도 알고 보면 지금까지 아예 소리를 내지 않거나 혹은 단순히 소음만 일으키던 소재에 언어·음악·경고음 등 청각적 배경을 덧입히는 기술이니 말이다.
도시도 그런 소재에 속한다. 도시는 현재 별도의 대규모 협의 과정 없이 정부기관, 기업, 광고업체, 각종 협회 및 연구소 등에 의해 음향 모델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서서히 ‘소음 지도’가 완성되고 있다. 새로운 관습이 형성되고, 공공장소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생겨나고 있다. 음향 환경은 사람들을 불러모으기도 하고 몰아내기도 한다. 때론 정보를 제공하거나 상품을 선전한다. 민영기업과 공공기관은 마음에 드는 고객의 귀를 즐겁게 해주고, 불청객이나 원치 않는 이용자의 귀를 괴롭힌다.
1980년대에 시작된 사운드 디자인은 현재 탄탄대로를 질주하고 있다. 사운드 디자인의 발전에 힘입어 오디오 브랜딩(Audio Branding), 앰비언스(Ambiance·자연적인 공간성을 의미하는 말로 어느 특정한 공간 내에 존재하는 음향. 자연의 소리뿐 아니라 곤충, 동물 소리 등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여러 소리를 제공한다 -역자) 구현, 오디오 마케팅 등 새로운 전문 분야도 탄생했다.
사람에 따라 장점일 수도 혹은 단점일 수도 있겠지만, “소리 신호는 우리가 사는 주변 환경을 이루며 삶을 간섭하거나 조종한다”고 제라르 위장은 말했다. 파리8대학 기술·장애·인터페이스·복합운송(THIM) 연구소 연구원인 위장은 시각장애인용 보행 신호등을 디자인한 인물이기도 하다. 1999년 이후 프랑스에서는 도시개발을 할 때 반드시 이 음향시설물을 설치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정적은 불안을 일으킨다”
현대 도시의 ‘사운드스케이프’(Sound scape·‘소리’와 ‘풍경’의 복합어로 머리 셰이퍼가 제창한 음환경 전체를 작품으로 보자는 개념 -역자)에는 여전히 2차 산업혁명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요즘도 도시에는 음향 전문가들이 흔히 ‘드론 사운드’라고 부르는 소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열기관, 냉방시설, 기차 소리 등이 뒤섞인 낮은 기계음이 쉼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만일 지금이 1970년대였다면 캐나다 작곡가 머리 셰이퍼가 ‘소음공해’라고 표현했을지 모르겠다.(2) 셰이퍼의 견해는 이후 많은 이들에 의해 수없이 계승됐다. “종종 소리는 어떤 시스템에서 빚어진 에너지의 부산물로 정의된다. 소통을 위한 소리를 제외한다면, 우리 귀에 들리는 음향은 모조리 의도치 않게 생겨난 소리라고도 볼 수 있다. 일정한 활동이 빚어낸 산물인 것이다. 오늘날 도시나 공원의 소리를 녹음해보면, 30년 전보다 더 많은 소리가 생겨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단지 한두 개의 새로운 소리가 더 보태졌을 뿐이다.” 리옹 출신의 조류학자이자 작곡가인 베르나르 포르가 말했다. 사실 현대인은 여전히 40년 전에 시작된 소음 저감 대책만 열심히 추구할 뿐, 좀더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자세로 소리환경을 만들어나갈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다.
소리환경을 고려한 도시개발의 길은 아직 멀었다. 적어도 청각적 차원의 도시개발이 시민들의 귀를 즐겁게 해줄 도시를 만들어주리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게 느껴질 것이다. 그럼에도 서서히 소리의 밑그림이 우리의 귓전을 울리기 시작했다. 현재로서는 사회적 영향을 논하기 위한 별다른 공론화 과정은 없이, 그저 경험을 바탕으로 소리환경의 청사진이 설계되고 있다. 그렇다면 소리환경을 고려한 도시개발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구체적으로 설명해, 붙박이나 이동식 음향기기의 설치를 통해 기분 좋은 소리환경(적어도 그 풍경을 설계한 사람에게는 기분 좋은 소리다)을 갖춘 도시를 계획하는 것을 말한다. 담장 대신 소리에 주안점을 두기에 이것은 원활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도시개발이라고도 볼 수 있다.
먼저 소리환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지닌 분야는 자동차 산업이다. 오늘날 자동차 산업의 중심축은 하이브리드차나 전기자동차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자동차 제조업체에는 음향과 소리 디자인을 담당하는 연구소가 갖춰져 있다. 밴스 패커드가 1957년 출간한 <은밀한 설득자>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전후 시대 미국의 몇몇 자동차 제조회사는 차 문을 닫을 때 나는 소리가 ‘안정감’을 줄 수 있게 많은 연구를 했다.(3) 2010년 이 분야에서 첨단을 달렸던 아우디는 수많은 홍보자료를 배포해가며 이른바 ‘기업 소리’(Corporate Sound)라는 개념을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기업 소리란 글러브박스 닫는 소리에서 광고에 들어가는 음성과 음악까지 자기 브랜드만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것을 의미했다. 예전에 운전자는 혼자 힘으로 수많은 실내 조작을 했지만 오늘날에는 세세한 동작까지 일일이 음성 지원의 도움을 받는다. 연료통이 비거나, 안전벨트를 안 매거나, 우회전을 할 때조차도 말이다. 운전자는 사운드 잠금장치와 전자식 장치 덕분에 보닛을 직접 여는 수고를 덜게 되었다. 아마 가까운 미래에는 우주선 소리에서 빈티지 디젤 차량 소리까지 엔진 소리마저 직접 운전자가 선택해 승차 분위기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될 것이다.(4)
이처럼 자동차 산업은 음향환경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또한 그런 사실을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업계의 관심은 예전처럼 소음을 줄이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거꾸로 어떻게 하면 소리를 낼까 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다. 소음이 전혀 없는 최신 엔진이 보행자와 다른 운전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정적은 불안을 일으키는 요소”라고 PSA 푸조시트로앵 연구소 ‘네오사운드’에서 심리음향 연구원으로 일하는 뱅상 루사리는 말했다.(5) 이 부분에서 자동차 산업은 다시 과거와 조우하고 있다. 19세기에는 새로운 운송수단이 등장할 때마다 교통안전을 위해 특별한 소리가 나는 물체를 차량에 장착했다. 가령 이륜마차를 끄는 말에는 ‘목에 거는 방울’을, 전차에는 ‘뿔이나 나팔 모양의 경적’을 달았고, 자동차에도 처음에는 ‘방울이나 작은 종’을, 다음에는 ‘클랙슨’을 의무적으로 설치했다.(6)
네덜란드에서는 피자 체인점이 자동차 업계보다 한발 앞선 행보를 보였다. 배달원들에게 전기스쿠터를 지급한 뒤 사고율이 높아진 것을 확인한 ‘도미노피자’가 적절한 음향효과를 내는 문제를 고심한 끝에 스쿠터가 주행하는 동안 매초마다 브랜드 이름을 외치며 열기관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사람 목소리가 나는 엔진을 개발해낸 것이다.(7) 일명 ‘세이프 사운드’(Safe Sound)라고 불리는 이런 기막힌 발명품은 사람들에게 큰 웃음거리를 선사하면서도 동시에 ‘사운드 마케팅’ 효과까지 톡톡히 누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아직 모든 업계가 교통안전을 핑계로 공공장소에서 하루 종일 소리광고를 내보내기 위해 달려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파리 지하철의 귀뚜라미
1990년대 ‘할리 데이비슨’은 자사 제품의 특이한 배기음을 특허로 등록하려고 했다(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심지어 자사 엔진음을 카피한 혼다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기까지 했다.(8) 하지만 이 최초 특허 등록 시도의 대상은 그저 엔진에서 나오는 ‘에너지의 부산물’인 소음일 뿐이지 결코 특별히 ‘디자인된’ 음향이라고 볼 수 없었다. 이 소송사건은 이후 광범위한 사법적 논쟁거리를 낳았다. 지금도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가령 매일 도시의 거리를 울리는 자동차 소리는 그 소리를 설계한 브랜드의 사유재산이 될 수 있을까? 시각적 공간처럼 앞으로 공공장소에 수많은 음향 로고가 범람하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미국의 교통부가 내놓은 첫 권고 기준에는 정보 안내와 상품 광고를 분명히 구별하기 위한 내용은 일절 찾아볼 수 없다.(9)
자동차 산업이 청각광고 가능성에 열광하는 데 모든 이가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조화를 추구해야지 불협화음을 만들어내서는 안 된다”고 음향·음악조율 연구소(IRCAM) 인지·소리디자인팀에서 일하는 니콜라 미스다리이스가 말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소리 디자인은 단순히 어떤 소리에 새로운 소리를 덧입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의도하는 소리를 지능적으로 잘 제어해서 원하는 목표 소리환경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다. 예전에 르노자동차와 함께 작업할 때 르노는 친환경성·유연성 같은 자기네 전기자동차의 가치나 브랜드 정체성을 고려한 음향환경을 만들어달라고 특별히 주문했다. 어쨌든 우리는 소비자가 흔히 기대하는 음향 기능, 즉 사람들이 인지할 수 있는 소리, 듣기 좋은 소리, 너무 크지 않은 소리라는 일반적 기준에 맞는 음향을 제안할 수 있다.” 파리교통공사(RATP) 음향·진동팀 책임자 코린 피욜은 공공장소에 알맞은 ‘소리문법’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어떤 소리는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하지만, 또 다른 소리는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강요되지 않도록 절제의 미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다른 교통공사들을 대표하는 파리 지하철은 몇 년 전부터 점진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종류의 서비스에 절제의 미를 강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고객을 위한 임시 안내방송이 그러하다. 가령 프랑스 경계경보시스템 ‘비지피라트’(Vigipirate)는 일정한 규정에 따라 방송되지만, 소매치기 경고의 경우에는 담당자의 기분이나 직업의식 수준에 따라 방송 빈도가 수없이 달라진다. “음향팀은 되도록 지하철 안에서 돌발적인 소리를 피하고, 최대한 승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서정적이면서도 일관성 있는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RATP로부터 연구를 의뢰받은 소리공간도시환경연구소(CRESSON) 연구원 다미앵 마송이 말했다.
폴크스바겐이 써먹은 ‘재미이론’
오늘날 중요한 것은 승객의 귀를 즐겁게 하며 동시에 유출입을 관리하는 것이다. “10년 만에 RATP는 음향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예전에는 ‘소음을 줄이는 것’이 목표였지만, 요즘은 ‘음향설비를 활용해 거꾸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관건이 되었다”고 피욜이 말했다. 올해 RATP는 두 종류의 음향시설을 시범적으로 기차역에 설치해 승객의 반응을 살피고 있다. 먼저 샤틀레 레알 역에서는 맞춤 설계된 배경음악을 틀어 “승객들이 통로를 지나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끔 시간감각을 왜곡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반면 오페라 역에서는 긴 컨베이어벨트 여기저기에 스피커를 설치해, 서정적인 음악과 박수 소리를 작은 소리로 은은히 들려주며 오페라 거리에 걸맞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곡선 선로로 이뤄진 승차장과 열차 사이 간격이 넓은 1호선 플랫폼에는 승객에게 귀뚜라미가 찌르르 우는 소리가 뒤섞인 전통적인 경고음을 내보내고 있다”고 RATP의 소리 이미지를 담당하는 송 파네크햄이 말했다. “사실 귀뚜라미는 지하철과 아주 인연이 깊은 곤충이다. 14년 전만 해도 일부 역에서 심심치 않게 귀뚜라미가 발견되곤 했다. 바닥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면 자연스럽게 승객들의 시선이 쏠리게 돼 있다. 이런 깜짝 경고는 정서적 면과 기능적 면을 결합한 우리 회사만의 소리 자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처음으로 소리 디자인에 눈을 뜬 RATP는 베르나르 들라주에게 나비고(Navigo) 교통카드를 찍을 때 나는 신호음 디자인을 의뢰했다. 세 가지 신호음(승인, 거절, 만기일 알림 소리)을 만드는 작업에 작곡가, 사회심리학자, 음향 전문가 등이 동원됐다.(10) 오늘날 러시아워에 승객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마치 신호음이 이루는 조화를 깨뜨리지 않으려는 듯 승객들이 일부러 최적의 속도에 맞춰 발걸음을 옮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이 반응할 시간이나 특히 분석적으로 생각할 여유가 없을 때는 자극-반응 행동을 이용하는 것이 유용하다.” 들라주가 안전 문제와 디자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단적으로 설명했다.
처음에 시각장애인이 거리에서 이동하는 것을 돕기 위해 고안된 음향신호 시스템은 오늘날 모든 도시민 사이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도시 재창조’(Urban Requalification·도시에 활기를 불어넣고 질적으로 개선하며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거나 기존 가치를 높이는 등의 개발 프로젝트 -역자) 정책의 첨병 역할을 하는 노면전차들도 저마다 톡톡 튀는 개성으로 무장한 음향환경을 선보이고 있다. 브레스트 지역의 노면전차에서는 디자이너 미셸 르돌피의 연출에 의해 몽환적인 음악을 배경으로 여성의 고음과 남성의 저음 목소리가 정거장을 안내한다. 반면 파리 T3 전차 노선에서는 정거장을 안내하는 유명인사와 주민들의 음성에 아름다운 선율을 입히는 작업을 뮤지션 로돌프 뷔르제가 맡기도 했다(이 작업을 의뢰한 것은 교통공사가 아닌 파리시였다).
오늘날 지역 마케팅에 고심하는 지자체들은 개발정책의 일환으로 음향시설에 주목하고 있다. 예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도 정부가 실시한 노면전차 T3 노선 조달 사업에 따라 몽수리 공원 벤치 10곳에 음향시설을 설치하는 작업을 맡았다. 산보를 나온 시민들이 그가 만든 벤치에 앉아 여러 언어로 속삭이는 사랑의 고백을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편리함과 쾌적함, 실용과 재미, 필요와 본질의 놀라운 결합”이라고 장 폴 위숑 일드프랑스 지역의회 의장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11) 도시는 이제 잘 짜인 산책로, 겉보기에는 모든 사회갈등을 벗어던진 지역으로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자동차의 차원을 넘어, 미래 공공장소의 ‘실용과 재미’를 구상하는 즐거움에까지 빠져들고 있다. 가령 폴크스바겐은 스톡홀름 지하철에다 에스컬레이터 옆 시멘트 계단을 거대한 건반으로 바꿔놓는 식으로 임시 피아노-계단을 설치했다. “이것이 이른바 ‘재미이론’(Fun Theory)이라는 것이다. 재미는 사람들이 가장 바람직한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가장 간단한 방법”(12)이라고 폴크스바겐 쪽은 설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바람직한 행동이란 대체 어떤 행동을 가리킬까?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것. 다른 브랜드가 아닌 바로 자기네 브랜드가 만든 ‘친환경자동차’를 구매하는 것. 결국 자동차 산업은 겉으로는 재미이론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상은 마케팅을 예술로, 제품 선전을 유머로 포장하고 있는 데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일상을 개선시키기 바라며 공공예술에 관심을 기울이는 예술가의 태도는 은밀하게 이뤄지는 광고나 홍보 전문가들의 지배욕과는 많은 차이가 날 것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목적이란 모두 엇비슷하기 마련이다.
폴크스바겐은 뮤작의 계보를 직접 이어받고 있다. 뮤작은 1930년대 환경음악(Ambient Music)을 창안한 뒤 이를 선전하기 위해 ‘자극향상’(Stimulus Progression)이라는 개념을 이론화했다. 음악이 작업장의 소음을 덮어주는 동시에 노동자의 생산성을 향상하는 기능까지 한다는 주장이었다. 가령 활기가 떨어질 때는 강렬한 음악을, 주위가 산만해지면 잔잔한 음악을 들려주는 식이었다. 오늘날 자극향상은 다양한 분야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고객이 상점 안에 오래 머무르도록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식당의 테이블 회전율을 높이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적어도 이 개념을 설파하는 이들은 소리가 지닌 마력을 철석같이 믿고 싶어 한다(자극향상의 가장 열렬한 비판자마저 소리가 마력을 지녔다는 사실에 동의한다).(13) 그렇다면 젊은이들 때문에 베기나주 공원의 평온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는 쿠르트레 시당국의 생각처럼, 정말 클래식 음악은 젊은이들의 귀에 괴롭게 느껴지는 것일까?(14) 아니, 어쩌면 그것은 리드미컬한 음악이 젊은 층을 주 고객으로 하는 체인점에 노인들이 장을 보러 오지 못하게 막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어쨌든 두 경우 모두 그들이 불청객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공공장소에 틀어놓은 음악은 어쩌면 판매자가 바라는 만큼 ‘인간이라는 재료’(15)와 상호작용을 일으키지 않는지도 모른다. 반면 음악은 그것이 울리는 공간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어, 끊임없이 소비지상주의 담론을 재잘거리고 바람직한 행동을 종용한다. 가령 맥도널드는 점포 안에는 최신 유행 음악을 틀어놓으면서도, 점포 밖에는 25살 이하 젊은이들을 쫓아내기 위해 그들의 귀에만 들리는 고주파의 듣기 싫은 모스키토 알람을 틀어놓는다.(16) 이런 모스키토 장치는 프랑스에서는 별로 많이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이미 널리 애용되고 있다. 소비하라, 그리고 얼쩡거리지 말라.
때로는 특정 장소(서점의 베스트셀러 매대, 벽보가 나붙은 도로 앞 등)에 설치된 우수한 성능의 ‘지향성 스피커’(사운드가 방사되지 않고 일정한 방향으로 보내는 스피커 -역자)가 내보내는 광고가 극도로 산만한 행인의 귀를 잡아끌기도 한다. 이때 스피커는 이른바 ‘상황적 예방’(Situational Prevention)을 위한 시설물과 똑같은 기능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 바람직한 행동을 지시하고, 까다로운 손님을 쫓아내고, 결국 “소리를 통해 행동과 소비와 이동을 조율”(17)하기 때문이다. “아마 어떤 이들은 사운드 디자이너의 앞날이 창창하다고 냉소적으로 말할지 모르겠다. 조만간 시각적 디자인으로 수익을 창출하던 수단이 바닥이 날 테니 말이다. 결국 그러면 기분 좋은 소리가 새로운 수익 창출 수단이 되어줄 것이다.”(18) 프랑스 소리 디자인의 선구자 루이 당드렐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의 지적은 오늘날 일반적인 모든 종류의 소리환경 개발에 확대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후각처럼 청각을 자극하는 케이크를 만든다면 사람들이 먹고 싶은 충동을 더 자극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공익을 위한 투쟁에 나서기도 한다. 이를테면 벽보 대신 스피커를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포화상태에 다다른 시각적 환경을 개선하거나, 귀만 가지고도 통행이 가능한 도시를 만들거나, 소리의 조화를 통해 사회의 화합까지 실현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반면 많은 이들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공공장소 구석구석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영리 목적의 소리환경으로 만들려 안달하고 있다.
이런 포화상태를 예방하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위장은 물리적 소유권처럼 청각적 소유권에 대해서도 저작권을 인정해주면 된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 소음정보문헌센터(CIDB) 센터장 도미니크 비두는 주파수처럼 음향환경을 규제하자고 제안한다. 음향 전문가들은, 어떤 이는 진심으로 또 어떤 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이 휴대전화로 ‘주문형’ 청각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토르그는 “의도적으로 음향을 가지고 뭔가를 시도하려 하기보다는 그냥 들리는 소리를 자유롭게 내버려두자”고 주장했다.(19) 이런 발상은 비록 오늘날의 도시개발 흐름에는 역행하지만, 결국 도시를- 그리고 우리를- 토르그가 말한 이른바 ‘즉흥의 의무’(20)로 향하도록 해줄 것이다.
글·쥘리에트 볼클레르 Juliette Volcler
독립 라디오 제작자. 주요 저서로 <무기로서의 소리: 치안·군사적 소리 이용 행태>(라데쿠베르트출판사·인문학총서·파리·2011)가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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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웹사이트 www.intempestive.net에서 본 조사와 관련한 인터뷰 내용을 들을 수 있다.
(2) Murray Schafer, <The Tuning of the World>, 크노프출판사, 뉴욕, 1977.
(3) Vance Packard, <은밀한 설득자>, 칼망레비출판사, 파리, 1958.
(4) ‘자동차: 소음에서 음악으로’, 앵테르셉시용, 프랑스 앵테르 라디오 방송, 2013년 1월 13일.
(5) ‘자동차 음향의 원천지, STELLAB을 찾아서’, <뤼진 누벨>, 앙토니, 2012년 2월 9일.
(6) Sabine Barles, ‘소음과 소리, 도시환경의 역사: 몇 가지 성찰’, <인식론적 성찰의 날, 2008년 6월 18일>에서, CNRS(국립과학연구센터) 교통소음 연구 모음집 제2493권, 2008년 10월, www.gdr2493.cnrs-mrs.fr.
(7) 소리 도시개발과 관련한 동영상과 기타 사례는 www.seenthis.net/tag/urbanism_sonore에서 찾아볼 수 있다.
(8) John O’Dell, ‘Hqrley-Davidson quits trying to hog sound’, <로스앤젤레스타임스>, 2000년 6월 21일.
(9) ‘Minimun sound requirements for hybrid and electric vehicles. Draft environmental assessment. Docket numer NHTSA-2011-0100’, 미국고속도로안전국(NHTSA), 워싱턴 DC, 2013년 1월.
(10) Andrea Bergala, <소리의 제국>, 시스템TV, 2005.
(11) ‘전차를 위한 예술: 남 마례쇼 전차(T3) 노선 사업에 대한 정부 입찰’, 파리시 언론 배포 자료, 2006년 12월 14일.
(12) www.thefuntheory.com.
(13) Vincent Rouzé, ‘공공장소에 흐르는 음악: 일상적 홍보 관행 분석 및 쟁점’, 박사논문, 파리8대학, 2004년 11월 20일.
(14) ‘젊은이들을 쫓아내기 위한 클래식 음악’, <라 리브르 벨지크>, 브뤼셀, 2012년 7월 13일.
(15) James T. Keenan, 뮤작 과학자문위원회 위원장, ‘뮤작의 에코-로직’, 1974년 7월 31일 연설, <카이에 르세르슈/뮤지크>, 제6호, ‘소리의 힘’, INA-GRM, 파리, 1978.
(16) ‘Maidstone McDonald’s criticised for Mosquito device‘, <BBC>, 2012년 7월 20일. 사람의 귀는 나이가 들면 높은 음역대의 소리를 듣는 능력이 감퇴한다.
(17) CRESSON 연구원들과의 집단 인터뷰, 2013년 1월 22일.
(18) (10)과 동일.
(19) (17)과 동일.
(20) Henry Torgue, <소리, 상상계 그리고 도시>, 아르마탕출판사, 파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