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만의 비전, 왕들의 허영

2013-08-06     아크람 벨카이드


2013년 4월 카타르 도하에서 에너지 관련 회의가 개최되었을 때, 발언자 중 한 명인 카타르 정부 관계자가 걸프만의 국제어인 영어로 자국 국왕의 ‘명확한 비전’을 찬양하면서 회의를 시작하고, 또 같은 말을 하면서 회의를 끝맺었다. 회의에 참석한 기자들과 교수들은 잘 알고 있는 듯한 눈짓과 미소를 주고받았다. 이런 유의 행사에 익숙한 몇몇 사람은 심지어 ‘더 비전’(the vision)이라는 표현이 몇 번 나올지 내기를 걸기까지 했다. 이 표현은 아랍·페르시아 만의 모든 가스나 유전 군주국에서 공통적으로 쓰이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학회든 공식 서류든 혹은 단순한 여행 소책자든 간에, 악센트를 과장하여 자국 왕의 ‘비이전’, 아니 약간의 존칭 수식어를 집어넣어 ‘아주 높은 하늘에 계신 전하의 비이전’을 찬양해야 한다.

이런 말들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난 아첨을 넘어, 이와 유사한 말들은 군주들이나 그들의 왕궁이 외부에 투사하고 싶어 하는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요약해준다. 그러나 왕, 아미르, 술탄이 자국을 개발시키는 방법에 대해 언제, 어떤 비전- 당연히 군주 개인의 비전- 을 갖게 되었는지 우리가 알 필요가 있다. 당연히 신흥 부자의 변덕이 아닌 ‘전략적 비전’을 가졌는지 말이다.

두바이의 마천루, 사우디아라비아의 신도시들, 오만 군주국의 항구들, 석유 중심 경제에서 탈피하기 위한 아부다비 경제의 다변화, 지구 곳곳에서 드러나는 카타르의 적극적 행동주의, 앵글로색슨 언론이 ‘완전히 블링블링’(al-bling-bling)하다고 표현한 환상적인 호텔들, 유럽 경쟁 항공사를 제압한 아랍 항공사들(에미리트항공, 에티하드항공, 카타르항공, 오만항공),(1) 기발한 관광 상품, 이 모든 것은 전략가이며 기획가이고, 빈틈없는 관리자이며 경영자인 군주들의 일관된 ‘비전’에서 나온 것이라 할 것이다.

기회주의자들이며, 이 지역 거대 경제 프로젝트의 출처인 앵글로색슨 자문위원들은 ‘비전’이란 용어에 온 힘을 쏟는 것이 이익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몇 년 전부터 이들은 가장 아름답고 밀도 있는 전망 보고서를 만들어내고 있다. ‘비전 2020’ ‘비전 2030’이 나왔는데, 곧 2040에 대한 전망 보고서들도 나올 것이다. 걸프만 국가들은 끊임없이 자국을 미래에 투영해보고, 자신들을 진정한 경제·에너지 강국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온갖 시나리오를 상상해본다.

‘비전’을 위해 동원된 자문관들은, 이웃보다 더 잘해보려는 생각에 여념이 없는 경쟁 군주들에게 똑같은 아이디어를 연속적으로 판매하면서도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샤르자(Sharjah) 왕국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박물관, 특히 이슬람 예술 박물관을 갖고 있다고 소문이 났는가? 그러면 카타르는 세상에서 가장 큰 박물관을 지으려 하고, 반면 아부다비는 같은 ‘문화구역’에 루브르와 구겐하임 박물관을 모아놓아 위엄을 과시하려 한다. 두바이가 세상에서 가장 큰 탑을 소유하고 있다고 소문이 났는가? 이번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명백한 지역의 패권국이라는 체면을 앞세워 그보다 훨씬 더 높은 탑을 지으려 한다.

유럽의 프로젝트들이 줄고 있고 성장이 더 이상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해 미국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데도 걸프만 국가들은, 비록 이란 핵 때문에 남모르게 악몽을 꾸어야 할지라도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내보이고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거의 매일, 사람들은 수백억 달러짜리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한다. 두바이 주간지 <미드>(Meed) 혹은 아랍에미리트 일간지 <더 내셔널>(The National)이- 이 두 잡지는 비즈니스 언어인 영어로 발행되는데, 영어는 고등교육·여가·문화와 관계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언어다- 언급하는 액수는 현기증을 일으킨다. 공식 선언문들을 읽고 들어보면, 모든 프로젝트가 ‘월드 클래스’(world class) 수준에 들어간다. 하얀 코끼리를(2) 사들인 부자 족장들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란다.

프로젝트는 거대하고 인상적이며 동시에 수익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프로젝트 수행 국가가 중국이나 브라질처럼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의 대열에, 특히 ‘허브’(hub) 국가의 대열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허브’는, 절대적이진 않더라도 좋은 사업을 하기에 적합해 거치거나 들러보아야 하는 전략적 교차로이며 통신과 운송의 요지인 곳을 의미한다. 게다가 걸프만 국가들은 당장에 세상의 수렴점이 되고자 하는 강박증에 가까운 증세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지도 위에 표시되는 것’, 특히 알려지고 인정받고자 하는 강박증을 갖고 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다른 이유들 외에도, 이 지역의 군주국들은 뭔가를 벌이려고 한다. 전파를 아주 많이 탄 카타르의 예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global)이라는 형용사가 ‘허브’라는 말에 필연적으로 붙게 된다. 어떤 프로젝트, 어떤 활동, 어떤 학술회의도 그것이 ‘세계적’이 아니면, 다시 말해 ‘세계화’란 이름이 포함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한다. 도하나 마나마(바레인의 수도)에 잠시 들르는 사람들은, 가족이 경영하는 조그만 회사의 홍보 담당자 명함에 ‘국제 언론 담당자’(global press officer)라고 쓰여 있어도 놀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심지어 국외 추방자들과 교포들이 대리석으로 된 음울한 갤러리 안에서 무료함을 달래고 있는, 에어컨이 가동되는 거대한 쇼핑센터인 ‘몰’도 ‘세계적’이 되어야 한다. 걸프만 국가들이란? ‘전략적 비전을 가진 세계적 허브’다.

‘월드클래스 비전’과 ‘인적자원’의 그림자

‘전략적 비전을 가진 세계적 허브’라는 말은 신(新)경제의 도래를 찬양하는 학술대회가 개최되고 여러 권의 책이 나올 정도로 그 내용이 풍부하다. ‘강력한 경제’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지속 가능한 발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주민당 온실가스를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배출하는 곳이어서 환경에 대해서도 당연히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월드 클래스’ 수준이다.

‘비전’과 관계된 서류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이 ‘인적 자원’인데, 이 용어는 온갖 것에 다 쓰이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인적 자원을 개발하고 보호해야 한다. 당연히 이 말은 이민 온 다수 노동자들, 특히 인도 출신 노동자들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들에 대해 사람들은 틈만 나면 ‘추방’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식사비와 주거비를 제하고도 거의 매번 늦게 지불되는 급여나 그들의 (보잘것없는)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파업해보려는 나쁜 마음을 먹었다가는 즉각적으로 처벌받는다. 게다가 이들은 자신들의 권리나 급여에 대해 협상할 가능성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최근에는, 후견인인 서구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강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적 자원’이란 용어를 여성들의 운명과 연관지어 사용한다. 도하나 쿠웨이트 시티에서처럼, 두바이에서도 여성들에게 손쉽게 직업을 갖게 하는 것만이 중요한 일이고 그 나머지는 부수적이다. 일단 직업을 갖게 되면 주의를 끌 만한 또 다른 용어가 등장한다. 이 용어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함의를 구체화하는 중요 수단이다. 바로 ‘권한 부여’(empowerment)라는 용어다. 이 용어는 ‘관계된 여성들이 그들 스스로 더 잘 행동할 수 있도록 점차적으로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아랍에미리트나 카타르 여성에게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은, 지배적인 가부장적 시스템을 문제 삼지 않으면서 여성이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여성에게 인식시키는 것이다. 명확히 말하자면 여성을 해방시키지만, 너무 많이 해방시키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실패한 ‘노동 국유화’

역으로 ‘현지 젊은이’들에 대해- ‘현지 젊은이들’이란 용어는 추방당한 사람들이 해외 교포들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다- ‘권한 부여’를 한다는 것은, 현지 젊은이들에게 더 많이 일하라고, 특히 민간 영역에서 지금껏 외국인들에게 맡겨졌던 일자리들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캠페인을 열심히 전개해 외국인 노동자를 현지 젊은이들이 대체하는 ‘노동의 국유화’(labor nationalization)를 달성하려 했지만 실패한다. 아직도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심하다. 이런 결과는 예기치 못한 일로, 언론과 의회, 수많은 자문관들에게서 기나긴 논쟁을 야기하고 있다.(3)

그러나 마비되고 할 일 없는 이 젊은이들을 이해해야 하지 않겠는가? 젊은이들은 강력한 ‘추우크’(chouyoukhs)를 불안하게 하고 있는데, ‘추우크’는 군주들과 부족의 위대한 인물들을 가리킨다. 젊은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럭셔리’(luxury)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고 일을 잘하려고 하는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럭셔리’란 단어는 ‘사치’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유흥가 풍경이 펼쳐지는 몇몇 걸프만 도시의 밤 생활을 고려한다면 ‘외설’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특히 ‘무위안일’이라는 의미로 이해되는 ‘레저’(leisure)라는 단어와 ‘즐기다’로 이해되는 ‘인조이’(enjoy)라는 단어가 가장 일상적으로 쓰이는 국가들에서, 이미 사람이 너무 많이 투입되어 있지만 그래도 공공 업무에 젊은이들을 채용하는 것 말고는 어떻게 젊은이들을 일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추우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젊은이들만이 아니다. 사회적 혼란이 40년간 지속됨으로써, 많은 사람이 여기에 불만을 느끼고 정체성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래서 국가적 통일성을 고려하여 ‘헤리티지’(heritage·‘r’ 발음을 잘 굴리면서 소리 냄)와 ‘컬처’(culture)를 중시한다. 그런데 ‘문화적 유산’(cultural heritage)이란 것은, 정신적 측면에서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기술적 측면에서 그토록 요구받은 ‘현대성’(modernity)이 생산해낸 불안감을 보상하는 데 유용한 표현이다.

그러나 근동이나 마그레브(아프리카 서북부 지역)에서 온 방문객들은, 예전에 텅 빈 공간이었던 이 땅에서 무슨 문화유산을 이야기하느냐고 빈정댄다. 텐트요? 낙타요? 이슬람 이전의 시(詩)요? 사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검소함이오? 해상 싸움이오? 간편한 요리요? 방문객들은 요리가 ‘스파이시’(spicy)하냐고 물어서는 안 된다. ‘스파이스’(spice)라는 용어가 인위적 천국을 찾는 현지 젊은이들이 점점 더 열광하는 합성물질(마약 혹은 각성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유행하는 용어 자체가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 않다. 유행하는 용어는 기껏해야 그 지역의 국가들이 ‘국가 건설’(nation building)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줄 뿐이다. ‘도전’은 불확실하다. 비록 전략적이고 미래 예측적인 ‘비전’이 존재할지라도, 수많은 아랍 국가들에 비전은 여전히 부족하다.

 

글·아크람 벨카이드 Akram Belkaid

번역·고광식 kokos27@ilemonde.com
주요 역서로 <성의 역사> <방법서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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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ean-Pierre Séréni, “에미리트는 두바이를 이륙시키고 싶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11월호.
(2) ‘하얀 코끼리’는 결코 이룰 수 없거나 혹은 재정 파탄을 초래하는 주제넘은 공사를 의미함.
(3) “국가적 열기에 휩싸인 아랍에미리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