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다코타의 꼬리없는 암소들
재키 쉴크 부인의 농장을 중심으로 반경 35km 이내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 윌리스턴 인근에서 농사를 짓는 쉴크 부인은 자신의 농지에서 석유를 시추하겠다는 업체들의 요구를 모두 거부했다. 하지만 부인의 농장을 둘러싸고 이미 많은 석유개발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 그런데 2011년부터 부인이 키우는 소 몇 마리가 이름 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앓았다. 몸이 야위고 꼬리가 떨어져나가기도 했다. 부인은 미국 노스다코타주 당국에 환경 검사를 의뢰했으나, 현장을 찾은 감독관들은 아무런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자 쉴크 부인은 디트로이트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전문 연구원에게 연락했고, 그는 농장에서 채취한 대기에서 벤젠·메탄·클로로포름·부탄·프로판·톨루엔·자일렌 등을 검출했다. 이 물질들은 모두 수압파쇄(Fracking) 방식을 이용한 석유 시추로 발생하는 물질이었다. 농장 우물에서는 황산염·크롬·스트론튬 등도 발견됐다. 부인의 뇌에서는 신경 독성 화합물이, 혈액에서는 각종 중금속성 물질의 흔적이 나타났다. 부인은 소 5마리와 개 2마리, 여러 마리의 닭을 잃었고 자신의 건강까지 일부 손상됐다.
쉴크 부인의 경우와 비슷한 여러 사례들이 밝혀졌고, 이로써 노스다코타 지역의 석유 개발 붐으로 언론이 흥분해 있을 때 정작 이곳 주민들은 자신의 땅을 보호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11년부터 방송사들은 넓은 평원 곳곳에 세워진 데릭(Derrick·석유 시추용 탑), 끝없는 트럭 행렬, 캠핑카에 급조한 노동자 숙소 등 똑같은 영상을 연일 반복해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처럼 급작스러운 개발이 유발하는 환경 비용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주정부는 사고나 부주의로 평원에 살포될 우려가 있는 석유와 화학물질의 양도 파악하지 못했고, 관련 업체들이 직접 작성하는 산업재해 보고서는 위조되기 일쑤였다. 이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이 작은 주(주도 비즈마크의 인구가 6만 명도 안 된다)가 석유개발 기업들에는 정치적·사법적으로 천국이기 때문이다.
수압파쇄기법에 의한 토양오염 문제는 개발 초기에 석유회사와 규제 당국이 유발한 어떤 오해에서 비롯됐다. 다코타 유전은 지하 3km에 있다. 공식적인 주장에 따르면 깊은 곳의 혈암(셰일)과 지하수층 사이에 여려 겹의 지층이 있어서 지하수층과 토양이 오염될 우려가 전혀 없다고 했지만, 문제는 오염물질이 다른 경로로 유입된다는 데 있었다. 코넬대학 공학교수인 앤서니 인그라페아는 한때 석유기업 슐룸베르거의 수압파쇄기술 개발에 동참했으나 이제는 이 기술의 사용 금지를 주장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환경오염의 원인은 수압파쇄 자체가 아니라 이 공법의 사용 전후에 이루어지는 작업들”이다. 이를테면 공장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화학폐기물의 운송과 저장이 그것이다.
유정 1만2천 곳 감독관이 2명…
노스다코타주에서는 2곳의 기관이 유정, 폐기물, 대기오염도를 관리한다. 바로 보건부와 석유가스국이다. 그러나 이들은 누출 사고가 발생한 뒤에나 개입하며, 일종의 신뢰 계약을 바탕으로 관련 기업들이 법정 시한 24시간 이내에 자발적으로 문제를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노스다코타주 보건부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감독관들에게 보고된 누출 사고는 모두 3464건으로 약 하루 2건꼴이다. 하지만 업체 처지에서는 누출 사고를 신고해서 하등 좋을 게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발생 건수는 이보다 많을 것이다.
보건부가 2010년부터 지금까지 부과한 벌금은 50건이 채 안 된다. 그리고 1km²당 인구가 3명에 불과한 이곳 바켄분지에서는 누출 사고가 발생해도 목격자가 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아무도 모르게 일어난 사고가 과연 몇 건이나 될까? 50건? 1천 건? 보건부도 그 수를 알 수 없다고 시인한다. 1만2천 곳의 유정, 컨테이너, 수송관, 수송차 그리고 1천여 곳에 이르는 주입정을 검사하기 위해 보건부 감독관들이 직접 출장을 나가는 경우는 드물다. 노스다코타주 보건부 환경과 책임자인 데이비드 글래트의 설명을 들어보자. “현장 근무자는 현재 2명이다. 10명에 달할 때도 있다. 대기오염을 감시하는 배출물 전담 감독관도 몇 명 있다.” 하지만 정확한 인원은 밝히지 않는다. “우리는 작은 조직이다. 비스마르크식의 철두철미한 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석유개발단지 인근에서 호텔방 하나 구하는 것도 우리에겐 쉽지 않다.” 누출 사고 발생시 해당 업체는 보고서에 유출 액체량을 명시하도록 돼 있지만, 종종 부정확하거나 터무니없는 수치를 보고한다고 감독관들도 시인한다.
2012년에만 40여 곳의 업체가 누출된 염수나 석유의 양을 모르겠다며 ‘영’(0)이라고 기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영리 뉴스 사이트 <프로퍼블리카>도 자체 조사 결과 그간 엄청난 양의 석유와 염수가 아무도 모르게 누출됐다고 보도했다. “2011년 7월 석유회사 페트로하베스터는 40m²의 염수가 유출됐다고 보고했지만, 현장에 출동한 감독관들은 훨씬 심각한 사고임을 확인했다. 800만ℓ의 염수가 누출돼 10ha의 땅이 황폐해진, 다코타에서 유례없는 규모의 사고였다. 그럼에도 공식 보고서는 수정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된 땅의 주인은 회사로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또 다른 규제기관인 석유가스국의 임무는 모순된 두 가지 명령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편으로는 시민을 보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2010년 이래 재임 중인 잭 달림플 노스다코타 주지사가 임명한 린 헬름스 석유가스국 국장은 전직 석유업계 종사자다. 수압파쇄공법의 열렬한 지지자인 그는 티파티 그룹(보수 성향 정치운동)의 대표적 인사인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와 함께 석유생산 주(州)들의 로비단체인 ‘주간 석유·가스 협약위원회’(IOGCC·Interstate Oil and Gas Compact Commission)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그랜드폭스에서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는 변호사 데이브 톰슨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며 비꼰다. 노스다코타주는 규제에 관한 전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연방정부가 환경보호청을 통해 권한을 장악하려 하면 주정부의 특권을 내세워 이를 저지한다.
지난 6년 동안 노스다코타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다. 2007년 콘티넨탈이 개발을 시작한 유전은 순식간에 경이적인 수익을 거두었다. 오늘날 이곳에서는 하루 60만 배럴 이상의 원유가 생산된다. 2012년 노스다코타주는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를 제치고 텍사스에 이은 두 번째 석유 생산 주가 됐다. 미국 전역에서 찾아온 이들은 열악한 조건 아래 허허벌판에서 일하며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의 급여를 받는다. 이곳에서는 화물차 청소부의 월급이 최소 1만 달러 정도다. 노스다코타에선 인력이 부족한데 실업률이 약 3%로 미국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달림플 주지사는 흐뭇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5년 전만 해도 우리 주는 폭설로만 이름을 떨쳤다. 지금은 <월스트리트저널>이 노스다코타의 비법을 물어볼 정도가 됐다.”
하지만 쉴크 부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 비법이 환경에는 해가 됐다고 봐야 한다. 부인의 가축이 호흡기와 소화기 중 어느 경로를 통해 병에 감염됐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두 경로 모두일지 모른다. 인그라페아 교수에 따르면, 방목지 부근의 시추정에 균열이 생기면서 석유나 염수가 지하수층으로 유입돼 농장의 우물을 오염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인그라페아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수압파쇄공법을 이용한 시추정에 가해지는 압력은 어마어마하다. 시추정의 상태는 해가 갈수록 나빠진다. 오래될수록 누출도 늘어나는 것이다. 30년 된 시추정은 누출 가능성이 60% 정도 되며, 업체에서 저질 시멘트를 사용했다면 1년 이내에 누출 사고를 일으킨다.” 주입정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아예 감독이고 관리고 아무런 조치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도 들여다보는 사람이 없다. 돈벌이와 무관한 폐기물 처리시설에 누가 투자하겠는가? 수십억 달러 단위의 돈벌이가 같은 장소에 있는데 말이다.”
개발의 상징 도시로 1% 미만의 미국 최저 수준 실업률을 자랑하는 윌리스턴에 병든 소들이 등장하자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수압파쇄공법이 농업에 미치는 잠재적 위험성을 두고 논란이 빚어졌다. 그럼에도 미국 연방정부는 이 문제에 관해 연구하도록 재정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 노스다코타에서도 공개적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알린 농민은 쉴크 부인을 비롯해 몇 명 되지 않는다. 다른 농민들은 신원을 밝히면서까지 자신과 마찰을 빗고 있는 업체를 지목하기 꺼린다. 이는 아직 분쟁이 해결되지 않았거나, 언론이나 독립 연구자들에게 사건을 알리지 않겠다고 해당 업체와 비밀유지협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절차 미비라며 주민 청원 기각
일부 농민들은 자신의 땅 지하를 석유회사에 임대한 뒤 매달 ‘로열티’라는 명목으로 배럴당 수수료를 챙기기도 한다. 비즈마크의 변호사 데릭 브라텐은 농민들이 “자신을 사실상 먹여 살려주는 기업의 손을 물었다가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석유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40여 농민들 편에 섰던 그가 수집한 증언을 보면 일관된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농민들이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도 적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이다.
2011년 보티노카운티의 농민들은 눈에 보일 정도로 심한 누출 현장과 구멍 뚫린 독성 물질 컨테이너를 공중촬영한 뒤 누출 사고를 모두 당국에 신고했다. 그러나 오염을 유발한 회사인 세이지브러시 리소시스에는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감독관들은 자신이 농민들로부터 받은 전자우편을 세이지브러시에 전달했고 농민들은 사유지 침입을 이유로 고소당했다”고 브라텐 변호사는 말했다. 1년 6개월에 걸친 소송 끝에 비즈마크의 한 판사가 세이지브러시에 유죄판결을 내렸지만 업체는 이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고 지금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자그마한 규모의 노스다코타주는 애당초 이처럼 급속한 개발에 대응할 준비가 부족했다. 정치적 측면에서도 구조적인 취약점이 다분했다. 2013년 1월 발표된 어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청렴도에서 50개 주 가운데 43위를 차지했다. 게다가 정치자금 부문에서는 낙제점인 ‘F’를 받았다.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은 자신이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정치자금 제공자들에게 보고할 의무가 없고, 금액 신고도 얼렁뚱땅 이루어진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주도 비즈마크에서는 주 상원의회의 본회의가 고작 2년에 한 번 소집된다.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었을 때는 그 정도 횟수면 충분했지만 현재의 석유개발 붐에 부응하려면 각별한 순발력이 필요하다. 지난해 소수당인 민주당이 기업 규제 강화를 위한 특별회의 소집을 요청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달림플 주지사는 이런 제안을 거부했다. “많은 이들이 정치인의 관심사는 주민이 아닌 기업의 안위라고 생각한다”고 라이언 테일러 전 민주당 상원의원은 꼬집는다. 킬디어 출신 농민인 그는 2012년 11월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석유회사들의 기부금을 거부함으로써 이해관계 충돌을 미연에 방지할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결국 달림플 후보에게 40%포인트 차로 밀려 낙선했다. 참고로 노스다코타주는 대통령 선거에서도 1964년 이래 한 번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적이 없다.
노스다코타 주지사가 누리는 영향력은 미국의 어느 주지사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막강하다. 주 산업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시추 명령을 내리는 것도 주지사다. 기업들을 규제하는 동시에 그들로부터 기부금을 받다보니 종종 이해관계의 충돌을 경험한다. 2011년 말부터 2012년 6월까지 달림플 주지사는 헤스·코노코·콘티넨털 등 노스다코타주에 진출한 중견 석유기업들로부터 8만1600달러의 기부금을 받았다. 한 달 뒤 그는 이 기업들이 던카운티에서 신청한 시추권을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승인해주었다. 심지어 허가를 내준 125km²의 공간에는 국유지인 리틀 미주리 국립공원의 일부도 이례적으로 포함됐다. 던카운티 주민 170명은 주지사를 법정 소환해 뇌물 수수로 기소하라는 내용의 청원서를 현지 판사에게 제출했다. 그러나 해당 판사는 형식 요건 미비를 이유로 청원을 기각했다.
전문가들은 노스다코타에 일고 있는 개발 붐이 20년은 계속될 것이며, 세계시장의 원유 가격이 배럴당 60달러 이하로 떨어진 상태가 지속될 경우에나 멈출 것으로 내다본다(2013년 7월 현재 가격은 그 두 배에 달한다). 다코타의 석유 혁명이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최근에는 ‘멀티웰 패드’(Multi-well Pad)라는 새로운 공법이 확산되고 있다.
지표면의 한 패드에서 10여 곳의 시추정을 동시에 시추하며 아울러 수km에 이르는 암반을 한 번에 파쇄하는 기술로, 이를 이용하면 석유생산량이 획기적으로 증가한다. 한층 효과적인 기법임이 틀림없지만 기업들은 엄청난 양의 석유를 어떻게 외부로 운송할 것인지가 고민이다. 이들이 도달한 결론은 송유관의 증설이다. 인그라페아 교수는 “새 기술의 도입으로 삼림과 농지의 파괴가 늘어나고 더 많은 용수, 화학물질, 송유관이 필요하게 됐다”며 안타까워한다.
글•막심 로뱅 Maxime Robin
번역•최서연 qqndebien@naver.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르몽드 세계사 2>(공역·201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