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레이온 이전, 죽음의 경로
직업병의 국제 이동
2013-08-07 안종주
직업병을 예방하고 조기에 찾아내며 노동자를 대상으로 산업보건 교육을 하기 위한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도 만들어져 10년 넘게 많은 일을 해오고 있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의 성과는 이웃 일본에서는 물론이고 세계 많은 나라의 산업보건 전문가들과 노동계가 부러워하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원진레이온 사건은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직업병·환경병 같은 위험을 떠넘긴 대표적 사례로 원진레이온 사건이 꼽히고 있는 것이다.
이황화탄소는 1800년대부터 고무 제조 과정에서 용매로 사용되기 시작해 1900년대 초기까지 비스코스레이온의 합성 과정에서 대량으로 사용됐다. 프랑스·스웨덴·핀란드 등 유럽 선진국에서는 1930~40년대 인견사 제조 과정에서 이황화탄소 중독증에 걸린 노동자가 속출했다. 일본에서도 인견사 제조가 1916년부터 이루어졌다. 1930년대 일본은 이미 당시 유럽 선진국이나 미국과 제조업 등 공업 수준이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다. 일본은 1960년대 초반 레이온 생산 공장에서 이황화탄소 중독 환자가 잇따라 발생해 사회문제로까지 번졌다. 그 뒤 일본은 이황화탄소 중독 피해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방사(紡絲) 공정에 무인시스템을 도입해 그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중고기계를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는 전략을 택했다.
일-한-중을 거쳐 북한으로 간(?)
직업병 생산 기계
마침 1961년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공업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원진레이온도 그런 전략의 하나로 국내에 들어서게 된다. 1961년 박정희가 이끌던 군사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하나로 인견 제품 및 원면 수입 대체산업 육성을 위해 인견사 생산 공장 2개를 건설키로 하고 기업주를 공모했다. 이 공모에는 당시 조선견직 대표 김지태(부일장학회 등을 가지고 있던 부산의 대표적 기업인이던 그는 박정희 정권에 의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되고 장학회마저 그에게 내줘 정수장학회로 바뀌게 되는 비극의 주인공임)씨와 화신백화점 등을 소유한 대한민국의 대표적 갑부이던 화신산업의 박흥식씨가 응모했다. 하지만 김씨가 갑자기 포기해 박흥식씨가 레이온공장 건을 따내게 된다. 그리하여 1963년부터 3년여에 걸쳐 경기도 구리시 도농동 1번지 15만 평 가량의 터에 일본 도레이(東洋)레이온사에서 사용하던 중고기계를 들여와 1966년부터 본격적인 레이온(인견사) 생산이 시작됐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1987년부터 직업병 피해자가 쏟아진 것이다. 일본은 직업병 환자를 양산하고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레이온 생산기계를 버리지 않고 개발도상국에 돈 받고 팔아서 좋았다. 한국은 하루빨리 빈곤에서 벗어나자는 생각에 직업병이나 공해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중고기계를 싼값에 들여와 좋았다. 당시에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서로의 이익이 맞아떨어진 결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공해 수출이며 위험과 죽음의 수출이다. 특히 파는 쪽에서 그 산업이 나중에 사회에 끼칠 악영향을 충분히 예상했으면서도 이를 쉬쉬하며 이전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윤리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환경을 파괴하고 죽음을 양산하는 공해산업을 수입한 결과 막대한 피해를 당하고도 이를 다시 다른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 떠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대한민국도 그런 국가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국영기업이던 원진레이온 사건은 우리 사회를 6년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는 다시 이 기계를 국내의 한 기업에 매각해 중국이 수입해가게끔 했다.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중국 단둥으로 옮겨간 문제의 레이온 방사기계는 최근 북한으로 이전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은 빠른 속도로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다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윤리 측면에서는 과거 미국, 일본, 유럽의 선진국들이 저지른 잘못을 몇십 년의 시차를 두고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원진레이온 방사기계가 중국에서, 그리고 북한에서 앞으로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1960년대 초 원진레이온 기계를 일본에서 들여오는 과정에 한국 노동자들은 기계 작동법 등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연수를 떠났다. 한국 노동자들이 기술 습득을 마치고 일본을 떠나기 직전 일본 노동자들과 가진 송별 회식 자리에서 일본 기술자들은 이 기계를 한국에 가지고 가면 앞으로 매우 시끄러운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귀띔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 기술 노동자는 매우 시끄러운 일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 말을 들은 한국 노동자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몰랐다고 한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뒤 일본 기술 노동자가 한 말, 즉 매우 시끄러운 일이 <한겨레신문> 1988년 7월 22일자를 통해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직업병 집단 발생’으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레이온 기계 도입 당시 있었던 이 일화를 최근 전해들으면서 노동자 간 국제 연대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이런 참사는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공해산업, 죽음의 수출은 비단 원진레이온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60~80년대 한국에 들어온 일본, 독일, 미국 등 여러 선진국들의 공해산업은 우리나라의 많은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1980년대 중반 이른바 ‘온산병’(사실상 대한민국 최초의 집단 공해병)을 일으킨 주범인 온산국가공단의 공장들은 일본에서 대거 옮겨온 것이었다. 석면산업도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 또는 후진국으로 이전되는 대표적 공해·직업병 양산 업종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직업성 암 환자와 석면 질환을 발생시킨 대표적 석면방직 공장이던 제일화학(지금은 제일E&S)은 일본 최대의 석면기업 니치아스(일본석면)와 독일의 렉스사에서 기계를 들여오거나 합작해 만든 회사다. 제일화학은 국내 최대의 석면 직업병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에게까지 악성중피종 같은 치명적인 환경병에 걸리게 만든 대표적인 공해기업이다. 이 회사는 석면 제품 생산과 관련한 국내 작업환경 규제가 점차 강화되자 석면방직기계를 인도네시아와 중국 등지로 이전했다. 원진레이온과 마찬가지로 석면방직공장도 ‘일본·독일→한국→인도네시아·중국’으로 옮겨가며 그 지역 주민과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비정부기구(NGO)인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최예용 소장은 2013년 발표한 서울대 박사 학위 논문 ‘아시아에서의 석면산업의 국가 간 이동’에서 “한국에서 인도네시아로 석면방직 설비를 이전한 1990년 한국의 경우 작업장 공기 중 석면 농도가 1.0개/cc 이하의 수준인데 2008년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을 방문해 측정한 결과 평균 5.8개/cc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또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20년 가까이 일한 노동자 3명에게 석면폐증이 나타났다고 하니 이제 이곳에서도 한국처럼 석면 직업병 피해자가 쏟아져나오는 것은 시간문제일 듯하다.
노동·환경 국제연대만이 대안
공해산업 수출로 인한 최악의 사건은 1984년 인도 보팔시에서 벌어진 메틸이소시아네이트(MIC) 가스 누출 참사를 꼽을 수 있다. 미국의 다국적 농약회사 유니온카바이드사가 세워 운영한 이 공장에서 일어난 참사로 2만5천 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 또한 15만 명이 만성적 질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 가운데 5만 명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한다. 보팔 참사는 사상 최악의 환경재난으로 자리매김했다.
공해산업, 즉 죽음의 수출은 지금도 미국과 유럽 국가 등 선진국에서 아프리카, 남미, 인도, 아시아 지역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는 데는 선진국에서의 노동임금 상승 등의 이유도 있겠지만 오염물질 배출 규제 강화, 직업병·환경문제 발생 등도 한몫하고 있다. 저개발국가나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에서 공해산업 또는 죽음의 산업을 수입하지 못하도록 하려면 유해 폐기물의 국가 간 이동을 규제하기 위한 바젤협약 같은 국제 협약을 더욱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물론 있다. 하지만 이런 국제 협약으로도 위험의 국가 간 이동을 막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윤 추구를 최대 목표로 하는 기업과 기업주들이 이익이 된다면 위험 수출, 위험의 국가 간 이동 등 수단을 가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비빌 언덕이 NGO들의 국제 연대 활동 강화밖에 없다. 대표적 본보기로는 석면 사용 추방을 위한 국제 연대를 꼽을 수 있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펼쳐지는 석면 추방 연대는 다른 분야에 견줘 활발한 편이다. 아시아 지역은 이미 석면 사용을 금지한 유럽연합(EU) 국가를 비롯한 선진국과는 달리 가파른 공업화와 함께 석면 사용이 오히려 늘고 있다. 중국·인도·베트남·타이·말레이시아 등 대표적인 석면 다소비 국가에서는 앞으로 30~40년 뒤 석면으로 인한 직업병과 환경병 환자가 속출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이를 막고자 한국과 일본의 석면 추방 활동가들과 NGO들이 중심이 돼 2009년 4월 아시아석면추방네트워크(A-BAN·에이반)를 결성해, 아시아 국가들에서 이뤄지는 석면 사용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석면 금지를 위한 제도 마련을 촉구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에이반은 베이비파우더 석면 탈크 파동이 우리나라에서 터진 직후인 4월 27일 홍콩에서 열린 ‘2009 아시아 석면회의’ 직후 만들어졌다. 2007년 7월 서울과 부산에서 열린 국제석면심포지엄 참가자들이 아시아네트워크의 필요성을 합의한 이후 1년여 동안의 준비를 거쳐 정식으로 발족한 것이다. 아시아에서 국가 단위로 석면추방운동기구가 설립된 나라는 일본, 인도, 필리핀 그리고 한국 등이었다. 에이반 결성 이후 인도네시아 등 여러 국가에서 석면 추방 NGO들이 생겨났다. 에이반은 결성 뒤 인도네시아·인도·방글라데시 등을 돌며 매년 국제 간 연대회의를 열고 있다.
에이반은 출범선언문에서 석면 추방을 위한 풀뿌리운동 활성화, 아시아 각국의 석면 관련 질환 발굴, 석면공해 실태 조사, 석면산업의 국가 간 이동 금지와 국가 간 이동으로 인한 피해 조사, 석면 피해 없는 국제사회 구현 등을 목표로 내세웠다.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BANKO·반코)는 당시 한국에서처럼 다른 국가에서 일어날지 모를 베이비파우더 석면 파동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 대만·홍콩·필리핀·인도네시아·인도 등 아시아 5개국과 영국·캐나다·미국·오스트리아 등 유럽과 미주 4개국 등 모두 9개국에서 24개의 베이비파우더 샘플을 수거해 분석해주기도 했다. 에이반 등의 노력으로 일본과 한국에 이어 홍콩도 올해 석면 사용을 전면 금지키로 했다. 또 베트남 등 석면 다소비 국가들도 2020년까지 완전 사용 금지를 목표로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인체 발암물질인 석면의 사용을 줄이려는 NGO의 노력이 조금씩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위험의 국가 간 이동을 막으려는 NGO들의 노력은 종종 있어왔다. 오래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대만이 북한으로 보내 처리하려던 핵폐기물의 이동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의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 등이 활동가를 대만에까지 보내 저지 농성을 벌이는 등 눈부신 활약을 했다. 우리나라 NGO들이 이런 역사와 전통을 이어받아 국내 직업병과 공해 문제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 유해화학물질과 발암물질을 다루거나 유해 폐기물과 공해를 양산하는 기업들이 후진국이나 저개발국가로 옮겨가며 그 사회에서 위험을 증폭시키고 죽음을 야기하는 문제에 대해 지금보다 더 관심을 쏟아주었으면 한다.
글•안종주
서울대 보건대학원 보건학 박사. 전 <한겨레> 기자. <석면공해: 조용한 시한폭탄>(1988), <위험증폭사회>(2012) 등 다수의 환경 관련 저서와 논문이 있다. 현재 환경보건시민센터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