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 탄생 100주년, 이방인의 신화와 그 이면
2013년은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 극작가, 에세이스트, 사상가 중 한 명인 알베르 카뮈(Albert Camus·1913∼60)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프랑스를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의미 있는 행사, 특히 학술행사들이 개최됐고 또 개최될 예정이다. 프랑스어권의 경우,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 자리잡고 있는 그 유명한 스리지라살(Cerisy-la-salle) 국제문화센터에서 2013년 8월 17∼24일 개최되는 국제컬로퀴엄, 카뮈연구회(Societe des etudes camusiennes) 주최로 알제리 겔마대학에서 2013년 10월 9∼10일 이틀 동안 개최되는 국제컬로퀴움 등이 예정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3년 10월 프랑스문화예술학회 주최로 카뮈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청주대학에서 열릴 예정이다.
올해에 이처럼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카뮈는 이미 하나의 ‘신화’다. 꼭 탄생 100주년이 아니더라도 카뮈는 오래전에 ‘신화’가 되어버렸다. 카뮈 신화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방인>은 프랑스인들에 의해 ‘20세기 가장 훌륭한 소설’이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거머쥔 바 있다. 카뮈는 1957년 작가로서 최고 영예라고 할 수 있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는 카뮈 신화의 최고봉에 해당하는 사건이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카뮈 신화는 1960년에 발생한 교통사고에 의해 더욱 공고해진다. 신은 천재와 영웅을 늘 가까이 두고자 한다던가! 이 사고는 카뮈 신화의 가장 중요한 퍼즐 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1951년 <반항인> 출간을 계기로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를 비롯한 프랑스 좌파 진영의 대공세를 받아 수세에 몰렸던 카뮈의 복권(復權) 역시 그의 신화 형성에 일조했다. 이런 복권 추세 속에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카뮈 사망 5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카뮈의 유해를 팡테옹으로 이장하려 했다. 어쩌면 이민자 집안 출신으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사르코지가 식민지 치하에 있던 알제리에서 출생해 프랑스 본토에서 보란 듯이 성공한 카뮈에게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지 모를 일이다. 사르코지의 계획은 카뮈 후손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프랑스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카뮈는 신화다.
신화의 요체는 다양한 저술들
무엇보다 카뮈의 삶 자체가 하나의 신화다. <안과 밖> <결혼> <여름>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또 1994년 유고집으로 출간된 <최초의 인간>에서 볼 수 있듯이, 카뮈의 가족과 그 자신의 삶은 끔찍한 가난과 불행의 연속이었다. 카뮈의 아버지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전장에서 사망했고, 어머니는 청각장애인에 문맹이었다. 또한 카뮈는 폐결핵을 앓았다. 당시 치료가 어려웠던 이 병으로 인해 ‘죽음’을 맞대면하면서 젊은 날을 보냈던 카뮈, 그 결과 “삶에 절망하지 않고서는 삶을 사랑할 수 없다”고 소리 높여 외쳤던 카뮈, ‘미래’의 희망을 전하는 모든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오로지 ‘현재’만을 사랑했던 카뮈, 그렇기 때문에 ‘지금·여기’에만 충실했던 카뮈, 알제리의 태양과 바다와 대지를 사랑했던 카뮈, 이런 삶의 편린들은 그대로 그의 신화에 자양분이 되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신문 <콩바>의 사설을 쓰면서 레지스탕스 운동을 촉구하고 격려했던 카뮈, <반항인>의 출간을 계기로 당대의 지성이던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아롱 등과의 대논쟁을 불사했던 카뮈, 그리고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된 카뮈, 1960년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로 인해 사망한 카뮈…. 이 모습 모두 카뮈 신화의 무대장치다.
하지만 카뮈 신화의 요체는 그의 다양한 저작들이다. 카뮈 신화가 1942년에 간행된 <이방인>에서 시작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안과 밖> <결혼> <여름> 등의 주옥같은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 <반항인> 같은 사상서, <칼리굴라> <오해> <정의의 사람들> <계엄령> 등의 극작품, 가장 희망적인 <페스트>, 그리고 <전락> <행복한 죽음> <최초의 인간>과 같은 소설…, 여기에 더해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독일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등과 같은 시사적인 글들, 사형제도 폐지를 주창한 글 등은 모두 카뮈 신화에 일조한 저작이다. 문학과 철학 분야에서 형성된 카뮈 신화는 흔히 ‘부조리’와 ‘반항’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처럼 공고한 신화가 된 카뮈를 우리 모두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그리고 카뮈의 탄생 100주년을 한마음으로 축하하자. <이방인>에서 뫼르소라는 신화적인 인물을 창조해냈고, <페스트>에서 페스트로 상징되는 악(惡)에 저항하는 리외라는 현대판 영웅을 창조해낸 카뮈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자. 그러면서 이런 질문을 한번 조용히 던져보자. ‘카뮈의 신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카뮈 신화의 약한 고리는 이 신화를 떠받치는 든든한 두 축인 ‘부조리’와 ‘반항’에서 발견된다. 이른바 부조리 계열의 저작들로 여겨지는 <시시포스 신화> <이방인> <칼리굴라> <오해>에는 예외 없이 ‘죽음’, 그것도 ‘살인’ 장면이 포함돼 있다. <이방인>의 뫼르소는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권총으로 살해한다. 그것도 움직이지 않는 몸에 네 발을 더 쏘아 살해한다. <칼리굴라>에서 칼리굴라 황제는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함은 물론이거니와 거의 미치광이에 가까운 비인간적인 행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오해>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함께 아들과 오빠인 가족을 살해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그런데 카뮈에게서 이와 같은 살해와 비인간적인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모두 <시시포스 신화>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부조리한 인간’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양(量)의 철학’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와 ‘열정’, ‘반항’, 구체적으로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열정, 더 많은 반항을 무기로 삶을 영위해나가는 부조리한 인간의 고뇌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타인의 살해를 정당화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다시 말해 부조리한 인간 역시 사회적 동물의 자격으로 분명 타인들과 공동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가 그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도덕에 대해 거리를 두고, 또 그 도덕의 폐해를 드러내고 고발하고 비판할 수는 있지만, 그 도덕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뫼르소는 태양을 구실로, 칼리굴라는 자국 신민들에게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진실을 가르쳐준다는 구실로 많은 사람을 희생시키고 있으며, <오해>에서 딸 마르타와 어머니 역시 인간관계의 부조리를 보여주기 위해 오빠이자 아들인 가족을 살해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카뮈 신화에서 발견되는 첫 번째 역설이자 어두운 면이다.
카뮈 신화의 두 번째 약한 고리는 이른바 ‘반항’ 계열로 여겨지는 일군의 저작인 <반항인> <정의의 사람들> <계엄령> <페스트> 등에서도 발견된다. 이 저작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모든 반항에는 ‘절도’와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이른바 카뮈의 ‘한계의 철학’, 그리고 그 유명한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를 차용한 카뮈의 ‘코기토’이다.
<정의의 사람들>에서는 한 명의 테러리스트가 겪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고뇌가 그려지고 있다. 제정 러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에서 카뮈는 칼리아예프라는 인물을 통해 ‘살인’은 논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 ‘절도’와 ‘한계’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칼리아예프는 첫 번째 테러 시도에서 마차에 탄 어린아이 때문에 대공(大公)을 살해한다는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두 번째 시도에서 목적을 달성하고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은 칼리아예프는 대공 부인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살인을 자기 자신의 죽음으로 갚아야 한다는 ‘정의’(正義)의 논리를 내세우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이런 칼리아예프를 사랑하면서 그를 진정한 동지애로 감싸는 도라와의 관계를 통해 카뮈는 반항하는 ‘우리’의 형성 가능성까지 내다보고 있다. 반항하는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페스트>와 <계엄령>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카뮈는 두 작품에서 각각 페스트에 맞서 싸우는 오랑 시민들과 카디스 주민들의 ‘우리’ 형성 과정과 그 의미를 다루고 있다. <페스트>에서는 의사 리외, 신문기자 랑베르, 시청 직원 타루와 그랑 등이 주축이 된 ‘자원보건대’, 그리고 <계엄령>에서는 디에고와 빅토리아의 용감한 행동에 용기를 얻고 고무된 카디스 주민들이 바로 카뮈에 의해 제시된 반항하는 ‘우리’의 좋은 예이다.
‘절도’와 ‘한계’의 기준
그렇지만 <계엄령>은 물론이거니와 <페스트>에서도 반항하는 ‘우리’ 형성의 가능성과 그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하려는 카뮈의 의도는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왜 그런가? 답은 ‘페스트’가 오랑과 카디스 외부에서 온 악(惡)이라는 점에 있다. 카뮈는 이 두 작품에서 페스트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 어떤 공동체라도 외부에서 이 공동체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는 악의 공격을 받을 때, 이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는 예외 없이 ‘하나’가 되어 단결해서 반항하는 ‘우리’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제기할 수 있는 핵심적인 문제는, 페스트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아는 것과 그것이 물러가고 난 뒤의 일이다. 페스트에 맞서 투쟁하면서 형성된 ‘우리’의 구성원들은 페스트가 물러간 뒤 다시 분열을 일으키며 싸우게 될 공산이 크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된다. 가령 계급투쟁, ‘갑을(甲乙) 투쟁’이 그 좋은 예다. 하지만 카뮈는 이 점에 대해 대단히 애매모호한 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불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라도 극단적인 행동, 가령 살인은 극한적인 상황이 아니면 허용될 수 없고, 따라서 ‘절도’와 ‘한계’를 가지고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카뮈의 주장이다.
그런데 이 ‘절도’와 ‘한계’를 가늠하는 기준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하면서 상황논리에 휩쓸리게 될 가능성이 농후한데, 상황논리는 항상 가진 자들, 곧 갑(甲)에 해당하는 자들에게 유리한 것이 아닌가? 만일 카뮈가 살아 있다면 지금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등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대해 뭐라고 답할 것인가? 또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더욱 교묘하고 잔인하게 자기들의 권력과 부를 강화하는 자들의 횡포에 대해 카뮈는 뭐라고 답할 것인가? 특히 그들의 횡포에 희생돼 비인간적이고 불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자들에 대해서 카뮈는 또 뭐라고 답할 것인가? ‘절도’와 ‘한계’를 가지고 행동하라고? 이는 벌써 가진 자들, 갑들의 전략인 것은 아닌가? 더군다나 페스트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정확히 알아야만 그것을 완전히 퇴치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의문이 제기되는 한 카뮈 신화는 공공한 것만큼 어두운 이면을 노정한다는 사실을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에 안타깝고 슬프게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글·변광배
프랑스 몽펠리에3대학에서 사르트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외국어대학에 재직하며 프랑스인문학연구모임 ‘시지프’를 이끌고 있다. 저서로는 <프랑스 지식인들과 한국전쟁> <존재와 무: 자유를 향한 실존적 탐색> 등이 있고, 역서로는 <사르트르와 카뮈: 우정과 투쟁> <폭력에서 전체주의로: 카뮈와 사르트르의 정치사상>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