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급진좌파연합의 대약진
세계의 선거
우리는 종종 선거의 의미를 잊는다.
2012년 5월과 6월 그리스 총선에서 대부분의 미디어는, 투표가 예상과 달리 전개돼 급진좌파연합이 예상외의 엄청난 표를 얻었음에도 급진좌파연합에 걸맞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SYRIZA)는 5주 만에 16.8%에서 26.9%를 획득하는 경이로운 성과를 거뒀다. 앞으로의 전망은 어떠할까?
2012년 5월 6일 그리스, 예고된 총선이 실시된 날 저녁에 무대가 펼쳐진다. “두 개의 거대 정당이 차지한 백분율을 알면 흥미로울 것이다”라고 텔레비전 기자가 동료 기자에게 전한다. 이때는 아직 선거 결과를 발표할 수 있는 시간대가 아니었다. 동료 기자가 “‘두 개의 거대 정당’이라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느냐?”라고 묻는다.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가 사회당(PASOK)을 훨씬 앞질러 우파인 신민당(ND) 바로 다음의 2위 자리에 등극한다는 놀라운 정보였다. 이 정보는 얼마 뒤 공개적으로 발표됐다. 6월 17일 시리자는, 1차 선거가 끝나고 정부 구성에 실패한 뒤 치른 2차 선거에서 훨씬 더 좋은 성적을 내지만 애석하게 2% 차이로 1위 자리를 놓친다.
이런 경이적인 성공은 그리스 선거 역사에 전례가 없다. “시리자가 선거에서 경이적으로 약진하자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랐다. 시리자는 2004년 유효표의 3.2%를 얻어 의회에 간신히 입성한, 혁명적이고 혁신적인 급진좌파의 자잘한 정치조직들 연합이다. 시리자가 3년 뒤 5%를 획득하지만, 2009년에는 4.6%를 얻어 후퇴했다. 그런 시리자가 2012년 5월 6일 16.78%, 6월 17일 26.89%로 엄청나게 급성장했다.” 살로니크대학의 전임강사이자 정치학자인 크리스토포로스 베르나르다키스의 설명이다.
이 놀라운 약진은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첫째 요인은, 지난 몇 년간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됐다는 것이다. “빈곤 경계선 이하에서 살아가는 그리스 가구 비율이 2000년 초 20%에서 2011년 말 48%로 상승했다. 실업률은 오랫동안 10% 정도에서 안정돼 있었는데, 2012년 4월 24%에 이르렀다. 임금과 퇴직연금은 2009년 이래 그 가치가 45% 하락했다. 보수를 아주 적게 받는 비정규직 노동이 증가했다. 전반적으로 단체협약이 재검토됨으로써 노동계가 엄청나게 약화됐다”고 베르나르다키스는 덧붙였다. 그 외에 2012년 총선은 보건·교육 등 복지국가의 인프라 구조가 전반적으로 파괴된 상황에서 치러졌다.
“이런 상황은, 정당들이 외교 각서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따라, 다시 말해 유럽연합(EU)이 강제한 긴축재정이라는 치료제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따라, 정치 진영을 확실히 2개로 나눠버렸다. 예전 양당 체제의 정당들이 첫 번째 그룹으로 분류됐고, 자잘한 좌파 정당들이 두 번째 그룹으로 분류됐다. 인기 전술을 잘 써서 오랫동안 지배세력을 형성했던 양당 체제의 주역인 신민당과 사회당이 선거에서 확실히 뒷걸음쳤는데, 그 까닭은 그들이 부패를 저지르고도 처벌을 받지 않아 대중으로부터 분노를 샀기 때문이다.
역으로 시리자는 ‘반(反) 외교 각서’라는 정치적 공간의 지배적 세력으로 자인했다. 게다가 시리자는 ‘좌파가 지배하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을 공개적으로 제안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것이 바로 성공의 두 번째 요인이다. 시리자는 다른 정치세력들에게, 심지어 좌파 내부에서조차 과소평가받았지만, 연합정부 내에서 모든 좌파를 통합하겠다는 의지를 유권자에게 강력히 보여줘 그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유권자들은 그런 시리자를 ‘유일한 대안’으로 간주했다. 이 유권자들에는 그때까지 사회주의자나 심지어 우파에 투표했던 사람이 다수 포함돼 있다.
시리자 내에 다양한 분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시리자의 강점이 되기도 하고 약점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시리자 내에 존재하는 기존 좌파와 신입 좌파가 늘 같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 그런데 드라크마(유로 이전의 그리스 화폐 단위)로 돌아가면 뭐가 문제인가?”라는 말을 시리자 내의 한 국회의원이 두 번의 선거 유세 중 한 라디오 방송에서 내뱉었다. 그것은 당과는 무관한 개인의 진술에 불과했고, 또한 좌파 연합 간부가 모두 소통 전문가도 아니기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사실 시리자가 ‘유로를 떠나면 안 된다’는 친EU 성향을 드러내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시리자 내의 몇몇 분파가 이 노선에 이의를 제기하고, 대부분 외교 각서에 찬성하는 거대 미디어에서 이런 이의 제기를 떠들어댄다. 몇몇 분파가 고의적으로 저지르는 반칙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의 에피소드는 2012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시리자 대변인이 “시리자는 통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단언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그렇다고 몇몇 관찰자가 그런 것처럼, ‘내부 전쟁’이 벌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장 심하게 분란을 일으키는 분파는 그리스공산당(KKE) 출신들로, 더 정확히 말해 KKE가 1991년 좌파연합과 결별할 때 시리자에 남은 사람들이다. 이 분파는 특히 시리자의 유럽지향성을 공격하고, 시리자가 통치할 능력이 없다고 평가한다. 다른 분파들 역시 자신의 특수성을, 특히 사회당 출신 전사들의 특수성- 이 특수성이 공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음- 을 드러낸다. 이들은 중앙집권화된 정치문화, 특히 이의를 달지 않는 정치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소수에게는 극단적 자유주의와
단절하는 것이 부채 해결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일
이런 다양성은 단일 정당 형성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만약 시리자가 연합으로 남게 되면, 현 선거법이- 시리자는 이 법을 비례대표제 형식으로 바꾸려 함- 제1야당에 배당하는 50개 의원직(300개 중)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시리자는 12월 초순, 당원들이 소속된 분파가 어디든 간에 10명의 당원당 1명의 대표를 인정해 창당대회를 열었다. 정당정치의 큰 테두리는 여기서 결정됐다. 정당의 노선을 가다듬고 중앙위원회와 당대표를 뽑기 위한 2차 회의가 2013년에 예정돼 있다.
확실한 리더인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하나의 진정한 정당을 만들어 분파 시스템을 끝장내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아직 자신들의 봉토에 얽매어 있는 모든 동료를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이 내부 논쟁이 그리스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지 않지만, 외교 각서에 찬성하는 미디어들은 이 내부 논쟁을 능란하게 활용한다. “유럽 정상회담은 열리지도 않았다. EU는 다가올 몇 년간의 예산을 짜지도 않았다. 앙겔라 메르켈과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그리스의 부채 상환 능력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고 있으며, 자산은 여전히 동결돼 있고, 치프라스는 우리의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한 그리스 기자가 격분해서 말했다.
시리자의 당수가 ‘포퓰리스트’ 야당이 아닌 ‘책임 있는’ 야당이 되기를 많은 사람이 바라는데, 이 점을 이 그리스 기자가 잘 요약해서 말하고 있다. 책임 있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거대 미디어들은 신민당, 사회당, 민주좌파(DIMAR·시리자보다 우파에 속하는 자잘한 좌파 정당)가 연합해 브뤼셀의 칙령에 따르는 우파 정부를 구성하기 원한다.
예전의 힘있는 정치 계층으로부터 가장 많은 미움을 받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치프라스는 그리스인의 마음속뿐만 아니라 유럽 좌파에도, 자신이 21세기 초에 부흥의 젊은 기운과 역동성을 구현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불어넣었다. 2012년 11월 25일 카탈루냐에서의 선거를 위해 그는 좌파연합(ICV-EUIA)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유럽 모든 곳에서 그런 것처럼, 그는 그곳에서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국가수반들이나 정부수반들에게 환대받는 것은 아니다. 최근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프랑수아 올랑드는 그와의 접견을 거부했다. 하지만 몰락해가는 사회당의 당수 에방겔로스 베니젤로스와의 회담은 허용했다. 조제 마누엘 유럽위원회 집행위원장은 그의 전화를 받지도 않는다. 메르켈 독일 총리과의 회담은 시도조차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시리자에 대한 경험은, 즉 어떤 면에서는 모순적이지만 항상 진보적이고 대부분 창조적인 다양한 분파로 구성된 세력에 대한 경험은, 그리스인이든 유럽인이든 간에 기존 엘리트들에게 도전이 된다. 이 경험은 머지않은 장래에, 국제통화기금(IMF)과 EU정책과는 다른 정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 금융자유주의와 단절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은, 현 유럽의 지도자들에게 그리스 부채의 해결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여론조사기관들은 다음번 선거에서 시리자가 승리할 것으로 전망했다. 여론조사기관 ‘메트론 어낼리시스’(Metron Analysis)의 대표이며 정치학자인 스트라토스 파나라스는 그 진단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주 서서히, 부채 위기의 진행 과정에 의해, EU와 외교 각서의 틀 내에서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발견할 가능성에 의해, 시리자 주변에는 새로운 통치 축이 형성된다. 시리자가 지나가는 별똥별이 아니라 그리스 정치의 지배세력이라는 점이 모든 면에서 드러나고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재건 과정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낼수록, 그의 지도 아래 정부가 형성될 가능성은 더욱더 현실성을 띠게 될 것이다.”
글·발리아 카이마키 Valia Kaimaki
번역·고광식 kokos27@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