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시장경제의 위선을 지워라'

<자본론>을 쓴 또 다른 마르크스의 충고

2009-04-04     베르나르 움브레히트 | 전 <위마니테> 베를린 특파원

<자본론>을 쓴 또 다른 마르크스의 충고
‘사회적 시장경제의 위선을 지워라’

베르나르 움브레흐트   언론인


수출 지향 경제인 독일은 위기에 취약하다. 2차에 걸친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독일 정부는 2009년 국내총생산이 4∼4.5%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도덕적 혼란이 팽배한 상황에서 경기 후퇴까지 발생한 것이다. 조세 회피, 천문학적 연봉, 부패, 스캔들이 아직 기독교적 엄격함이 남아 있는 독일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자본주의’의 도덕화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올해 초 독일에서 마르크스의 <다스 카피탈(자본론)>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놀랄 일도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출판계의 총아가 아닌가? 단, 이 마르크스는 그 마르크스가 아니어서 이름도 카를이 아니라 라인하르트고, 현 뮌헨 교구의 대주교로 카를 마르크스의 고향 트리어 교구의 주교를 지낸 바 있다. 두 사람의 성이 같다니, 하느님에게도 유머감각이 있나 보다.
 마르크스 대주교는 이런 상황을 십분 활용한다. 대주교는 서문에서 ‘친애하는 카를 마르크스’에게 편지까지 쓰고 있다. 몇몇 측면에서 “그가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다”고 말해주기 위함이란다. 사실 그는 카를이 “안식을 취할 수 있도록” 이 책을 집필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확신컨대, 만약 우리가 시대의 소명을 다하지 못하면 역사에서 부활한 카를 마르크스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며, “이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고 결론을 내린다.1) 19세기 중반 카를 마르크스 자신도 라인란트 지방을 여행하면서 가톨릭 교회가 얼마나 노동자 문제에 관심이 많은 지 목도한 바 있다.

 <공산당 선언>의 두 번째 문장부터 마르크스는 교황과 차르,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지도층 간의 ‘신성동맹’을 폭로하고 있다. 당시에도 마르크스 대주교 같은 사람이 있었으니, 사회가톨릭 사상의 선구자인 케틀러 신부가 그중 한 명이다.2)
마르크스 대주교의 책은 이런 사건들의 나열을 넘어 독일 성장의 이면을 고찰한다. 빈곤이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고, 빈민층을 위한 무료급식소 이용자 수가 2년 만에 40%나 증가했다. 대주교는 2005년 가을 프랑스 파리 교외 폭동을 예로 들면서 “이 풍요의 사회에서 언젠가 소외 계층의 폭동을 보고 싶지 않다면 사회적 소외 메커니즘을 제거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베를린장벽의 붕괴는 마르크스 사상의 최후와 동일시됐다. 당시 복지국가의 승리를 믿었던 이들은 환상에서 깨어나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 대주교는 “독일 국민의 73%가 경제 시스템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며, 현실에서는 자본이 노동을 압도했다고 단언한다. 너무 많은 업적들이 사라진 나머지 “그 자체로 긍정적 의미를 갖는 ‘개혁’이라는 단어가 이제 신뢰의 에너지가 아니라 두려움과 공포를 낳는다”는 것이다.
마르크스 대주교는 빈민 아동이 늘어나는 걸 가장 용납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본다. 사실 독일 아동 5명 중 1명은 기본 생필품 없이 생활한다. 최근에 연방사회법원은 14살 미만의 빈민가정 아동들에게 실업수당의 60%, 즉 211유로를 지급하는 내용의 법이 헌법에 합치되는지 의문을 제기했고 아동 생필품의 정의가 잘못됐다는 판결을 내렸다. 결국 사건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렇더라도 베를린에서 15살 미만 아동의 40%는 사회보조금 수령 가정 출신이다.

대주교의 책은 자본주의의 결과를 비판하면서도 자본주의의 원칙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한다. 생산기지 이전을 예로 들면 이 책은 수백만 유로의 보조금 때문에 2008년 1월 보훔을 떠나 헝가리와 루마니아로 공장을 이전한 노키아를 격렬히 비난하지만, 폴크스바겐의 브라티슬라바 이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모든 악의 원천은 ‘영미권 금융’이다. 그러면서 더는 ‘사회적’이지 않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모델로 제시한다. 마찬가지로 이 책은 지난 10여 년 동안 대미 수출이 독일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비난받는 ‘영미권 금융’의 작동 덕분이라는 사실을 명시하는 것을 소홀히 한다.
 자본주의의 ‘도덕성’을 부르짖는 이들은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분노를 샀다. 위선자들이라는 것이다. “투기꾼들은 합법적인 틀에서 행동하며 이윤 극대화라는 사회적으로 승인된 논리를 추구한다. 정치인들이 입법 당국에 의해 민주적으로 제정되는 법을 활용하는 대신 자본주의의 도덕성을 운운하는 것은 자신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사회 후생의 책임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정치의 몫이다.”3)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의 발전에서 종교의 역할과 ‘자본주의 정신’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4) 당시에도 이미 변질된 형태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날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그러나 우리 사고방식에는 ‘정직한 상인’ 같은 모호한 개념처럼 아직 뭔가 남아 있기는 하다. 라인하르트 마르크스는 칸트와 계몽철학자들의 주장을 근거로 “어떤 체제도 영원히 법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고 도덕과 행위자들의 이성을 포기할 수 없다”며 “정직한 상인의 에토스가 없다면 우리는 위험한 길에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이 마지막 에토스를 다 써버렸다. 뒤에 언급하겠지만 독일의 양대 가족 소유 기업인 아돌프 메클레와 셰플러 기업의 붕괴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독일에서는 ‘기어’(gier)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때로는 보너스, 때로는 금융투기를 일컫는 이 단어가 정확히 어떤 현실을 내포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기어’는 7대 죄악 중 하나인 탐욕을 의미한다. 마르크스 대주교는 ‘기어’를 긍정적 의미로 사용하는 신문의 경제 기사들을 비판한다. 언론이 ‘탐욕 예찬’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분연히 일어나 저항해야 하며, 자유의 이름으로 죄악을은폐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종교적 자본주의의 위태로움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처음으로 주창했던 ‘종교적 자본주의’ 가설이 크리스토프 도이치만의 연구를 계기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도이치만은 ‘자본주의 동학의 사회학’에 대한 세미나에서 ‘자본’과 ‘노동’은 경제적·사회적 범주뿐만 아니라 종교적 범주를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이쯤에서 제네바 출신의 종교개혁가 장 칼뱅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일간지 <디벨트>의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놀라운 우연이다. 올해, 이 위기의 해는 위대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자본주의 동력 중 하나로 인정했던 규율·의무·열정·검소함의 설파자, 장 칼뱅의 탄생 500주년이다.” 빌어먹을! 이 모든 것이 사라졌단 말인가? 베버는 마르틴 루터의 조국인 독일에서조차 칼뱅주의의 영향이 매우 컸다는 것을 인정했다.
자본에 규율·의무·열정·검소함을 요구할 수 없던 법은 노동자와 실업자에게 그것을 요구했다. 특히 실업자는 ‘반경제적 행동’을 할 경우 2002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도입했고 2005년부터 적용된 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폴크스바겐 인사담당 이사의 이름을 따 ‘하르츠 IV법’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법은 복잡하고 지리멸렬하다. 특히 이미 두 차례 개정된 한 단락은 고용 당국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경우 실업수당 축소나 일시적 중단을 포함하는 처벌체제 도입을 뼈대로 한다.
요컨대 구직자에게 어떤 일자리라도 받아들이라고 강제하는 것이다. 목표는 달성됐다. 불안정 노동과 저임금 노동이 크게 확대됐다. 베를린의 ‘하르츠 IV법’ 반대 단체가 실시한 어떤 연구에는 ‘복종하지 않는 자, 돈을 갖지 못할지어다’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1월 초 독일의 억만장자 아돌프 메클레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메클레는 폴크스바겐 주식 투기 실패로 자기 회사의 경영권을 상실했다. <디차이트>는 메클레의 자살을 체제에 고유한 ‘사고’ 정도로 여기지만 <슈피겔>은 이 사건을 지멘스의 뇌물 청탁, 도이체 포스트의 조세 회피 및 세금 포탈, 폴크스바겐의 성매매 후원, LIDL, 도이치텔레콤, 도이체반의 안전 과대망상증 등 독일 산업계 핵심 기업 지도자들을 타락시킨 스캔들 중 하나로 파악한다.
이 모든 경우에서 담론과 실제의 괴리를 통해 도덕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사실 메클레 가문은 경건주의를 믿었으며, 이 가문의 출신 목사도 있었다. 그러나 청교도 기질이 엿보이는 귄터 그라스의 반응은 가차없다. “독일의 5위 갑부였던 기업인이 열차에 몸을 던졌다. 주지사 바드 위르템베르크는 추도문을 읽으면서 비극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이것은 비극이 아니다. 그저 직원 10만 명의 삶을 담보로 투기에 뛰어든, 책임을 저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일 뿐이다.”

사회적 시장경제, 신뢰성의 위기에 빠져
슈타지 2.0 캠페인은 영화 <타인의 삶>의 자유주의 버전이다. 독일 철도회사 도이체반은 2002·2003·2005년에 직원 17만3천 명과 공급 업자 8만 명의 개인 자료를 수집해 분석했다. 사건이 드러나자 회사는 공급 업자와 발주자 간의 잠재적 커넥션을 찾아내 부패를 방지하려고 일상적인 조사를 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어떤 구체적인 지표도, 명시적인 문서상 지시도 없이 사립탐정들이 조사를 진행했다. 철도 부문의 노사 분위기를 감안할 때 노조는 회사의 이런 행위를 직원들을 겁주려는 시도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에 대한 경영진의 불신은 직원들의 경제 엘리트층 및 체제 자체에 대한 전례 없는 불신과 맞물린다. 이는 란돌프 로텐슈토크 바이에른 경영자연합 회장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최근 사건들이 발생하기 전부터 이미 신뢰성 위기에 들어섰다. 대다수 독일 국민들이 더 이상 사회적 시장경제를 믿지 않으며 그것을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주주의 수가 2001년 1300만 명에서 880만 명으로 감소한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식 소유라는 저축 형태가 인기가 없음에도 크리스토프 도이치만은 투자가 대중스포츠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투자게임 참여자들은 이익을 얻는 방식과 상관없이 이익에 대한 자연권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도이치만은 이를 두고 ‘집단적 부덴로크크 효과’를 언급한다.
부덴로크크는 한 부유한 부르주아 가문의 등장과 몰락을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다룬 토마스 만의 소설에 등장하는 가문이다. 현대의 부덴로크크는 셰플러 가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셰플러가의 역사는 100여 년, 즉 ‘포드주의’ 자본주의 시대에 불과하다. 셰플러가는 메클레가에 이어 독일 제2위의 가족 소유 기업을 이끌고 있다. 볼베어링 전문기업인 이 회사는 타이어 회사 컨티넨탈이라는 자기보다 큰 먹이를 집어삼키려다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심지어 독일 최대 갑부 중 한 명인 셰플러 여사는 “우리는 셰플러가 사람”이라는 플래카드를 든 직원들 앞에서 부적절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통일 당시 독일 국민들은 “우리는 한 민족”이라고 노래했다. 베네딕토 16세의 교황 선출 후에는 후렴이 “우리는 교황”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는 셰플러가 사람”이 된 것이다. 환멸은 커지고 정부·여당은 다음 선거 전에 하늘이 무너지지 않기를 빌고 있지만 이미 하늘은 무너졌다.

번역•박수현 domyosie@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세계화의 문제점 100가지>(2007)등이 있다.


1) 라인하르트 마르크스, <다스 카피탈 아인 플레도이어 퓌르 덴 멘셴>, 파틀로흐 버락, 뮌헨, 2008.
2) 기욤 이마누엘 폰 케틀러(1811∼77).
3) 위르겐 하버마스, ‘나슈 뎀 방크로트’, <디차이트>, 함부르크, 2008년 11월 6일.
4) 막스 베버, <기독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플라마리옹, 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