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정치 사이에서 겉도는 교과서

2013-09-12     파올로 비앙키니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교과서는 19세기 초 등장했다. 이 시기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학교를 통해 교육이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그때까지 학습을 위해 사용된 책은 분명 이같은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시민 역시 교실 의자가 아니라 교회 의자에 앉아서 교육을 받았다. 교리문답을 위한 경건한 책과 초과 비용 없이 이용 가능한 모든 자료집이 비교적 젊은 사람에게 제공되었으며, 이를 통해 그들은 읽기와 쓰기라는 신묘한 행위에 입문할 수 있었다.

분명 교과서는 교육을 위해 고안되었다. 그러니까 교과서는 교실에서 직간접적으로 교육자를 도울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교과서를 집필하는 사람은 학습의 점진적 특성을 고려해야만 했고, 또한 피교육자 나이와 학습 능력의 차이를 고려해야 했다. 
이와는 달리 보통 책은 차별화되지 않는 공중(公衆)을 위해 집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자든 가난하든 간에 어린아이 대부분이 학교가 생기기 전에 읽기를 배운 책이 교리문답 책이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교리문답 책은 두 가지 이점이 있었다. 하나는 일련의 문답 형태로 모은 짧은 단어로 어린아이들을 알파벳에 입문시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유연한 정신을 가진 그들을 헌신적으로 순종하는 기독교 신도가 되도록 유도하며 가르치는 것이었다.

유럽에서 교과서는 서서히 자리 잡았고, 의무교육의 확대 그리고 훨씬 더 세세하고 정교하게 마련된 교육 프로그램과 더불어 광범위한 인구층에 보급되었다. “교과서의 등장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요했는데, 이 조건은 구제도의 종말 전에는 완전히 충족되지 못했다. 가령 공통된 교육(이른바 동시(同時)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실, 교과목 내용의 구조적 편성, 학생 1인당 책 한 권 등과 같은 조건이 그것이다.”(1) 이것은 프랑스의 교과서에 대한 사학자 알랭 쇼팽의 지적이다.

교과서 보급에는 새로운 학교 개념이 필요했다. 먼저 정부가, 그 다음에는 여론이 젊은 세대에게 기성세대의 원칙과 이념을 전수하는 임무를 학교에 부여할 필요가 있었고, 이런 토대 위에서 학교에 거의 성스러운 가치를 인정할 필요가 있었다. 프랑스대혁명 동안에는 권리였지만, 그 이후에는 의무가 된 교육에 대한 관심은 점차 커져갔다. 공권력은 학교를 통해 전달되는 가치의 주요 전승 수단으로서 교과서가 갖는 특징을 빨리 간파했다. 이것은 모든 정부가 항상 교과서 내용을 조정하고 또 종종 검열하면서, 그리고 흔히 교과서 제작을 직접 운영하면서 통제하려고 애쓰는 현상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심지어 가장 훌륭하고, 가장 공들인 교과서라 할지라도 이것을 단순화하는 작업은 이 분야의 주요 특징이자 커다란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과서에서는 그 내용의 선택과 제시가 우회적으로 이루어진다. 역사·지리 등과 같은 분야, 그리고 일반적으로 인문과학에서의 선택은 교과서 편찬 시의 정치적 이해관계 논리에 따라 이루어진다. 예컨대 예수회 수도사 장 니콜라 로리케는 그의 저서 <프랑스사>에서 정권을 장악한 정부 색깔에 따라 나폴레옹에 대한 시각을 여러 번 바꾼 것으로 유명하다. 1814년 이전 간행된 판본에서 보나파르트는 ‘무훈으로 벌써 유명해진 장군’, ‘프랑스를 피와 폐허, 공포로 뒤덮은 전제 군주에게서 구원할 수 있는 장군’, ‘내부 갈등을 진정시킬 수 있고, 또 외부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장군’으로 소개되었다. 하지만 워털루 전투 이후 역사는 약간 달라진다. 같은 장군이 이제 ‘새로운 훈족의 왕 아틸라’, 그것도 패배한 국민이 용기를 되찾아 힘을 합해 그를 타도한 순간까지 미칠 듯한 야망에 사로잡힌 새로운 훈족의 왕 아틸라로 소개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이 덧붙여지고 있다. ‘신이 그를 내려쳤다. 그는 쓰러졌고, 사라졌다.’ 이같은 유형의 예를 10여 개 정도 제시했다(‘역사 수업’ 기사 발췌본을 읽을 것).

교과서 내용의 선택은
정치적 이해관계 논리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속한 여러 나라에서 약 29%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의무교육을 마치고 나서 학업을 포기한다. 그 결과, 거의 10명 중 3명꼴로 세상에 대한 지식(국사, 세계사, 지리, 국가의 기능 등)을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에 의존하며, 또한 텔레비전·인터넷·가정에서의 대화 같은 부족한 방식으로 보완되고 있다. 다른 나라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가령 2010년 실시된 정부 조사에 따르면, 이집트에서는 10가구 중 9가구가 교과서 이외의 다른 책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무교육과 교실에서 사용되는 교과서가 제 기능을 발휘한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사람이 교과서를 통해 기초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교육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한편으로 이런 종류의 교육은 쉽게 잊힌다. 그러니까 산업화된 나라에서 겪는 새로운 유형의 골칫거리로 여기는 ‘문맹의 회귀’를 낳는 것이다(학교 밖에서,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연습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읽기와 쓰기의 망각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종류의 교육을 통해 부분적 지식, 편견, 신화, 게다가 제거하기 어려운 반(反)진리가 굳어진다.

교과서를 정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교육자들, 그리고 출판업자들의 이해관계가 집중되는 대상으로 만드는데 제일 큰 공을 세운 것은 무엇보다도 대중 교육의 실시였다. 물론 나라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유럽에서 대중교육은 일반적으로 19세기 중엽부터 시작되었다. 지식인과 교사는 새로운 방법과 도구들을 실험하면서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각국 정부는 양성을 원하는 시민(Citizen), 더 빈번하게는 신민(Subject)의 모델에 합치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려 했으며, 또한 판매되는 교재를 정기적으로 검토하려 했다. 이는 부분적으로 위험한, 또는 최소한 정부 각 부처 규정에 일치하지 않는 내용이 있는지 검열하기 위해서였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특히 민주화가 덜 된 체제는 교과서 내용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모두에게 같은 내용의 교과서를 보급하기도 하다. 모든 교과서의 집필이 철저한 통제를 받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마지막으로 출판업자에게도 원칙적으로 고갈되지 않는 교육시장은 커다란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런 가능성은 형성 초기에 강한 요구가 따르지만, 이 요구는 상대적으로 비교적 쉽게 만족시킬 수 있다. 실제로 교과서는 생명이 보통 소비재보다 조금 더 긴 소비재 중 하나에 불과하다. 교과서는 한 해, 그보다 조금 더 오래 사용되고 종종 시대에 맞게 수정된다. 또한 가치 있는 물건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교과서를 소설이나 수필 등과 달리 주의를 기울여 보관도, 취급도 하지 않는다. 흔히 많은 사람이 개발도상국에서는 헌책으로 공부해도 아무 관계없다고 생각하면서 자선단체 등이 수집해 그곳으로 보내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 교과서는 ‘헌책방’에 팔린다. 또 한편으로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닐지라도 출판업자들은 직접 답을 써넣어야 하는 연습문제가 포함된 교과서를 주기적으로 재판(再版)함으로써, 피교육자로 하여금 새로이 교과서를 구입하게끔 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헌책방 주인을 낙담시킨다.

실제로 교과서와 관련해 가장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생산과 판매 부분일 것이다. 예전에는 교과서가 낡아서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까지 몇십 년 동안 판매대에 진열되어 있었다. 기술 면에서 볼 때 교과서 인쇄는 그다지 비싸게 들이지 않는다. 또한 교과서는 다른 책에 비해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교과서에는 그림도 많이 없고, 지침서나 소설과 구별되는 특별한 철자로 인쇄되는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은 교과서가 왜 전문 출판사의 관심 밖에 있는지 일정 부분 설명해준다. 19세기 중반 나타난 평판이 좋은 몇몇 출판업자를 제외하고, 교과서 시장은 100여 명의 식자공, 인쇄공, 서점 주인, 작은 출판업자 등에 의해 점령되었다. 이들은 교과서를 수세기 동안 자신의 수지타산 균형을 맞추는 분야 중 하나로 이용했다. 그들과 동시대를 살던 다른 동료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교육적·문화적인 것과 일치하지 않았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협력자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이었다. 가령 고등학교 교사의 강의 내용을 출판하는 것,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중학교에서 수십 년 동안 한 권의 책을 여러 차례 재인쇄하는 것 등이 좋은 예이다. 최소한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교과서 시장의 중추적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우연히 교과서 시장 진출의 기회를 잡은 출판업자들이었다.

글로벌화된 출판 생태계

하지만 1840~50년 교육에 우선적으로 아니면 배타적으로 전념하는 출판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출판사들은 문화적·교육적 차원, 나아가서는 정치적 차원의 계획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문화·출판에 대한 더욱 야심적인 계획을 주도하면서 완전히 기업인 이미지의 교육출판업자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출판업자들은 일반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협력자들, 이를테면 명성을 떨치는 교육자, 교재 집필에 전문성을 확보한 교사는 물론이거니와 직업 단체, 사범학교 등에 소속된 영향력 있는 로비스트와도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교육·출판업자에게는 교과서 출판이 교육-피교육자를 위한 정기 간행물과 회보(回報) 인쇄, 칠판, 의자, 게시판 등 교육 자재 생산, 서점 경영, 문화 행사 및 교육 관련 행사 주관 등 다른 여러 활동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런 교육시장의 성장이 주춤해진 것은 20세기 말에 이르러서다. 그때까지 이 시장은 교육출판에 종사한 사람들의 확실한 수입원이었지만, 그 이후로는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게 되었다. 그로부터 좀더 크고, 좀더 전문적인 출판업자들을 가리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최근에는 교과서와 참고서를 출판하는 여러 출판사를 합병해버린 ‘공룡 출판사'가 탄생하고 있다. 프랑스에는 아셰트 교육, 알뱅 미셸, 에디티스, 독일에는 스프링어, 페어락스구루페 게오르그폰 홀츠브링크, 영국에는 맥밀런 퍼블리싱 그룹, 이탈리아에는 데 아고스티니, 데두몬드 레모니에, 리졸리, 스페인에는 산티야나 프리사, 플라네타(에디티스 계열사) 등이 있다. 이런 그룹은 경제적으로는 경쟁에서 낙오되었지만 여전히 출판시장에서 권위 있는 전통 출판사를 흡수하고 있다. 품질 보증이기도 한 흡수된 출판사들의 로고는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아셰트 출판사는 뒤노, 아르망 콜랭, 라루스 등의 이름으로 책을 계속 출판하고 있다. 반면 에디티스는 권위 있는 나탕 출판사의 상표를 소유하게 되었다.

교육시장은 군침 도는 시장이다. 프랑스에는 이 시장에서 1년에 3억5천만 권 이상 인쇄·판매되며, 액수는 3억 유로에 달한다. 물론 이 수치는 경제는 물론이거니와 교육 역시 팽창일로에 있는 인도, 브라질, 중국 등과 같은 나라의 그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된 모든 출판사들이 유럽에서는 물론, 신흥 강대국의 출판사를 보유하기 위해, 자사의 책을 수출하기 위해, 그리고 해당 정부의 다양한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못 된다. 이와 병행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과서를 수입하는 것으로 만족하던 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전략이 수립되었다. 예컨대 브라질은, 종종 외국 자본이 투자된 IBEP, 사라이바, 아브릴 등과 같은 국내 그룹이 거대 국제 출판사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실정이다.

이 그룹 중 몇몇은 금융회사의 감독을 받고 있으며, 상표등록과 지주회사 등의 방법으로 여러 대륙에서 동시에 운영되고 있다. 이런 회사의 문어발식 확장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결국 교과서의 세계화라는 최근 추세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추세는 전체적으로 보아 학교의 세계화 추세와 병행해서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추세는 실제로 식민지화와 복음화를 통해 이미 과거에 시작된 바 있다. 이 두 계기를 통해 서양의 고유한 교육 모델이 전 세계에 이식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수세기 동안 식민지에서는 실제로 ‘본국’의 고전문학뿐만 아니라 교과서도 수입되었으며, 지금 독립이 된 후에도 여전히 유럽 출판업자에게 의지하는 실정이다. 교과서의 획일화와 교육·출판 시장의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집중화는 그로부터 기인하는 문화적 빈곤화를 여지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다.

또 다른 문제들이 제기된 채 남아 있다. 그중 하나는 인류의 가까운 미래와 관련 있는 문제로, 화급을 다투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모든 교육제도와 마찬가지로 교과서의 교육 목표에 관련된 것이다. 교육 분야에서의 관심은 현재 주로 기술적 문제, 가령 정부 각 부처 규정과 일치 여부, 풍부한 멀티미디어 자료의 보조, 비용 등의 문제에 주로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장려되어야 할 인간과 시민의 모델에 대해서는 아무런 질문을 던지지 않고 있다. 요컨대 정확히 교육의 핵심 임무 수행의 문제, 가령 국가가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시민교육의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 교과서는 그다지 유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것은 역설이 아니다. 교육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적어도 민주국가에서는 집필자, 출판업자, 교사, 정부 등)이 교과 내용, 프로그램, 교수법, 마케팅 등의 개선에 더 많은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면 시민 교육을 위한 교과서가 어른의 미사경본보다 더 나은 가치를 가지지 못한 것으로 비친다는 결과가 뚜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교과서를 구입하긴 한다. 하지만 그것을 펴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13쪽 로랑스 드 콕의 기사 참조). 학교에 대한 신뢰가 점점 더 흔들리는 시기에 교과서를 구입하는 의식(儀式)은 새로운 학기의 시작을 알리는 것보다 소비사회에 바치는 일종의 조공처럼 보일수도 있다.
 

글·파올로 비앙키니 Paolo Bianchini

번역·변광배
프랑스 인문학연구모임 ‘시지프’ 대표 

(1) 알랭 쇼팽(Alain Choppin), ‘학교 교과서, 역사적 가짜 명증성’, <교육사>, 파리, 2008년 1~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