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라니요, 기업가입니다”

2013-09-12     실뱅 래더

사람들은 경제 교과서가 때로는 기업과 경영주에게 비판적이라고, 때로는 기업을 우상화한다고 평가한다. 40년 간격으로 편찬된 교과서를 비교해보니 그 차이가 분명했다.

2011년 판매된 사회경제과(SES) 교과서를 보자. 현재 교과서를 발행하는 출판사 7곳(1)에서 만든 교과서는 어느 것 할 것 없이 화려한 색감을 뽐낸다. 어떤 장에는 베이커리 사진이 있고, 또 다른 장에는 널리 알려진 브랜드의 로고가 실렸다. 사진과 그림이 가득한 교과서에 자꾸 손이 간다. 본문이나 참고도서 발췌문, 신문기사 인용문은 짧다. 실용적이고 교육적이며, 무엇보다 경쾌한 느낌이다.

또 다른 교과서가 있다. 이 교과서는 1300쪽으로 두껍고, 총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3권은 수업용이고 3권은 참고용이다. 사진이 몇 장 없고 도표도 찾아보기 힘들며, 드문드문 그래프가 나온다. 무엇보다
 상당히 긴 참고도서 인용문이 실려 있다. 1970년대 사용된 교과서의 전형인 뒤노 교과서이다.

두 교과서를 비교해보면, 첫 번째 차이점은 철학자이자 문인 레지스 드브레가 지적한 ‘문자 시대에서 영상 시대로 이행’하는 현상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점이다. 이 교과서가 기업을 다루는 방식을 잠시 살펴보면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전자가 사회적 책임, 대화, 다양성을 앞세우는, 반면 후자는 대립, 자본-노동, 쟁의, 사용자  등 잊고 있던 개념을 환기시킨다. 특히 마지막 개념에서 1970년대 교과서는 어떤 위계질서는 사라져도 된다고 암시하면서 “협동조합은 노동운동에서 운동가이자 노동자의 특성이 최대한 발현된 하나의 개체를 형성한다”는 식으로 열정적인 접근을 하기도 한다. SES 분야가 만들어진 1966년 이후 교육부는 5년마다 공교육 프로그램을 개편했다. 교사들은 동일한 주기로 새 교과서를 선정해야 했다.

교과서는 소장 가치가 있는 책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체계적으로 검색하기 어렵지만, 1970년대 출간된 교과서 3권만이 국립도서관과 파리 교사교육원(IUFM)에 보관돼 있다. 2013년 교과서는 2배 더 많지만 그렇다고 더 다양하지 않다. 두 시기 사이에는 어땠을까? 50년이 채 안 되는 기간이지만 경제·사회적 사실을 소개하기에는 영원과 같은 시간이다. 어제와 오늘의 교과서 모두 회계 항목, 미시경제 메커니즘, 다양한 생산수단의 가능한 조합 등 기업이 운영되는 방식을 소개하고 있는데 옛 교과서는 기업이 사회에 편입되는 방식도 역사적 접근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레이몽 바르를 이론적 후계자로 지명한 경제학자 프랑수아 페루(1903~87)의 말을 빌리면 “기업은 자본주의적 소우주로서 자본주의의 중요한 기관”(2)이다. 기업은 30여 년 전부터 유례없는 이미지 개선과 홍보 노력을 펼치고 있고, 교과서도 이 현상을 반영했다. 몇 년 전부터 소피 드 망통이 이끄는 ‘에틱’ 경영자협회는 근로자에게 ‘자신의 사무실을 사랑하라’고 부추기는데, 이런 활동의 일환으로 고등학생들에게 기업을 하나의 숙명으로 인지하게 한다.  

늘 그런 것은 아니었다. 1960년대 교과서는 기업을 일반적인 경제사에서 어디에 놓을 것인지 고심했다. 기업이 사회적 절차를 통해 설립된 것이지 경제적 필요성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요즘 교과서는 정반대의 가정에서 출발해 자본주의적 기업의 존재는 거의 문제시되지 않는다. 기업이 야기한 분쟁보다는 기업이 마주한 ‘제약’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어제의 교과서가 ‘사장’의 존재로 기업의 특징을 정의했지만, 이 단어는 50년이 지난 지금 사라졌다. 요즘에는 신고전주의 모델을 참고해 ‘기업가’나 ‘생산자’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기업의 기술적 측면을 부각시켜 기능을 비인격화하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용을 감축하다’, ‘생산 수익과 비용’, ‘중요한 개념, 생산성’, ‘생산성 있는 조합에 자본을 지출한다’, ‘기업은 어떻게 생산하는가’ 등의 기사 제목을 많이 볼 수 있다. 마치 기업은 개인이 모여 구성된 집단이 아닌 것처럼 다룬다. 

우리가 잊고 있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당시 학생들은 지금보다 덜 수직적인 방식으로 기업을 관리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뒤노 교과서를 사용한 고2 학생들은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일은 이사회에 노동자를 참여시키고 경영권을 분배하는 등 심각한 문제이다. 이는 기업 내부뿐만 아니라 작금의 자본주의 내부에 막대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고 배웠다. 심지어 “노동자들이 기업 자본의 상당 부분을 가질 수도 있다”고 교과서에 써 있었다.

2000년대 교과서에서는 그런 우려를 찾아볼 수 없다. 기업의 역사는 ‘위대한 성공 사례’(애플, 페이스북, 르노 등)나 페이스북 창시자 마크 주커버그 같은 유명한 경영인 소개에 자리를 내줬다. 물론 학생들은 기업이 어떻게 운영되며, 생산된 수량에 대해 어떤 비용 기준이 정해지는지 알게 되겠지만 기업은 그들에게 ‘입력’(자본과노동)과 ‘출력’(생산품)으로 된 블랙박스처럼 보일 것이다. 그들은 실제 생산량에 대한 비용을 산출하고, 르노사의 손익계산서를 읽고, ‘직접’ 소규모로 창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업은 최대한 금전적 이익을 얻는 것이 목적이다. 기업은 최대한 많은 수의 소비자를 만족시키려 하지 않는다. 기업이 비도덕적이라는 평가는 과장되지 않았다.” 1960년대 교과서에 실린 이 문장은, 아마 피에르 가타츠 프랑스경제인연합회(MEDEF) 신임회장은 비위에 거슬릴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는 아무런 항의도 받지 않았다. 이제 이익을 추구하고 급여를 산정하고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문제는 '경영 윤리'나 ‘장애인 고용 할당’이나 '다양성'에 대한 고민으로 표출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문에 자리를 양보했다.

 기업 사례를 인용해 장점을 홍보하기 위한 역사적 맥락에서 기업을 분리하는 것이 새로 출간된 SES 교과서의 의도인 것 같다. 자유주의 성향의 주간지 <더 이코노미스트>에는 이것도 아직 부족하다. 지난 7월 6일<더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 교과서가 “사회분쟁에 대한 연구가 아직도 지배적”(3)이라며 비웃었다. 참을 수 없는 시대착오적 오류이다. 
 

글·실뱅 레더 Sylvain Leder
공동 저서로는 <역사 지식 제조소>(2009) 등이 있다.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역서로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있다.

(1) 베랭, 보르다스, 브레알, 아셰트, 하티에르, 마그나르, 나탕.
(2) 프랑수아 페루, <자본주의>, 프랑스대학출판부, 파리, 1951.
(3) 'Class Struggle', <The Economist>, 런던, 2013년 7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