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이중고

직장에서 차별받고 은퇴 후에도 불리한

2013-09-12     크리스티안 마르티

프랑스 정부는 차별을 없애고 공정성을 바탕으로 한 연금개혁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중에서도 여성 관련 항목은 해당 정부의 공약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됐다. 1993년부터 실시한 연금개혁은 전반적으로 연금수령액을 줄어들게 했으며, 봉급생활자에게는 더욱 악영향을 미쳤다.

사회생활에서 남녀 간 불평등은 항상 심각한데 퇴직 후에는 더욱 두드러진다. 여성의 급여는 남성보다 평균 4분의 1 정도 적고, 연금수령액은 42%나 적다.1 그 이유는 다양하다. 여성은 보수가 (동등한 지위에서 동등한 시간 동안 일하는) 남성에 비해 평균적으로 낮으며, 남성보다 시간제로 일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자녀 양육을 위해 노동시장을 일찍 떠나 경력이 상대적으로 짧다. 그런데 급여와 근속연수는 연금을 산출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연금제도, 좀 더 포괄적으로 사회보장제도는 70년 전 풀타임으로 휴직 없이 일하면서 가족을 부양하며 연금에 대한 직접적인 권리를 누리는 남성과, 아내나 어머니의 지위에서 부수적인 권리를 부여받는 가정주부를 모델로 만들어졌다. 이런 기준을 바탕으로 한 산출 방식은 경력이 짧을수록 불리하다. 퇴직연금정책결정위원회COR가 인정한 대로 이 산출 방식은 ‘전반적으로 재분배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경력이 짧은, 결국 임금이 가장 낮은 연금수령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확대’되고2, ‘특히 여성이 타격을 입게 된다.’3

물론 자녀 양육으로 인한 경력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양육지원대책이 마련돼 연금수령액 격차를 28%까지 줄였다. 그렇지만 이는 충분하지 않은 수치로 무엇보다 불평등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더욱 심각한 점은 여성을 위한 대책이 결국 여성을 엄마 역할에만 국한하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대책은 사회활동을 중단해야만 혜택을 볼 수 있다. 이런 필요조건은 여성으로 하여금 일자리에서 물러나게 만들며, 경력은 물론 연금수령액 산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런 식으로는 성을 기준으로 한 역할 분배가 사라질 수 없다. 여성은 자신의 직접적인 권리를 해치면서 스스로에게 부수적 권리만 부여하게 된다.

여성에게 불합리한 연금 수령 제도

육아와 양육만이 여성의 연금수령액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없는 여성도 동일한 조건의 남성에 비해 연금액이 19%나 적기 때문이다.4 간과하기 어려운 이 수치는 쉽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여성이 사회에 참여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능력을 인정받을 기회가 많아지면서 차별도 많이 줄었다. 그렇지만 그동안 이루어진 연금개혁은 이런 역사적 흐름을 거스르고 있으며, 그 여파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연금을 수령하기 전까지 납부 기간이 주기적으로 연장되는 상황도 경력이 짧은 사람에게 더욱 불리하다. 노동 기간이 적을 경우 감액하는 방식도 남성보다 여성에게 불리하다(2008년 퇴직한 사람 중 여성은 9%, 남성은 6%).5 급여가 높은 10년 대신 25년을 고려해 연금수령 총액을 결정하는 방식도 은퇴 시점의 연금수령액을 눈에 띄게 줄어들게 했다. 일한 기간이 짧은 사람이 훨씬 많이 줄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아이를 양육한 여성에게 제공되는 보험기간가산제도MDA는 2003년 공공분야에서 큰 폭으로(아이 한 명당 1년에서 6개월) 축소됐으며, 2009년 민간 분야에서도 소폭(아이 한 명당 2년에서 1년, 두 번째 해는 부부 선택에 따라 남성이나 여성 한 명만 사용할 수 있다) 축소됐다. 이로 인해 여성공무원들의 유효 노동기간이 상당수 소멸했으나, 이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93년 평균임금이 아닌 물가와 연동된 연금산정제가 도입됨에 따라 연금생활자의생활수준은 급여생활자의 생활수준보다 악화했고 특히 노령층에서 연금생활자의 생활이 더욱 힘들어졌다. 2013년 총리에게 제출한 보고서의 저자 야닉 모로가 입증한 것처럼, 재평가 기준으로 인한 파장은 20년, 30년, 40년간 퇴직연금에 크게 작용할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어떤 표현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연금생활자의 빈곤율은 2004년 8.5%에서 2010년 10.2%로 증가했으며, ‘이 연령층에서 홀로 사는 여성(특히 사별한 경우)이 압도적으로 많다.’6

정부가 ‘이전과는 차별화된’ 연금개혁을 통해 연금생활자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이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마도 일반사회보장분담금CSG을 증액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지금까지 연금생활자들이 자신들의 이기심 탓에 연금문제를 외면해온 것처럼 취급받거나7, 연금생활자의 구매력이 계속 저하되는 추세가 과연 ‘공정성’을 위한 일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수입에 따른 연금부담금의 비례징수는 수입이 적은 연금생활자에게 더 큰 타격을 입힐 것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여성이고 생계를 위한 소비에 수입 대부분을 지출하는 사람들이다.

EU 집행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의 연금지급액에 대한 성별 간 불평등 수준은 유럽 29개국 중 6위였다.8 지난 5년간 남녀 연금 격차가 10% 증가했으니 상황이 개선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집행위원회는 연금 납입 기간을 늘리는 방안을 강구하면서도 그 폐해에 대해 경고하는 모순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집행위원회는 (아직까지 프랑스에서 활성화되지 못한) 개인연금제도와 노동연수(결국 납입연수) 증가라는 두 가지 조치가 “여성에게 불합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후자의 경우 “중기적으로 예상치 못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연금수령액의 감소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정부는 또다시 납입기간을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공적부담 감소, 개인보장 확대가 관건

사실상 지난 20년간 이루어진 연금개혁은 연대를 바탕으로 한 공적연금을 줄이고9, 개인보장제도를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목적이다. 형식적으로는 경력기간에 납입하는 부담금액과 은퇴 후 누적 연금수령액 사이에 균형점을 찾자는 것이지만 기대수명 연장은 납입금 증가나 연금수령액 감소로 이어지며 결국 생산된 부의 재분배는 더욱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연금분담금 납입기간이 연장됐고 이미 확인한 바와 같이 경력이 짧은 사람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연금액 산출을 위한 기간이 25년으로 늘어났다. 또한 양육지원, 전환연금(사망한 배우자의 연금분) 등을 통해 취약층을 지원하는 사회 연대도 많이 취약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마리솔 투렌 프랑스 보건복지부 장관(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정권시 재임)이 “여성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양육지원대책을 개편하겠다”고 밝힌 것은 긍정적이지만, 현실성은 떨어져 보인다. 몇몇 개편되는 내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연금수령액을 감액하는 것은 해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녀가 셋 이상인 부모에게 연금수령액의 10% 추가 지원하는 제도도 재정 부담(60억 유로)이 더해지지만, 여러모로 불합리한 제도이다. 지원금이 연금수령액에 대한 비율로 산출되기 때문에 양육으로 경력 손실을 겪는 여성보다도 남성에게 지급되는 지원금이 더 많다. 지원금은 비례제이기 때문에 연금수령액이 많을수록 유리하다. 투렌 장관이 편모가정에 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하려고 하지만, 남성에게 성차별에 대한 EU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독려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위반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가부장적 가족 모델 벗어난 사회보장 추구

근본적으로 이 대책은 ‘엄마’로 국한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영속시킨다. 평등을 원칙으로 하는 일관된 정책이라면 가부장적 가족 모델에서 벗어난 사회보장 시스템을 추구해야 한다. 이는 여성의 연금에 대한 부수적 권리를 확대하려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말이다.
결혼하는 사람들이 줄면서 기혼자나 사별한 사람들이 연금생활자 중에 차지하는 비중이 더 이상 과반수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도 올바른 정책이 더욱 절실하다. 전환연금의 혜택을 거의 혹은 전혀 보지 못하는 독신, 즉 이혼하거나 별거한 사람 수가 훨씬 더 많아질 것이고, 그중에서도 여성 비중이 더 많을 것이다. 연금에 대한 직접적인 권리만이 여성의 독립성을 보장할 수 있다.

직업적인 차별을 없애고, 아버지도 가사에 동등하게 참여하도록 지원하며, 보육시설을 확대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공공정책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주어진 예산으로 여성의 경력 손실을 보상하는 것보다 어린아이를 돌봐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한다.10 양육지원대책이 지속돼, 점차 확산되면 공공정책의 효과가 나타나 보상할 경력손실보상액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퇴직연금에 대한 여성의 직접적인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이를 방해하던 과거 조치를 손질해야 한다.11 게다가 짧은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더 이상 불리하지 않도록 평균임금을 산정하는데 고려하는 연수를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 방식, 예를 들어 납입한 연수의 4분의 1 등의 적용을 고려해봄직 하다. 40년 일한 사람은 가장 높은 수준의 급여를 받은 10년을 고려한다면 20년 일한 사람은 가장 높은 수준의 급여를 받은 5년을 고려하는 식으로 말이다. 계약직으로 일한 사람은 이런 고용 형태로 이득을 보는 회사 측에서 납입금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이 남성 수준으로 높아진다면(현재 10%p 이상 차이 난다) 연금기금 마련은 물론, 여성의 연금에 대한 직접적인 권리 또한 큰 폭으로 개선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글·크리스티안 마르티
사회학자, 주요 저서로 『연금제도: 숨겨진 대안』(국제금융관세연대 · 코페르니쿠스재단 · 실렙시스 공저, 파리, 2013),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페미니즘』(국제금융관세연대 · 코페르티쿠스재단 · 실렙시스 공저, 2013) 등이 있다.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있다.


1 ‘Les retraités et les retraites(2013은퇴자와 2013년 퇴직연금)’, direc
tion de la recherche, des études, de l’évaluation et des statisti
ques(DREES)(연구정보수집평가통계국), Paris.
2 짧은 경력과 낮은 임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3 ‘Douzième rapport du Conseil d’orientation des retraites(퇴직연금정책결정위원회 제12차 보고서)’, Paris, 2013년 1월 22일.
4 ‘The gender gap in pension in the EU’, Commission européenne
(유럽연합집행위원회), Bruxelles, 2013년 7월.
5 ‘Les retraités et les retraites, 2013(은퇴자와 2013년 퇴직연금)’, op. cit.
6 Yannick Moreau, ‘Nos retraites demain: équilibre financier et justice(우리 퇴직연금의 미래: 재정균형과 정의)’, La Documentation française, Paris, 2013년 6월.
7 Antoine Rémond, ‘Et maintenant, faire payer la crise aux retraités
(은퇴연금 비연동화, 마지막 터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3년 6월호 · 한국어판 2013년 9월호.
8 ‘The gender gap in pension in the EU’, op. cit.
9 재분배제도는 경제활동인구의 납입금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10 ‘Réformer le système de retraite, les droits familiaux et conjugaux
(연금제도 개혁: 가족의 권리와 부부의 권리)’, Institut des politiques publiques(공공정책원), Paris, 2013년 6월.
11 각종 수치와 자금 조달 방안은 Retraites, l’alternative cachée(연금제도: 숨겨진 대안), Attac(국제금융관세연대), Fondation Copernic(코페르니쿠스재단), Syllepse, Paris, 201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