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라지지 않는 유토피아적 신자유주의의 부활

2013-09-12     세르주 알리미

 

   
▲ <위쪽을 향하여>, 2008-기 페레


“국가는 대담하고 지속적인 실험을 필요로 한다. 하나의 방법을 선택하고 그것을 시도해야 하며, 실패하면 솔직히 그걸 인정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라. 중요한 것은 뭔가 다른 방법을 시도하는 일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1932년 5월 22일

경제성장의 수준과 이민, 그리고 최근의 사건 뉴스에 대한 의례적인 논쟁의 회귀는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거대한 리듬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게 만든다. 신자유주의는 금융위기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민중 봉기가 일어나 신자유주의에 총체적인 반격을 가하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면,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고, 또 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2008년 9월, 자본주의의 상징이라 할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다. 그 후 5년이 지났다.  사회 구성의 틀로 보인 자본주의의 정당성은 치명타를 입었다. 자본주의가 약속한 번영, 사회 이동성(계층 간 이동성), 민주주의 등과 같은 가치는 이상 환상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렇다고 큰 변화가 일어난 게 아니다. 비판론자들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체제는 그대로 지속됐다.

그들 실패의 대가마저 그동안 다져온 사회 보호망의 일부를 포기함으로써 지불됐다.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3년 전 이미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1) “시장 근본주의자들은 거의 모든 것을 착각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철저히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자본주의 체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것도 자동 조종 장치로 말이다. 물론 반대편 처지에서 볼 때 그것은 칭찬할 일이 아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까.

좌파 반자본주의자들은 경제적 필연성의 개념을 믿지 않는다. 여기에는 정치적 의지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좌파는 2007~2008년 금융 붕괴가 자신의 프로젝트에 결코 유리한 답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했다. 1930년대 이전에도 이미 이런 조짐이 있었다. 각 국가의 상황, 사회적 동맹, 정치적 전략에 따라 똑같은 경제위기라도 다양한 대응으로 이어졌다.

예를 들면 독일에선 아돌프 히틀러 정권이, 미국에선 뉴딜 정책이, 그리고 프랑스에선 인민전선이 출현한 데 반해 영국에선 별 움직임이 없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몇 달 간격으로 로널드 레이건과 프랑수아 미테랑은 각각 백악관과 엘리제궁에 입성했다. 이후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는 재선에 실패했고, 미국의 버락 오바마는 재선됐다. 요컨대 행운, 재능, 정치적 전략은 (집권에서) 어떤 국가의 사회·경제적 상황만큼 중요한 요인이다. 

최근 신자유주의자가 거둔 승리는 신흥 경제대국의 공이 크다. 왜냐하면 ‘세계의 혼란’이 중국, 인도, 브라질의 많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자본주의의 무도회 속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빈사상태에 빠졌을 때 ‘예비군’ 역할을 했다. 지난 10년만 봐도 주요 신흥국의 생산량은 38%에서 50%로 상승했다. 또 세계의 신흥작업장(신흥국)은 세계 주요 시장 중 하나가 됐다. 2009년 이후, 독일은 수출을 미국보다 중국에 더 많이 했다.

이제 국가 부르주아의 존재, 그리고 국가 차원의 해결 방안들은 전 세계 지배계급이 모두 결탁된 이해관계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1960년대의 반(反)제국주의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면, 자신의 서구 동료만큼이나 투기와 돈에 눈이 먼 중국, 러시아, 인도의 정치 엘리트에게 어떻게 점진적 해결을 기대할 수 있을까.

물론 퇴보만 있는 것은 아니다. 3년 전,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라틴아메리카는 21세기 초반 10년 동안 세계 좌파의 성공 스토리를 썼다. 그럴 만한  이유가 두 가지 있다.
우선 가장 두드러진 것은 좌파나 중도좌파가 선거에서 거듭 놀라운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고, 다음은 라틴아메리카 정부들이 처음으로, 그것도 집단적으로 미국과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는 좀더 자율적인 지정학적 강국으로 거듭났다.”(2)

물론, 흔히 ‘21세기 사회주의’의 예고라고 말하는 지역경제 통합이 다른 한쪽에서는 세계 최대 시장의 기준점이 되기도 한다.(3)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울뿐인 유럽 내부보다는 미국의 옛 뒤뜰이던 남미에서 가능성이 더 보인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가 10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다섯 차례의 쿠데타 시도(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온두라스, 에콰도르, 파라과이)를 경험한 것은 어쩌면 좌파세력이 주도한 정치 변화가 실질적으로 사회 체제에 위협적이었고, 국민 삶의 여건을 변화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한 가지 대안이 존재한다’는 말은 뭐든 불가능이란 없다는 점을 입증하지만, 성공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선 구조·경제·정치 개혁이 꼭 필요하다. 이같은 개혁은 비전의 부재로 인해 무력감과 신비주의 혹은 곤경 속에 빠진 서민층을 다시 결집시킨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극우파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대안인 것이다.

구조적 변화? 좋다, 하지만 어떻게? 신자유주의자들이 ‘대안이 없다’는 생각을 워낙 뿌리 깊게 심어놓아 반대 세력은 때로 자신이 무슨 제안을 하려 했는지조차 잊을 정도다. 야심찬 제안일수록 지체 없이 환경에 맞게 적응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서, 몇 가지만 돌이켜 보자. 그리고 이런 제안을 거칠수록 원치 않는 사회질서의 폭력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이 신자유주의 질서를 억제하고 또 퇴치할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목적을 단번에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비영리 부문과 무상 부문의 확장이다. 이 점에 관해 경제학자 앙드레 오를레앙은 이렇게 상기시킨다. “16세기에는 토지가 교환할 수 있는 재산이 아니라 거래 협상이 불가능한 공동재산이었다. 인클로저(영주나 대주주가 공동 방목장에 울타리를 쳐서 사유화한 일)에 대한 강한 저항이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이는 오늘날 신체의 상품화와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는 팔과 혈액이 상품으로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4) 이런 공세에 대응하려면 어쩌면 몇 가지 기본적인 필수 사항(주택·음식·문화·통신·교통)을 민주적으로 규정해, 공동체를 통해 자금을 마련해 모두에게 제공함으로써 모두가 흡족해야 한다. 사회학자 알랭 아카르도는 심지어 이렇게 주문한다. “역사적 발전과 함께, 모든 기본적인 필수 사항이 ‘무상’이 될 때까지 공공서비스를 신속하고도 지속적인 방법으로 확장해야 한다. 이것은 경제적으로 모든 재산과 모두가 함께 노력해 생산한 사회 작업에 쓰이는 부를 공동 재산으로 환원해야만 가능하다.”(5) 따라서 임금을 크게 상승시켜 수요를 키우는 것보다는 공급을 공유화하고 각자에게 새로운 현물 서비스를 보장해주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어떻게 시장독재가 국가 절대주의로 흐르는 것을 피할 수 있단 말인가? 사회학자 베르나르 프리오는 우선 눈앞에 있는 것부터, 예를 들면 권력에 복종하는 정부에 천대받고 있는 사회복지제도 같은 것부터 보편화하자고 말한다. 분담금 원칙 덕분에 이런 ‘현실 속의 구원’은 재산의 상당 부분을 공유화해, 퇴직연금을 비롯한 의료보상금과 실업수당을 조달할 수 있다. 국가가 징수해 쓰는 세금과 달리, 축척하는 게 목적이 아닌 분담금은 애초부터 근로자들이 주로 직접 관리했다. 그런데 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일까?(6)
적극적이고 단호한 이런 프로그램은 세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정치적 장점이다. 이 프로그램은 폭넓은 사회적 연합을 가져올 수 있지만, 자유주의자 또는 극우파가 차지할 수는 없다. 둘째, 환경 친화적 장점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기존 모델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은행 계좌에 일정 금액을 부었다가 정부의 홍보정책을 통해 다시 소비시장 쪽으로 유통시키는”(7) 케인스식 경기부양책으로 회귀하는 것을 차단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또한 저임금 국가에서 생산돼 지구 반대 끝으로 컨테이너에 실려 온 품목에 대한 생산을 우선시할 수 있다. 사실 이런 긴 여정의 생산품은 정작 저임금 국가에는 필요치 않다. 마지막으로 민주적 장점이다. 무상으로 할 것인지 아닌지 등의 공적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은 더 이상 정치인과 주주, 또는 같은 사회계층에 속한 특권 지식층의 소관이 아닐 것이다.

이런 식의 접근이 시급하다. 힘의 역학관계가 세계화되는 현 상황에서, 산업 고용과 서비스 고용에서의 자동화 가속은 결국 새로운 자본의 축적(임금 하락)을 낳고, 보상이 갈수록 줄어드는 대규모 실업사태를 야기할 위험이 있다. 수천만 고객이 외출, 여행, 독서, 듣고 싶은 음악을 선정할 때 로봇에 의뢰함을 아마존닷컴과 이 사이트의 검색 엔진이 매일 증명하고 있다. 서점을 비롯한 신문사와 여행사들은 이를 위해 돈을 지불하고 있다. 컨설팅회사 맥킨지의 대표이사 도미니크 바턴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한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세계 최대 10대 인터넷 기업의 일자리 창출 규모는 겨우 20만 자리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주식 시가 총액으로 수백억 달러에 달한다.”(8)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도층은 결과적으로 철학자 앙드레 고르가 경계한 시나리오, 즉 무상과 기부금으로 여전히 운영되고 있는 부문을 깔아뭉갤 시나리오를 쓸 위험이 있다. “원인으로서 보상하고 목적으로서 최대 수익을 보장하는, 모든 활동의 보상화는 어디서 멈출 것인가. 모성과 부성 역할의 직업화, 상업 목적의 배아복제, 아동 및 장기 거래를 차단하는 허약한 보호막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9)

정치·사회적 배경을 들여다보면 채무 문제도 시급하다. 역사적으로도 얼마든지 그 예가 있는데 채권자에게 목 졸린 국가는 자국민이 영구적인 긴축정책에 시달리지 않도록 어떻게든 졸린 목을 풀려 노력했다.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은 황제가 서명한 러시아의 채무 지불을 거절했고, 레이몽 푸앵카레는 프랑스 화폐인 프랑 가치를 80% 평가 절하해, 그로 부채를 상환함으로써 프랑스의 채무를 그만큼 절감하고 프랑을 구했다.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영국은 긴축정책은 쓰지 않았지만 인플레이션을 차단하지 않음으로써, 공공부채의 짐을 거의 절반으로 줄였다.(10)

통화주의 세력의 지배 이후엔 파산은 신성모독이 됐고, 인플레이션은 비난받았고(인플레이션 비율이 제로일 때도 역시 비난받는다), 화폐절감은 금지됐다. 하지만 채권자들은 채무 불이행 위험부담을 덜었음에도, 지속적으로 ‘대출 금리의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학자 프레데리크 로르동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전례 없는 빚더미 속에서는 채권자의 서비스를 구조조정하든지, 이들을 파멸로 몰든지 양자 간 선택할 수밖에 없다.”(11) 채무 일부를 탕감해주는 것은 금리소득자와 자산가- 이들의 국적과 무관하게- 에게 배당금을 주었다가 다시 강탈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공동체의 목을 조르는 올가미는 우리가 지난 30년 동안 신자유주의가 낭비한 수익을 복구하는 대로 풀릴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누진세에 의문을 제기했고, 우리의 복지 요구를 도외시했으며, 조세피난처를 통해 국제무역 자산의 절반을 거래함으로써 우리 목을 졸랐다. 이런 수혜자들은 러시아의 과두정치가나 기업가 출신의 전 프랑스 재무장관(앞서 언급한 소비에트연방공화국과 푸앵카레)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토탈, 애플, 구글, 시티그룹, BNP-Paribas 등 국가나 미디어의 영향력을 통해 보호받는 기업을 아우른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절세 목표 아래 세금이 낮은 국가에 자회사를 두고 엄청난 이익을 챙긴다. 이렇게 탈세한 세금 규모는 유럽연합(EU)에서만 1조 유로에 달할 것이다. 이는 상당수 국가의 국가 채무를 상회하는 규모이다.

프랑스의 많은 경제학자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문제가 되는 탈세 중 절반만 회복해도, 퇴직자, 공공 일자리, 친환경 미래를 위한 투자 등을 희생시키지 않고 정부 예산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12) 100번 발표해 100번 연기됐고, 또 현재 논의되는 일반 납세자 대상의 세금징수를 통한 재정 회복 방법은 일반 납세자가 조세피난처 케이만섬에 로열티를 줘가며 과세소득을 줄일 수 없기 때문에 훨씬 대중적이고 평등하다.

사람들이 꼽는 우선순위 리스트에는 고임금자의 임금 동결, 증권시장의 폐쇄, 은행의 국유화, 자유무역에 대한 문제제기, 유로존 탈퇴, 자산 통제 등 수많은 옵션이 담겨 있다. 그러면 왜 무상복지 실시와 공공부채 감축, 그리고 재정회복을 우선시하는 것일까? 그건 순전히 전략적 차원 때문이다. 사회적 기반과 정책 실현의 여건을 감안해, 수많은 리스트를 작성해 성난 군중의 길거리 시위를 촉발시키는 것보다는 소수 주제만 선정해 (성난 군중의) 초기 핵폭풍을 분산시키는 게 낫기 때문이다.

분명, 유로존 탈퇴는 시급한 리스트에 오를 만한 장점을 지닌다.(13) 이제 모든 사람은 단일화폐와 이 화폐를 지탱하는 철물점, 즉 EU의 법적 기관(독립 중앙은행, 유럽안정화협약 등)들이 심화된 불평등과 금융 세력의 포로가 된 지배층에 의한 주권 침해를 비난하면서도, 정작 이런 기관이 해결책을 금지함을 깨달았다. 그러나 유로존 탈퇴가 꼭 필요하더라도 영국이나 스위스의 경제 및 사회 정책이 증명하듯, 단일통화에 대한 문제제기는 재정적 위기탈출을 전혀 보장해주지 못한다. 더군다나 유로존 탈퇴는 최악과 최선을 조합한 정치연합에 기댄 일종의 보호주의라서, 유로존 탈퇴 지역 내부에선 현재 최악이 최선을 압도하고 있다. 물론 보편적(세계 수준의) 임금, 부채 탕감, 세금 징수로 이런 (최악과 최선의) 간극의 폭을 제거하거나 그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선 그걸 원치 않는 세력을 배제시켜야 한다.

심지어 몇몇 국가의 의회에서 이 보편적 복지 프로그램이 재적의원 과반수의 지지를 받는다고 자랑할 필요는 없다. 이런 의회는 손대지 말아야 할 이미 발표된 수많은 법안을 법을 위반해가면서까지 손대려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자유주의자들은 도탄에 빠진 자신의 시스템을 구할 때는 대담함을 보였다. 이들은 부채가 크게 증가할 때면 부채 증가가 금리를 급등시킬 것이라 안심시키며 물러서지 않았다. 강력한 경기부양책 앞에서는 경기부양책이 인플레이션을 촉발시킬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세금 증세와 은행의 국유화정책 실패, 예금에 대한 강제 원천징수와 키프로스의 자금통제 회복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요컨대 자유주의자들에게 ‘밀밭에 우박이 떨어지고 있는데, 까다롭게 구는 게 웃기는 짓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에게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우리에게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고, 파국의 규모를 줄이기 소망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다, 좌파건 우파건 간에 결국 거의 똑같은 프로그램을 대안으로 내놓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체념을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담하게 굴어야 할까? 1974년, 앙드레 고르는 환경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사회계층이 주도하는 정치 공세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 작업을 착수시켜, 훌륭한 사회 문명 프로젝트로 자본주의에 맞서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환경 문제에 대한 전면적 개혁은 사회 상황의 악화를 방지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환경 투쟁은 자본주의에 어려움을 촉발시킬 수 있고, 자본주의의 변화를 강제할 수 있지만, 자본주의는 무력과 술수로 끝까지 저항한다. 그러다가 환경 투쟁이 불가피하게 궁지에 몰렸을 때, 자본주의는 궁지에 몰린 다른 단체들을 그랬듯, 환경단체도 흡수해버릴 것이다. 국민의 구매력은 위축될 테고, 모든 것은 사람들이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지닌 자원에서 환경오염 처리 비용을 미리 떼는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다.”(14) 그런 뒤, 환경오염 처리 시장이 생긴다. 예를 들어 중국 선전의 청정 기업은 자사에 할당된 환경오염 처리 쿼터를 다른 기업에 되팔고 있다. 그사이 오염된 공기는 매년 중국인 1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세상에 제자리를 찾아주려는 아이디어가 넘치는 가운데, 어떻게 하면 이런 아이디어가 빛을 보지 못하고 박물관으로 직행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최근 사회단체는 ‘아랍 혁명’을 비롯한 수많은 시위를 주도했다. 10년 전,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군중의 거대 시위가 있은 후로 스페인·이집트·미국·터키·브라질 등에서 수백만의 시위대는 길거리를 점령했다. 이들은 주목을 끌었지만 얻은 게 별로 없었다. 이들의 전략적 실패는 향후 가야 할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 주요 시위연합의 특성은 분열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들은 외면한 채 동맹을 다지기 위해 애쓴다는 사실이다. 각 시위 단체는 어떤 주제가 연맹을 와해할 수 있는지 생각한다. 왜냐하면 연맹은 이따금 더 나는 소득분배, 난도질을 덜 당하는 민주주의, 차별과 권위주의의 반대 등과 같은 진부하고 불확실한 주제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사회적 기반이 줄어들수록 그 대가, 즉 비정규직, 자유무역, 값비싼 교육의 대가는 중산층이  치르게 된다. 따라서 대다수 연맹의 결집도 한결 수월해진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결집인가? 지나치게 보편적이거나 지나치게 많은 요구는 정치적 발현이 힘들어, 장기간 이슈화될 수 없다. 브라질 노총(CUT) 아서 엔리케 전 위원장은 최근 사회단체장 모임 때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다양한 의제를 모았다. 노조의 주요 의제는 230개 중 77개가 농부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포함시켰다. 우리가 우선 처리할 의제가 900개나 됐다.” 그 많은 의제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느냐고 묻자, 그는 “이집트 군인들이 그 해답은 줬다”한다. 이집트의 대다수 국민은 그럴듯한 각종 구실로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에 반대했다. 하지만 그를 퇴진시키려는 목표 이외에 다른 목표가 없던 터라 이들은 권력을 군에 넘겼다. 이런 연유로 이집트 국민은 오늘은 인질로 전락할 위험에 처하지만, 내일은 희생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로드맵이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지닌 사람들에게 종종 의존하기 때문이다.

자발성과 즉흥성은 혁명의 순간을 촉진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혁명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소셜네트워크는 시위 조직을 측면 지원했다. 요컨대 소셜네트워크상에선 공식적인 시위 조직이 없어, 잠시 동안이지만 경찰 감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은 아직도 피라미드 구조, 돈, 조직원, 선거기관, 그리고 어떠한 사회계층과 연맹을 위해 무슨 프로젝트를 세울 것인지 등의 전략에 정복돼 있다. 알랭 아카르도의 은유가 여기에 적용된다. “손목시계의 모든 부품이 탁자 위에 있다고 해서 조립지침서가 없는 사람이 그걸 조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립지침서는 전략이다. 정치계엔 지속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과 부품을 조립하는 사람들이 있다.”(15)

시계공의 업무는 주요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걸 중심으로 투쟁을 재정비하고, 자신의 기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복잡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각자 내용을 업데이트하는 위키피디아의 혁신이”(16) 시계를 수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지리멸렬하고 약화된 현장 투쟁은 자아도취적 시위와 많은 조바심과 무력감 그리고 연속적인 열패감을 양산했다.(17) 중산층이 종종 이런 투쟁의 중추가 된다는 점에서, 이같은 변심은 놀라운 게 아니다. 왜냐하면 중산층은 극도의 위기가 닥쳤을 때나 투쟁이 금세 제 방향을 잡을 수 있을 때만 서민층과 연합하기 때문이다.(18)

그럼에도 갈수록 힘의 역학관계가 대두되고 있다. 그래서 아무도 신자유주의 질서를 비롯한 주요 정당과 기존 기관이 바뀌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더군다나 구조와 법률 개정보다는 정신 개조가 우선시되고, 전 국토는 방치한 채 미래의 승리를 위해 몇몇 정치 실험장을 창설할 마음으로 일부 지역과 공동체에 대한 재투자 욕구가 커지고 있다. 월러스틴은 이 상황을 이렇게 정리한다. “어떤 정치세력은 핵심 조직이 없는 다양성, 즉 다양한 단체에 베팅하고, 또 다른 세력은 ‘여러분이 정치적 파워가 없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설파한다.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정권이 이런 논쟁을 벌이고 있다.”(19)

그러나 사람들은 초기 투자비용 측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쪽에서는 자신의 이익에 민감한 지도층이 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시위대와 여론을 주도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신의 영향력, 독창성, 자율성 등이 권력에 흡수될 것을 경계하는 무수한 단체와 노조 그리고 정당이 있다. 아마도 이들은 인터넷 환상에 취해봤기 때문에, 인터넷상에 웹사이트를 갖추고 이에 기대를 거는 것이다. 이들이 이른바 ‘네트워크 조직’이라 칭하는 것은 조직과 전략적 성찰 부재의 이론적 얼굴이 됐다. 네트워크는 사실 각자 전송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전자 자료의 순환 흐름이다.

사회단체와 바통 터치한 기관들, 그리고 반정부 세력과 정당 간 항상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한 가지 주요 목표, 즉 한 가지 ‘일반적인 노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한 정당이나 카르텔이 예외적으로 그걸 구현하지 않는 한 그렇다. 고로 “어떻게 개개인을 결집시킬 것인지 자문해야” 한다.(20) 자본 권력을 직접 타깃 삼아 몇몇 우선순위를 규정해야 좋은 감정으로 무장도 할 수 있고, 중앙시스템을 공격해 이 속에 배치된 정치세력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유권자가 국민투표로 선출한 정치인을 임기 만료 전에 해임시킬 수 있는 국민소환제를 요구해야 한다. 1999년부터 베네수엘라 헌법엔 이 조항이 있다. 많은 정부 지도자는 사전에 국민에게 위임받지도 않은 채 주요 결정(퇴직연령, 병역의무, 헌법조약)을 내렸다. 따라서 국민은 국민소환의 권리를 취득해 자신의 신뢰를 저버린 사람들을 심판해야 한다.

그다음엔 때를 기다리기만 하면 될까. 튀니지 대통령 몬세프 마르주키는 선거 당시 상황을 상기시킨다. “2011년 초반까지 공화의회당(CPR) 소속으로 남아 있던 의원은 6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것이 몇 달 후, 튀니지에서 치른 첫 민주 선거에서 우리가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는 데 장애가 되진 않았다.”(21) 현 맥락 속에 볼 때, 마냥 기다리는 것은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낭만적(상자기사 참고)이다. 그것은 내가 아닌 남, 즉 참을성이 적고 과감하고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과녁을 찾아 헤매는 절망적인 분노를 악용할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요컨대 사회변화 작업은 도움 없이는 절대 중단되지 않기 때문에, (비상업적 활동, 공공서비스, 민주적 권리 등과 같은) 재정복의 거점이나 저항 가정이 파괴될 위험이 있다. 이것이 또한  추후 승리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게임에서 패배한 게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유토피아는 꿈과 신념 그리고 이상이 없다면 사회 프로젝트도 소멸한다며, 자신의 몫(꿈·신념·이상)을 불태웠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유토피아는 특권층과 냉정하고 죽은 삶만 양산시켰다. 따라서 방향 전환이 올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 방향 전환을 조금 앞당길 수 있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번역·조은섭chosub@hanmail.net


(1) Paul Krugman, <When zombies win>, The New York Times, 2010년 12월 19일.
(2) Immanuel Wallerstein, <Latin America’s leftist divide>,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Neuilly-sur-Seine, 2010년 8월 18일.
(3) Renaud Lambert, ‘볼리바르의 꿈을 차지한 브라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6월호.
(4) <Le Nouvel Observateur>, 파리, 2012년 7월 5일.
(5) Alain Accardo, <개혁주의의 미지근한 물>, Le Sarkophage, Lyon, 2010년 9월.
(6) Bernard Friot, ‘해방의 지렛대, 분담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5월호.
(7) Cf. <왜 르플랑 베(파리소재 식당, Le Plan B)는 임금 인상을 하지 않을까>, Le Plan B, n°21, 파리, 2010년 1월.
(8) <Les Echos> 파리, 2013년 5월 13일.
(9) André Gorz, ‘왜 임금 회사는 새로운 하인을 필요로 할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0년 6월호.
(10) <불가능한 것을 원한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한텐 그게 필요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7월
(11) <En sortir>, La pompe à phynance, blog.mondediplo.net. 2012년 9월 26일.
(12) ‘조세피난처의 근절이 긴축정책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 것이다’, <Libération>, 파리, 2013년 4월 30일.
(13) Frédéric Lordon, ‘유로존 탈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8월호.
(14) André Gorz, ‘그들의 생태와 우리들의 생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4월호.
(15) Alain Accardo, <조직과 숫자>, La Traverse, n°1, Grenoble, 2010년 여름, www.les-renseignements-genereux.org.
(16) 이집트 사이버 반체제 인사이자 구글 마케팅 책임자인 M. Wael Ghonim의 표현.
(17) Cf. Thomas Frank, ‘월스트리트를 점령한 자아도취에 빠진 시위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1월호.
(18) Dominique Pinsolle, <복종과 반항 사이>(Entre soumission et rébellio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5월호.
(19) <L’Humanité>, Saint-Denis, 2013년 7월 31일.
(20) Franck Poupeau, <비판의 수난>, Raisons d’agir, 파리, 2012.
(21) Moncef Marzouki, <민주주의의 발견>, La Découverte, Paris, p.30, 2013.

'지성의 창',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monde Diplomatiq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