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에 고마워하고, 우파에 투표하는 독일기업인들

2013-09-12     올리비에 시랑


유럽의 모범으로 부상한 독일 산업은 창의력 넘치고 가족적이며 사회적이고 자신만만한 과거 경영자의 전형에 더 이상 부합하지 않는다. 독일 기업인의 경제·금융 영향력을 행사한다.
오는 9월 22일 총선을 앞둔  지금, 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클라우스 프로스트. 할리우드 영화배우 뺨치는 용모에, 말할 때는 독일 남부 억양이 살짝 드러나는 그는 튼튼한 성을 구축한 산업자본가 혹은 세계 시민의 이상을 구현하는 듯한 인물이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최고경영자(CEO) 자리까지 오른 그는 ‘독일식 모델’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다. “독일의 시스템은 모범이 될 만하다.” 그는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간다. “프랑스를 보라. 일자리 감축에 대해 프랑스 노조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면, 모든 당사자들이 합리적인 해결책에 합의하는 독일 방식의 우월성이 드러난다. 독일은 사회적 파트너십 덕분에 큰 안정을 구가하고 있으며, 이런 분위기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변치 않을 것이다.”

그가 이끌고 있는 다국적기업의 면모를 보면 흔들림 없는 낙관주의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유럽 최고의 자동차 배선 시스템 공급 업체 레오니AG는 작년 한 해 매출 38억 유로, 세전 수익 2억3600만 유로를 거둬들이며 전년 대비 뚜렷한 성장을 보였다. 이 회사는 600개 기업과 70만 명 직원을 대표하는 독일 바이에른주 금속전자산업협회(VBM)가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회원사이다. “VBM은 상당히 강력한 조직이다.” 프로스트가 말한다. “호르스트 제호퍼 바이에른주지사,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을 대상으로 우리 분야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을 한다. 특히 에너지정책과 관련된 문제에 개입한다. 갈수록 비싸지는 전기요금이 이 분야 상당수 기업에 위협요소가 되고 있다.”

목표는 ‘에너지 전환’ 정책의 요구 사항을 비켜가는 것이다. 이 정책은 대안 에너지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도입되었지만, 로비스트들의 압력으로 몇 가지 개량안이 첨가되었다. 2011년 6월 법 개정으로, 2천 개 이상의 대기업이 화석 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기업에 부과하는 환경세를 면제받게 되었다. 2013년 그 액수는 40억 유로에 달한다.(1)

독일에서 로비는 곧 현금을 의미하기도 한다. 2002~2011년, VBM은 다양한 정당에 41억6천만 유로를 제공했다. 그중 370만 유로가 제호퍼가 이끄는 기사련(CSU)에 갔다.(2) 이보다 더 많은 자금을 제공한 기업은 BMW와 도이체방크뿐이다.

독일식 경영체제의 명암

이 숫자 앞에서 독일의 저임금과 불완전 고용 심화 문제는 차라리 하찮아 보인다. 독일이 2000~2010년 동안 상위 20%와 하위 20% 사이의 소득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진 유럽 국가 순위에서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에 이어 3위를 기록한 사실(3)은 프로스트의 낙관주의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여러 연구에 의해 입증된 사실이라고 해도, 내 주변에서 그런 현상을 목격하지 못했다.” 프로스트가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사회 보조금 덕분에 독일인들은 저마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소득을 확보하고 있다. 나 역시 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나는 이 아이들이 분열되고 혼란에 빠진 사회 속에서 살게 될지 모른다고 걱정해본 적이 없다.” 프로스트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본다. 조금 후 뉘렌베르크 프레스클럽의 화려한 홀에서 강연이 있다. 강연 주제는 ‘이노베이션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이다.

레오니그룹은 오랜 역사 동안 이노베이션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자체가 라인 자본주의(Rhine Capitalism)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9세기 창립된 케이블 제조회사로서 1923년 상장 이후 나치 통치 기간에 수용소 강제노동 등에 힘입어 규모를 키워갔다. 전후에는 이른바 ‘독일의 기적’과 자동차 산업 붐에 힘입어 큰 성장을 이루었다. ‘정치파업’ 금지 조치와 동서 분단으로 강화된 반공주의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독일의 경제성장은 유럽에서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협력 체제를 만들어냈다. 갓 탄생한 독일연방공화국(옛 서독) 정부는 사용자 단체에 산업 부문별로 단체협약 권한을 일임했다.

독일 정부는 모든 종류의 개입을 자제한다. 사용자들이 노조와 합의해 노동과 급여 조건을 결정한다. 사측은 이런 권한에 대한 반대 급부로 직원 대표들의 이사회 참여를 보장한다. 독일의 노사 공동경영 체제는 이렇게 탄생했다. 중소기업의 경우 사업장위원회(Betriebsrat), 직원 5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감독이사회(Aufsichtsrat)의 구성 인원 절반을 노조가 맡는다. 그러나 이사회가 노사 동수로 구성되는 것은 사실상 금속 부문뿐이다. 다른 부문에서는 사측이 분쟁 발생을 대비하여 과반수 인원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남부 유럽의 기업으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독일식 공동경영 체제는 현재 해체 위험에 처해 있다. 독일 서비스부문노동조합연맹(Ver.di) 헤센주 사무국장 위르겐 보트너가 지적한다. “서류상으로는 모든 게 완벽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독일의 사회적 파트너십은 전통적인 산업 부문에서만 존재한다.” 서비스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전통적인 독일식 모델이 힘을 잃게 된 것이다. 2012년 독일 임금노동자의 58%만이 단체협약의 혜택을 받았다. 서쪽은 60%, 동쪽은 48%였다. 15년 전에는 그 비율이 각각 75%와 63%에 달했다. 설사 단체협약이 이루어지는 부문이라도, 노사 간 협상 과정에서 균형추가 일방적으로 사측으로 기우는 경우가 늘고 있다. “노조 지도부와 기업 이사회에 참여하는 직원 대표 사이의 관계가 갈수록 소원해지고 있다.” 보트너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잇는다. “양측이 갈라설 때도 있고, 직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대표들이 사측과 타협해버리는 일도 있다.”

프로스트는 노조의 책임의식을 높게 평가한다. 실제로 노조는 타협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2000년, 2008년, 2010년, 금속전자 부문 직원 대표들은 군말 없이 사용자 측의 임금동결안을 수용했다. 레오니그룹도 그중 하나였다. 프로스트는 “덕분에 회사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오늘날에도 잘나가고 있다. 이는 직원 모두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자찬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급여에는 그리 엄격하지 않은 듯하다. 2008~2009년 그의 연봉은 8.8%나 인상됐다. 그의 연봉은 187만 유로로, 독일 경영자 연봉 중 55번째로 높다.(4) 금융 소득은 포함되지 않은 액수다. 독일의 사회 파트너십이 속 빈 강정처럼 돼버린 원인은 다른 데서도 발견된다. 지난 20년간 독일을 휩쓴 생산시설 이전 바람이 그것이다. 이 분야에서도 역시 레오니AG는 선구적이다. 현재 레오니의 전체 직원 6만 명 중 독일에서 근무하는 인원은 4천 명에 불과하다. 프로스트가 과거를 회상한다. “1989년 철의 장막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즉시 생산시설 일부를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체코공화국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그들만의 인큐베이터

1990년대 말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를 향한 두 번째 생산 이전 바람이 분 후, 2000년에는 튀니지와 모로코, 이집트가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랍 혁명이 이런 식의 경쟁력 강화 전략에 영향을 미쳤을까? 프로스트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신속하게 계산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독일의 전자 분야 임금은 사회보장분담금 포함해 시간당 25유로에 달한다. 반면 폴란드는 6유로, 튀니지는 2유로에 불과하다.” 튀니지 수스의 레오니 공장에서 일하는 다수의 여성 노동자는 한 달에 300유로를 받는다. 이들이 독일식 모델의 어떤 혜택도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은 굳이 언급할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스트는 이런 고용 방식을 ‘현대적 형태의 개발 지원’이라고 부른다.

“독일은 잘나가고 있다. 완전고용 상태에 이보다 더 근접한 적이 없다.” 프로스트의 주장이다.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12%에 해당하는 400만 명의 노동자가 시급 7유로 이하를 받고 있고(5), 고용사무소에서 실업자에게 생수를 사 먹지 말고 수돗물을 마시라고 권고하는 전단을 제작하는 판국에(6) 그는 어쩌면 그토록 맘 편한 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을까. 독일의 CEO들이 갈수록 그들만의 인큐베이터 속으로 숨어드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하이델베르크대학 사회학 교수 마르쿠스 폴만은 6년 전부터 전 세계 경제 엘리트들에 대한 야심찬 연구를 진행해오고 있다. 연구팀은 독일에서 두 세대의 기업 고위 간부 82명을 인터뷰했다. 두 세대란 각각 1980~90년대 현역과 현재 간부를 맡고 있는 이들을 말한다. 폴만 교수는 이 연구의 목적이 “신자유주의의 원칙이 경영자의 사고와 경영 방식에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미쳤는지 파악하는 데 있다”고 한다.

폴만에 따르면, 독일 경영자들은 “20년 전에 비해 오늘날 훨씬 더 회사에 몸과 마음을 바친다. 그들 업무 시간은 주중에는 14~16시간, 주말에는 10~12시간에 이른다. 회사는 그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유일한 매체다.” 폴만은 새로운 현상을 하나 더 지적한다. “이전 세대의 경우, 합의 도출 과정을 통해 차가운 이윤 추구 논리를 완화할 수 있는 사회적 협약 같은 것이 존재했다. 이런 개념은 이제 사라졌다. 이제 각 개인은 자신의 운명을 책임져야 한다는 인적 자본의 원리가 지배한다.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가차 없이 밀려난다. 경영계에서는 이들을 흔히 ‘제한적 역량의 인력’이라고 부른다.”

노동력에도 가격이 있다.
돼지고기처럼…

이런 변화는 실무에서뿐 아니라 경영자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몇 년 전부터, 현역 경영자들이 콤플렉스를 벗어던진 거침없는 발언을 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과거 전통적인 경영자들이 적당히 눈치를 봐가며 말을 아끼던 것과 대조적이다. “독일 사람들은 사장이 직원에게 그의 가족을 먹여살릴 만큼 충분한 급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2005년 도이체방크 수석 경제학자 발터 노르베르트가 한 말이다.(7) 비슷한 시기에 독일의 막강한 경영자 단체 독일산업연맹(BDI)을 이끌던 미하엘 로고프스키는 노동시장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동물에 비유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노동력에는 가격이 있다. 돼지고기에 가격이 붙는 것과 똑같다. 상업적 순환 속에서 돼지고기 공급이 달리면 가격은 오르기 마련이다. 반대로, 돼지고기 공급이 증가하면 가격은 하락한다.”(8) 이 돼지고기 애호가는 나중에 미국의 투자회사 칼라일의 컨설턴트를 거쳐 독일 민영 채널 <N-tv>의 한 프로그램 진행자로 영입되었다.

그러나 폴만의 표현을 빌리면, 현 세대 경영자들이 이전 세대와 비교해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윤리적 가치’의 차원에서다. 라인 자본주의와 결합된 전통적인 프로테스탄트적 절제의 미덕은 이제 돈에 대한 탐욕에 완전히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사회학자 미하엘 하르트만은 최근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프랑크푸르트 증시에 상장된) 닥스 30위권에 드는 기업 주요 경영자들의 평균 연봉은 2010년 290만 유로로, 1995년보다 4.5배 넘는 보수를 받았다. 15년 사이에 엄청나게 증가한 셈이다. 2011년에도 증가세는 계속됐다. 경영자 한 명당 평균 연봉이 314만 유로에 달했다.”(9)

여기에 지난 수년간 성행한 탈세 행위도 덧붙여야 한다. 부유층 납세자에게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오트쿠튀르 회사 경영자 알베르트 아이크호프는 “1970년대에도 해외로 돈을 빼돌리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2012년 수백 명의 다른 독일 갑부와 함께 탈세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10)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폴만이 보기에, 요즘 경영자들은 자신의 행위를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2009년 클라우스 줌빈켈 도이체 포스트 회장이 처벌받았을 때, 우리가 인터뷰한 경영자들 대부분은 그 불운한 양반이 200만~300만 유로를 리히텐슈타인의 비밀계좌로 빼돌린 사실은 별로 대수로운 일이 아니며, 따라서 그처럼 호들갑 떨 이유가 없다는 태도였다.”

독일 3위 규모의 은행으로 자기 자본이 110억 유로에 달하는 독일중앙협동조합은행(Deutsche Zentral-genossenschaftbank·DZ방크) 감독이사회의 일원인 지그마르 클라이네르트는 ‘독일의 베를루스코니화’라는 말로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분노를 대변한다. 그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러시아 에너지 그룹 가즈프롬에 영입된 이후로, “경계가 무너졌다.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s)을 막을 길이 없어졌다”고 본다. 다른 예도 있다. 슈뢰더 정부에서 경제·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볼프강 클레멘트는 임시직 공급 업체로 유명한 아데코와 시티그룹의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독일 사민당(SPD) 당수로서 차기 총선 총리 후보 페어 슈타인브뤼크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2009년 11월~2012년 10월 도이체방크, 시티그룹, BNP-파리바, JP모건 등을 위해 강연을 74차례 했다. 매회 강연료는 1만5천~2만5천 유로에 달했다.

독일의 베를루스코니화

고위공직자 출신들이 민간기업으로 영입되는 현상은 정계와 재계의 심화되는 유착을 방증한다. 하르트만의 통계를 보면, 1949~99년 재무부에 몸담았던 국무위원 20명 중 퇴임 후 민간기업으로 옮겨간 경우는 전체 4분의 1인 5명에 불과했다. 이 비율은 약 반세기 동안 변함없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재무부에 몸담은 국무위원 8명 중 7명이 퇴임 후 재계와 금융계의 고위 임원으로 영입되었다. 정부와 민간기업을 잇는 통로는 양 방향으로 열려 있다. 사민당 소속으로 재무부 고위 관료를 역임한 악셀 나브라트는 2003년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 대외관계 책임자로 영입됐다. 2년 후에는 다시 정부로 돌아와 한스 아이켈 재무부 장관 밑에서 일했다. 현재는 독일 15위권 은행에 드는 KfW에 몸담고 있다.

지난 10년간 공공권력과 자본의 유착이 심화되는 과정은 자본의 처지에서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헤리베르트 지첼스베르거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바이엘그룹의 재무 책임자로서 조세 최적화 전략을 담당한 그는 1999년 슈뢰더의 적록(사회당-녹색당) 연립정부에 기용되어 재무부 국무위원으로 활동했다. “우리의 가장 유능한 세무 전문가를 본으로 보냈다. 그가 충분히 바이엘의 ‘물이 들었기’를 바란다. 그래서 필요한 개혁을 추진하기 희망한다.” 거대 화학회사 바이엘의 최고경영자 만프레드 슈나이더 말에 주주총회 참석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11)

그의 희망은 현실이 됐다. 지첼스베르거는 법인세를 34%에서 25%로 인하하고, 상장회사의 주식 전매 이익에 대한 세금 면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 조세개혁을 추진했다. 정부의 연간 세수 손실은 230억 유로에 달했다. 이른바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이 개혁안이 발표되자 닥스 지수는 4.5% 뛰어올랐다. 바이엘은 자사 출신 이 전직 세무전문가 덕분에 2001년 2억5천만 유로에 달하는 세금을 면제받았고, 그 금액은 고스란히 주주들 몫으로 돌아갔다. 2년 후 지첼스베르거가 세상을 떠났을 때, 독일의 경영자들은 ‘역대 최고의 선물’(12)을 안겨준 그에게 애도를 표했다.

베르톨트 폰 프라이베르크 역시 슈뢰더의 적록연립 정부로부터 받은 은혜를 황송해한다. 테니스 챔피언 같은 용모의 이 50대 남성은 유서 깊은 대귀족 가문 출신으로(그의 형 에른스트는 바티칸은행 총재다), 동업자 두 명과 함께 고객 수백만 명을 모집해 첨단기술 벤처회사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투자펀드 타깃 파트너스’를 설립했다. 뮌헨의 고급스러운 거리에 있는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투자회사에 강요되는 불공평함을 비판했다. “만약 1억 유로를 투자하면, 5년 동안 연간 수수료로 2.2%, 즉 220만 유로를 받는다. 하지만 1년 전부터 독일의 투자 펀드들은 수수료의 19%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이 법을 도입한 나라는 독일뿐이다. 심지어 프랑스도 이 분야에서는 가장 자유주의적인 편에 속한다. 이 조처 때문에 모든 분야가 피해를 입고 있다. ‘투자자들은 미국에서는 세금 낼 필요가 없는데 굳이 독일에 투자할 이유가 있는가’라고 자문한다. 별수 없이 우리가 고객을 대신해 세금을 부담한다. 19%의 이익 손실을 감수하는 것이다. 엄청난 비율이다.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안 된다.”

폰 프라이베르크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무례한 규칙을 도입한 것은 슈뢰더의 사민당 정부가 아니었다. “슈뢰더는 오늘날 독일의 번영을 가능케 한 조건을 창조했다. 우리는 그에게 현 총리보다 훨씬 큰 신세를 지고 있다. 유로화 방어를 위한 메르켈 총리의 노력을 비판하고 싶지 않지만, 노동시장의 구조적 개혁이라는 측면에서는 슈뢰더 전 총리가 이룬 성과의 4분의 1밖에 실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경영자문 회사 키엔바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독일 경영자 절대 다수는 앙겔라 메르켈의 기독교민주당(CDU)을 지지한다.(78%) 자유민주당(FDP) 28%, 사민당(SPD) 10%와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구좌파 정부를 좋아하면서 우파에 표를 던지는 셈이다. 독일식 특수성은 위기에 봉착했다.

동일한 연구에 따르면, 독일 재계는 단일 통화 체제를 굳게 신뢰한다. 기업주 3명 중 2명은 유로화가 독일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독일산업연맹(BDI) 전 대표 한스올라프 헨켈은 신생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함께 유로존 탈퇴를 위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지만 재계 인사를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도이체마르크로 회귀를 원하는 경영인은 전체 1%에 불과하다. 키엔바움의 한 책임자가 설명한다. “독일 기업 처지에서 유로화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불안감이 없지 않지만, 그들은 대체로 단일 통화와 메르켈 정부의 구제 정책에 신뢰를 보내고 있다.”(13)

이웃의 불행은 곧 나의 이익

레오니 CEO 프로스트는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게 말한다. “단일 통화는 우리에게 많은 이익을 주었다. 유럽 이웃 나라의 경기 침체로 인한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 하락 덕분에 독일은 수출에 활력을 얻었고,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만약 독일이 도이체마르크로 되돌아간다면 통화 가치 상승으로 독일 산업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솔직하게 인정하자. 유럽에 대한 재정 압박은 유로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며, 이는 독일에 큰 이익이 된다.”

결국 새로운 독일식 모델이란 이웃 나라의 불행으로 이익을 얻는 데 불과한 것일까? 확실한 답을 얻기 위해 미텔슈탄트(Mittelstand·독일 중소기업을 지칭하는 말이자,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근면·성실·끈기 같은 가치를 상징한다)에 시선을 돌려보자. 로타르 라이닝거는 형과 함께 의료기구 공급 업체 라이닝거AG를 이끌고 있다. 중국산 휠체어, 폴란드산 특수 침대, 태국산 위생용품 등을 수입·판매하는 회사인데 직원 190명을 거느리고 있다. 하지만 라이닝거는 사람들이 자신을 경영자로 간주하는 것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트라이엄프-아들러 공장 노동자였던 그는 1994년 미국 투자펀드가 주도한 회사 구조조정에 대항한 ‘강경 파업’ 과정에서 해고된 후, 2006년부터 좌익당(Die Linke) 소속 프랑크푸르트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결코 미텔슈탄트의 신화에 부합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그 내적 모순에 대해 상세하게 알고 있다.

“이 분야에는 이른바 ‘자영업자’로 불리는 불안정 노동자들이 많다. 이들은 시급 5~6유로를 받고 배달·청소·소독 등의 일을 한다. 경쟁사들은 그들을 하청으로 고용한다. 그러나 우리 회사에서는 자체 직원이 시급으로 최소 10유로를 받고 이런 업무를 수행한다. 아무리 경쟁이 치열하고, 다른 사용자 단체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직원에게 적절한 대우와 수입을 보장해주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가능할까? 유일한 방법은 연방 차원에서 시간당 9~10유로로 최저임금을 정해 사회적 덤핑을 막는 것이다. 메르켈 정부는 이런 제안을 거부함으로써 직원에게 적절한 대우를 하려는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2012년 라이닝거AG는 41만4천 유로의 순이익을 사원 주주에게 배당했다. 라이닝거는 “직원 한 명당 2주 봉급에 해당하는 액수로 바하마로 휴가를 떠날 정도는 못 된다”고 말한다. 이 회사는 과연 2013년에도 비슷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복잡한 독일의 경영자 단체

독일의 경영자 단체는 탈집중화되고 분산되어 있다. 때로는 분열 양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정치 개입이라는 측면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지역 차원에서는 상공회의소(IHK)가 기업의 이해를 대변하며, 법률 자문을 제공하고, 직업 교육에 관여한다. 독일 전역에 불균등하게 분포된 상공회의소 80곳이 운영 중이다(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16개소, 튀링겐주에 3개소, 자를란트주에 1개소). 가입이 의무화되어 있고, 회비도 내야 하는 상공회의소들은 불투명한 운영과 후견인주의 때문에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분야별·부문별 사용자들이 모인 경제연맹(Wirtschaftsverbände)은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경영자 단체다. 이 중 최소 40개 단체는 브뤼셀에 사무소를 두고 유럽집행위원회에 지속적인 로비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독일 정계에 대한 영향력도 막강하다. 사민당 소속 전 국방장관의 이름을 딴 ‘슈트루크법’은 연방하원(Bundestag)에 법안을 상정하기에 앞서 경제연맹이 법안을 검토하고 개선 사항을 추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30여 개 경제연맹이 영향력 증대를 위해 연합한 독일산업연맹(BDI)은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로서 독일 언론 지상에 자주 오르내린다.
  그보다 상위 그룹의 사용자 단체들은 ‘사회적 파트너십’ 차원에서 노조와 임금협상을 벌이는 책임을 맡는다. 피고용자와 분쟁 관계에 있는 사용자들에게 법적·정치적 지원을 제공하기도 한다. 총 1천여 개 단체가 독일사용자협회(BDA) 산하에서 활동하고 있다. 

 

글·올리비에 시랑 Olivier Cyran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리듬분석> 등이 있다.

(1) ‘Diese Unternehmen sind von der Öko-Strom-Umlage befreit’, <Cicero Online>, 2013년 1월 23일.
(2) 독일연방하원(Bundestag) 공식 수치.
(3) Eurostat. Michael Dauderstädt, <Europas unterschätzte Ungleichheit>(Fondation Friedrich-Ebert·베를린·2010)에서 인용.
(4) <Manager Magazin Online> 선정 연간 경영인 연봉 순위.
(5) Institut Arbeit und Qualifikation. Michael Hartmann, <Soziale Ungleichheit, Kein Thema für Eliten?>(Campus·프랑크푸르트·2013)에서 인용.
(6) ‘Gehen Sie nie hungrig einkaufen’, <Die Süddeutsche Zeitung>, 뮌헨, 2013년 7월 19일.
(7) 일간지 <Volksstimme> 인터뷰, 마그데부르크, 2005년 2월 11일.
(8) 옛 서독 노동부 장관 출신 노르베르트 블륌의 <Ehrliche Arbeit, ein Angriff auf den Finanzkapitalismus und seine Raffgier>(정직한 노동, 금융자본주의와 그 탐욕에 대한 공격)>(Gütersloher Verlagshaus·귀테르슬로·2011)에서 인용.
(9) Michael Hartmann, op., cit.
(10) <Bild Zeitung>, 베를린, 2012년 11월 13일, 인터뷰.
(11) Hans Weiss & Ernst Schmiederer, <Asoziale Marktwirtschaft>, Verlag Kepenheuer & Witsch, 쾰른, 2005에서 인용.
(12) ‘Das grösste Geschenk aller Zeiten’, <Die Zeit >, Hambourg, 2005년 9월 8일.
(13) ‘Deutsche Unternehmen vertrauen dem Euro’, Kienbaum Consultants International, 베를린, 2013년 7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