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사태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동상이몽

2013-09-12     알랭 그레시


조건부일망정 무하마드 호스니 사이드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석방은 아주 상징적인 사건이다.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에 반대하는 대중 동원으로 시작된 정세 변화가 예전 질서로 돌아가는 형상을 띠고 있다. 권력은 무슬림형제단과의 관계를 끊으면서, 동시에 2011년의 봉기가 요구한 민주적 제안을 위협하고 있다. 이 상황은 국제적 동맹관계를 크게 흔들고 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지난 8월 14일 ‘검은 수요일’ 단 하루에 벌어진 대량학살은, 1989년 6월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 사건 이래 진압군이 시위대에 대해 저지른 가장 큰 대량학살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당연히 정확한 사망자 수는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1) 이집트 당국에 의하면 600명이 약간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하지만 실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기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사망이 ‘자연사’이거나 혹은 자살에 의한 것이라고 사망자 가족들이 ‘인정해준’ 경우에만 시체가 가족에게 인계되었다고 한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 나비 필라이는 “보안군의 행위에 대한 독립적이고 공정하고 효과적이고 신뢰할 만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런 요구가 달성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혁명사회주의자 소그룹과 4월 6일 운동단체, 이집트파(派) 그리고 압델 모네임 아불 포투(2) 전 대통령 후보의 지지자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자유주의’나 좌파 정치세력의 지지를 받는 카이로 당국이 그 요구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국제 공동체’가 마비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8월 15일 긴급 소집된 안전보장이사회는 의장인 아르헨티나 대사가 읽은 다음 선언문에 만족했다. “안보리 회원국은 우선 희생자들에게 조의를 표하며 인명 손실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 이집트에서 폭력을 멈추고 모든 당사자들이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적 화해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여성 대사는 따분한 선언문을 발표한 후, 1970년대 군부 진압의 상흔으로 아직까지 고통받고 있는 자국의 입장을 반복해서 말했다. 대사는 선출된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를 비난했으며, 군사정권에 “비무장 시민들에게 계속 가해지는 최근의 폭력을 즉각적으로 중단하라”고 호소했다.

자신의 기구에 참여 자격을 정지시킨 아프리카연합은 말할 것도 없이 인도네시아에서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말레이시아, 볼리비아에서 나이지리아, 파키스탄에서 에콰도르까지 이집트에 별다른 지정학적·경제적 이권이 걸려 있지 않은 정부 대부분이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전복하고 시민을 진압한 군부를 단도입적으로 비난했다. 중국 베이징의 공식 언론이 ‘서구식’(3) 민주화 결과에 조롱했을 뿐, 이집트에 상당한 경제적 이권이 걸려 있는 인도와 중국은 모든 유의 비난을 자제했다. 다양한 주제에서 서로 의견을 달리함에도 인도와 중국은 자국 역시 각각 캐슈미르와 신장에서 겪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슬람의 테러리즘’을 비난한다.

이스라엘과 평화협정 유지하기

직접적으로 연루된 다른 강대국들의 반응 중에서 미국 반응이 가장 세심하게 분석되었다. 이집트 해설가들은 미국이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두 가지 시각을 동시에 견지하려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집트의 관영매체들은 백악관이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할 것이고, 계속해서 그들을 격려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반대로 무슬림형제단은 미국이 군부작전에 찬동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율배반적인 짧은 발표문과 공식 논평이 뒤섞여 있기 때문에 사실상 미국의 의도를 제대로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식의 평가는 이집트에 대한 미국의 기본 정책을 제대로 모르는 것이다.

1850~60년대 총리 헨리 존 템플은 “영국에는 영원한 친구나 적이 없다. 영국은 오직 이익만을 영원히 좇을 것이다”는 파렴치하고 충격적인 원칙을 발표했다. 이 원칙은 영국의 계승자로서 초강대국 역할을 수행하는 미국의 정책에 기막히게 적용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1~2월 봉기가 발생했을 때는 무바라크를 지지했다. 얼마 후 오바마는 이집트 최고군사위원회(SCAF)와 손을 잡았다. 그 뒤에는 무르시 대통령과 이슬람형제단 카드를 내밀었다. 이들이 균형자 역할을 수행해주리라 희망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미국이 겉보기에 우물쭈물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카이로와 텔아비브 사이의 평화협정을 유지하려는 구상만 중시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 점에서 성공했다. 무르시의 정책이 가자지구의 봉쇄 완화와 2012년 11월 침공에 대해 이스라엘에 좀더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등 팔레스타인 문제에 어느 정도 방향을 수정했지만, 본질적으로 무르시 정책이 전임자의 정책을 그대로 본받았기 때문이다.

오바마 처지에선 수백 명의 사망자 때문에 이집트의 새 주인들과 관계를 단절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비록 오마바가 이집트와 함께 실시하는 군사합동훈련을 중지하고 F16 비행기 4대의 인도를 연기할지라도, 그 이상은 넘어서지 않을 것이다. 교수이며 서아시아 전문가인 주언 콜은 워싱턴이 군사지원금(민간지원금은 2억5천만 달러, 군사지원금은 13억 달러)을 중단할 수 없는 적어도 10가지 이상의 이유를 들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군사지원금이 미국의 군사장비를 사들이는 데 사용되어 결과적으로 ‘군산복합체’인 록히드마틴, 보잉, 레이시언에 보조금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언 콜은 더욱 결정적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지원금은 이스라엘에 고운 시선을 가져달라고 이집트 엘리트에게 뇌물을 준 것이다. 시나이 반도에 감도는 혼돈과 이집트의 불안정 때문에, 미국 의회는 지난 40년간의 그 어느 때보다 지금 훨씬 더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4)

비록 텔아비브의 지도자들이 공개적으로 시각을 드러내지 않을지라도, 이들 시각은 은퇴한 고위급 책임자들의 속내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에후드 바라크 전 이스라엘 총리는 <CNN>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강조했다. “신체제의 거물인 압델 파타 엘 시시 장군에게 관심이 있다. 자유주의자들이 자유세계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 밖의 다른 누구에게 세상이 관심을 두겠느냐?”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대니 야톰 전 국장은 “이스라엘은 무슬림형제단보다 군부를, 종교 체제보다 세속 체제를 더 선호한다.”(6)고 확인해주었다. 이런 성향은 ‘새로운 나세르’로 이집트 매체에 널리 알려진 압델 장군이 오래전부터 이스라엘 군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기에 더욱 어쩔 수 없다.(7)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적대감

무르시의 실각 여파로 이슬람주의 정파 무장단체 하마스가 약화되자 상대적으로 강력해졌지만 우유부단한 팔레스타인 당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협상이 미국 권유로 재개되는 시점에서, 미국은 이집트 권력이 고립되는 것을 두고 볼 수만 없었다. 몇 해 전부터, 특히 이라크에서의 패배 이후로 근동 지역에서 자국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쇠퇴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이 알기에 더욱 그렇다. 무르시의 퇴진과 무력 사용 금지를 보장해줄 협상이 군부와 이슬람형제단 사이에 벌어졌을 거라고 잘못된 결론을 내린 미국의 오류가 이 점을 증명해주고 있다.(8)

유럽연합(EU)이 적극적으로 중재하기 위해 나섰고, 중재를 거부한 당사자가 군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덴마크 등의 몇몇 나라가 이집트에 대한 원조 중단을 주장했지만, EU 28개국은 현재 진압에 사용될 수 있는 모든 장비의 인도를 중단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미국이 상대적으로 쇠퇴하게 되자 걸프만 국가들이 강력하게 부상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여기에 눈에 띄지 않게 민주적 항거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바레인 왕국까지 포함) 등은 카이로 지도자들을 위해 아낌없이 선언도 하고 재정 지원도 했다. 압둘라 이븐 압둘 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지난 6월 30일의 시위가 발생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군부가 무르시를 전복한다면 상당한 지원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9) 그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이런 지원을 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튀니지와 이집트 혁명에 의해 공개된 재판과정이 왕가에 대한 혐오감을 심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적대감으로 쿠웨이트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1990년대에 걸프만에서 발생한 항거에서 그들이 일정 역할을 했다는 것과 ‘아랍의 봄’을 그들이 지원했기 때문에 무슬림형제단에 적대감이 있다. 미진하게나마 무르시가 이란에 접근해보려 한 점 역시 증오감을 키웠다. 시리아 지도자들과 이 증오감을 공유하고 있는데, 그들은 이집트 대통령의 실각을 공개적으로 환호했다.

이 반혁명에 직면해 이란, 카타르는 다소 이질적인 서아시아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터키는 카이로의 상황을 조금 더 조심스럽게 주시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이집트의 상황을 <국가 테러리즘>으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터키와 이집트 사이에는 ‘이슬람’이란 연대감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터키의 소수 정당인 쿠르드족 평화민주당을 포함한 모든 정치세력이 쿠데타를 규탄한 사실을 잊고 있다.

에르도안 총리가 게지 공원의 시위를 진압한 후 권위를 회복하려고 그런 태도를 취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좀더 의미심장하게 말하면 그의 지역 정책이 몇 달 전부터 시리아의 분쟁에 매몰돼버렸고, 그 정책의 매력적인 힘을 일정 부분 상실했기에 그가 주도권을 다시 잡으려 할 수 있다. 그가 민주주의 깃발과 팔레스타인 깃발을 동시에 흔들면서 주도권을 잡으려 하는데, 결과적으로 거의 결집이 되지 않는 걸프만 국가들을 곤경에 빠뜨린 셈이다. 지역의 민주주의 문제와 팔레스타인 문제라는 두 가지 주제에 대해 우리가 최소한 이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리아 문제는 이란과 전혀 합의를 못 보는 터키가 쿠데타에 대해서는 이란과 함께 규탄한 사실이 지역 동맹관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일까? 이제 자리를 잡은 이란의 새 대통령 하산 로하니는 무엇보다 핵문제를 걱정해야 한다. 그는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자국과 타협하지 못하게 부추기는 지역의 주요 강자가 이스라엘과 더불어 사우디아라비아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또한 그는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의 동맹국인 터키가 자국의 동맹국인 이라크와 수많은 문제에서 대립하고, 시리아 문제에서도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마지막으로 삼각대의 세 번째 받침대인 카타르는 지역에서 무슬림형제단의 주요 지지자인데, 시리아 야당에 대한 통제권을 사우디아라비아에 양도해야만 했다. 최근 취임한 새 왕은 비록 자신이 아버지처럼 이웃의 강자 사우디아라비아를 두려워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길을 찾고 있다.

새로운 정세를 이용하려는 러시아

변화하는 이 지역에서 러시아는 자신의 위치를 다시 찾으려 한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체제를 지지함으로써 아랍 세계에서 고립되고, 자국의 심장부(타타르스탄이나 코카서스 지역)에서 자국을 위협하는 이슬람주의가 대두될까 두려워 아랍 혁명이 터진 후로 이에 적대감을 느끼고 있는 러시아는 새로운 정세를 이용해 이득을 얻으려 한다. 7월 31일 크렘린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정보기관 수장 반다르 벤 술탄 왕자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모임을 갖자 수많은 관측이 쏟아졌다.(11) 두 나라는, 비록 시리아 문제에서 서로 반대되는 입장이지만, 이집트에 대해서는 같은 분석을 하고 있다. 두 나라는 이슬람형제단에 대한 공동적인 적대감 속에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 시리아에 어떤 변화가 오더라도 무슬림형제단이 비즈니스에 끼어들지 못할 것이고, 모스크바와 리야드가 맞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알카에다와 연계된 지하드 그룹이 등장하지 못할 것이라고 사우디아라비아가 러시아에 보장해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반다르 왕자는  러시아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이익이 많이 나는 무기구매 계약을 맺었을 것이다. 동맹관계에 결정적인 변화가 생기는 시기가 눈앞에 다가온 것일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미국이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예전보다 더 열려 있다.

2009년 6월 4일, 화제에 올랐던 카이로 강연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과 이슬람 세계 사이의 관계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주장했다. 4년 후, 팔레스타인과 민주화에 대한 종합평가는 그 점수가 미미하다. 알카에다의 수장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집트에서 벌어진 일이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민주주의적 방법을 사용하면 실패한다는 최고의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무슬림형제단과 하마스를 여러 번 비난했고, “지하드에 동참하고 진정한 이슬람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포기하라”(12)고 그들에게 호소했다. 이집트 군부의 진압에서 발생한 희생자의 측근이나 혁명에 희망을 건  일부 아랍 젊은이들이 그의 부추김을 따를까봐 걱정스럽다. 
 

글·알랭 그레시 Alain Gresh

번역·고광식 kokos27@ilemonde.com

(1) 비교하기 위해 올가 카잔(Olga Khazan) 참조,‘이집트의 대량학살 규모를 보여주는 도표’, <더 애틀랜틱>, 2013년 8월 15일, www.theatlantic.com
(2) 무함마드 대산(Mohamed Dahshan), ‘카이로에서 온건한 정신 찾기’, <포린 폴리시>, 워싱턴DC, 2013년 8월 6일 참조.
(3) <BBC>의 이집트 모니터링 서비스의 보도 논평, 런던, 2013년 8월 16일 참조.
(4)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워싱턴이 이집트에 대한 원조 단절을 망설이는 10가지 이유’, 소식에 정통한 논평, 2013년 8월 17일, www.juancole.com
(5)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에서 인용, 2013년 8월 13일, www.timesofisrael.com
(6) 이자벨 커쉬너(Isabel Kershner) 인용, ‘이스라엘은 곤혹스런 침묵 속에서 유혈참사를 바라보고 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뇌이이 쉬르 센느, 2013년 8월 17~18일.
(7) 데이비드 커크패트릭, 피터 베이커, 미카엘 고든,‘협상에 대한 희망이 이집트에서 어떻게 좌절되었는가’, <뉴욕타임스>, 2013년 8월 17일.
(8) 같은 신문.
(9) ‘군부, 무슬림형제단, 사우디아라비아’, 2013년 8월 참조, www.mondediplomatique.fr
(10) <휴리옛>(Hurriyet), 이스탄불, <BBC>의 이집트 모니터링 서비스 인용, 2013년 8월 18일.
(11) 시어도어 카라시크(Theodore Karasik), ‘왕국과 크렘린: 반다르-푸틴 미팅의 전략적 의미’, 근동과 걸프만 군사분석연구소, 두바이, 2013년 8월 5일.
(12) 카프카즈센터(Kavkaz Center)가 인용한 2013년 8월 3일의 선언,  www.Kaukazcent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