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의 돈벌이 이벤트, 과연 위기의 언론을 살릴까

2013-09-12     쥘리앙 브리고 | 기자

 

지난 3월 29일 금요일. 프랑스 렌시(市) 중심가의 브르타뉴 국립극장에 밤이 지고,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의 포럼 첫날이 막을 내렸다. 이튿날까지 이 일간지 팀은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까’란 주제로 50여 차례의 포럼을 주최한다. 오후 8시 10분, 프랑스 정유회사 토탈 회장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가 렌시에서 무상으로 대관해준 극장 입구에 흡족한 모습으로 당도한다. 그는 이튿날 자신의 ‘상대 패널’인 다보스클럽의 회원이자 영자 일간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의 편집장 앨리슨 스메일을 만날 채비를 한다. 그는 주장한다. “난 리베(리베라시옹의 줄임말) 포럼을 좋아한다. 지난 렌 포럼에서는 경제학자 에릭 오르세나가 상대 패널이었다.

물론 우린 서로 적은 아니다. 하지만 리옹 포럼에선 지역 평등과 주택부 장관 세실 뒤플로를 상대했다. 콧수염을 기른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도 상대했다.” 그는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내 목적은 포럼 참가와 도움을 주는 것이다.”  토탈사가 <리베라시옹>에 기부금을 준 것을 언급하자,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없으면 리베 사람들은 죽은 목숨이다. 맞다, 5만 유로 정도 기부했다. 우리는 리베를 좋아한다. 그래서 돕는다.” 브르타뉴 국립극장의 문이 다시 닫힌다.

포럼 방식은 지방 자치단체들이 파리 신문에서 공공 이벤트 행사를 구입해, 주말 동안 도시를 정치인, 학자, 언론인이 토론을 벌이는 지역 지식의 메카로 만드는 데 치중했다. 풍부한 정부 보조금이 투입되는 이같은 행사에 참여하는 언론사들은 물론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매출 감소를(1) 상쇄할 수 있는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리베라시옹> 감사국장 안 로베르종은 인정했다. “포럼이 없었다면, 우리는 파산했을 것이다.”(2013년 4월 19일, 프랑스 일간 <레제코>). 2009년 <리베라시옹>이 포럼을 개최한 곳은 렌과 그르노블, 두 도시밖에 없었다. 하지만 2013년엔 그르노블, 렌, 마르세유, 스트라스부르, 릴, 몽펠리에, 낭시, 보비니, 비트리, 툴루즈, 아비뇽 등 적어도 11개 도시로 확대 계획되어 있다. 2009년부터 <리베라시옹>은 매년 평균적으로 990만 유로를 직접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어,(2) 이 자금이 신문을 되살리고 채권자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2007년 <리베라시옹>이 도입한 이 포럼이 많은 수익을 창출한다고 알려지자, <르누벨 옵세르바퇴르> <마리안> <르포앵> 등 주간지들도 따라 했다. 이 주간지들은 우선 대중과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 시사토크 형식의 공공 이벤트 행사를 지방 자치단체에 제안하며, 유명 인사들이 행사를 주도하고 언론이 지면에 지속적으로 게재 할 테니, 이 행사야말로 대도시 간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소중한 조커라 소개했다. 그러고 나서 이들은 언론사의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해, 수십 명의 정치인과 지식인 그리고 전문가(주로 신문 토론 난의 단골)들을 모았다. 물론 노조 지도자 또는 급진적인 수필가도 빼놓지 않고 초대했다. 이들은 시사, 세상사, 공공 행동, 즉 ‘젊은 세대’, ‘식품’, ‘경제위기 ’등과 같은 “주제”들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언론사는 고객(포럼 유치 도시나 기업)이 생기면, 수익성 보조금을 유치할 수 있다는 희망뿐만 아니라, 직원을 대상으로 ‘토론’을 개최해준다는 조건으로 민간 후원금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기대를 같이 했다. 그러나 토론은 무늬만 토론이었다. 왜냐하면 지역의 소수 정치 집단에는 이같은 야심찬 포럼이 진정한 아이디어 논쟁이라기보다는 ‘정치 작업’이나 심지어 ‘위장 토론’에 불과했기 때문이다.(3)

지방 자치단체들의 지지는 우선 언론사의 광고 지면 구입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렌 지역 자치단체는 매년 30만 유로를 포럼 유치에 쏟아 부었다. 이 중 20만 유로는 <리베라시옹>에 실은 <리베라시옹> 포럼을 알리고는 광고비였다. 이 지역 자치단체는 5년간 광고비로 150만 유로를 썼다. 그로노블은 2007년부터 이같은 포럼 행사를 조직하기 위해 매년 13만~ 15만 유로의 공공자금을 시 예산에서 끌어다 썼다. 렌과 그르노블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일드프랑스는 2012~2014년, 5개의 포럼을 유치하기 위해 <리베라시옹>에 150만 유로를 지불했다.

<리베라시옹>이 ‘유명 인사들’을 동원해 그로노블에서처럼 수천 명을 운집시키든, 2012년 낭테르에서처럼 100명도 안 되는 사람들을 운집시키든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보조금과 후원금이 생긴다는 것이다. 사전 예약제인 포럼장 접근이 유료가 아니라서, 포럼이 지역 세금으로 대부분 진행됨에도 무료 이벤트란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영미권 언론과 일본 언론이 선보인 이 관행은 최근 수십 년간 널리 확산됐다. TNB 카페테리아에서 <리베라시옹>의 발전본부장 피에르 이베르나는 이런 현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우리는 이것을 언론 밖 활동, 즉 신문 이외 장소의 신문 활동이라 부른다. 난 아사히 신문(발행 부수가 1천만 부 이상인 두 종류의 일간지를 소유한 일본 언론사)을 롤모델로 삼았다. 이 언론사는 스포츠와 문화 이벤트를 생산하고, ‘이벤트’를 주도하는 부서는 정부 부처만큼이나 방대하다. 물론 이것이 만병통치 약이란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성장 모델이다.” 

미국 잡지 <포브스 아프리카> 또한 포럼을 조직하지만 이들은 국제적 수준의 포럼을 조직한다. 2013년 이 잡지는 콩고공화국 수도 브라자빌에서 ‘아프리카 중산층’을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한편 프랑스 대중운동연합당(UMP) 당수 장 프랑수아 코페는 유명 앵커 크리스틴 오크랑(2013년 7월 28일, 주간지 <르 주르날 뒤 디망쉬> 참고)이 사회를 본 포럼에 3만 유로를 받고 참가해 비난을 산 바 있다.

<리베라시옹>은 포럼 패널에게 보수도 주지 않고, 포럼도 프랑스로 한정하고 있다. 이베르나의 주도로, <리베라시옹>은 새로운 고객 도시를 찾기 위해 12명의 상근자를 채용했다. 내부적으로 대략 50만 유로를 투자해, 프랑스 전역에서 수백만 유로의 정부 보조금을 거둬들이려는 심산이다.

지역 시민의 세금으로 파리 신문(<리베라시옹>)의 회계 계정을 살리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역정을 냈다. “맞다. 렌 납세자 돈을 낸다. 하지만 우리는 지식인과 장관을 초대하고 아이디어 토론을 유치한다! 그 어떤 신문이 전·현직 교육부 장관인 뤽 페리와 뱅상 페이옹을 한 테이블에 모을 수 있단 말인가. 단연코 없다!”

사실, 포럼의 질은 유명 인사를 얼마나 유치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렌 포럼엔 22명의 정치인이 참여했다. 이 중엔 사회당의 미셀 로카르와 전 총리인 UMP의장 피에르 라파랭, 그리고 장마크 에로 내각의 8명의 각료가 참가했다.(4) 지식인으로서는 철학자 알랭 핀키엘크라우트, 경제학자 다니엘 코엔, 언론인 베르나르 게타 등이 눈에 띄었다. 좌파 쪽에서는 프랑스 노동총연맹(CGT) 사무총장인 티에리 르팡과 ‘전직 체 게베라 저항운동가’인 미구엘 베나사야가 참가했다. 미디에 이미 소개된 이들 초대 패널은 숙식과 체류 비용만 지원받고 보수도 없이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게 된다.

라파랭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서 있던  미셸과 마리앙드레 베르나르, 한 퇴직 커플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기뻐했다. “사람들이 우리를 찾는 느낌을 받는다.” 렌의 사회당 시장, 다니엘 들라보는 포럼 유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연구와 대학 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전략이다. 현지 납세자들은 경영이 어려운 언론에 자금을 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참가하는 토론에 자금을 대는 것이다. 이런 포럼은 효율적이고 유용한 투자이다. 이것은 대박 투자이다.” 투자 회복은 정확한 수는 아니지만 포럼에 몰려드는 ‘2만여 명’에 달려 있다. 하지만 TNB 경우처럼 빈 자리가 많을 때도 있어 당혹스럽다. 그는 말을 잇는다. “<리베라시옹>은 저렴한 가격으로 우리 광고를 실어주고, 우리는 장소와 장비 그리고 방송 수단을 제공한다.”

언론사의 이벤트는 힘든 경쟁을 치러야 하는 시장이 되었다. 미디-피레네 지역 의회의 홍보수석 보좌관 티에리 샤르마송은 툴루즈시 측의 견해를 밝혔다. “2008년, 리베 포럼이 프랑스 전역에서 큰 호응을 얻는 것을 보고 툴루주시는 걱정했다. 툴루주가 새로운 포럼 개최 도시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프랑스 이미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주요 언론의 관심을 살 수 있는 현지 주제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에서 세 번이나 장관을 지낸 시의장, 마르탱 말비는 그가 자주 만나는 주간지 <르포앵>의 경영자 프랑즈-올리비에 기스베르와 함께 툴루즈와 잡지 <르포앵>의 관심을 충족시킬 만한 주제를 찾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현지 공무원의 대대적인 지원으로 개최되는 <르포앵>의 툴루즈 포럼인 이른바 퓨튀라폴리스(Futurapolis)이다. 이 포럼 포스터는 ‘공화국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포럼이 개최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포럼 초기 구상자 막스 아르마네는 포럼의 이런 성공을 마뜩찮아 한다. 주간지 <마리안>에서 해고된 <리베라시옹>의 전 간부인 그는 자신이 이 포럼을 ‘고안’했다고 자랑하며, <리베라시옹>의 경영위원장 니콜라 데모랑이 포럼 시스템을 ‘타락’시켰다며 그를 강력히 비난한다. 그는 파리 소재 자신의 사무실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포럼들은 물론 종이 신문의 경제위기 탈출을 위해 고안해낸 모델의 일환이다. 하지만 난 아이디어 토론을 하든지 돈을 위한 토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 <리베라시옹>이 국립극장에서 개최하는 유료 토론은 회사 재정을 살리기 위한 포럼일 뿐이다.”   

2011년 로랑 조프랭이 <리베라시옹> 경영진에서 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로 이직한 이후, 이 주간지는 낭트에서 포럼을 개최했다. 아르마네가 목청을 높였다. “낭트는 내가 <리베라시옹> 포럼을 개최하기로 협상한 도시다. 조프랭은 (내가 진행한) 모든 계약 사본을 가지고 이직했다.” 현재 <마리안> ‘포럼’(2013년 니스와 푸아티에에서, 2012년 마르세유에서 포럼을 개최함)의 담당자이자 포럼의 ‘제왕’인 그는 자신의 고안품에 특허를 내지 않은 것은 아쉬워했다. 

렌 포럼 폐막식 때, 손을 들어 데모랑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당신이 경영하는 언론을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이벤트 회사로 탈바꿈시키려는 겁니까?” 그는 화를 버럭 내며 대답했다. “만약 당신이 생각할 때 좋은 신문이 빈사상태라면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당신은 놀라겠지만 우리 직업도 변하고 있다. 과거엔 존재하지 않던 직업이 현재 존재하며 발전하고 있다. 언론 활동은 상업 활동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전의 우리 활동 중 일부가 경제위기를 맞았다면, 오로지 이전의 활동을 지속시킬 수 있도록 다른 활동을 찾아야 한다.” 

 


 

후원행사에서부터 이벤트 행사까지

언론은 포럼을 개최하기 전, 자신을 알리는 행사를 통해 후원사와 제휴관계를 체결하지만 금적적인 수익은 내지 못한다. 따라서 1985년 <리베라시옹>은 <SOS 인종차별> 파리 콘서트 때 이 단체와 제휴관계를 맺었다. 2006년 사회자유주의 성향의 그로노블 싱크탱크 ‘아이디어 공화국’은 그로노블시와 일간지 <르몽드>, 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 <레 쟁록큅티블>, 그리고 월간 <대안경제> <에스프리>를 비롯한 라디오 채널 <프랑스 퀼튀르> 등 6개사와 제휴관계를 맺고 시에 ‘새로운 사회 비판 포럼’을 제안했다. 이듬해 대선에서 우파가 승리한 이후, 그로노블은 <리베라시옹>이 주최하는 첫 수익성 유료 포럼을 유치했다. 
 


글•쥘리앙 브리고 Julien Brygo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로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강의 중.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1) 2013년 초반, 가판대에 팔린 일간지 <Libération>의 판매 부수는 40만 부를 미치지 못했다. 이 규모는 2012년 대비 40% 감소한 수치이다.
(2) 2009~2011년, 언론사에 투입된 총 공적자금 규모는 50억 유로에 달한다. 웹사이트 www.ccomptes.fr에 게재된 감사원 자료 참고. 파리, 2013년 2월.
(3) ‘우리는 왜 <리베라시옹> 포럼 참가를 거부하는가?’, ‘민주주의 생태 연대협회’, 그르노블, 2007, www.ades-grenoble.org 참고.
(4) 2013년 <리베라시옹> 렌 포럼에 참가한 장마크 에로 내각 각료는 베르나르 카제뇌브 유럽 담당 장관, 발레리 푸르네롱 체육부 장관, 기욤 가로 농업식품산림부 장관, 마릴리즈 르브랑슈 국가개혁·지방분권·공공사업 장관, 뱅상 페이옹 교육부 장관, 나자 발로드벨카셍 여성권리부 장관, 알랭 비달리 대의회관계 담당 장관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