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뉴스 소재로 전락한 도시외곽 빈민들

2013-09-12     제롬 베르토


검게 그을린 휴지통을 담은 영상, 마음에 상처 입은 행인을 대상으로 한 거리 여론조사, ‘공동체의 자폐현상’에 대한 토론 등 올여름 경찰과 트라프 지역 주민이 충돌하면서 ‘외곽지역 병’이 또다시 미디어의 관심 대상이 됐다. 여러 해 동안 TV 뉴스의 내막에 대해 살펴본 결과, 상투적 관행이 어떤 식으로 지속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2008년 <프랑스2>의 TV뉴스 편집위원 중 한 명은 “우리에게 외곽지역은 외국 땅이 되어버렸다는 사실, 언어도 지리도 사회학도 이해할 수 없는 프랑스 영토의 일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주민은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는 그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외곽지역에 있는 것은 외국에 있는 것과 같으니 외국에서 하는 대로 하자. 안내원이 해주는 일에 대해 돈을 지급하자’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한다. 원래 기사·가이드·통역 일을 하는 동행인을 지칭하던 ‘안내원’이라는 표현이 다시 사용된 것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는 서민지역 관련 뉴스 보도의 구조적 변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는 <프랑스2>의 뉴스 편집 과정을 조사하면서 이런 사실을 관찰할 수 있었다.(1)

안내원을 이용한다는 사실은, 우선 기자들이 특정 주거지역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 사회적이라기보다 문화적임을 잘 보여준다. 외곽지역에서 성장한 안내원은 자신의 지역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흔히 특수할 수 있는 언어와 행동양식, 민족 등의 코드를 잘 활용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중개인을 고용한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서민지역의 ‘일탈’을 뉴스화하는 경향이 늘어남을 입증하는 것이다.(2) 취재기자들은 안내원이 자신의 관계(가족, 친구)를 동원해 지하경제(딜러, 절도범, 무기 또는 자동차 밀매)나 교외 폭력(강탈, 반유대주의, 여성학대), ‘무슬림 근본주의’, 학교 결석 등에 관한 르포의 주인공이 될 사람들을 연결해주기 기대한다. 

특히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는 일이 늘어나면서 이런 유의 르포가 계속 증가하고,  <프랑스2>가 경쟁 민영 방송사에 동조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프랑스시청각연구소(INA)에 따르면, 2012년 <M6>의 TV뉴스에서 외곽지역의 사건사고를 다룬 뉴스가 517건인 데 반해 <TF1>은 472건, <프랑스2>는 그보다 약간 적은 454건이었다. 2000년대 초반에 공영방송 간부진으로 승진한 인사 대부분이 민영방송 출신이며 그들의 작업방식을 그대로 공영방송으로 옮겨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길렌 세뉘(프로그램 ‘특파원’ 진행자), 브누아 뒤켄(프로그램 ‘보완 추적’ 진행자), 다비드 퓌자라스(8시 뉴스 <프랑스2> 앵커)는 <TF1>에서 기자로 근무할 때 TV탐방뉴스와 병행해 프로그램 ‘알 권리’에서 외곽지역의 이슬람 관련 주제를 많이 보도했다. 1995년 퓌자라스는 장클로드 라테와 함께 ‘외곽지역 성전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지하드의 유혹>이라는 책을 공동집필했다. 그는 <TF1>을 위해 제작한 여러 르포를 편집해 이 책에 실었고, 그중에는 1993년 10월 방영된 ‘이민, 타락하고 있는 통합’이란 제목의 르포도 들어 있다. 여기에서 그는 ‘외곽지역 주민들’을 만나 흑인, 아시아, 마그레브 공동체의 생활방식이 프랑스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는 양립 불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젊은 리포터에 따르면, ‘가족 합류 물결’의 특징(대가족, 일부다처제, 가치 개념 부재 등)이 외곽지역을 ‘황폐’하게 만들고 게토를 형성하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윗사람들의 예상을 앞서 나가다

<프랑스2> 편집국의 새 수뇌부는 이런 유의 편견으로 무장한 채 예전 팀이 ‘지나치게 순수한’ 외곽지역 취재를 중단하도록 설득했다. 그날 그날 내보낼 뉴스 사안들을 선별·배분할 뿐 아니라 전날 방송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평가하는 보도국 편집회의에서는 특히 통상적인 순서와 방법이 판에 박힌 듯 진행된다. <프랑스2>의 ‘1시 뉴스’와 ‘8시 뉴스’는 각각 30~40분 편집회의를 거친다. 대부분 부장·국장급만 참가한다. 정치부·사회부·문화부·일반뉴스 부장들이 번갈아가며 해당 팀의 제안과 촬영 진행 과정을 설명하고 뉴스 목차를 결정하는 결정권자의 동의를 얻으려 애쓴다.

국장들은 간단한 얼굴 표정 또는 입을 삐죽거리거나 열정적으로 감탄하거나, 아니면 짧은 질문을 몇 가지 던지는 식의 재빠른 리액션을 통해 관심의 정도를 드러내고, 때로는 자세하게 주문사항을 늘어놓기도 한다. 자기 팀이 제작한 뉴스의 방영허가를 따내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상황에 놓인 부장들은 편집부장이나 앵커가 원하는 쪽을 따르기 마련이고, 심지어 그들의 예상을 앞서 나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체계가 경쟁을 부추기고 보도국 고위층이 그 혜택을 본다. 일례로, 2003년 3월 편집장이 ‘프랑스에 미친 이라크전의 영향에 관심 가질 것’을 요구하자, 정치부장은 공동체 갈등 완화를 위한 ‘의원들의 역할’에 관한 주제를 제안했다. 사회부 책임자는 외곽지역의 회교 사원과 학교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일반뉴스 책임자는 주거지역 길거리에서 젊은이들의 의견을 취재해 취합했다. 심지어 편집장들이 주저하는 경우에도, 각 부서 경쟁을 통해 TV뉴스 책임자들은 맞춤형 르포를 확보한다. 일례로 2006년 12월, ‘니콜라 사르코지 장관이 내무장관실에서 서민 지역 청년들을 접견한다’는 보도자료가 나오자 일반뉴스부의 몇몇 기자는 내무장관의 회유, 말하자면 ‘막후공작’이라며 이 사건 취재에 싫은 기색을 보였다. 어느 부서에서 취재하든 아무려면 어떤가. 정치부에서 취재하겠다고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는, 외곽지역을 본래 모습과 다른 식으로 정의할 정도로 현장에서 동떨어진 편집 책임자들의 해석에 따라 뉴스거리가 만들어지곤 한다. 보통 편집국장, 앵커, TV뉴스 편집부장은 서민 지역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르포 취재를 손에서 놓은 지 오래일 뿐만 아니라 해당 사안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직접 지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중으로 멀어져 있는 셈이다. 기자 지휘는 각 부서 책임자가 맡고 있다. 따라서 외곽지역에 대한 그들의 시각은 무엇보다 그들에게 전달되는 견해, 즉 지배적 의견과 그들이 참조하는 방송매체의 입장으로 형성되기 일쑤다.   

신참 리포터들이 받는 주요 명령 중 하나가 바로 사건사고의 무궁무진한 소스가 되는 질서유지 세력과 접촉을 쌓으라는 것이다. 프랑스 국내안전고등연구소(IHESI)(3)가 진행하는 방송기자 교육에서 해당 기자의 근면성을 알아볼 수 있는 사항 중 하나다. 모든 방송·언론 매체를 통틀어 <프랑스2> 편집국에 가장 많은 기자가 등록돼 있다. 1994~2011년 일반뉴스부에서만 기자 7명이 IHESI의 교육 대상자가 됐다. 방송사 쪽에서는 교육에 투자하면서 장래의 치안책임자과 인맥을 쌓기를 기대한다. TV뉴스 편집장으로 승진한 일반뉴스 부장은 “<프랑스2>의 경우 교육비로 연간 8천 유로가 들어간다. 따라서 기자 한 명을 그곳에 넣을 때는 뭔가 기대하는 것”이라고 인정한다.

1년 동안 한 달에 네 번, 여러 종류의 치안 관련 교육이 열릴 때마다 등록된 기자들은 장차 경찰서장, 헌병대 대령, 법관, 부지사, 세관 이사 등으로 승진할 공공안전 전문가 100여 명과 자리를 나란히 한다. 예전 교육 동기생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할 일이다. 교육과정을 수료한 기자는 “아직까지도 그들을 만나고 있다”며 “서로 말도 놓는다. 일종의 의례, 프리메이슨 지부 같은 것이다. 다른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맥을 의례화하는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모하메드, 짱나지?”

이런 전략은 방송사에는 부담스러운 것이지만 이렇게 하면 상부 명령을 영광으로 돌릴, 즉각 실전 배치 가능한 리포터들을 보유하게 된다. 2000~2012년 <TF1>와 <프랑스2>에 네 번이나 스카우트된 이 분야의 한 전문가는 “부서를 옮길 때마다 내 경찰 및 법원의 주소록 덕을 봤다. 경찰 전문가는 극소수다. 대단히 복잡하고, 소스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결국 내가 앞서 나갈 수 있게 해준 것은 내가 가진 주소록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경찰과 가까워지다 보니 기자들도 무의식중에 경찰의 사회인식과 분석범주를 채택하게 되고, 때로는 그들의 말투까지 따라 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프랑스2> 내부에서는 사건이나 사람을 기다리는 일을 ‘잠복근무’로 표현하고, 강도사건 취재를 ‘연장을 들다’라고 표현한다. 이외에 구류, 무장강도, 폭행절도 등의 경찰 전문용어가 편집국에서는 흔하게 쓰인다.

내무부와 그 부서(도청, 경찰서 등)는 진정한 의미의 뉴스 공동 생산자의 임무를 담당한다. 연출이라는 저널의 관습을 잘 알고 있고, 또 완전히 적응한다. 일례로 ‘낭테르 마약 압류’에 관한 르포가 채택된 것은 차량 수색이나 가택 수색에 방송사 카메라가 경찰과 동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2> 일반뉴스 부장은 이 르포 제작을 언급하며 “상당한 액수의 돈까지 압수한 낭테르 마약 작전은, 로큰롤에 견줄 정도로 문을 박차고 들어가는 요원들을 눈부시게 잡아낸 멋진 작전이었다”고 공공연하게 만족해했다. 편집회의에서 벌어지는 토론은 흔히 다른 방송사에서 다뤄질 수 있는 뉴스인지 아닌지 관련된 경우가 많다. 어느 부서든 부장에게 ‘그의’ 뉴스를 강요하는 방법 중 한 가지는 경쟁사가 그 문제를 다룰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취재 편집 기자들의 말처럼 ‘만약을 대비해' 준비해놓는 몇몇의 보도기사는 다른 방송이 ‘만약을 대비해' 준비했던 보도를 내보낼 때 비로소 방영이 된다. 예측을 잘 하기 위해 기자들 모두 다른 매체에서 다루는 뉴스 주제를 주의 깊게 살펴본다. 라디오는 물론이고 신문·잡지, 특히 <르 파리지앵>을 눈여겨본다. 편집회의에서 자주 언급되는 일간지 <르 파리지앵>은 이른바 ‘인기 있는’ 중심 프로그램을 평가하는 척도로 이용된다. 파리를 근거지로 한 TV뉴스팀이 하루 제작할 수 있는 뉴스 소재에 대한 아이디어를 거의 통째로 제공할 뿐 아니라 다양한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척도로 간주된다. 그래서 TV뉴스 시작 부분에 방송되는 르포는 <르 파리지앵> 1면의 순서를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르 파리지앵>이 폭넓게 다루는 ‘외곽지역 문제’가 반복해서 등장하고, 방영 지역을 감안하면 파리 외곽지역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일단 편집회의에서 뉴스가 선별되면 보도국 책임자들은 각 부장에게 뉴스를 다시 넘기고, 부장은 리포터에게 각각의 뉴스 사안 관련 지시사항을 전달한다. 재판 보도기사를 담당한 한 기자는 “명령이 울려 퍼지며 한 계단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한 계단 내려온 지시사항은 다시 아래로 내려간다. 부장이 기자에게 맡긴 사안에 대해 이론적·정치적으로 최소한의 비판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위계질서에 따라 위에서 지시한 명령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 늘 정당하고 실현 가능한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보안기동대(CRS)의 폭행’ 취재를 담당한 기자 드니는 대단히 민감한 ‘타르트레(에손도(道)에 속하는 서민 주거지역으로, 2010년에는 청소년들의 공격으로 경찰 5명이 부상을 입었다)에서의 촬영’의 어려움을 강조하면서 “민망한 뉴스가 될까 걱정스럽다”고 르포에 대한 회의를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굴하지 않고 취재를 강행했다.

외곽지역 보도 방식에 대한 비판에 기자들은 서민 지역 주민과 신뢰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운 문제를 내세운다. 그들은 보호를 담당할 중개인들을 동원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입을 모은다. 예를 들면 한 여기자는 후배여기자에게 신신 당부한다. “외곽지역 사르셀에 갈 땐 조심해야 해, 걱정된다. 혼자 가지 말고 구청직원이나 그곳 사람 누군가와 동행해. 그리고 건물 밖에서 취재할 때는 (기자들의 질문을 흉내 내며) 젊은 애들 말투로 ‘짱나지?’라고 말해야 해.” 이런 준비들은 상황을 편하게 해준다. 이 중개인들 덕분에 촬영도 잘 끝난다. 그러나 중개인에게 의지하는 것은 대단히 짧은 시간(어떤 때는 저녁 뉴스를 아침에 촬영하기도 한다) 내에 ‘현실을 파고들며’, ‘살아 있는’ 뉴스를 만들어내야 하는 실제적 어려움을 증명하는 것이다. 기자 업무 중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서민지역에서 이런 중개인을 찾아내는 일이다. 중개인은 공식적으로 편집국에서 보수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 안내인과 구별된다. 이들은 상부의 명령에 부합하는 개인적 궤적을 가진 주민들을 미리 선별해내는 능력이 있다. 그런 중개인을 찾아내는 기자는 평판이 자자해지고, 편집국 내에서 이름이 회자된다.

건물 이동 촬영은 필수

중개인 한 명이 일련의 르포 시리즈 전체를 결정할 수도 있다. 2001년 초, 드니는 에손의 한 도시에서 교사로 일하는 타리크를 알게 됐다. 집단 성폭행과 외곽지역 주거단지 내에서 청소년 남녀관계에 관한 르포를 맡게 됐을 때, 타리크가 그 지역 청소년들과의 만남을 주선했었다. 9·11 테러 후 타리크는 드니에게 ‘이슬람으로 개종한’ 청년을 소개해줬다. 드니는 “그런 케이스를 만나게 돼 기뻤다”면서 “타리크는 그가 비행청소년이어서 잘 알고 있었고, 그의 전화번호를 내게 알려줬다”고 회상하며 아직까지도 그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틀 후, 타리크는 그 도시의 한 건물 입구에서 청소년들을 소개해줬다. 그 후 ‘불안감’에 대한 르포를 촬영할 때, 타리크는 정기적으로 경찰 심문받는 것을 불평하는 대학생 3명을 소개해줬다. 이런 식의 르포 제작 과정에서 몇몇 외곽지역 주거단지가 지나치게 노출되곤 한다. 드니가 2000~2007년 <프랑스2> 탐방뉴스로 제작한 ‘외곽지역’ 관련 79개 르포 중에 상당 부분이 중개인이 연결된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주로 타리크가 자리를 잡은 에손(그리니와 에브리는 15개 르포에 등장한다)과 <프랑스2>의 안내인이 자리 잡은 발 드 마른을 배경으로 한다.

몇몇 중개자에게 방송사의 요청이 쇄도하면서 그들에게는 이 일이 직업이 되었다. 2003년, <프랑스2>의 2개 팀이 9일 간격으로 사르셀을 방문했다. 방문 때마다 사르셀 시장은 유대교회당, 유대공동체 찻집, 혼성 시장, 사르셀의 70개 공동체의 만남의 장, 마그레브 노인들이 경마를 즐기는 장외 마권판매소, 이슬람 사원 등의 코스를 안내했다.(4)

중개인이 제안하는 코스는 분명 반복적으로 기자들을 맞이하면서 축적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획일화된 방문이든 촬영기사의 제안이든(‘부르카’를 착용한 여성 행인, 마그레브 노인들이 드나드는 술집 등), 르포 제작자가 미리 고른 것이든 간에 많은 상황이 외곽지역 저널리즘의 코드를 소개하는 사람에 의해 내면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리포터의 요구를 예상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전형적인 뉴스 실무의 주역이자 뱃사공이다.

서민 지역을 탐방하는 기자들은 주로 ‘외곽’을 잘 표현하는 상황, 풍경, 사람들을 포착해내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이런 르포에서는, 외곽지역 주거단지에서는 사실 소수에 불과한 주거용 아파트나 빌딩의 이미지가 주요 시각 요소로 등장한다. 특히 이동 촬영은 필수다. 안정감을 주면서 미학적 효과(원칙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의 이미지에 활기를 불어넣는다)를 제공한다. 리포터는 차를 세울 필요도 없이 차 안에 남아 있을 수 있다. ‘클리시 수 부아’에 파견된 기자가 촬영한 가공되지 않은 편집용 필름을 발견한 편집기사는 “빌딩 이동 촬영이 없다면 외곽지역 관련 뉴스는 뭐가 될까?”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촬영팀이 촬영하지 못할 경우 편집기사가 기록보관소에서 예전 필름을 쉽사리 찾아낼 정도로 이동 촬영은 외곽지역 관련 르포 제작에서 판에 박힌 것이 되었다.  

 저널 특유의 탐방 수집 외에 외곽지역 도시를 대표하는 또 다른 요소가 ‘추가’된다. 올리비에나 드니 팀이 2개 외곽지역에서 촬영한 필름 전체를 분석한 결과, 카메라맨이 동일한 이미지를 선호한다. 와이드 프레이밍, 근접 촬영 또는 건물 위에서 이동 촬영, 발코니, 어두운 복도, 위성 안테나, 낙서, 훼손의 흔적 등의 이미지를 포착하는 방식을 다양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클리시 수 부아 탐방취재 과정에서 취재편집기자 피에르는 초등학교 옆에 화재로 검게 그을린 광고판이 아직까지 울타리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선 촬영리포터에게 “지도를 만들어 오라”고 했다. 촬영리포터는 곧 지도를 만들어 두 개의 벽보 이미지를 촬영하고, 카메라를 아래에서 위로 들어 올려 한 화면에 두 광고판을 잡아낸 다음 빌딩과 위성안테나를 배경으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회교 사원의 사제, 칭찬할 만한 또는 탈선하는 청년, 공해 피해자 등 일련의 인물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점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이런 포맷은 외곽지역에 같은 편견을 가진 상사나 대중의 평가를 예측해 대비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디에 있을지, 어떤 사람일지, 그리고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한다. 기자들은 대화자로, 그리고 연출자로 재능을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TV뉴스 속에서 말과 상황이 함께 어울린다기보다 덜 취재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비굴한 민영화

2003년 3월, <프랑스2> 일반뉴스부(주로 사건사고 담당) 사무실은 온갖 서류상자와 박스로 복잡했다. 편집국이 개편되면서 사무실을 이동한 것이다. 일반뉴스부가 명망 높은 국제부와 통합돼 ‘추적 및 심층보도’부로 확대된 것이다. 프랑스와 해외에서 어떤 사안이든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유능한 멀티플레이어 리포터 인력풀을 보유한 <프랑스2>가 민간 상업방송의 대규모 편집국 기구 구성 모델을 따라한 것이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이런 조직 편성은 2001년 부임한 편집국 수뇌부가 추진한 일련의 변화를 완결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2001년 공영방송을 대표하는 두 인물인 <프랑스2> ‘8시 뉴스’ 진행자 클로드 세리용과 편집국장 피에르 앙리 아른스탕은, 각각 <LCI> <TF1> 출신의 다비드 퓌자다와 <RTL> 출신의 올리비에 마즈롤로 교체됐다. 편집국 기구 편성의 큰 변화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새로 부임한 인사 대부분이 민영방송에서 근무했거나 민영방송에서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2001년 <프랑스2> ‘8시 뉴스’ 편집부차장이 된 장미셸 카르팡티에나 새로이 국제부장이 된 티에리 튀이예처럼 상당수가 <TF1> 출신이다. 나머지는 일반뉴스 부장 미셸 핀처럼 <라 생크>(1987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창설, 1992년 폐지)에서 경력을 쌓았다. 격변의 와중에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간부 역시 민영방송에서 경력을 쌓았다. 1985~90년 <TF1> 정치부장을 지내다 현재 <모 크루아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를레트 샤보, <라 생크>(1987~92)와 <TF1>(1992~97)에서 기자로 활약하다가 현재 주말뉴스를 진행하는 베아트리스 쇤베르그의 경우가 그렇다. 경쟁과 수익성 논리로 무장하고 <프랑스2> TV뉴스 시청률을 끌어올릴 임무를 부여받은 이들은 새로운 뉴스 편집 방향을 제시한다. 특히 사건사고에 초점을 맞춘다는 편집 방향은 이전 팀이 시행해오던 관행과 상반된다.

수뇌부와 영향력이 큰 부서가 뉴스를 선택할 때 이제는 소수가 된 예전 라인 지지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때로는 격렬하게 반대한다. 1990년대에 여러 차례 사회부장을 지내고 노동총동맹(CGT)에서 활동하는 마르셀 트리야는 ‘그야말로 전쟁’이라면서 “그들은 우리에게 ‘너희는 한물 간 좌파’다, 너희는 아무것도 모른다, 현대 저널리즘은 그런 식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예전을 회상한다. 충돌은 주로 사건사고뉴스와 경쟁 방송사에 부여하는 비중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1994년 일반뉴스부 기자로 입사해 2001년 차장으로 승진, 현재 TV뉴스 편집부장으로 일하는 한 관계자는 “편집국에는 이론적인 마르크스 혁명을 언급하는 후기 마르크스주의 좌파가 정말로 있다”면서 “그들은 ‘매니지먼트’, ‘수익’, ‘시청률’, ‘시장점유율’, ‘시장침투’ 등의 표현을 받아들이지 않고, 당연히 사건사고는 지저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한다. 몇 년 사이에 양쪽 중 한쪽이 더 우세해졌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다. <M6>에서 근무한 로랑 들라우스가 2007년부터 주말 뉴스를 진행하고, <블룸버그 TV> <BFM TV> <i-Téle> 등에서 근무한 플로리앙 뷔지에는 2011년부터 바캉스 기간 TV 뉴스 앵커로 일하고 있다. <BFM 비즈니스>에서 일한 프랑수아 랑글레는 2012년 6월부터 <프랑스 서비스>를 지휘하고 있다. 트리야는 “이제 정말 다른 텔레비전이 승리하고 있다”고 탄식한다. 

-제롬 베르토
 

글•제롬 베르토 Jérôm BerthautCIMEOS 회원, 이민과 사회 연구(URMIS/ Paris Diderot) 연구원, 저서로 <8시 뉴스의 교외지역: 저널 상투어 생산의 민족학> <사물의 질서>(근간)

번역•김계영 canari62@ilemonde.com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화사>(2006), <키는 권력이다>(2008) 등이 있다.

(1) 다른 언급이 없는 한 이 기사에서 언급한 인용문과 자료는 파리 디드로대학에서 학위 심사를 거친 사회학 박사학위 논문의 현장조사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프랑스2> 관찰은 2003~2007년에 걸쳐 실시된 것이고, 인터뷰는 2003~2009년 진행되었다. 
(2) 로랑 보넬리, <프랑스는 두렵다: ‘불안’의 사회사>, La Découverte, 파리, 2010.  
(3) IHESI는 2004년 프랑스국립안보고등연구소(INHES)로, 2010년 프랑스국립안보사법고등연구소(INHESJ)로 이름을 바꿨다. 피에르 랭베르, ‘관용 제로의 침략 전문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1년 2월호. 
(4) 줄리 스델, <미디어와 외곽지역>, INA- Le Bord de l’eau, 파리-로르몽,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