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내 안에 있다
카트린 뒤푸르의 미간행 소설
나의 진실(발췌본)
[올리브 토마스 인터뷰, 2036년 1월 24일]
중학교 졸업장을 준비하면서 나는 매년 학생들에게 똑같은 과제를 내요. ‘증강 현실 기술을 이용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애플)을 제작해오라’는 과제죠. 칩 가방에 넣어 오라고 해요. 아이들 피부에 칩을 이식하는 건 절대 동의하지 않지만 뭐 어쩔 수 있나요?
자신의 피부에, 자신의 프로그램을 넣어, 자신의 시야를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아이들은 과제를 더 공들여 준비하죠. 이것이 내가 학생들을 고무시키는 방법이에요. 처음에는 학생 대부분이 실용적인 애플을 제출해요. 스케이트 트랙을 스캔하는 것도 있었는데, 비탈길 경사와 도로의 울퉁불퉁한 포장상태를 분석해주고 활주로를 초록이나 오렌지색, 빨간색으로 표시해주는 기능이 담겨 있었죠. 어쨌든 난 학생들에게 어떤 건 제출할 수 없는지 환경이나 기술, 스포츠 말고 조형예술을 활용한 과제를 내라고 설명하죠.
그러면 학생들은 수직면으로 태그를 코드화하거나 수평면으로 호스를 코드화하는 등 벽을 색칠로 범벅하고 땅 위를 물로 채우는 식의 애플을 만들어요. 아니면 길거리에서 우리 앞에 전속력으로 말 떼가 뛰어다니는 애플도 있어요. 주로 야생동물이 칭찬받는 편이죠. 머리 위에 V자 모양으로 날아가는 오리 떼를 띄우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는 학생도 있고, 구름 속을 굴러다니는 수많은 눈동자 애플도 있어요.
물론 나는 너무 엽기적인 영상은 자제시켜요. 루 텔레강은 유령을 선택했어요. 나는 주제 선택은 학생들에게 완전한 자유를 보장해준다는 걸 강조하고 싶군요. 주제를 벗어날 경우에만 개입할 뿐 온전히 학생들의 몫으로 내버려둬요. 루가 동네 사망자 명부 서버에 접속하기로 결정한 거예요. 난 반대하지 않았어요. 그게 다예요. 그런데 그 서버에 그렇게 자유롭게 접속하는 것이 정상인가요.
[젠코드 SA를 상대로 낸 텔레강 소송
사건: 2036년 3월 11일 텔레강 부부 자동차에서 한 대화 녹음본- 변호인단에서 배심원에 제출한 발췌문]
- 엄마?
(잘 안 들림)
-엄마, 저거 봐요.
-뭐 말이니? 엄마 손?
-경찰이 시체를 찾아낸 장소의 좌표와 GPS가 일치하자마자 진짜 작동해요.
-루, 네가 본 건 엄마가 운전하는 것인지도 몰라.
-유령이 작동해요. 새처럼 날아다니는 거 봐요.(의성어)
(신호음)
-엄마, 저기 오른쪽 좀 보세요.
-오른쪽에 뭐? 엄마 무섭게 하지 마. 그 소리 좀 제발 꺼줄래.
-바로 저기예요. 여자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나와요. 2026년 1월 30일. 이름은 바바라 라 마르래요. 세제랑 이름이 같네. 29살이었대. 엄마, 사고였을까요, 살인이었을까요?
-기계를 완전히 믿을 순 없잖니. 엄마는 수동으로 운전하는 게 훨씬 좋아. 근데 너 방금 뭐라고 했니?
-제 애플이 망할 3D 시체를 보여줬어요.(의성어)
-루.
-엄마도 보실래요?
-루, 엄마 차에 애플 다운로드하지 마라. 이 차에 네 학교 바이러스를 옮기고 싶지 않구나.
-근데 엄마, 뭐 물어봐도 돼요?
-저 사람은 도로 한가운데서 뭐하고 있는 거지?
-우리 집 모퉁이, 저기 보여요? 저기 세탁소 있는 데요. (잘 안 들림)
-저를 비추니까 애플에 천사가 떠요. 엄마 그거 알아요?
-얘야, 우리 대화가 좀 끔찍한 것 같구나.
-걔 이름은 루이 텔레강이고 9살이래요. 2020년에 죽었는데 저랑 얼굴이 똑같아요.
(잘 안 들림)
-엄마?
-미안하다, 얘야. 그건 네 형이야.
[젠코드 SA를 상대로 낸 텔레강 소송사건: 텔레강 부인인 비르지니 라프의 증언 발췌]
제가 흥분상태에서는 추워 보일 수 있다는 거 알아요.(잘 안 들림) 흥분할수록 자제하려고 하는데,(잘 안 들림) 전 오래전부터 기다려왔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루가 내게 말하길 기다렸어요. 제가 먼저 그 얘기를 꺼낼 용기가 없었어요.
그 후에 루와 난 얘기를 아주 많이 했어요. 나와 아이 아빠, 아이 이모와 함께 말이에요.(재판장 발언) 네, 마리 M. 맹테르, 맞아요. 우리는 루에게 그 애 형에게 일어났던 끔찍한 사건에 대해 얘기해줬어요.
그래요, 우린 2차 유전자 치료비 낼 방법이 없었고, 그래서 난자를 복제해 둘째를 낳았다고 루에게 설명했어요. 두글라와 난 그렇게 말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어요. “네 형은 정말 천재였단다. 우리는 다시 한 번 그 아이를 키우고 싶었어”라고 말할 순 없잖아요. 우리는 루가 자신을 치료용 맞춤아기로 느끼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어요. 우리 세 식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젠코드 SA를 상대로 낸 텔레강 소송사건: 변호인 진술 발췌문]
나와 의뢰인은 텔레강 부부의 유전 물질에 행한 유전자 시술이 기술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싶습니다.
탈모와 비만, 원시(遠視)뿐만 아니라 세 가지 호흡기 질환, 제1형 당뇨 소인, 척추변형이 태아세포에서 말끔히 제거되었습니다. 또한 신경학적으로는 중독과 다발성경화증 소인 등 8가지 불균형 가능성을 제거했고요. 덕분에 루이 텔레강은 유전자 구성체에 이 모든 질병이 제거된 채 태어났습니다. 이건 내 의견이 아니라 과학적인 사실입니다.
따라서 나와 의뢰인은 텔레강 부부의 아픔에 깊은 연민을 느끼지만 루이 텔레강의 죽음이 텔레강 부부가 선택하고 젠코드사가 시행한 유전자 치료에 원인이 없음을 주장하는 바입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의 원인이 가족이나 루이 텔레강의 학교와 연관 있다 하더라도 그건 우리 변호인 측에서 판단할 사항은 아닙니다.
나의 진실(발췌본)
[올리브 토마스 인터뷰]
좀 당황스럽다고요? 내가 말했잖아요, 동료들도 증언했고요. 어쨌든 많이 놀라고 좀 슬프기도 해요. 그 애 부모 때문이건 유전학자 때문이건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좋은 학생이었어요. 루가 만든 애플은 예술작품으로선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루는 어려운 예술작품만 코드화했어요. 죽은 여자의 모습으로는 카를로스 슈바베의 그림에 등장하는 불꽃을 들고 무덤 위에 웅크리고 있는 녹색 옷을 입은 천사와 요한 하인리히 퓌슬리의 <악몽>의 잠자는 여인, 수의를 입고 있는 가브리엘 폰 막스의 <하얀 여인>이 등장했어요. 주로 상징주의 작가들이죠. 남자는 좀 으스스해 보이는 <메두사호의 뗏목>에 등장하는 시체 모습이었어요. 아기들은 라파엘이 스케치한 어린 천사의 모습이었고, 자기 또래 아이는 귀스타브 도레 작품의 ‘천사’로 표현했어요. 모든 신곡이 그 안에 담겨 있었어요.
나는 원래 모든 학생의 애플을 시험하기 때문에 루의 과제도 시험해봤어요. 그걸 가지고 10분 동안 주위를 걸어다녀봤죠. GPS와 사회면 기사에 나온 장소가 일치하자마자 내 옆에 투명한 유령이 나타났어요. 바로 성과 이름, 나이, 죽은 날짜처럼 다소 자세한 고인의 약력도 함께 떴어요. 또 어린이 합창단이 부른 에디트 드 시지의 ‘밤의 조곡’이 배경음악으로 은은하게 흘러나왔어요. 청소년들은 주로 음악을 크게 듣는 데 말이죠.
유령들이 솟아오르며 나타났다가 사라졌어요. 점점 흐려지면서 멀어지는 기술이 정교했어요. 실제 같으면서 아름다웠어요. 한 번 더 놀랐죠. 그렇게 10분을 걸어 다니는 동안 자쿠지 속에서 거품이 올라오는 것처럼 제 주변에 유령들이 올라왔어요. 얼마나 많은 곳에서 사람들이 죽었는지 그제서야 깨달았어요. 사방에 깔려 있더라고요. 우리가 매일 얼마나 많은 유골 위를 걸어 다니고 있는지 그때 알았죠. 루의 애플은 완성도가 높았어요. 독창적인 세계였죠. 다만, 두 이미지가 합성되는 모핑 기술은 끔찍했어요. 사망자 명부에 사진이 포함되어 있으면 유령 얼굴에 고인 얼굴이 합성되는데, 젠장 옛날 빵집 주인이 나를 보고 웃고 있는 것을 봐버렸어요.
Enemy Isinme: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2036년 4월 17일자]
텔레강 부부가 고소를 신청한 8건 중 3건이 각하 처분을 받았다. “유전자 치료비 환불 및 첫 번째와 두 번째 루이 텔레강이 사망했을 때까지의 교육비를 배상하라는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나의 진실(발췌본)
[올리브 토마스 인터뷰]
아니요. 난 그 아이가 애플에 붙인 ‘Enemy Isinme’라는 이름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어쨌든 애들은 자기들이 이해도 못하는 영어 이름을 붙이는 걸 좋아하잖아요. 내가 아는 건 그게 터무니없이 잘못된 말은 아니란 거예요. ‘Enemy’가 잘못됐나요? 안 그런 것 같은데. ‘Isinme’도 그렇고.
Enemy Isinme: 슬픔과 연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2036년 5월 2일자]
협상 끝에 텔레강 부부는 항소를 포기하는 대신 ‘동일한 유전 암호를 이용해 세 번째 임신을 하기로’ 합의했다.
어제 저녁 젠코드사는 르두아랭 중학교 교사 토마스씨를 고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나의 진실(발췌본)
[올리브 토마스 인터뷰]
악몽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요. 난 깜깜한 밤길을 혼자서 걷고 있어요. 천사로 가득한 칩이 피부에 박힌 그 애가 보여요. 그 13살짜리 유령 아이는 수많은 유령과 함께 걷고 있어요. 상상이 되나요. 가구 밑에서 당신 자신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집에 못 들어간다고 상상해보세요. 유령이 날개를 활짝 펴고 웃고 있어요. 옆에 트램 바퀴는 뭐죠?
글·카트린 뒤푸르 Catherine Dufour
판타지 및 공상과학소설 작가로 상상력 부문 그랑프리를 두 번 수상했다. 최근 작으로는 <모독과 반역>(2009) 등이 있다.
번역•배영미 petite0222@hotmail.com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