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다양성이 세계 민주주의를 가져온다
2013년 9월 17~19일, 파리의 팔레 블롱냐르에서는 세계포럼 ‘컨버전스: 공정하고 지속적인 세계를 향하여’가 개최된다. 현재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주도적 대응 방식 중 하나로 자리 잡은 마이크로파이낸스(Microfinance)에 대해 검토해볼 좋은 기회다.
참여민주주의부터 자원 경영과 폐기물 처리, 공정 거래, 프리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각종 사회 포럼은 매번 그들이 원하는 흐름의 변화를 잘 담아내야 한다. 특히 이런 분야에서는 우위의 논리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포럼 참가자가 스스로 선택한 언어로 소통할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 2001년, 2002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열린 제1회, 제2회 세계사회포럼(WSF) 본회의 때 스페인어·포르투갈어·프랑스어·영어의 동시통역이 제공되었고, 이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리는 제1회 유럽사회포럼(ESF)에서도 다양한 언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마음을 모았다. 이렇게 국제적 통·번역 네트워크 ‘바벨’이 탄생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지난 10여 년간 개최된 대다수 포럼에서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바벨 네트워크는 주로 사용되는 매개 언어 외에 포럼 개최 지역의 언어 통역을 함께 제공한다. 예를 들어 2004년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는 힌디어와 마라트어, 2004년 에콰도르 키토 아메리카사회포럼에선 케추아어, 2005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지중해사회포럼에 카탈루냐어, 2006년 그리스 아테네 유럽사회포럼에 그리스어, 2008년 스웨덴 말뫼 유럽사회포럼에 스웨덴어를 제공했다. 그리고 2004년 영국 런던 유럽사회포럼에선 영국 수화(BSL)를, 2005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리 세계사회포럼에선 브라질 수화(Libras)를 제공했다. 올해 튀니스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도 아랍어 서비스가 제공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참가 인원이 적은 지역권에도 포럼이 확대되도록 각종 언어와 지방어의 통·번역 서비스를 준비했다. 뭄바이에서는 인도 지방어(텔루구어·벵갈어·말라얄람어)와 아시아어(한국어·인도네시아어·일본어·태국어)를, 런던과 바르셀로나, 아테네에서는 지중해 지역 언어들과 동유럽·중앙유럽어를 제공했다. 이런 언어의 다양성 이외에도 포럼 중에 사용되는 특정한 용어, 개념, 담화 때문에 통번역사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그래서 스페인 그라나다 통번역대학원 설립 기구인 Ecos 소속 지원자들은 모의상황 연습을 고안해냈다. 언어별·난이도별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경험이 적은 통역사는 이전 포럼의 녹화 영상으로 동시통역을 연습하게 된다.
또한 주요 토론 주제의 핵심 용어를 모아 다양한 언어의 용어집을 만드는 ‘렉시콘(Lexicon) 프로젝트’ 덕분에 번역 문제가 이제는 문화적 풍요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되고 있다. 렉시콘 프로젝트 책임자 스테파니 마르세이유는 “통·번역 봉사자들은 대안세계화 운동 속에서 소통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필터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1) 상업주의화나 대안세계화 등의 개념에서 다양한 언어로의 번역이 이제는 완전히 정착되었지만, 초기에는 많은 문제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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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단체 및 개인 참가자 모두가 그들의 활동이나 이념적 위치, 재정 자원 등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소통할 권리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자원 상호부조 체계가 필요하다. 가장 이상적인 방안은 참가 단체가 역량에 따라 자금을 모아 모든 비용(동시통역 부스 설치비, 통역봉사자 체제비, 순서지 인쇄비 등)을 포괄할 수 있는 공동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여기에 공공·민간 지원이 더해지게 된다.
바벨 네트워크는 통역 예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예비행사 및 번외행사의 통역비용은 통역사의 교통 및 숙박 비용 지불로 대신하기도 한다. 한편 이런 방책은 해당 국가의 전문 통역사에 비해 봉사자의 태만을 불러올 수 있다. 또한 바벨 네트워크 소속 여부에 상관없이, 전문 통역사 처지에서는 연간 수백만 유로의 예산을 준비하는 일부 포럼 주최 측이 자원봉사자 채용을 좋게 볼 수 없음은 사실이다.
기금 마련을 위한 또 다른 방안은 포럼 참가 단체로부터 등록비를 받되, 통역이 필요한 언어 수에 따라 추가 금액을 징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자원봉사 시스템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 평등 참여의 원칙에서 어긋나게 된다.
언어적 다양성이 외형적 민주주의가 아닌 진정한 민주주의를 통해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본회의와 예비회의를 모두 아울러 개최되는 포럼 자체가 다양한 언어 및 문화 집단을 결집시키는 의무를 져야 한다. 그런 노력 없이 단순히 숫자와 복잡한 내부 체계에만 집중한다면 이는 오히려 포럼의 정체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며, 포럼 내에서도 지배적인 주요 언어만이 계속해서 우세해갈 것이다.
언어의 다양화를 위한 노력이 때때로 부딪히게 되는 또 다른 어려움은 포럼 주최 측의 지원 부족이다. 주최자들은 진짜 중요한 것을 아직도 놓치고 있다. 아테네에서 열린 유럽사회포럼에서 동유럽·중앙유럽어 봉사자 동원을 담당한 바벨 네트워크의 바보라 몰나로바는 “2005년 프라하에서 열린 예비회의에서 체코 담당자가 동유럽의 에스페란토(공용어·보조어)는 그리스어나 체코어가 아닌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라고 주장했다”고 했다.
주최 측은 결국 사전계획과 실질적인 필요 간 괴리 때문에 봉사자들과 긴장감을 형성하게 되더라도 많은 돈을 들여 전문 통역사를 채용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마지막 순간까지 통역실 배정표 수정을 거듭하는 수밖에 없다. 아테네 포럼 시 소수 언어 통역사들은 주최 측이 판단하기에 좀더 ‘쓸모 있는’ 언어들을 위해 부스에서 쫓겨나야 했다며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올해 튀니스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도 주요 매개어(아랍어·프랑스어·스페인어·영어) 외에는 통역 지원을 찾아볼 수 없었고, 특히 북아프리카에서 널리 사용되는 베르베르어에 대한 지원도 없었다. 이렇듯 정치적 정책과 실제 지원 정책 간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상황이다. 이 틈을 다시 줄여나가는 핵심 역할이 바로 통·번역사와 다언어화 주체들의 손에 달려 있다.
글·줄리 보에리 Julie Boéri
바벨 네트워크 회원.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Réflexion sur les langues dans le mouvement altermondialiste: séminaire FSE 2003’, 2003년 11월 30일, www.babels.org
(2) ‘Babels Report on Prague EPA’, 2005년 9월 11일, www.babel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