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역시 ‘시장자유주의자’
미완의 ‘진보적 자유주의’ 유시민, 손학규, 안철수…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나라 정당의 후진성을 비판하면서 이념정당, 정책정당의 필요성을 말해온 최장집 명예교수가 안철수 의원과 함께 ‘정책네트워크 내일’(이하 ‘내일’)을 지난 6월 창립했다. ‘내일’ 이사장으로 취임한 최장집 교수는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신당을 만들겠다고 하여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우리 정치에서 진보적 자유주의는 새롭지 않다. 이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13년 전에 진보적 자유주의를 논하는 책을 냈다. 당시 그는 한나라당 소속이고 책 내용은 신자유주의에 경도되어 있었다. 이 점은 손학규도 요즘 자인한다. 유시민 전 의원 역시 노무현 정부에 참여하면서 자신을 진보적 자유주의자라 칭했다. 그는 한-미 FTA를 찬성하는 등 시장주의(신자유주의)에 심하게 경도되어 있었다. 유시민 역시 그 점을 요즘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하기는 문재인 의원을 비롯한 이른바 ‘친노’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정부를 도운 진보적 지식인의 다수가 진보적 자유주의로 표방했다.
그런데 과연 자유주의가 진보적일 수 있을까? 최장집·최태욱·이근식 교수 등은 자유주의의 진보성을 말하면서 자신의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와 다르다고 말한다. 실제 이들은 시장만능주의를 종종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러면서 진보적 자유주의의 사례로 미국의 리버럴 민주당을 든다.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네덜란드 등의 온건우파 정당인 기독교민주당들과 그들의 이념인 ‘질서자유주의’(Ordo-liberalism)를 진보적 자유주의의 원형으로 제시한다.
자유주의가 진보적이란 주장의 허구
진보적 자유주의는 19세기 말~20세기 초반에야 뚜렷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국가가 아닌 ‘시장’을 개인의 자유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지적했다. 그 이전의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국가(정부)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본 것과 사뭇 다르다. ‘새 자유주의’(New Liberalism)로 불린 당시 사회적 자유주의는 J.S. 밀에서 시작해 20세기 초엽의 T.H. 그린, L.T. 홉하우스, J. 홉슨으로 대표되는 경제·사회 사상이다. 새 자유주의는 1930년대 대공황 와중에 탄생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국가 개입 경제사상, 그리고 윌리엄 헨리 베버리지의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국가론으로 이어졌다.
케인스와 베버리지 모두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가 주창한 ‘자유시장’과 ‘보이지 않는 손’을 거부했다. 두 사람 모두 개인의 자유(자유주의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수호하려면 국가가 적극적으로 시장경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보았다. 같은 시기 나치의 탄압을 피해 스위스에 망명해 있던 독일의 발터 오이켄과 빌헬름 뢰프케 같은 질서자유주의들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이들은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한 마르크스와 달리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인정하면서도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려면 정치적 자유주의와 함께 정부의 소득 재분배 정책과 공정한 시장질서 구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적 자유주의는 영국 자유당과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의 기독교민주당의 노선으로 정착되었다. 그런데 20세기 초·중반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공산주의가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전 세계에서 사상 최대로 확장하던 때다. 전후에도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공산당이 집권에 도전할 정도로 성장했고, 스웨덴과 덴마크 등 북유럽에서는 사회민주당 주도하에 공산당 등 좌파정당 연립정권이 이 기간에 장기집권했다. 영국에서도 전통 사회주의와 국유화를 강령으로 내건 노동당이 자유당을 제치고 보수당의 최대 정적으로 부상하여 보수당과 교대로 집권했다. 사회적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정당(특히 기독교민주당 또는 가톨릭민주당)이 오랜 기간 집권한 곳은 유럽에서도 특히 중부 유럽, 즉 독일과 스위스, 네덜란드 등에 국한됐다.
‘사회적’ 자유주의의 발흥
소련 공산주의와 더불어 유럽 전역에서 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발흥하는 이 시기에 사회적 자유주의자들은 방점을 ‘자유주의’가 아닌 ‘사회적’이라는 형용사에 두었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옹호하되, ‘자유시장경제’(Free Market Economy)가 아니라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라고 그들은 말했다. 이들은 사회복지 및 노동권의 획기적 확대를 촉구하는 사회민주당 및 공산당의 도전에 맞서면서, 마지못해 타협하는 형태로 복지국가와 경제민주주의(산업민주주의)를 신장시켰다. 영국 보수당과 독일의 기독교민주당, 그리고 스웨덴의 온건보수당 등은 사회민주당 및 공산당 등 진보 정당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전후 복지국가 구축 과정에서 한 축을 담당했다.
한편 1980년대 마가렛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의 등장은 ‘복지국가를 향한 전후 합의’ 체제를 무너뜨렸다. 스미스와 리카도의 고전적 자유주의를 계승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가 영미에 이어 유럽에서도 승승장구하게 된 것이다.
유럽 대륙에서 신자유주의로 전환을 주도한 것은 기독교민주당과 온건보수 정당이었다. 물론 이들은 20세기 초·중반에 기획된 ‘사회적 자유주의’를 강령과 언어에서는 계속 유지했다. 그렇지만 사회복지와 노동, 금융과 자본시장, 기업지배구조 등의 실질적 사안에서 이 정당들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적극 수용했다. 신자유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 간의 차이가 애매모호해졌다.
제3의 길 어디에서 왔나?
영국과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대처의 보수당과 레이건·부시의 공화당이 내건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에 대응해 영국 자유당과 미국 민주당 역시 기존 입장을 버렸다. 1990년대 이래 영국 자유당과 미국 민주당, 그리고 독일의 기독교민주당 등은 케인스의 국가 개입 경제학과 베버리지의 복지국가론을 내다 버렸다. 하물며 영국 노동당과 독일의 사회민주당조차 ‘제3의 길’이라는 미명하에 신자유주의의 요소를 상당히 수용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각각 영국과 독일에서 공부한 손학규와 유시민은 이런 버전의 사회적 자유주의, 즉 신자유주의에 크게 경도된 사회적 자유주의를 받아들였다. 신자유주의와 거의 구별되지 않는 20세기 후반 버전의 사회적 자유주의가 ‘진보’의 이름을 내걸고 1990년대 중·후반 한국 땅에 상륙했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음양으로 참여한 진보적 지식인들이 그랬다. ‘내일’에 이사장 및 소장으로 참여한 최장집·장하성 교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박정희식 개발독재, 즉 국가 주도 경제보다는 시장 주도 경제가 민주주의에 더 부합한다고 보았다. ‘시장경제에 대한 정부 개입은 관치이고 박정희 체제의 유산’이라는 생각이 지배했다. 개발 독재의 유산을 해체하려면 더 많은 ‘시장 논리’, 더 강한 ‘시장 규율’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 그 정부에 참여한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 학자와 정치인의 시각이었다. 그들은 1998년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상황에서 IMF와 미국 재무부가 요구하는 바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한국 자본주의를 ‘시장 주도’, 즉 ‘시장 자유화’의 물결에 밀어넣었다. 그리고 그런 학자와 신문, 정치인들은 그런 자유주의화·시장화를 ‘개혁적 시장주의’(개혁적 자유주의) 또는 ‘진보적 시장주의’(진보적 자유주의)로 불렀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여전히 자유주의의 진보성을 믿는 이들은 2013년 현재의 한국 경제에서 나타나는 비정규직 확대와 정리해고 확대, 명예퇴직과 골목 상권의 눈물 같은 모든 문제가 ‘재벌과 모피아’로 상징되는 한국 자본주의의 천민성과 비정상성, 즉 박정희식 중상주의가 지속되는 데서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신자유주의보다는 중상주의(재벌그룹 및 모피아·경제관료의 경제 지배)가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재벌과 모피아, 한국 자본주의 천민성
따라서 이들은 중상주의를 제거한다는 맥락에서, 구자유주의(고전적 자유주의)가 이 땅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진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 즉 2013년의 한국 땅에서 주창되는 진보적 자유주의는 18세기 서구의 고전적 자유주의와 구별되지 않는다. 요약하면, 1990년대 초반부터 2008년 가을의 미국발 금융위기 이전까지 논의되고 실천돼온 진보적(사회적)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 구자유주의와 별로 구별되지 않았다.
물론 5년 전 발생한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는 세계적으로 후퇴한다. 미국 민주당과 유럽의 기독교민주당 등 사회적 자유주의 정당 역시 그간의 신자유주의 행보를 반성하면서 다시금 ‘사회적’이라는 형용사에 방점을 찍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손학규와 유시민, 그리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이들이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의 과거 행태를 반성했다.
그렇지만 경기부양 및 복지 확대를 둘러싼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갈지 자’(之) 행보, 그리고 유럽의 경제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독일 기독교민주당의 복지 축소, 재정긴축 기조를 볼 때, 오늘날 세계의 사회적 자유주의가 신자유주의의 사고 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우리라고 다를까? 최장집 교수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개념을 수용했으며, 이 점에서 그가 말하는 진보적 자유주의는 20세기 후반 버전이 아니라 20세기 초·중반 버전의 사회적 자유주의로 보인다. 그런데 그가 불과 석 달 만에 ‘내일’에서 물러났다. 안철수 의원과 그 주변 인사들은 20세기 초·중반 버전의 ‘낡은’ 사회적 자유주의가 아니라, 20세기 후반 버전의 ‘최신의’ 진보적 자유주의에 머물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구자유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와 별로 구별되지 않는 애매모호한 진보적 자유주의 말이다.
20세기 초·중반의 세계사적 경험은 ‘사회적 자유주의’가 방점을 ‘사회적’이라는 형용사에 찍으려 한다면,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주의처럼 ‘사회’를 소중히 여기는 정치가 크게 발흥하여 자유주의를 압박해야 함을 보여준다. 이 땅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인데, 우리 정치가 그렇게 변하지 않는 한 안철수 그룹의 ‘애매모호함의 정치’는 계속될 것이다. 민주당 역시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독일 모델 학습을 끝내고 곧 귀국하면서 독일 기독교민주당의 ‘사회적 시장경제론’(질서자유주의)을 이 땅에 적용할 손학규의 새 정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글·정승일
서울대 물리학과를 다녔으며, 1980년대 내내 철학과 정치경제학, 민주화운동에 몰두했다. 1991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베를린 훔볼트대학 사회과학부에서 석사학위를,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정치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베를린사회과학연구소와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금융경제연구소,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등에 근무했으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 및 운영위원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Crisis and Restructuring in East Asia> <쾌도난마 한국경제>(공저) <역동적 복지국가의 길>(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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