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상상력을 발휘하라!

2013-09-13     함광복


그 날, 국제연합(UN)군 사령부를 대표한 윌리엄 해리슨 중장과 북한을 대표한 남일 조선인민군 대장은 정전협정서의 서명이 끝나자 각각 일어서서 아무런 말도 없었을 뿐 아니라 악수도 하지 않고 헤어졌다. 1953년 7월 27일, 비무장지대(DMZ)는 그렇게 증오와 불신 덩어리, 사생아처럼 태어났다.

그 사생아가 회갑을 맞았다. 살아온 세월보다 살아갈 세월이 훨씬 짧은 중늙은이다. 노년이 대개 그렇듯 DMZ도 젊은 시절 살아 팔팔 뛰던 기개나 용기는 소진돼가고 있는 게 틀림없다. 노욕만 가득한 채 머지않아 사라지고 말 한시적 존재, 환갑의 늙은 DMZ에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DMZ 60주년에 때맞춰 “중무장지대가 된 비무장지대, 그곳에 평화공원을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다. 뜻밖이지만, 회갑 DMZ에게는 시의적절한 제안이었다. 어느 곳에 조성할지는 아직 추측 수준이다. 그럼에도 어떤 곳에서는 예상 후보지라며 땅값이 들먹이고 있다. 좋은 뜻으로 말하면 국민적 관심이 발동한 것이다. 지난여름 DMZ만큼 한국인의 상상력을 사로잡고 있는 주제도 없었다. 

너무 모르는 DMZ의 불편한 진실

DMZ가 ‘회갑을 맞았다'는 것은, 그의 여정이 다시 60년 간지의 사이클에 진입했다는 뜻이다. 앞으로 다가올 DMZ의 ‘새 60년’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60년 내내 지금처럼 철책선이 견고한 철옹성 모습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버티고 서 있을까? 절대 그럴 리 없다. 어쩌면 머지않은 장래에 매우 희망적인 일이 일어나고야 말지 모른다. 결국 지난 60년 동안 못다 펴온 한국인의 온갖 상상력을 쏟아놓는 저장고 또는 그 꿈을 숙성시키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할지 모른다. 따라서 새 60년의 원년인 2013년은 DMZ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해다. 문화 인식의 터닝포인트다.

문제는 DMZ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꽤 괜찮아 보이는 중후한 중노인이 우리 상상력 밖에서 서성이고 있지만 우리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한국인의 생각 속에는 DMZ에 늘 ‘평화와 생명’의 새가 날아다니고 있다. 남북 분단의 반사적 이익으로 ‘손 하나 까닥 안 댄 자연’, 그리고 그 자연의 생명력으로 누리는 평화를 보상받았다는 것이다.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환상의 새를 쫓다가 정작 회갑 DMZ의 진면목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첫째, DMZ가 어디인지뿐 아니라 그 길이나 넓이도 잘 모른다. 한국인에게 DMZ는 지구의 북쪽 끝이다. 따라서 서해 북단 백령도에서 동해안까지 한국의 북쪽 끝이 DMZ인가. 또는 서해 한강 하구에서 동해안까지인가? 그러나 정전협정은 군사분계선 첫 표지판 0001호가 서 있는 임진강 하구에서 마지막 1292호가 서 있는 동해안 초구에 이르는 군사분계선 좌우 2km의 구역을 DMZ라고 명시한다.

공식적으로 DMZ의 넓이는 992㎢이다. 통상 155마일이라고 하는 DMZ의 길이에 폭 4km를 곱한 넓이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계산법이다. 155마일은 38선 길이도 아니고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국토의 허리 길이도 아니다. 더욱이 임진강 하구에서 동해안 초구까지 진짜 DMZ 길이는 더욱 아니다.

둘째, 그곳은 전쟁이 진행 중이란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우리가 가본 DMZ는 늘 그곳의 상태가 좋을 때다. 북한이 핵실험할 때나 연평도 포격사건 때는 말할 것 없고, 심한 눈보라나 세찬 폭우의 악천후일 때, 쾌청한 가을날이라도 해가 지면 그곳에 갈 수 없다. 그리고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갈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땅이다. 어느 여행하기 좋은 날 철책선 전망대의 커다란 통유리 창으로 잠깐 DMZ를 바라보고 돌아와 우리는 그곳이 평화스러웠다고 말하기 일쑤다.

그러나 그곳은 교묘한 전쟁이 수행되는 처절한 전장이다. ‘화공전’(火攻戰)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고대 전법이다. 그 오래된 전법이 DMZ에서는 현대 전법으로 쓰이고 있다. 남북한 군은 2월 중순∼5월이면 시계(視界)와 사계(射界)를 방해하는 초목을 태워 없애는 작전을 전개한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각각 2km씩 후퇴하자는 최초의 약속은 이미 수십 년 전 깨졌다. 그곳에서는 한 발짝씩 철책선을 밀어내는 땅따먹기 같은 전쟁도 일어나고 있다. 이러다가 남북한 철책선이 맞닿을지도 모른다. 한 신문은 ‘현재 DMZ 면적은 정전협정 때의 57%로 줄어들었다’고 추정했다. 지뢰의 전쟁, 땅굴의 전쟁에 이어 연평도 민가에 포탄이 진짜 떨어졌는데도 우린 그곳에서 전쟁이 끝났다고 믿고 있다. 

희생을 강요당하는 DMZ 동물들

셋째, 그곳의 높은 인구밀도는 믿을 수 없는 진실이다. 센서스 인구통계는 DMZ 일대 상주인구를 감쪽같이 속이고 있다. 군인은 늘 ‘숨겨진 인구’다. 강원도 화천군은 DMZ가 지나가는 접경 지역이다. 2012년 말 현재 인구현황은 총 8813가구, 2만4943명, 인구밀도 28.5명이다. 이는 주민등록상 인구현황이 그렇다. 그러나 센서스에 잡히지 않는 인구와 군인을 포함할 경우 한국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적은 화천군은 꽤 큰 도시가 된다.

넷째, 그곳에 ‘잘 보전된 자연이 있다’는 거짓말을 모르는 것은 실수 중의 실수다. DMZ 숲은 화공전법에 희생되고, 많은 상주인구 때문에 잘려나갔다. 이미 오래전에 학자들은 DMZ 일원의 임목축적량은 남한 평균의 48%밖에 안 되며, 훼손된 자연생태계는 복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가난한 숲’에 사는 동물들은 남북한 심리전인 ‘확성기 소리의 전쟁’, 밤마다 철책선 불을 밝히는 ‘불빛의 전쟁’의 피해자가 되었으며, 더러는 지뢰를 밟아 희생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언론매체의 기자들은 그곳이 마치 ‘동물의 왕국’이나 되는 것처럼 경쾌하게 달려가는 고라니 떼나 군인 막사 주변까지 다가온 멧돼지 일가를 잘도 찍어온다. 그러나 패션쇼할 야생동물은 없다. 오직 그들의 은밀한 서식처가 인간에게 노출됐을 뿐이다. 큰 숲이 사라진 DMZ는 동물도 인간의 눈을 피해 숨을 곳이 없는지 모른다.

주둔 군인들과 더불어 사는 법을 터득한 동물도 있다. 멧돼지 가족은 힘들게 칡뿌리를 캐지 않아도 취사장의 음식 찌꺼기를 구걸해 사는 법을 알고 있고, 향로봉산맥의 산양 떼는 천연기념물 217호란 체면을 버리고 군인들이 던져 주는 양배추 덩이로 겨울 폭설기를 넘기고 있다. 그러나 고정된 우리 인식을 전환한다면 가난한 DMZ도 풍부한 자산,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소중한 문화 자원으로 회생하게 될지 모른다. 우선 거기가 어딘지 모르고, 그곳이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터인지 모르던 DMZ는 살아 있는 전쟁박물관인 셈이다.

사민(徙民)의 사전적 의미는 ‘백성을 이주시켜 국토를 개척하는 정책적 이주’이다. 민통선에는 DMZ를 따라가며 사민정책으로 형성된 113개 민통선 마을이 있었다. 이 20세기판 사민들이 민통선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언어 습관과 사고, 풍속, 가족사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의 이질문화와 군사문화가 뒤범벅되고 동화돼 마침내 하나의 문화권을 빚어냈다. DMZ, 그곳은 한국의 제3지대다. 인류사회학 교실이자 한국판 멜팅포트(Melting Pot)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위해 남겨놓은 과거’ 같은 곳이다. 우리의 잃어버린 과거가 옛날 까마득한 역사에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그곳이 아니었더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서툰 솜씨로 발굴하다 훼손됐을 것이다. 그곳은 자칫 잃어버릴 뻔한 우리 과거가 있는 곳이다.

DMZ의 자연은 마치 인간이야 싸우든 말든 제 갈 길을 가는 것 같다. 그곳의 자연은 교과서대로 진행되지 않았으며, 지독한 냉전 간섭에도 쓰러지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그 간섭에 적응하거나 거부하며 전혀 뜻밖의 자연으로 자신의 모습을 변신하는 것 같다. 이제 DMZ은 전쟁과 인간과 자연이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스토리의 노천광산, 20세기가 지구에 남기고 간 ‘냉전 유적지’라고 불러야 한다.

DMZ의 재발견, 인류사의 시원

역사를 관통해온 DMZ의 특별한 기운도 매우 놀라운 발견이다. 한반도 통일을 말할 때마다 DMZ는 대통일을 꿈꾸는 그레이트 게임의 현장이었다. 우선 DMZ는 인류사의 시원이다. 이 기막힌 사실은 한 미군 병사가 DMZ를 관통해 흐르는 한탄강변에서 돌멩이 3개를 주워 들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1978년 1월, 주한 미군 병사 그레그 보웬은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한탄강변에서 인류 그 이전의 인류가 쓰던 도구, 아슐리안 주먹도끼를 발견한 것이다. 세계 고고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혁명적 사건이었다. 멀고 먼 세월을 건너 현대인에게 말을 건 그 주먹도끼는 오래전 화산 용암이 형성한 현무암 대지 위에 누워 있었다. 오래전 DMZ 건너 평강고원의 낮은 산, 해발 452m의 오리산에서 화산이 폭발하며 흘러나온 용암이 빚어놓은 대지였다. 인류를 배태한 용암대지 위에 역사의 굽이굽이를 기록한 놀라운 사건이 새겨 있었다.  통일 한반도를 꿈꾸던 첫 그레이트 게임은 고구려·백제를 통일한 신라와 이 통일 과정에 개입한 당과의 전쟁이었다. 서기 675년 9월, 신라는 경기도 연천군 매소산에서 나-당 최후의 일전에서 승리했다. 이민족의 지배를 벗어나 단일민족국가로서 명실상부한 한반도 통일의 기틀을 결정짓느냐 마느냐는 하는 절제절명의 그레이트 게임이었다.

두 번째 그레이트 게임이 궁예에 의해 한반도를 횡단하는 DMZ 일대에서 벌어졌다. 궁예는 그곳에서 고구려·백제·신라 대통일의 이상을 담은 대동방국 건설을 도모하고 있었다. 역사는 서기 894년 10월 명주(강릉)를 떠난 그가 철원에 나타나 왕이라고 소리칠 때까지 열 달간의 행적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발길을 뒤쫓으면 그는 한반도를 동에서 서로 횡단했다. 놀랍게도 그가 걸어간 그 길 위로 지금 정확하게 DMZ가 흘러간다. 과연 1천 년 후를 내다본 한판 승부였을까? 태봉국의 수도 궁예성은 지금 용철원 풍천원의 DMZ 속에서 북으로도 남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들어앉아 있다. 세 번째 그레이트 게임은 918년 6월 태조 왕건이 궁예를 무너뜨리고 그를 평강고원 북쪽으로 몰아낸 사건이다. 왕건이 궁예의 태봉국 수도 철원에서 고려를 건국해 마침내 한반도 통일을 이룩했다. 개성시 선죽동 자남산 동쪽 기슭의 작은 개울에 놓여 있는 돌다리, 이성계는 고려 태조가 놓았다는 그 선죽교에서 고려 충신 정몽주를 살해했다. 1392년 7월 왕건의 송도에서 고려 공양왕에게 왕위를 물려받는 형식으로 조선을 개국했다. 네 번째 그레이트 게임일 것이다.

1953년 7월 27일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널문리, 판문점은 그날 지구를 동서 두 진영으로 갈라놓는 중심축이 됐다. 좋든 싫든 우리는 한반도 다섯 번째 그레이트 게임의 중심에 서 있다. 그리고 ‘새 60년’, DMZ가 다시 회갑잔치를 치르기 전에 이 게임은 결판날 것이란 꿈을 꾸고 있다. DMZ는 종으로 인류의 시원에 이르기까지 깊은, 횡으로 지구촌을 아우르는 넓은, 풍부한 문화 콘텐츠의 부자다.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이를 ‘DMZ평화공원’이란 공간에 펼쳐놓을 풍부한 상상력을 겸비한 큐레이터다.
 


글·함광복
강원 홍천 출생. 1978년 민통선 토지분쟁 사건을 계기로 35년째 DMZ에 천착하고 있다. <DMZ는 국경이 아니다> <할아버지 연어를 따라오면 한국입니다>등 한글·영문·독일어로 쓴 저서가 있다. 현 (사)한국DMZ연구소장, 한국관광공사 명예 DMZ홍보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