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 자본주의 위선을 말하다

2013-10-12     슬라보예 지젝
   
 

한국에서 공산주의에 대해 논하는 것이 제정신이 아닌 듯 보일지 모른다. 분단된 한국이야말로, 냉전 이후 상황을 가장 극명하고 임상적으로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북한은 20세기 공산주의 프로젝트의 말로를 잘 보여주고 있는 반면, 남한은 폭발적인 자본주의 발전을 경험하며 번영과 기술적 현대화의 새 장을 열고 있으며, 삼성은 애플의 아성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남한이야말로 글로벌 위기에 대한 모든 논의가 얼마나 거짓인지 가장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2012년 <스펙테이터(The Spectator)> 성탄절호는 “2012년이 사상 최고의 해인 이유(Why 2012 was the best year ever)”라는 사설을 싣고, ‘점점 악화되어만 가는 위험하고도 잔인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사설의 첫 단락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실감 못하겠지만, 2012년이야말로 세계 역사상 최고의 해였다. 터무니없는 주장 같아도 증거가 이를 대변한다. 2012년만큼 기아와 질병이 적고 번영했던 해는 없었다. 서구는 경제적 난국에 봉착해 있지만,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진일보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빈곤에서 탈피하고 있다. 전쟁과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도 다행히 낮다. 우리는 황금기에 살고 있는 것이다.”
 
신이 만든 천국도 돈 없는 사람에겐 지옥

같은 맥락으로, 대중 매체에서 자주 언급되는 특히 비유럽 국가의 상황을 좀 더 현실적인 버전으로 옮기자면 이렇다. 위기는 무슨 위기인가? 브릭스 국가들(BRICs), 한국, 폴란드, 싱가포르, 페루, 심지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을 보라. 이 국가들 모두 진일보하고 있다. 서유럽, 그리고 미국 정도만이 패자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글로벌 위기가 아닌 진보의 역학관계가 서구로부터 이동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데이터(의 일부)를 의심하지 않더라도, 마르크스 이후로 진정한 좌파는 결코 진보주의자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좌파는 항상 ‘진보의 대가는 무엇인가’란 질문에 집착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그리고 자본주의가 촉발시키는 전례 없는 생산성에 매료되었다. 그는 이러한 성공 자체가 대립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오늘날 글로벌 자본주의의 진보에 대해 같은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 바로 반란을 조장하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하는 일이다. 브레히트는 <할리우드 비가(Hollywood Elegies)>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할리우드라는 마을은 천국에 관하여 갖는 구상에 따라 설계되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신이 천국과 지옥을 필요로 하다가 두 개의 시설을 설계할 필요가 없이 단지 하나, 즉 천국만을 세웠다고. 이 천국은 돈이 없는 사람, 성공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지옥이다.”(1)

같은 상황이 오늘날 지구촌에도 적용된다. 예로, 카타르나 두바이에서는 화려한 생활을 영위하는 부자들과 노예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공존하고 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사람들은 ‘상황이 아주 나쁠 때’가 아니라 자신들의 기대가 깨질 때 반항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혁명은 왕과 귀족층이 수십 년간 점차 권력을 상실한 후에 발발했고, 1956년 헝가리 반공봉기는 너지 임레(Nagy Imre)가 이미 2년간 총리를 역임한 이후 지식인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논의가 있은 후에 일어났다. 2011년 이집트 국민들이 저항한 이유는 무바라크 정권 하에 경제 발전이 있었고, 그 결과 보편적 디지털 문화에 참여하는 교육받은 청년층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공황 상태에 빠져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중국인들이 40년 전에 비해 평균적으로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신흥 부유층과 나머지 간의) 사회적 대립이 격화되었고, 여기에 기대치는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발전과 진보의 문제이다. 이 둘은 항상 불균형적이고, 새로운 불안정과 대립을 생성하며, 충족될 수 없는 기대를 낳는다. ‘아랍의 봄' 직전 튀니지와 이집트의 대다수 국민들은 수십 년 전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했을 테지만 자신들의 (불)만족을 평가하는 잣대는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그렇다. <스펙테이터(The Spectator)>가 기본적으로는 옳았을지는 몰라도, 사설에서 강조한 사실 때문에 반란과 저항이 일어나는 것이다. 반란과 저항의 가장 이상하고도 불길한 특징은 시스템의 취약한 부분에서만 주로 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적으로 인식되는 부분에서도 일어난다는 점이다. 지옥에서 문제가 있다면 납득할 만하다. 우리는 그리스나 스페인 국민들의 시위 이유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왜 문제는 천국으로 대변될 수 있는 부유한 국가나 터키, 브라질 같이 적어도 빠른 성장을 하는 국가들, 또는 (최근 소외된 이민자들의 폭력 시위가 발생한) 스웨덴과 같은 국가에서도 생기는 것일까? 우리는 ‘천국에서의 문제’의 시초는 이란 호메이니 혁명이었다는 점을 이제야 깨닫는다. 당시 이란은 친 서구적 현대화의 길에서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었고 그 지역에서 서구의 가장 공고한 동맹국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천국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관념이 아닌 존재론적 투쟁의 필요성

마르크스가 초기 저서에서 독일의 상황을 묘사하기를, 보편적 해결책(급진적 글로벌 혁명)만이 특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는 개혁기와 혁명기의 차이에 관한 가장 간결한 공식이 존재한다. 개혁기에 글로벌 혁명은 단지 꿈일 뿐이며, 이 꿈은 최상의 경우 지역적 변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을 지속시켜 준다(최악의 경우에는, 실질적인 변화를 실행하지 못하게 된다). 반면, 혁명적 상황은 전 세계적인 과격한 변화만이 특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이 자명할 때 일어난다. 이렇듯 오로지 형식적 차원에서 본다면, 1990년은 혁명적인 해였다. 공산국가의 부분적 개혁이 충분치 못하고(충분한 식량 배급 등의), 부분적 문제 해결조차도 급진적이고 세계적인 파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와 관련하여 우리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기본적인 딜레마는 다음과 같이 단순하고도 잔인하다. 지난 몇 년간 일어난 시위는 점차 그러나 가차 없이 도래하는 글로벌 위기의 조짐인가? 또는, 수습되지 않는다면 정확하고 구체적인 개입을 통해 막을 수 있는 단순한 걸림돌인가?

여기서 본질주의(Essentialism, 진리 담론을 욕망하는 서구 철학의 의지로부터 배태된 관념-역주)는 피해야 한다. 시위자들이 추구하는 그 어떤 ‘실제’ 목표, 즉 전반적인 불안의 감정이 완화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반대 시위들은 진정으로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글로벌 자본주의, 종교적 원리주의에 맞서는데도 말이다. 시위 참가자 대다수는 유동적인 불안과 불만의 감정이 특정 요구사항을 지탱하고 결집시킨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고대 이집트인들의 비밀은 이집트인 자신들에게도 비밀이었다”는 헤겔의 모토가 적용된다. 시위 해석을 위한 투쟁은 시위의 정확한 내용에 대한 기자나 이론가들의 단순한 ‘인식론적’ 투쟁일 뿐만 아니라, ‘존재론적’ 투쟁, 시위에 대한 존재 자체와 관련된 투쟁, 그리고 시위의 심장부에서도 계속되는 투쟁이기도 하다. 시위 내부에서도 시위가 과연 무엇에 관한 것인지에 대해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시위는 단순히 부패된 도시 행정에 대한 투쟁인가? 권위주의적 이슬람 정권에 대한 투쟁인가? 아니면 공적 장소의 사유화에 대한 투쟁인가? 결과는 모른다. 계속되는 정치적 프로세스의 결과가 그 답일 것이다.

시위의 공간적 차원에서도 같은 생각을 해볼 수 있다. 2011년 이미 시위가 유럽 및 중동 지역 전역에서 발발했을 때, 평론가들은 이러한 시위를 동일한 글로벌 시위운동의 일환으로 여기고 각 시위는 구체적 상황에 대한 응수라고 주장했다. 이집트 시위자들은 서구의 ‘오큐파이 운동(Occupy movement)’이 발생한 사회에서 이미 향유하고 있는 것, 즉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했고, 이집트 ‘아랍의 봄'은 근본적으로 이란의 녹색 혁명과는 달랐다(전자가 부패된 친 서구 권위주의 정권에 반기를 든 것이라면 후자는 권위주의적 이슬람교에 대한 저항이었다). 시위를 개별적으로 특정 짓는 것이 기존 세계 질서의 옹호자들에게 얼마나 득이 되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은 세계 질서에 드리우는 위협 같은 건 없으며, 단지 특정 지역의 문제만 존재할 뿐이라고 말한다.  자유민주적-실용적 이념은 문제를 하나씩 점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루안다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으니, 반제국주의 투쟁에 대해서는 잊고 학살 방지에 힘쓰자” 또는 “글로벌 자본주의 질서의 붕괴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당장 이곳의 빈곤과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식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존 카푸토(John Caputo)는 최근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만약 미국의 극좌파 정치인들이 전 국민 의료보험을 제공하고, 수정된 IRS(미 국세청) 코드로 더 공평하게 부를 효과적으로 분배하며, 선거자금 조달을 효과적으로 제재하고, 모든 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이주 노동자들을 인간적으로 대하며, 미국의 권력을 국제 사회 내에 통합시키는 다자적 외교 정책을 실행하는 등의 노력으로 제도를 개혁하고, 진중하고 상당히 영향력 있는 개혁을 통해 자본주의를 중재할 수 있다면, 나는 너무나 행복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실행한 후에도 바디우와 지젝이 자본이라 불리는 괴물이 여전히 우리를 집요하게 따라다닌다고 불평한다면, 나는 하품을 하며 그 괴물을 맞이하고 싶다.”

다양한 외침, 하나의  지향점

여기서 문제는 카푸토의 결론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자본주의 내에서 가능하다면 자본주의에 계속 남는 것이 문제될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문제는 현재 글로벌 자본주의의 좌표 내에서 이 모든 것의 성취가 ‘가능하다’는 근본적 전제에 있다. 카푸토가 열거한 자본주의의 일부 오작동이 만약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필연적인 것이라면? 만약 카푸토의 꿈이 증상이 없고, ‘억눌린 진실’이 표출될 수 있는 임계점이 부재한 보편성(보편적 자본주의 질서)의 꿈이라면? 이즈음에서, 마르크스의 오랜 ‘총체성’의 개념, 여기에서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총체성의 개념을 상기시켜 볼 필요가 있다. 글로벌 자본주의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양한 국가에 작용하는 복잡한 프로세스다. 각기 천차만별인 시위들의 공통점은 이들 모두가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다양한 측면에 맞서 각기 저항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글로벌 자본주의는 시장 지배가 확대되는 경향을 보이며, 여기에 공공장소의 점진적 폐쇄, 공공 서비스(의료, 교육, 문화)의 축소, 정치 세력의 권위주의적 기능 강화를 동반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리스 국민들은 기본적인 사회적 서비스조차 제공할 능력을 상실해가는 자신들의 부패하고 무능하며 연줄에 의해 움직이는 후견주의적 국가와 국제 금융 자본에 대항해 시위를 벌인다.

터키 국민들은 공공장소의 사유화 및 종교적 권위주의에 저항하고 있다. 이집트 시민들은 서구 세력의 지원을 업은 부패한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하고, 이란 국민들은 타락하고 비효율적인 종교 원리주의 등에 시위를 벌였다. 그 어떤 시위도 하나의 이슈로 국한시킬 수 없다는 점이 이러한 시위의 공통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들 모두 (부패와 비효율 문제에서 전면적인 반자본주의에 이르는) 근본적 경제 문제와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부터 표준화된 다당제 민주주의의 극복에 이르는) 정치적·이념적 문제라는 (적어도) 두 가지 문제가 구체적으로 결부된 이슈를 다루고 있다. 이 같은 양상은 월가점령운동인 ‘오큐파이 월 스트리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종종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주장들 속에서, 월가점령운동은 두 가지 기본 통찰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시스템으로서의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이다. 문제는 자본주의의 특정 부패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다당제 대의민주주의의 제도적 형태가 자본주의의 잉여 문제 등을 해결하기에 충분치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재편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물론, 시위의 근본적 원인이 글로벌 자본주의라고 해서 이를 타도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특정 문제를 실용적으로 해결하고 급진적 변화를 기다리는 대안은 잘못된 것이다. 이는 글로벌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모순이라는 점을 간과한다. 예를 들면, 시장의 자유와 미국의 자국 농민 지원, 그리고 민주주의 설파와 사우디 아라비아 지원이라는 모순이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모순으로 규칙을 어겨야 하고 따라서 정치적 개입의 여지가 생기게 된다. 모순은 필연적이고 글로벌 자본주의 시스템은 자체 규칙(자유 시장 경쟁, 민주주의)을 위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스템이 자신의 원칙들을 지킬 수 없는 전략적으로 선정된 지점에서 일관성, 즉 시스템 자체의 원칙들을 요구하는 것은 시스템의 전반적 변화를 초래한다. 다시 말해, 철저하게 현실적이지만 지배 이념의 근간을 흔들고 훨씬 급진적인 변화를 내포하는 특정 요구, 즉 절대적으로 합당하고 타당하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특정 요구사항을 고집하는 데에 정치의 기술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전 국민 의료보험 프로젝트가  좋은 예이다. 일반적이고 실질적인 제안이기는 하지만 누가 봐도 미국 이념의 근간을 건드렸다. 요즘 터키에서는 실제 다문화 수용에 대한 단순한 요구가 사태를 촉발시킬 수 있다. 그리스에서는 좀 더 효율적이고 부패되지 않은 정부 기구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진다면 국가의 전반적 정비를 시사하는 것이 된다. 

정상적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정치 운동은 그것이 추구하는 목표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러한 생각 자체가 상당한 변화(단순히 전략적 순응이 아닌 근본적 재정립)를 거치게 된다’. 그 이유는 그 생각 자체가 과정에 갇히고, 현실화에 의해 ‘중층결정(프로이트의 작업에서 나온 말로, 하나의 상징이 몇 개의 독립된 또는 관계된 원인들의 결과라면 그것은 중층결정된 것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역주)’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정치 경제학 비판 요강>의 유명한 서문에서 인간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 제기한다고 서술했다. 이러한 진술을 반대로 바꾸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만 제기한다고 주장하고 싶어 하고, 그 문제(목표)자체가 재정립되는 동안 예측할 수 없는 프로세스를 촉발시킨다. 예를 들어 정의의 요구에 자극 받아 반란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민중들이 일단 반란에 완전히 동참하고 나면, 이들은 곧 진정한 정의 구현을 위해서는 일부 법의 폐지 등을 위해 애초에 요구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더 많은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오늘날의 시위와 저항은 각기 다른 관점들이 조합(중복)되어 존재하고, 이런 조합이 동력이 된다. 이러한 시위와 저항은 다양하다.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정상적인’ 의회) 민주주의를 위해, 인종 차별과 성차별 특히 이민자와 난민에 가해지는 증오에 맞서고, 신자유주의에 대항하고 복지 국가를 위해, 정치와 경제의 부패(환경을 오염시키는 기업 등)에 반대하고, 다당제(참여 등)를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마지막으로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비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불씨를 지피기 위해 시위와 저항은 일어난다. 여기서 잘못된 급진주의(“실제로, 중요한 것은 진보적 의회 자본주의의 폐지이고 다른 투쟁은 이차적인 문제이다”는 주장)와 잘못된 점진주의(“이제 우리는 군사 독재에 맞서 단순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다. 당신의 사회주의적 꿈은 버려라. 그것은 아마도 후의 일이다”는 주장)의 두 덫은 피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상황은 적절히 중층결정되며, 여기서 창피한 일이지만 일차적, 이차적 모순(또는 대립) 간, 최후에 주가 되는 대립과 현재 우세한 대립 간의 마오쩌둥식 구별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일차적인 대립을 고집하는 것은 기회의 상실, 나아가 주요한 투쟁 자체에 타격을 의미하는 구체적인 상황들이 존재한다.             

중층결정의 전체적 복잡성을 고려하는 정치만이 정치적 ‘전략’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다. 구체적 투쟁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투쟁에 참여 또는 투쟁에서의 이탈이 다른 투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2011년 중동지역의 경우처럼 탄압적이고 미숙한 민주주의 정권에 대한 봉기 초기에는 민주주의, 부패 척결 등과 같이 대중에 영합한다고밖에 볼 수 없는 슬로건으로 대다수 군중을 운집시키기는 쉽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더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의 저항이 그 직접적인 목표를 실현하고 나면, 우리를 괴롭혔던 것들(비자유, 굴욕, 사회 부패, 품위 있는 삶의 가능성 부재)이 새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집트 시위자들은 탄압적이었던 무바라크 정권을 타도하는데 성공했지만 부패는 여전했고, 고귀한 삶의 영위라는 목표는 더욱 멀어져 갔다. 권위주의적 정권의 전복 후, 빈민을 가부장적으로 돌보던 마지막 자취는 사라졌고, 새로 얻은 자유는 사실상 고통 중에서 가장 나은 형태의 고통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 축소되고 말았다. 대다수 국민은 가난할 뿐만 아니라, 빗대자면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격이었고, 이제 자유를 얻었으므로 가난도 고스란히 자신들이 짊어질 책임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목표 자체에 문제가 있었고 이 목표가 충분히 명확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표준이 되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바로 그 비자유의 형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자유는 경제적 노예제에 대한 법적 틀을 쉽게 제공하여 소외 계층은 ‘자유롭게’ 자신들을 노예로 매매하는 상황에 이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치적 민주주의 그 이상의 것, 바로 사회적, 경제적 삶의 민주화를 요구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민주적 자유라는 고결한 원칙을 실현하지 못한 실패는 이 원칙 자체에 내재된 실패였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개념의 왜곡, 이의 불완전한 실현이라는 영역에서 이 개념 자체에 내재된 왜곡으로 옮겨가는 것을 배움으로써, 정치적으로 큰 교훈을 얻은 셈이다.             

급진적 해방 정치에 주어진 과제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우리가 이런 급진적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한다. 이들은 민주적 자유는 자체적으로 책임과 대가를 동반하며, 민주주의로부터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것은 미숙한 짓이라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우리에게 실패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겨눈다. 또한 우리는 모두 자유로운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즐기기보다는 배움을 선택하고 삶에 투자하는 자본주의자들이라고 이들은 말한다. 더욱 직접적으로 정치적 측면에서 본다면, 미국은 외교 정책을 통해 정교하고 세부적인 전략을 고안했다. 대중의 봉기가  용인될 수 있는 의회적-자본주의적 제약으로 돌려놓는 형태로 피해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필리핀의 마르코스,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 몰락 이후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급진적 해방 정치는 가장 중대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초기의 열렬했던 단계가 끝난 후, 어떻게 하면 ‘전체주의’의 재앙에 빠지지 않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또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의 용어를 빌리자면, 만델라 이후 무가베가 되지 않고 도약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렇듯 변화의 의지가 존재하고 격노한 민중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의지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다시 ‘아랍의 봄'으로 돌아가보자. 2013년 6월, 이집트에서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2년 전 무바라크 정권을 전복시켰던 시위자들 중 강경파의 지원에 힘입어, 이집트 군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과 정부를 쫓아냈다. 이 쿠데타를 보면, ‘아랍의 봄'이라는 순환체계가 닫혀 있는 듯하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무바라크를 축출했던 시위대는 이제 민주주의를 내친 군사 쿠데타를 기념하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후쿠야마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맞추어 다음과 같이 누구보다도 뚜렷한 견해를 내놓았다. 무바라크를 전복시킨 시위운동은 대체로 교육받은 중산층의 반란이었으며,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은 그저 동조적인 참관인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문이 열리자, 가난한 대중을 사회 기반으로 하는 무슬림 형제단이 민주 선거에서 승리했고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장악한 정부를 구성했다. 따라서 본래 핵심 세속주의 시위자들은 무슬림 형제단에 등을 돌렸고 그들을 저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군사 쿠데타까지 지원할 태세를 갖췄다.

근본적 대립의 지점은 어디인가

이렇게 단순화된 시각은 시위운동의 중요한 특징을 간과하고 있다. 시민 사회가 국가 및 종교 단체의 범위 밖에서 이해관심사를 분명히 표출하기 시작한 (학생, 여성 노동자 등의) 이질적 집단들의 폭발적 출현이 그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사회적 형태의 광범위한 네트워크야말로, 무바라크 정권 타도 이상으로 ‘아랍의 봄'이 얻은 성과다. 이는 무슬림 형제단 정부에 대항한 군사 쿠데타 같은 커다란 정치적 변화와는 독립적인, 현재진행형의 과정이다. 따라서 군대와 무슬림 형제단 간의 대립은 궁극적으로 이집트 사회의 대립이 아닌 것이다. 군대는 사회 안정을 중립적이고 자애롭게 중재하거나 보증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정치적 프로그램,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글로벌 시장으로의 통합, 친서구적인 정치노선,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를 나타내고 이를 구현한다. 이와 같이 대중이 자본주의를 민주적으로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한, 군대의 개입은 필요하다. 군대의 세속적 시각과 대조적으로, 무슬림 형제단은 원리주의적, 종교적 지배를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러한 두 이념적 시각은 시위대가 상징하는 바를 배제시키고 있다.

이집트에서 진행 중인 사건들은 그동안 ‘1789~93’(프랑스 혁명), ‘2월~10월’(러시아 혁명)과 같이 한 묶음으로 지정됐던 두 가지 주요 단계로 구성된 사회적 반란의 기본 역학을 보여준다. 바디우가 최근 “역사의 재탄생”이라 일컬은 첫 단계는 증오의 대상(이집트의 경우 무바라크, 30년 전 이란의 경우는 샤(Shah))에 맞서 대중이 전면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면서 종결된다. 모든 사회 계층을 막론한 대중들은 자신들을 정당성을 빠르게 잃어가는 권력 시스템에 맞선 집단적 대리인으로 규정하고,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수십만 인파가 광장에 모여 독재자의 퇴진까지 꼬박 며칠이고 자리를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마법과 같아 황홀한 이런 민중 단결의 순간을 TV를 통해 지켜볼 수 있다. 이러한 순간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형태의 단결을 상징한다. 모든 이해관계의 차이와 갈등은 순간 잊고, 사회 전체가 증오대상인 독재자에 맞서 대동단결하는 듯 보인다. 1980년대 후반, 와해되는 공산주의 정권에서 이와 비슷한 반란이 일어났다. 이질적이고 심지어는 상반된 목적을 위해서였지만, 모든 집단들이 공산당 지배에 맞서 결집했다. 공산주의에 저항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급진 좌파적 패러다임의 종말

종교인들은 공산주의의 무신론 때문에, 세속적 진보주의자는 독단주의 때문에 배척했고, 일반 노동자는 비누, 전기, 고기 같은 기본적 생활품의 부족 및 빈곤으로, 잠재적 자본주의자들은 사유 재산을 금지한다는 이유로, 지식인들은 개인 자유의 부재 때문에, 민족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위한 민족 뿌리의 배반 때문에 공산주의에 등을 돌렸으며, 범세계주의자들은 폐쇄된 국경과 타 국가와의 지적 교류의 부재를 이유로, 청년들은 서구 대중문화의 배척으로, 그리고 예술가들은 창의적 표현의 제한을 이유로 공산주의에 저항했다. 그러나 구정권이 해체되자, 꿈꾸던 단결은 곧 무너지고 새로운 (또는 케케묵었지만 그동안 억눌렸던) 갈등이 맹렬한 기세로 재등장하게 된다. 종교 원리주의자와 민족주의자들은 현대화를 추구하는 이들과 대립 각을 세우고, 민족 집단 간 갈등이 일어나며, 과격한 반공산주의자들은 구체제에 동조하는 것처럼 의심되는 이들과 갈등을 겪는 등 다양한 갈등이 나타난다. 이런 일련의 대립은 대부분의 경우 종교적 전통주의자와 세속적, 친 서구적, 다문화적인 자유민주적 자본주의자 간의 대립 축을 따라, 자체적으로 하나의 주요 정치 대립으로 정화되는 경향을 보이지만, 이런 우세한 대립의 내용은 다양할 수 있다. 예컨대, 터키 이슬람교도들은 세속적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케말주의자들보다 터키의 글로벌 자본주의 편입에 더 우호적이며, 옛 공산당원들은 (헝가리나 폴란드의 경우) 세속적 ‘진보주의자’들, 또는 (러시아의 경우) 종교적 민족주의자들과 동맹을 결성할 수도 있다.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는 이것이 진정 근본적 대립인가 하는 점이다. 어느 누구라도 이 부분에서 급진 좌파적 대안이 빠져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이것이 1989년 공산주의의 해체와 함께 두 세기 동안의 급진 좌파적 ‘패러다임’이 종말을 맞았고, (라틴 아메리카와 네팔 등지에서) 이 패러다임의 불씨를 살려보겠다고 최근 몇 차례 섣부른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패러다임은 그 잠재력을 소진했다는 사실을 단순히 반영하는 것일까? 그리고 오늘날, 공산주의는 이제 더 이상 분열의 사상이 아닌 것인가? 그렇다면 오늘날은 무엇이 분열되고 있는가? 답은 명료해 보인다. 바로 자유민주적 관대함과 원리주의적 편협성 간의 끝없는 투쟁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두 양극의 이념은 연관되어 있고 서로를 더 강화시키지 않는가? 기존의 글로벌 자본주의 세계(이 세계에 내재되어 있는 정치적 대립은 자유민주주의와 원리주의 간의 대립이다)의 총체성과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급진 해방적 (공산주의) 이념 간의 차이가 진정한 차이이다.

과거의 망령은 구원될 것인가

오늘날 정치인이나 관념론자가 우리에게 자유민주적 자유와 원리주의적 억압 중 선택할 것을 제안하며, 당당하게 “당신은 여성들이 공적 생활에서 제외되고 기본적 권리를 빼앗기길 원하는가? 종교에 대한 모든 비판이나 조롱이 사형으로 처벌받기를 원하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런 걸 누가 원하겠어요?”라는 뻔한 대답의 자명함을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지나치게 단순한 자유민주적 보편주의가 이미 오래 전에 순수성을 잃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좌파에게 자유민주적 관대함과 원리주의 간의 갈등은 두 극과 극이 서로를 생성하고 서로의 전제조건이 되는 악순환과 같이 “거짓” 갈등이다.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파시즘과 자본주의에 관해 언급한 내용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거부하는 이들은 파시즘에 대해서도 아무말 하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원리주의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그 고귀한 원칙에 대해 (비판적으로) 논하고 싶지 않은 이들은 종교적 원리주의에 대해서도 잠자코 있어야 할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이집트 저항에서 매우 불길한 교훈을 얻게 된다. 만약 온건 자유민주적 세력이 계속 급진 좌파를 무시한다면 이는 결코 극복하기 힘든 원리주의적 모호함을  낳을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열광적으로 이런 민주적 폭발을 지지했다 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러한 저항을 전용하려는 투쟁이 존재한다. 서구의 정부들과 대다수 언론은 이런 민주적 저항을 서구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 서양과 같이 되고 싶은 갈망으로 여기고 동유럽의 ‘친민주주의’ 벨벳 혁명과 동일시하며 기념한다. 이런 이유로, 시위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또 다른 관점, 즉 통상적으로 사회 정의의 요구라고 불리는 관점을 인지하게 되면 불안감이 엄습한다. 재전유(re-appropriation)을 위한 이런 투쟁은 해석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현실적 결과를 낳는다. 우리는 전 국가차원의 결집이라는 숭고한 순간에 넋을 잃어서는 안 된다. 핵심은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어떻게 이러한 해방적 폭발을 새로운 사회 질서로 옮길 것인가 하는 문제다. 앞서 밝힌 대로, 지난 몇 십 년간 일련의 해방적 민중 봉기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자유민주적 형태이든지, (이란과 같이) 원리주의적 형태를 띠든 간에, 모조리 글로벌 자본주의 질서에 의해 재전유되는 것을 지켜봤다. 민중 봉기가 일어나는 그 어떤 아랍국가도 공식적으로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국가들은 권위주의적이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정의에 대한 요구는 자연스럽게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로 통합된다. 마치 빈곤이 권력자들의 탐욕과 부패에서 비롯되었고 이들을 제거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다시 취하지만 가난은 여전하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시 기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타히르 광장에 모인 시위대의 황홀했던 집결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나면 단순히 무자비하게 사라지는 허상일 뿐인가? 이집트의 사건은 정치 운동 승리의 대가는 적대적 파벌로의 분열이라는 헤겔의 주장을 확인해주고 있지는 않은가? 따라서 무바라크에 맞섰던 결집은 친서구적, 세속적이며 현대화를 추구하는 이들, 성장하는 중산층, 주로 하위 계층의 지지를 받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간의 진정한 대립을 숨긴 허구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일까? 혁명을 과거의 반복을 통한 구원으로 인식한 발터 벤야민의 개념을 생각해보자. 프랑스 혁명과 관련하여,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적 사료 편찬이란 사건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또한 이러한 사건들이 그들을 수반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혁명의 현실과 그 최종 결과(실용적 시장 자본주의의 부상)에 배신당한 숨겨진 잠재성(유토피아적 해방의 가능성)을 발굴하는 일이다. 마르크스의 요지는 주로 자코뱅당의 혁명적 열정에 대한 무모한 희망을 비웃거나, 이들의 해방적 언술이 저속한 상업 자본주의의 구현을 위하여 역사적 ‘이성의 간계’에 의해 이용된 일종의 수단에 불과했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배신당한 급진적-해방적 잠재성이 어떻게 꾸준히 일종의 역사적 망령처럼 ‘고집을 부리고’ 잠재성의 실현을 요구하며 혁명의 기억을 따라다니는지를 설명함으로써, 추후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이 모든 과거의 망령을 구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 다음 11월호에 계속
 

글·슬라보예 지젝  Slavoj zizek
라캉과 마르크스, 헤겔을 접목한 세계적인 철학자인 그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학자로 꼽힌다. 1949년 옛 유고연방이었던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파리8대학에서 정신분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줄곧 전체주의와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운동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현실정치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 1990년 슬로베니아 첫 다당제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현재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대학교 사회과학 연구소 선임 연구원이다. 지난 7월 경희대 석좌교수로 임용된 지젝이 9월 24일~10월 2일까지 열린 ‘멈춰라, 생각하라: 공산주의의 이념 2013 서울’ 컨퍼런스에서 한국 자본주의와 북한 공산주의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을 내놓아 주목받았다. 지젝의 글을 10월호와 11월호, 2차례에 나눠 게재한다.

번역·오정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http://brecht.german.or.kr/jungbo.net/Hwizard/contents/jahrbuecher/21/1-1%EA%B9%80%EA%B8%B8%EC%9B%85.pdf 참조.
 

▶ 다음 11월호에 계속 '좌파들의 말뿐인 진보주의 거부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