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도 ‘삼성'이 있다
국가가 먹여 살리는 다국적기업, 오데브레히트(Odebrecht)
2013년 6월, 사회적 불만은 브라질인들의 대규모 시위로 이어졌다.
시위대는 불평등, 부당한 교통 여건, 그리고 오데브레히트를 겨냥했다.
많은 이들에게 이 기업은 족벌경영의 한 형태로 보인다.
2000년 영국 경제 주간지〈더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브라질 다국적기업의 이름을 댈 수 있나요? 어렵지 않을까요? 브라질 다국적기업 이름을 대는 게 유명한 벨기에인(1) 이름을 대는 것보다 더 어렵죠.” 영국 주간지가 장난치는 걸까 아니면 브라질 대그룹들이 신속하고 극적으로 거대 자본의 춤 속으로 진입할 것이라 의심하지 않아서였을까? 현재 브라질에서 오데브레히트의 이미지는 인도에서의 타타나, 한국에서의 삼성(2)의 이미지이다.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 부에노스아이레스, 아순시온 등에서는 오데브레히트가 생산하는 전기, 오데브레히트가 건설하는 도로나 제조하는 플라스틱을 이용하지 않고는 하루를 나는 게 어렵다.
흔히 토목건설사로 묘사되는 오데브레히트는 사실 브라질 최대 산업 그룹이 되기 위해 오래전부터 사업을 다양화했다. 에너지(가스, 석유, 원자력), 물, 농산업, 부동산, 국방, 교통, 금융, 보험, 환경 서비스 게다가 석유화학까지, 오데브레히트의 사업 목록은 수도 없이 많다. 비록 이 브라질 기업이 2012년에 11곳에서 동시에 댐을 건설한 세계 최대 댐건설 회사이긴 하지만, 이 회사 수익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석유화학 부문이다. 브라질 국영 석유 회사인 페트로브라스(Petrobras)와 오데브레히트가 공동 투자한 ‘보석’, 브라질 석유화학 회사 브라스켐(Braskem)은 플라스틱 수지를 생산해 6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27개국 지사, 25만명 고용
이 그룹은 현재 27개국에 지사를 두고 25만 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이중 8만 명은 간접 고용이다. 지난 10년간, 이 회사의 매출 규모는 6배 증가했다. 2002년 50억 유로 정도였던 매출 규모가 10년 후 323억 유로로 증가했다. 유라시아 그룹 경제 분석 연구소의 라틴 아메리카 담당자, 아오 아우구스토 데 카스트로 네베스는 “오데브레히트는 지난 10년간 가장 극적으로 성장해, 일종의 브라질 경제의 중추가 된 브라질 기업 중 하나다”라고 말한다. 독일계인 오데브레히트 가문은 1856년 브라질 산타 카타리나 주로 이주했다. 이후, 이들은 거기서 좀 더 북쪽으로 더 들어가 살바도르 데 바이아에 정착해, 그곳에 1944년 가족 기업을 세웠다. 이 기업에 자신의 성(性)을 붙인 창업자이자 이론가이며 기업의 분신인 노르베르토는 9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현재 여전히 3대 손자 마르셀로가 경영하는 그룹의 위대한 장인(匠人)으로 남아있다. 이 기업 사람들은 포기를 모른다. 어쩌면 사람들이 소위 “노르베르토 박사”라 부르는 이 사람의 (포기를 모르는) 철학이 (기업) 성공의 열쇠일 것이다.
그룹 대변인 마르시오 폴리도로는 지적한다. “급성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 신입 구성원들(이곳 사람들은 직원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은 우리의 강점인 테오(TEO)를 배울 시간이 없었다.” 테오? “테오는 오데브레히트의 기업가적인 기술(technologie entreprenante Odebrecht)로써, 지식 공동체가 노동자들에게 설파하고 있다. 이 메커니즘의 핵심 아이디어는 ‘경험전수’이다. 이를테면 노동을 통해 ‘교육을 실시하는 리더들’과 ‘재능 있는 젊은이들’ 간 지속적인 교육이 실시되는 것이다.” 생산성을 덜어주기보다는 강화하는 게 목적인 노하우를 전수하는 기업형 학교 모델이다.
노르베르토 오데브레히트는 소위 <노동을 통한 교육>이란 자신의 전집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조직은 의사결정과 결과가 (수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대신 밀물과 썰물처럼 움직이는 수평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전 신입사원들은 이 책을 의무적으로 읽어야 한다. 먼저 루터교 목사에게 독일어로 교육을 받은 뒤, 포르투갈어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오데베르히트는 교육의 도덕적 가치에 심혈을 기울인다. 따라서 (오르베르히트의) 창업주는 이런 말을 즐겨 썼다. “기업가의 첫 번째 의무는 세상의 쾌락과 악을 멀리한 채 단순한 삶을 살며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격언은 “도덕적 재산은 물질적 재산의 기반이다”이다.
노르베르토에겐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브라질 정부를 필두로, 오데브레히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브라질 다국적기업들은 적어도 도덕적인 모범을 보이는 것만큼이나 다른 (부정적인) 요인들도 안고 있다.
1930년대부터 제툴리우 바르가스의 추진 하에, 그리고 군사독재(1964-1985) 하에 시행된 자립 경제 발전 및 수입 대체 전략은 경제학자 피터 에반스(3)의 말대로 정부에게 “산파” 역할을 맡기는 것이었다. 예컨대 “신생 산업 그룹의 등장이나 위험부담이 더 큰 새로운 생산 유형 쪽으로 방향을 튼 기존 그룹들의 팽창”의 “산파” 역할을 정부가 도맡은 것이다. 이를테면 댐, 도로, 지하철, 유전시설, 원자력 발전소 건설 등등. (반사회적인) 적극적인 독재 정책들의 산물인 “경제기적”은 오데브레히트에겐 횡재였다.
기술 개발 비용, 국가에 떠넘겨
국가의 비호 하에서 이 기업(오데베르히트)은 기술 개발 비용을 국가에 떠 넘겼다. 예컨대 납세자들은 국가가 수입을 거부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위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하게 된 것이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브라질의 보호주의가 “해외로 눈 돌려 세계 속에서 경쟁하는 신세대 민영기업에 견고한 기반을 제공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4) 보수성향의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의 이데올로기적 가설을 뒤엎는 것이었다.
1980년대 전환기에 브라질의 “기적”이 종식됐을 때, 브라질 대기업들은 국제 시장을 정복할 충분한 기술과 자원을 가지고 있었다. 오데브레히트 기업은 1979년 페루와 칠레를 필두로, 1980년엔 앙골라, 1988년엔 포르투갈, 1991년엔 미국, 그리고 마지막으로 2000년대엔 중동을 정복했다. 2003년, 이 기업은 전 노조 조합원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국가와의 특별한 관계를 회복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룰라는 엔리케 카르도소(1995-2002)의 자유 무역정책에 의해 지나치게 좌지우지되었다고 자평하는 일부 경영인과 접촉을 시도하며 도움을 받으려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냈다.
리오 연방대학의 사회 역사 연구원 페드로 엔리케 데드레이라 캄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룰라와 함께, 1990년대 민영화된 자본은 공공의 품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국유화시키지 않고 어떻게? “브라질 정부는 1996년까지만 해도 30개 그룹의 경영에 참여했지만, 현재는 브라질 국책은행인 경제사회개발은행(BNDES)을 비롯한 국영 석유 회사 페트로브라스 그리고 풍부한 공무원 연기금을 통해,(5) 119개 그룹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오데브레히트는 브라질 실업자에게 실업수당을 지급하고, 오데브레히트 암비엔탈(Odebrecht Ambiental) 지분 27%와 오데브레히트 운송(Odebrecht Transport) 지분 30%를 보유한 보증기금(FI-FGTS)의 수익이나 2009년부터 오데브레히트 농산업(Odebrecht Agroindustrial) 지분의 30%를 관장하고 있는 BNDES의 수익에 기댈 수 있게 됐다. 예컨대 페트로브라스는 브라스켐 지분을 대략 38%를 지닌 이 회사의 주주다. 브라질 정부의 전략은?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선보일 잠재력이 있는 “챔피언”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의 “카리스마”와 미국과 유럽보다는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치중한 그의 새로운 해외정책 또한 국제무대에서 브라질 그룹들의 성공에 기여했다. 예를 들면, 룰라 대통령은 두 번의 임기(2003-11) 동안 아프리카 20개국을 방문하고 아프리카 대륙에 37개의 대사관과 영사관을 개관했다. 그는 해외 공관을 개관할 때마다, BNDES는 브라질 기업들이 경쟁국, 특히 중국에 맞서 시장을 장악할 수 있도록 이들 기업에 대출을 제안했다.
룰라의 친기업정책에 날개 달아
상파울루 제툴리우 바르가스 재단 국제관계학 교수 올리버 스튜엔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BNDES의 예산 보유고는 세계은행(World Bank) 예산 보유고보다 높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BNDES의) 해외 대출예산은 브라질의 자산 및 서비스 수출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예컨대 다른 국가가 (시장에서 물품)대금을 지불하지만, 시장은 브라질 것인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BNDES는 오데브레히트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서 추진한 프로젝트에 18억 유로를 투입했다. 이에 놀라야 할까? 오데브레히트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열리는 주요 경기장(리우데자네이루, 상파울루, 헤시피, 살바도르) 건설도 책임졌다. 또한 2016년 리오 올림픽 주요 건설 프로젝트, 즉 올림픽 종합경기장, 신 지하철 노선, 항구의 도시화 등도 수주받았다.
그래서 이를 두고, 많은 분석가들은 망설임 없이 특혜나 진배없다고 주장한다. 더군다나, 언론들이 오데브레히트 가문과 룰라 다 실바 간 특별한 유착관계를 상기시키고 있다. 이러한 보도들은 야당이 쥐고 있는 유일한 (여당의) 아킬레스건, 즉 노동당의 부패에 대한 가십거리에 자양분이 되고 있다.
오데브레히트는 브라질 선거법이 승인한 한도 내에서 지난 두 번의 대선 기간 동안 룰라 다 실바가 창당한 당에 기부하던 정치헌금 규모를 늘렸다. 하지만 기업은 신중을 기하기 위해 모든 주요정당에 후원금을 냈다. 특히 현지 선거 때 그랬다. 기업은 2006년엔 780만 헤알(Real)을 쏟아 부었고, 2010년 지우마 호세프가 출마한 대선 때는, 기업이 후원한 금액은 1억 80만 헤알에 달했다. 비록 노동당은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묻자 답변을 피했지만, 이 기업의 현 사장인 마르셀로 오데브레히트는 최근 잡지 <네고시오스>에 이런 말을 했다. “맞다. 우리는 실제로 정부 편에 섰다. 그리고 우린 그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지한) 정부가 선출됐고, 그 정부가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6)
지난 4년간 브라질의 급성장과 브라질 대기업에 대해 조사를 한 우루과이 지식인 라울 지베치는 이렇게 말한다. “룰라와 에밀리오 오데브레히트 전 사장(1991-2004) 간 긴밀한 유착관계가 분명 존재한다. 이들의 친분관계는 룰라가 대선에 첫 출마한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이들의 관계를 해를 거듭하며 전략적인 성격을 띤다. 오데브레히트는 노동당과 경영인 간 유착관계가 거의 없던 시절, 노동당을 지지한 초기 기업들 중 하나이다.” 그룹 입장에선 이러한 유착관계가 득이 되고 있다. 2006년, 오데브레히트가 BNDES로부터 2억 4100만 달러를 대출받아 건설한 (에콰도르) 산프란시스코 댐 준공식을 룰라 다 실바의 정치적 파트너인 에콰도르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가 성대하게 거행했다. 하지만 1년 후, 이 수력발전소는 중대한 기술적 결함으로 가동이 중단됐다. 발전소가 가동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오데브레히트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자, 코레아 대통령은 기업을 (에콰도르에서) 축출하고, BNDES에 대출금 상환을 거부하고 있다.
브라질은 이 같은 예외적인 순간에 발군의 외교력을 발휘해, 주 에콰도르 브라질 대사를 송환하고 키토(에콰도르 수도)와 외교를 단절한다. 브라질리아 주재 에콰도르 대사, 오라시오 세비야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전한다. “우리에게 있어, 그것은 재앙이었다. 왜냐하면 브라질과의 관계는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8년 12월, 라틴아메리카 대통령들의 바이아 정상회담 때 (양국 간) 갈등이 고조됐다. 오데브레히트의 본사가 바로 바이아에 있어, 오데브레히트는 이때다 싶어 대통령들이 지나가는 길목마다 자사를 “(라틴아메리카) 지역 통합을 위하는 기업”처럼 내세운 대대적인 광고를 펼쳤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코레아 대통령의 측근 파트너임에도 불구하고 오데브레히트를 “베네수엘라의 친구 기업”이라 규정하며 (갈등에) 쐐기를 박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콰도르의 독립위원회는 기술적 결함과 계약 체결 및 대출 상 문제를 폭로했다. 무소불위 브라질 대기업(오데브레히트)의 여러 프로젝트를 조사한 위원회는 이 기업이 에콰도르 정부에 큰 금전적 손실을 끼치게 될 “전반적인 문제들”을 폭로했다. 산프란시스코의 경우엔 초기 예산의 추가 비율이 25%“밖에” 안 되지만, 에콰도르 산타 엘레나 지방의 10만 헥타르에 이르는 관개수로 프로젝트의 예산 추가비율은 180%에 달한다.(7) 이 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에콰도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키토는 플라날토궁(브라질 대통령궁)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브라질리아에 세비야를 파견한다. 동시에, 안데스의 작은 국가는 오데브레히트와 타협점을 찾는다. 브라질 주재 에콰도르 대사는 이 상황을 이렇게 정리한다. “모두가 타협한다.(중략) 하지만 에콰도르는 특히 그렇다.” 그러나 브라질 정부를 비롯한 외무부, 당시 룰라의 국제 자문위원과 그의 내각, 그 어느 누구도 이 사건을 해명하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잠수함 5척-재래식 4척과 핵잠수함 1척-을 건조하기 위한 해군성의 설비계약체결에서도 이와 유사한 모호함을 발견한다. 2008년, 100억 달러가 투입되는 이 사업의 지분은 경쟁 입찰도 없이 오데브레히트(49%)와 프랑스 기업(DCSN·50%) 그리고 나머지는 해군성에 배당됐다. 프랑스의 핵기술 전수가 포함되어 있는 이 계약은 오데브레히트가 무기분야에서 맺은 첫 계약이었다. 이후, 그룹은 2010년 항공기와 미사일 제작을 비롯한 우주 감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과 제휴관계를 맺는다. 이어 2011년엔 브라질 최대 미사일 제작회사인 멕트론(Mectron)까지 장악했다.
“국가가 기업 소유하기보다는
기업이 국가 소유”
사업 다양화를 위한 단순전략일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데브레히트가) 국방부문에 뛰어든 것은 룰라 다 실바의 군대현대화 정책을 따르기 위한 것이다. 룰라 정부 2기(2007-11) 동안, 국방예산은 45% 증가하고, 국가 국방 전략 법안이 채택됐다. 주요 수혜자는 항공부문의 엠브라에르(Embraer·브라질 항공 제조회사)와 해양부문의 노르베르토 박사 회사였다. 이러한 풍토는 룰라 다 실바가 정권을 잡기 훨씬 이전에 마련됐다. 지베치는 “오데브레히트는 1950년부터 국방부 산하 국방대학(ESG)을 통해 군부와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브라질의 주요 싱크탱크인 ESG에서 군부와 산업체가 서로 교류했다. 오데브레히트 가문과 이 그룹의 많은 간부들이 ESG 출신들이라 현재도 그렇지만 독재 정권 시절 많은 계약을 용이하게 체결할 수 있었다”고 했다.(8)
한편, 마르셀로 오데브레히트 스스로도 “(자신의 기업) 지식 공동체” 안에서 주권과 독립을 바탕으로 한 민족의 비전을 가르치는 ESG의(9) 교리와 똑같은 교리를 가르친다고 강조한다. 2010년, 당시 브라질 응용 경제 연구소(IPEA)의 소장, 마르시우 포쉬만은 이런 말을 했다. “대기업의 매출 규모가 종종 일부 국가의 국내 총생산(GDP) 규모를 능가하기 때문에, 국가가 기업을 소유한 게 아니라 기업이 국가를 소유한다. 그래서 내가 보기엔 해결책은 대기업을 육성하는 길 밖에 없다.”(10) 전 노조조합원(룰라)에게 있어, 최우선 과제는 경제전략 속에서 계획한 브라질 대기업 육성이었다. 룰라는 정계를 은퇴한 이후에도 이와 같은 우선 과제를 위해 여전히 뛰는 것처럼 보인다. 2013년 3월 22일, 브라질 일간 폴랴데상파울루(Folha de Sao Paulo)는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이 퇴임 이후 수행한 여행 중 절반 가량의 비용을 오데브레히트와 미주기구(OAS) 그리고 건설업체인 카마르고 코헤아(Camargo Correa) 등, 3개 기업이 부담했다고 폭로했다. 이 일간지는 외교전문을 게재해 이러한 여행들이 브라질 기업들이 직면한 “저항을 해소”해 준다고 암시했다. 특히, 석탄 광산 때문에(11) 강제 이주한 일부 주민들의 반발이 큰 모잠비크의 경우를 부각시켰다. 그룹이 확인시켜 준 향후 전략은 “지속 가능하나 개발” 부문에 모두 치중되어 있다. 오데브레히트 전략기획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에너지, 물, 식량과 관련된 수익성 복합 모델을 찾고 있다.
한편, 페루와 오데브레히트는 처음으로 안데스 산맥을 가로지르는 터널 공사를 같이 했다. 이들은 강은 우회하고, 메마른 지대엔 댐과 인공 호수를 건설했다. 오데브레히트가 주도한 소위 올모스(Olmos) 관개 프로젝트 공사가 끝나자, 오데브레히트는 초기 투자비용(종종 그렇듯 매월 그 규모가 증가했다)을 회수하기 위해 물, 전기, 토지 “서비스”를 되팔았다. 초기 불하받은 토지 11만 헥타르는 모두 대형 농산물 가공업체에 돌아갔다. 분할된 각 부지는 1천 헥타르에 달했다. 따라서 현지 농부들은 관개 프로젝트에 포함된 부지를 불하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초기 프로젝트는 농부들의 필요에 따라 부지를 분할해 판다는 계획이었다. 사실, 이 모든 (토지 불하) 계획은 페루 정부가 주도했기 때문에, 토지 불하나 이주민을 위험한 계곡으로 재배치시킨 것은 오데브레히트의 책임은 아니다. (관개 프로젝트) 계약 체결 당시 알란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1985~90년과 2006~11년)과 오데브레히트 간 “특별한 유착관계”가 작용했다고 했지만 이것 또한 밝히지 못했다. 오데브레히트의 대변인은 주장한다. “오데브레히트는 단순히 국가의 필요에 따라 공개입찰에 응했다. 우리는 인류를 위해 기여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공조를 도모하기 위해, 오데브레히트는 페루에 “태평양의 크리스트”상을 선물했다. 36m에 달하는 이 조각상은 리오 크리스트의 복제판이다. 이들은 “페루 진출 33년을 축하하기 위해 크리스트가 33일간 배를 타고 (리오에서) 왔다”고 했다.
오데브레히트 관광 클럽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 여기자가 브라질 기업 오데브레히트에 대해 조사를 한다고 상상해보자. 그녀는 우선 당연히 살바도르 데 바이아에 있는 그룹 본부로부터 모든 여행비를 지원받는다. 3성 호텔, 고급식당, 헬리콥터 여행 등등. 프로그램은 그룹 대변인과의 인터뷰와 바이아 주의 남부 빈민 구역에 위치한 오데브레히트 재단의 업적, 즉 가난한 농부들의 종려나무 숲을 상업화시키고, 농부들에게 농업관련 직업과 자식들을 위해 집을 짓는 것을 연수시키는 현장을 방문한다.
인터뷰는-브라질 언론매체가 매년 실시하는 조사에 의하면-브라질 젊은 층이 가장 선호한다는 기업 중 하나인 오데브레히트에서 일하는 ‘행복’에 집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들과 직접적인 인터뷰는 할 수 없다. 본부에는 또한 진짜 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엔 세대를 거친 사장들의 사진들과 오데브레히트 가문 아들들의 사회적 신분 상승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시되어 있고, 벽엔 창업자의 좌우명이 새겨져 있다. “낙관적인 생각과 몸으로 느끼는 일하는 즐거움이 다른 사람을 위한 부를 생산한다.”
시장이 버스 터미널을 구축하려고 1860년 에밀 오데브레히트가 (식물)고유종을 심어 조성한 작은 숲을 파괴하려 했을 때, 그 숲을 지키기 위해 오데브레히트가 환경단체 편에 섰다는 연설을 할 때는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기자는 이틀간의 방문동안 재단의 선행들과 그룹 건설 현장에서 병행되는 “복지”프로그램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듣는다. 기업 대변인은 웃으며 말한다. “영양실조에 걸린 노동자가 일을 잘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하지만 2009년, 이 “모범적인 작업장”에서 폭력적인 파업이 일어났다. 노동자들은 월급 인상(결국 얻어냈다)과 막사에 에어컨 설치 그리고 식단 개선과 가족 방문 휴가 일수를 늘려달라고 요구했다. 오데브레히트에게, 이 같은 사건은 별것 아니었다.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자 친밀감은 사라졌다. 기자는 사전에 질문을 주고, 답변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룹의 홍보 담당관은 질문을 미리 읽고, 대부분 “오프 더 레코드” 형식으로 코멘트했다. 하지만 비밀이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폭로는 거의 없었다. 가장 민감한 질문들은 철저히 무시됐다. 답변을 얻기 위해 우리가 채근했지만, 2시간의 인터뷰동안 우리가 얻어낸 것은 온갖 미화들뿐이었다. 그 나머지는…….
글·안 비냐 Anne Vigna
번역•조은섭 chosub@ilemonde.com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로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강의 중.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1) <Who dares wins>, <The Economist>, 런던, 2000년 9월 21일.
(2) 마르틴 뷜라르, <공포의 삼성 제국> 참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7월.
(3) Peter Evans, <Embedded autonomy: States and Industrial Transformat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5.
(4) Lael Brainard et Leonardo Martinez-Diaz, <Brazil as an Economic Superpower? Understanding Brazil’s Changing Role in the Global Economy>, <Brookings Institution Press>, Washington, 2009.
(5) Previ, Funcep et Petros.
(6) 잡지 <Negócios>, 특별판, n° 70, 상파울루, 2012년 12월.
(7) 2008년, 에콰도르 채무에 대한 위원회의 최종 보고서.
(8) Raúl Zibechi, <Brasil potencia. Entre la integración regional y un nuevo imperialismo>, Ediciones Desde abajo, Bogotá, 2013.
(9) 국방대학 졸업생 연합회 잡지 <ADESG>, 특별판, 리우데자네이루, 2011.
(10) Marcio Pochmann, <Estado brasileiro e ativo e criativo>, IHU, n° 322, Universidade do Vale do Rio dos Sinos, São Leopoldo, 2010년 3월 22일.
(11) <Empreiteiras pagaram quase metade das viagens de Lula ao exterior>, 일간 <Folha de São Paulo>, 2013년 3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