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거대한 딜레마

2013-10-12     마이클 T. 클레어


시리아에서 내전이 발발한 직후부터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미국이 직접적 개입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미국은 이미 중동에서 전쟁을 치를 만큼 치렀고 더욱이 시리아 내전은 미국의 근본적 이해를 위협하지는 않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지난 8월 21일 시리아 정부가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화학무기를 사용한 이후, 미국이 태도를 바꾸어 시리아에 제한적 공습을 실시할 수도 있다고 선언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전략의 주변부에 머물던 시리아 사태가 왜 갑자기 중심부로 이동한 것일까? 그것도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

지금까지 시리아 내전은 미국 대외정책에서 대수롭지 않은 사안이었다. 2년간의 유혈사태로 1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미국 정치인들은 대부분 미국의 직접적 개입을 반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퇴진을 요구하고 종교적 색채가 없는 반군 온건파 조직에게 기술적 지원을 해주기로 약속했을 뿐, 중무기를 지원해달라는 이들 조직의 요구를 일축했고 현지 권력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만한 행동은 거부했다.

희생자와 민간 피해가 늘어나자 2012년 들어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반군 지원을 확대하고 제한적 군사작전을 전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데에 동의했다. 그러면서도 알 아사드 정권이 독가스를 직접 사용하거나 정권 측근 무장단체에게 공급하는 등 한계선(red line)을 넘을 경우에 한한다고 못 박았다.(1) 그런 가운데 8월 21일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무기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백악관이 공개적으로 선포한 한계선을 넘어버리자 미국으로서는 군사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세계 제1의 강대국인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을 판이었다. 미 국방부 장관 척 헤이글은 "행동하지 않는다면 미국이 약속한 다른 안보조치의 신뢰성에도 금이 갈 우려가 있다"고 말하면서 "미국이라는 이름에는 의미가 실려야 한다. 이는 미국의 대외정책 및 미국과 동맹국 간 약속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2)

미국 내에서 시리아 공습에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두 가지 상황이 미국 정부의 전략적 계산에 변화를 가져왔다. 하나는 무기 공급이나 직접적 투쟁 참여 등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중동 국가들이 시리아 내전에 동참하게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란, 헤스볼라 등 미국의 전략적 적들이 시리아 내전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3) 시리아를 미국 이해관계의 주변부에 놓아두려는 오바마 대통령의 바람이 미국의 소극적 자세를 이용하려는 적들 때문에 난관에 부딪히고 만 것이다. 미국 정부의 시각에서 중동은 서쪽의 이스라엘, 동쪽의 석유부국, 이 두 개의 중력 중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지역이다. 미국의 중동정책에서 이스라엘과의 동맹이 기반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걸프만 국가들도 에너지 부국으로서, 이란에 대한 견제세력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 전부터 미국은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안보를 책임지고 페르시아만의 석유가 세계시장에 차질 없이 공급되도록 하는 것을 전략적 이익의 우선순위로 삼았다. 이러한 정책 실현을 위해서는 현지상황에 대대적으로 간섭하거나 경우에 따라 군사작전을 감행하는 것도 필요했다.(4)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미국은 오로지 시리아가 이스라엘과 석유강국들의 이해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만 관심을 두었을 뿐이었다. 1990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구축한 반(反)이라크 동맹에 시리아가 동참하자 이를 환영하고 시리아가 레바논 헤즈볼라를 지지하자 이를 맹렬히 비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즉 미국의 눈에 시리아라는 나라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2011년 찾아온 이른바 ‘아랍의 봄'도 미국의 이러한 무심함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미국 정부는 이집트, 리비아, 예멘 등지의 정권교체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시리아의 혼란으로부터는 한 발 물러서 있었다. 그러다가 지역 강대국들의 관심이 시리아에 집중되자 그제야 미국도 시리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시리아 내전이 자국 국경지대에 몰고 올 여파를 우려하고 있었다. 알 아사드 정권이 갈수록 헤즈볼라의 지원에 의존하면서 시리아 병력이 리비아 남부에 대거 투입되고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인 약소국 요르단은 전쟁피난민들의 유입으로 혼돈에 빠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석유왕국들은 이란을 상대로 대리전을 벌이는 기회로 이러한 사태를 이용했고, 각 진영은 상대방의 개입을 무력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5) 지난 5월 31일, 카타르의 저명한 수니파 종교지도자 유세프 알 카라다우이는 전 세계 수니파 교도들에게 시리아로 집결하여 “이슬람의 적”인 헤즈볼라와 이란과 투쟁할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러시아는 오래 전부터 시리아 정부와 많은 이해관계를 공유해왔다. 러시아는 옛 소비에트연방 이외 지역의 유일한 해군기지를 시리아의 타르쿠스항에 두고 있으며, 시리아와 최신형 전투기, 미사일 등 무기공급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 계약은 비록 아직 대금이 모두 지불되지는 않았지만 총 금액이 20억 달러가 넘는다. 한편 인프라, 에너지 공급망, 관광시설의 개선을 위해 러시아가 시리아에 투자하는 금액은 연간 200억 달러에 달한다. 홈스 동쪽으로 2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천연가스처리공장은 이러한 투자의 대표적 사례로 모스크바에 본사를 둔 기업 ‘스트로이트란스가즈’가 건설하였다.(6)

시리아에서 러시아의 입지가 공고해지자 백악관 군사 참모들도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됐다. 그리하여 수개월 전부터 미국의 군사개입을 점차 강력히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미국의 영향권을 온전히 지키고자 단독 개입을 주장했다. 지난 6월,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 반군에게 이미 공급하고 있던 비살상 장비뿐만 아니라 무기까지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은 미국의 전략적 방향 수정을 보여준다. 이 무렵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 사태의 비군사적 해결을 위한 외교적 행보를 강화하기로 결정했다.(7)

익명을 요구한 몇몇 백악관 고문에 따르면 이와 관련한 비공식적인 대화는 이미 1년 전에 시작됐다고 한다. 2012년 6월 멕시코 로스 카보스에서 열린 G20정상회담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알 아사드 정권이 보유한 화학무기 해체 문제를 놓고 장시간 회담을 벌였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의 이러한 전략지정학적 변화는 2년 전 오바마 대통령이 피력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세력 강화 의지의 부수적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최근 미국은 이 지역에서 점차 쇠약해지는 영향력을 되살리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에 몰두하는 사이 급부상한 경쟁국 중국의 패권을 저지하는 것을 우선과제로 삼아왔다. 이처럼 미국이 아시아 무대에 복귀하는 사이 중동에 생겨난 공백을 틈타 이란,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시소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미국의 근심은 시리아 정권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강경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은 외교적 프로세스에 돌입하면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조명을 받으며 협상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 함으로써 더 이상 중동지역에서 불안을 가중시키지 않게끔 하는 동시에, 아직 구체적 기술·실무·재정적 수단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시리아가 보유한 독가스 무기를 압수, 파괴함으로써 이란 정부가 핵무기 개발프로그램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에 순응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미국의 바람이다. 미국이 자국의 시각을 전 세계에 강요하던 시절은 지난 듯하다. 이제 백악관은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목표를 가지고 여전히 씨름하고 있다. 하나는 아시아에서 자국의 입지를 강화함으로써 중국의 영향력을 저지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시리아 사태에 개입함으로써 중동에서 세력을 확장하려는 이란과 러시아의 야욕을 억누르는 것이다. 
 

글·마이클 T. 클레어 Michael T. Klare
세계평화·안보연구전문가. 주요 저서로 <The Race for What's Left : The Global Scramble for the World's Last Resources>(Metropolitain Books, New York, 2012) 등이 있다.

번역•최서연 qqndebien@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르몽드세계사2>(공역)(2010) 등이 있다.

(1) Cf. James Ball, 'Obama issues Syria a ‘red line’ warning on chemical weapons', <The Washington Post>, 2012년 8월 20일.
(2) 2013년 9월 3일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 상원 대외관계위원회 발표.
(3) 알랭 그레슈, ‘난관에 봉착한 시리아, 지역전 확산 우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년 7월 참고.
(4) Michael T. Klare, <Blood and Oil, New York>, Metropolitan Books, 2005 ; Michael Palmer, <Guardians of the Gulf>, New York, Free Press, 1992.
(5) Tim Arango, Anne Barnard and Duraid Adnan, 'As Syrians Fight, Sectarian Strife Infects Mideast', <The New York Times>, 2013년 6월 1일.
(6) Yagil Beinglass and Daniel Brode, ‘Russia’s Syrian Power Play’, <The New York Times>, 2012년 1월 30일.
(7) Mark Mazzetti, Michael R. Gordon and Mark Landler, 'U.S. Is Said to Plan to Send Weapons to Syrian Rebels', <The New York Times>, 2013년 6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