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청자들이 리얼리티쇼에 빠져든 이유

리얼TV쇼에서 군사방송까지

2013-10-14     조르단 푸유

   
▲ <큰 꿈>, 2010-말레온 & 니오

베이징의 신(新)금융가 지엔와이 소호를 누비는 639번 버스 안, 그 어디서도 신문 보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모두들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판스이가 카리스마를 드러내며 게스트와 설전을 벌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49세의 부동산 재벌 판스이가 진행하는 ‘라오유지쯔 Mr.Pan(판스이의 친구들)’은 이른 아침 시간에 방송되는 토론 프로그램으로, 본방송 시간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에 다운받아 출퇴근길에 시청하는 등 인기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경쟁 상대는 가오샤오숭이 매일 아침 진행하는 토크쇼 ‘샤오쑤어(모닝콜)’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고, 음주운전으로 6개월간 감옥 신세를 지기도 했던 장발의 40대 작곡가 가오샤오숭은 프롬프터 없이 진행되는 20분의 방송 시간 동안 중국 축구 승부 조작부터 미국 도로교통법, 유럽 영화산업 등에 이르기까지 국내외를 넘나드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전문적인 수준의 자기 의견을 쏟아낸다.

오늘날 중국 전역에 설치된 텔레비전 수신기 수는 약 4억 대, 국민 3명 당 1명꼴로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 이 많은 텔레비전을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후난성, 저장성, 상하이, 장쑤성 등 각 지역 방송국들이 해외 리얼리티 방송 포맷을 서로 앞다투어 들여오고 있다. 후난TV의 경우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매주 금요일 이른 저녁 시간대에 ‘워스거서우(나는 가수다)’를 내보냈다. 중국, 대만, 홍콩의 유명 가수 7명이 지난 명곡을 리메이크해 경연하는 방식의 이 프로그램은, 평가단에게 나눠주는 음료수부터 경연 아티스트의 이니셜이 새겨진 티셔츠에 이르기까지 방송에 나오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광고 대상이 되는 전례 없는 결과를 낳았다. 덕분에 후난TV는 3억 위안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끌어 모으게 됐고, 게다가 위성 방송을 통해 시청자 폭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몇 해 만에 국가방송인 CCTV1 다음으로 중국 전역에서 가장 많이 시청되는 채널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중국 남쪽의 소형 지방 방송국에 불과한 후난TV는 이미 지난 2004년 당시 오디션 프로그램 ‘차오지뉘성(슈퍼걸)’을 제작해 한차례 히트를 친 바 있다. 차오지뉘성은 30만 명의 일반인 참가자 중에서 최고의 여가수를 선발하는 방송으로, 시청자들이 휴대폰 문자를 통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직접 투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가식적인 성격이나 별난 외모만 부각되고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됐고 이에 대한 중국 공산당 지도층의 비난의 목소리가 있기도 했다. 결국 후난TV는 방송심의위원회에 해당하는 중국 국가광전총국의 압력에 의해 그들의 간판 프로그램이 된 차오지뉘성의 종영을 결정해야 했다. 종영 전 마지막 결선이 치러진 2011년 4월 1일자 방송은 시청자수가 약 4억 명에 달하는 등 놀라운 기록을 남기며 막을 내렸다. 

올해 ‘워스거서우’는 상하이의 드래곤TV에서 방영한 ‘중궈멍지성(차이니즈 아이돌)’, ‘중궈다런시우(중국의 재능)’, 저장TV의 ‘중궈하오성인(중국의 목소리)’ 등 유사 프로그램들을 전부 꺾고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후난TV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최근 신작 ‘중궈쭈이창인(중국 최고의 목소리)’과 ‘콰이러난성(슈퍼보이)’을 연달아 내놓으며 또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인 후베이TV의 ‘워더중궈싱(슈퍼스타 차이나)’에 대한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았다. 낮 시간대에 방영되는 지난 시즌 재방송을 빼놓고 생각하더라도, 모든 채널이 마치 거대한 하나의 노래방이라도 된 듯이 변모하고 있다.

짝짓기 프로그램에 사활 건 TV채널

언론인 위안즈치안은 중국 유력 영문일간지인 ‘글로벌 타임즈’를 통해 “이렇게 외국 방송 포맷들을 들여오는 데 만족한다는 것은, 결국 중국 국내 시장을 완벽하게 파악하기에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유감을 표했다. 현재 중국 방송 제작사들이 방송을 잠재적 시청자들의 수요에 맞추는 데만 급급한 까닭에 그것이 과포화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의식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중국 텔레비전의 저녁시간대가 음악방송에만 치중해있는 반면, 오후시간대는 맞선 프로그램들이 장악하고 있다.

2010년 1월 15일 첫 방영된 장쑤TV의 ‘페이청우라오(당신도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큰 인기를 끌며 압도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1960~80년대 미국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데이팅 게임’의 현대 중국판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방송은, 한 명의 미혼 남성이 긴장감 속에 무대 가운데로 등장하면 그를 둘러싼 24명의 여성들이 서로 부저를 눌러 그의 상황에 대해 질문을 쏟아 붓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여성 출연자가 남성이 맘에 들지 않는 경우 각자의 앞에 놓인 램프를 꺼서 거부 의사를 밝힌다. 페이청우라오는 90분 동안 전혀 예상치도 못한 커플을 맺어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키 작은 노동자 출신 남성과 화려하고 세련된 상하이 도시 여성 커플, 또 괴짜 서양 외국인 남성과 전통 의상을 입은 티벳 여성 커플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방송은 첫 방영 이후 7개월 만에 공산당 간부층의 분노를 사고 말았다. 한 여성 출연자가 “웃으며 자전거를 타느니 차라리 울면서 BMW를 타는 게 낫다.”고 말해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이다. 어떤 날은 한 남성 출연자가 자신의 승용차 사진들과 은행 잔고를 들이밀며 나서기도 했다. 이에 중국 언론은 장쑤TV 측의 ‘유해성’을 언급하며 비판했고, 당국은 진행자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리전문가가 두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방송을 촬영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청우라오는 평균 6천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 모으며 후난TV의 ‘워먼웨허이바(날 데려가요)’, 저장TV의 ‘웨이아이시앙치엔총(사랑을 향해)’와 같은 유사 프로그램들을 양산하는 역할을 했다.

정부의 이율배반적 방송정책이
프로그램 질 낮춰

음악 방송 및 맞선 프로그램의 뒤를 이어, 일종의 곡예 쇼 프로그램도 유행을 타고 있다. 유명 스타들이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도움을 받아 다이빙 쇼를 펼치는 내용의 ‘중궈싱티아오위에(스타 다이빙)’가 저장TV에서 방영되었다. 지난 4월 19일 한 스태프가 익사하는 사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에 질세라 경쟁 채널인 장쑤TV는 동시간대에 같은 방식에 출연진만 다른 ‘싱티야오슈이리팡(스타들의 모험)’을 내놓았다. 이렇게 활동하고 있는 방송국 직원들의 나이대가 대부분 방송을 보는 대중만큼이나 젊다는 사실은 놀랄 말한 일도 아니다. 중국에서 예명 ‘따샨’으로 방송 활동을 시작한 지 20여년차가 되어가는 캐나다 출신 유명 만담가 마크 로스웰은 “쇼 프로그램에 출연할 일이 있어 후난성 창사에 있는 후난TV 방송국에 갔었는데, 단언컨대 지금 48세인 내가 그 건물을 통틀어 가장 연로한 사람이었다. 프로듀서나 감독, 작가 할 것 없이 다들 기껏해야 30대에 지나지 않아 나를 마치 왕년의 록스타 대하듯 하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초당 평균 광고료 12만 위안

사실 중국 전역의 위성 안테나는 1993년 9월 리펑 전 총리의 지시로 고급 호텔, 주요 관공서, 국영기업 본사, 외교공간 지역 등을 제외한 곳에서는 소유가 금지된 상태이다. 리펑 전 총리는 이러한 방책이 루퍼트 머독을 향한 반격이라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당시 호주 출신 언론 재벌인 루퍼트 머독이 5억 2천 5백만 달러의 거액을 들여 한 홍콩 방송 채널의 대주주로 뛰어 들면서, “새로운 통신 기술이 세계 곳곳의 전체주의 정권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위성 방송은 폐쇄적인 사회 속에서 정보에 메마른 국민들에게 정부의 규제 하에 놓인 채널로부터 피할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고 단언한 직후였다. 위성 안테나는 그대로 사장당하고 말았다.

아직도 중국 민간에서는 영국 BBC 채널과 미국 CNN 채널을 볼 수 없다. 그러나 각 지방 방송국이 위성을 통해 자신들의 채널을 전국으로 송출할 수 있는 덕분에 40여 개가 넘는 자국 채널을 무료로 시청할 수 있고, 1958년 창립된 중국 국가방송 CCTV의 19개 채널도 물론 시청할 수 있다. 이는 대부분의 가정에 프랑스의 디지털 지상파 방송(TNT) 수신 장치처럼 생긴 중국 내 방송 수신기가 보급되어 있는 덕분이다. 베이징 금융가 중심에 위치한 CCTV 본사 신사옥은 건물이 바지 모양으로 생긴 탓에 종종 놀림거리가 되고 있긴 하지만, CCTV 자체는 19개의 채널과 400여 개에 이르는 프로그램을 통해 여전히 중국 가정의 TV를 장악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중국 내에서 한 명의 시청자가 TV 앞에서 보내는 2시간 중 평균 45분은 CCTV를 시청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인터넷으로 시청하는 경우는 제외).

종합채널 CCTV1에서 저녁 7시 방송되는 ‘신웬리엔보’는 같은 시간에 각 지역 방송국에서도 일괄 방송되는 뉴스 프로그램이다. 1978년 첫 방송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가장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방송으로 자리 잡은 신웬리엔보의 고정시청자 수는 2013년 현재 총 1억 3천 5백만 명 수준이다. 그러나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신웬리엔보는 인민대회당 접견실에서 각국 정상들이 회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당 간부의 공식 선언과 정부의 경제 성과 발표에 초점을 맞추는 등 뉴스라기보다는 34분간의 정치 선전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 방송에서 전하는 소식 중 믿을만한 사실은 “안녕하십니까? 저녁 7시, 신웬리엔보입니다.”라는 인사말뿐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이다. 게다가 신웬리엔보는 생방송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방송 수 분 전에 사전 녹화를 진행해 콘텐츠 검열 후에 방영되고 있다. 공영채널에 가해지는 중국 공산당의 끊임없는 규제 사례는 그뿐만이 아니다. CCTV7는 군사와 관련된 방송만을 다루는 군사 전문 채널이다. 중국 전통주 광고에 앞서 방영되는 ‘준쉬찌쉬(매일 군사 리포트)’는 제복 차림의 두 사관이 진행하는 뉴스 프로그램으로, 주로 군사 훈련 장면들이 방송되다가 마지막엔 갑작스럽게 엉뚱한 요리 장면 등으로 끝이 나곤 한다.

CCTV7의 저녁시간대 방송에서는 마치 SF영화에나 나올법한 세트에서 전투복을 입은 한 인물이 검은 색안경을 끼고 서서 전차 MBT-3000의 위력이나 전투기 청두J-20의 속도, 무인정찰기 리젠의 정확성 따위를 힘찬 목소리로 설명한다. 그리고 국방대학 전문가들이 나와 발언을 이어가며 동중국해에 위치한 댜오위다오 섬(일본명 센카쿠열도) 분쟁, 대만에 대한 미군의 무기 판매 등 지정학적 논쟁 속에서 중국이 지닌 군사적 야망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방송을 한다. 또한 지진이나 산사태 등의 재해가 일어나서 희생자 구조를 위해 수많은 군사들이 투입되는 경우, 이와 관련한 생방송 취재도 CCTV7이 맡고 있다. 또한 CCTV는 재정적 이유로 중국 내에서 유일하게 스포츠 행사를 중계할 수 있도록 허가된 채널이기도 하다. 지난 2010년 여름 있었던 월드컵 64개 전 경기가 CCTV에서 독점 중계 방송되었고, 당시 초당 평균 광고료가 12만 위안에 달해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인 바 있다.

한편 중국의 전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 프로그램으로는 시진핑 현 국가주석의 부인이자 가수인 펑리위안이 유명세를 얻은 계기가 되기도 했던 설 특집 방송 ‘춘지엔롄환완후이’가 있고, 이와 더불어 ‘티엔시아쇼창(진품명품)’을 손꼽을 수 있다. 티엔시아쇼창은 베이징TV 위성채널에서 매주 4회 방영되는 골동품 감정 프로그램으로, 2006년 4월 처음으로 방송됐다.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옥으로 된 조각상, 명나라 시대 청자 등을 품에 안고 줄지어 방송에 출연하면, 네 명의 전문가들이 앞에 와서 해당 소장품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면밀히 살펴본 후 감정을 내린다. 그것이 특별한 가치가 있는 골동품으로 판명되면 감정가와 함께 ‘국보’ 도장을 받게 되지만, 반면 보잘 것 없는 장신구 따위로 판명될 경우, 사회자 왕강이 소장품을 빼앗아 그 자리에서 망치로 부숴버린다. 참가자의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재미거리로 만들어 제공하는 셈이다. 이 프로그램은 영국 방송 ‘앤틱 로드쇼’의 중국판이긴 하지만, 영국 프로그램에서는 탈락한 참가자들이 원하는 경우 본명을 밝히지 않을 권리를 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글·조르단 푸유 Jordan Pouille
바벨 네트워크 회원. 베이징에서 활동.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어불문과 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