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가 분석한 입센
서퍼들이 스폿을 찾은 후에 함께 파도를 타듯, 프랑스의 공공 극장 책임자들 역시 함께 유행의 파고를 좇는 경향이 있다. 가령, 1970~80년대는 마리보의 시대였다. 파트리스 셰로의 음울하면서도 탁월한 연출이 돋보이는 <논쟁>(1973)이 그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의 마리보다주(Marivaudage:고답적으로 세련된 문체-역주)는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얼마나 자주 <가짜 하인>과 <사랑과 우연의 장난>을 보았으며, 그 장난이 설익은 계급투쟁이며, 무의식이 백작부인의 언술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왔던가.
그리고 베르나르마리 콜테스의 작품들과 함께 하이너 뮐러, 페터 한트케, 토마스 베른하르트 등으로 대표되는 ‘독일’ 모델에 대한 열광이 그 뒤를 이었다. 몇 년 전부터는 노르웨이의 헨리크 입센(1828~1906)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체호프와 경쟁하는 가장 인기 좋은 작가라는 사실에 덧붙여서. <인형의 집>, <헤더 가블러>, <욘 가브리엘 보르크만>, <민중의 적> 등 프랑스 국립극장 중에 입센의 극을 걸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들 정도다.(1) 게으른 극장 책임자들이 유행만 좇는다고만 볼 수는 없다. 그럼 왜 이토록 입센이 인기일까? 과거에도 입센이 인기가 있었던 때가 있었다. 1890년 앙드레 앙투안은 테아트르 리브르에서 <유령>을 공연했고, 오렐리앙 뤼녜포에는 <바다의 부인>을 올렸다. 같은 극이 양차 대전 사이 조르주 피토에프 연출로 다시 공연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브레히트와 베케트에 밀려 국립극장 무대에서 자취를 감춘다. 반면, 독일, 영국, 미국에서는 지속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렇다면 현재 프랑스에 다시 불고 있는 입센 열풍의 의미는 무엇이며, 다시 불러낸 그 입센은 누구일까?
지난 20년, 체호프와 함께
가장 인기있는 작가
입센의 예술가로서의 이력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처음에 그는 역사극 혹은 시극을 썼다. <브랜드>, <황제와 갈릴리인>, <페르귄트>는 모두 이 시기(1866~1873년)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이 젊은 작가는 일상의 반복과 영혼 깊숙이 숨은 열망 사이에서 균형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묘사했다. <사회의 기둥>으로 시작된 제2기(1880년대) 동안 입센은 <인형의 집>, <민중의 적> 등 사실주의 극들을 썼다. 제3기에 이르러 그의 작품세계는 상징주의로 기운다. <건축가 솔네스>, <우리들 사자(死者)가 눈뜰 때>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20년간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들은 대부분 2기와 3기의 작품들이다. 입센은 젊은 시절 쓴 세 편의 시극과 훗날 명작으로 인정받게 될 <페르귄트>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다른 길을 모색한다. 노르웨이를 떠난 그는 완전히 새로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는 서정적 장엄함과 서사적 야망에 작별을 고한다. 그는 1867년 12월 9일, 망명지로 선택한 로마에서 작가 비외른스톄르네 비외른손에게 보내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전쟁이 필요하다면 전쟁이 벌어지겠지! 만약 시인이길 그만 둔다면 나는 아무것도 잃을 게 없다네. 나는 사진 촬영을 시도해 볼 생각이네. 나는 이 시대의 사건들과 사람들을 하나하나 기록해 나갈 생각이네.” 젊은 시절 약제사로 일하기도 했던 그는 이제 새로운 약을 조제하기 시작한다. 이른바 현대 사실주의 부르주아 연극이다.
<사회의 기둥>(1877)에서 <우리들 사자가 눈뜰 때>(1899)까지 입센의 작품들은 확신에 찬 부르주아 계층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이야기한다. 세계는 변화하는 중이었다. 전통적인 가치들은 표류하기 시작하고, 변화의 소용돌이가 인간 존재와 사회 질서를 위협했다. 하지만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개인의 의지에 의한 것이었다. 입센은 무엇이 인생을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가를 질문했다. 그에게는 사실 앞에서의 정직함이야말로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첫째 조건, 지성인들의 내면적 의무라고 보았다. 인간 본성 속에 숨겨진 어둠은 밝혀져야 한다. 우리 삶 속의 장애물들은 그 정체를 파악하면 피해갈 수도 있다. 만약 사회가 사기와 위선이 판치는 곳이라면, 병을 진단하여 치료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입센이 노년기에 쓴 작품들 속에는 갈등을 겪다가 무의식적으로 타인의 삶을 짓밟게 되는 인물이 다수 등장한다. 욘 가브리엘 보르크만은 권력과 명예를 위해 사랑을 희생시킨다. 인생의 낙오자, 건축가 솔네스는 자신의 직업 속에서 ‘예술가’로 대접받기를 원한다. 헤다 가블러는 독립하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주변 사람들의 운명을 뒤바꿔버린다. 입센은 언제나 유전의 법칙을 믿었으며, ‘혼란스러운’ 정신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 그는 감상주의, 지배욕, 거짓말 등이 지배하는 가족관계 특히 형제, 부부, 부자 관계를 즐겨 묘사했다. 그가 종종 ‘연극계의 프로이트’라고 불리게 된 이유다. 실제로 프로이트와 다른 정신분석학자들은 이론을 형상화하기 위해 입센의 등장인물들을 사용했다. 일례로, 프로이트는 <로스메르스홀름>(1886)에서 근친상간 경험의 희생자라는 관점에서 레베카 베스트라는 인물을 분석한다.(2) 프로이트의 분석은 입센의 작품 수용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입센은 도덕주의자의 차가운 시선으로 한 발짝 물러서서 갈등을 묘사한다. 그에게 도덕이란 우리가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성을 갖춘 소수와 내면적 영웅만이 인류 가족을 더 높은 차원으로 고양시킬 자격을 지닌다. 민주주의는 다른 모든 통치 형태들처럼 실패했다. 정치, 사회, 종교계의 다수파는 결국 경직되어 버리고 손쉬운 조처들에만 의존하기 마련이다.
건전한 사회의 이면 폭로
오늘날에도 입센의 작품들이 반향을 얻고 있는 것은, 건전하고 안정적인 사회 이미지의 이면의 폭로, 개인의 해방을 위한 내적 투쟁, 은밀한 엘리트주의, 가족과 가족 로망스(family romance)의 중심성 등과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입센은 “실제 삶 속에서 우리들 앞에 펼쳐지는 것은 이념들 사이의 의식적인 투쟁이 아니라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인간적인 갈등이며, 승리하거나 패배하는 이념의 투쟁은 깊은 곳에 숨어있다네”(3)라고 썼다. 하지만 그의 가정은 상당 부분 시효를 다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상연된 <인형의 집>은 결혼·감옥에 대한 비판적 형상화로,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 여성 해방을 위한 글로 간주된다. 그러나 동성결혼, 한 부모 가족과 재구성 가족이 일반화된 오늘날 이 모든 것들은 다소 구식으로 느껴진다.
그럼에도 입센의 극 형식은 여전히 관객을 사로잡는다. 형식은 마지막까지 남는다.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이야기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들은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늘어놓는다. “입센의 내면적 혹은 ‘가족’ 드라마는 쓰지 않은 소설의 에필로그 같은 것으로서, 극적인 행동을 위한 필수적인 재료 혹은 영양분을 제공한다.”(4) 입센의 작품은 다음의 순서로 구성할 수 있다. 주인공을 강하게 짓누르는 과거를 하나 찾아낸 후, 거기에 질식할 것만 같은 우울한 가족을 덧붙인다. 그리고 의식의 돌출에 따라 진행하는 줄거리를 군데군데 심는다. 그러는 동안에도 저자는 계속해서 사실주의적 객관성을 유지하는 척한다. - 동시대인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1849~1912)의 작품들과 무척 대조적이다.
입센과 스트린드베리는 현대 연극의 기초를 세웠다. 입센으로부터 우리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상호작용, 명료한 구조, 극작가의 이념이 대변인 역할을 맡는 방식 등을 배웠다. 반면, 세기말의 작가 스트린드베리의 <죽음의 무도>(1898), <유령 소나타>(1907), <대가도>(1909) 등의 작품들에서는 성적 광기, 매끄러운 형식, 꿈의 권능 등을 배웠다. 스트린드베리는 <다마스커스로>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그의 작품들 속에서 “인물들은 분열하거나 증식한다. 희미해지거나 강력해진다. 용해되어 버리거나 재구성된다. 그러나 이들 모두를 지배하는 것은 최상의 의식, 즉 꿈꾸는 자의 의식이다. 그에게 비밀, 모순, 가책, 법칙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1925년 앙토냉 아르토는 그에게 경의를 표하며 <꿈> 공연을 올린다. 스트린드베리의 극들은 이오네스코가 한 말을 상기시킨다. “연극에서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 인물들에게 육체를 부여할 뿐 아니라, 불안과 내면적 현존을 구체화한다.”(5) 장폴 사르트르는 스트린드베리가 ‘자연주의’와 마찬가지로 “등장인물들의 주저하는 애매성을 통해 결정론을 피해간다”고 지적한다. “그가 우리의 스승인 이유다.”(6)
두 사람 모두 아서 밀러, 테네시 윌리엄스, 존 오스본, 해럴드 핀터, 캐릴 처칠, 사라 케인 등 앵글로색슨 극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에서는 왜 스트린드베리의 역작들보다 입센의 걸작들을 선택했을까? 내면의 유령을 가시화하고 욕망의 무질서한 약동을 묘사하는 스트린드베리의 극들은 관객에게 공포심을 유발하는 반면, 입센의 극들은 안심을 준다. 주류적 기법에 속하는 양식적 코드를 통해 주제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인물들이 펼치는 이야기, ‘사실주의적’ 줄거리와 주제에 덧붙여, 들오리, 탑, 바다 등 상징들을 동원해 사실주의에 시적 분위기를 부여한다. 한 마디로 좋은 시나리오다.(조지 셰퍼가 감독하고 스티브 매퀸이 제작과 출연을 한 영화 <민중의 적>을 보라) 훌륭한 작품임에는 틀림없으나 주제의식의 예리함이 다소 부족한 감도 없지 않다. 이를 정확히 파악한 토마스 오스터마이어(7) 같은 연출가들은 입센의 작품들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해냈다. 그는 자신의 극작가와 함께 지나치게 감정이 노출된 대목들을 삭제하고 결말을 변경했다.(<인형의 집>이 대표적이다) <리베라시옹>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입센의 작품들에서 “먼지를 털어냈”으며,(8) <민중의 적>에서는 ‘보이지 않는 위원회’의 <다가오는 봉기>를 인용하고, 극중에서 관객과 함께 정치가들의 냉소주의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스트린드베리의 대작들이었다면 시도하기 어려웠을 것들이다.
글·루이샤를 시르자크 Louis-Charles Sirjacq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리듬분석> 등이 있다.
(1) 2013~2014년 시즌: 파리 몽파르나스 극장, 스위스의 카루주 극장에서 <바다의 부인>, 콜린 극장에서 <물오리>, 르아브르의 볼캉 마리팀 극장에서 <노라 혹은 인형의 집> 상연.
(2) Sigmund Freud, <Inquiétante Etrangeté et autres essais>, Gallimard, 파리, 1988(초판 1919년) [지그문트 프로이트 저, 정장진 역, ‘두려운 낯설음’, <예술, 문학, 정신분석>, 프로이트 전집 14, 열린책들, 2003].
(3) 비외른스톄르네 비외른손에게 보내는 편지 Sigurd Host, <Henrik Ibsen>, Stock, 파리, 1924에서 인용.
(4) Jean-Pierre Sarrazac, <Théâtres intimes(내면 연극)>, Actes Sud, 아를, 1989.
(5) Eugène Ionesco, <Notes et contre-notes>, Gallimard, 파리, 1962. [외젠느 이오네스코 저, 박형섭 역, <노트와 반노트>, 동문선, 2003].
(6) Jean-Paul Sartre, <Un théâtre de situations>, Gallimard, 파리, 1992. [장폴 사르트르 저, 박형범 역, <상황극>, 영남대학교출판부, 2008].
(7) Thomas Ostermeier, ‘Du théâtre par gros temps(어려운 시절의 연극)’, <Le Monde diplomatique>, 2013년 4월호 참조.
(8) René Solis, ‘Ibsen fait débat chez Ostermeier(입센, 오스터마이어의 작품 속에서 토론을 벌이다)’, <Libération>, 파리, 2012년 7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