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시위자들, 교육 혁명을 추구하다
정치교육의 몇 가지 시선들
2011년,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자들은 교육 제도의 개선 없이는
혁명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교육 분야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개혁이 필요하다.
국가로부터 독립된 사립학교가 확실한 해결책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저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카이로 기지에 위치한 국제학교 미슬르 랭귀지. 자말레크, 모한데신, 마아디, 심지어 헬리오폴리스처럼 멀리 떨어진 동네에 사는 아이들도 입학하는 학교다. 2013년에는 영국이 주빈국인 축제를 맞아 아이들은 최고로 멋진 옷을 입고 연극과 스포츠를 한다. 완벽하게 손질한 헤어스타일에 셔츠, 청바지, 유명 브랜드의 옷을 차려 입은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하는 공연과 스포츠 경기를 뿌듯하게 바라보며 아이패드로 연신 촬영을 한다. 이 학교는 사립학교다. 바깥 풍경으로 피라미드가 잘 보이는 사립학교로 반마다 학생 수는 평균 30명 정도다.
이 정도면 적은 수다. 교실마다 넓고 깨끗하다. 학생들은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필요한 물품을 받는다. “아직 상황을 제대로 보시려면 멀었군요!” 제라르 스토케르 CM2(프랑스 초등 5학년 과정) 프랑스어 교사의 주장이다. 제라르는 사립학교는 비즈니스맨들이 이익을 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녀를 미슬르 랭귀지에 입학시키는 이집트인들은 의사, 비즈니스맨, 예술가 집안 사람들이다. 이들이 사립학교에 지불하는 학비는 집안 수준에 따라 매년 3555유로에서 4444유로다.(1) 이집트인의 법정 기본 봉급이 77유로(그나마 이 봉급이 권고사항이지 준수되고 있지는 않다)인 것을 감안하면 사립학교의 비용은 어마어마하다. 서민 이집트인들은 자녀들을 공립학교로 보낸다. 공립학교의 수업은 무료지만 교육 환경은 형편없다.
교육의 질 하락의 악순환
이에 대해서는 카이로에 위치한 슈브라 기술 고등학교에 다니는 어느 학생이 분명히 말해준다. 고등학교는 몇 년째 방치되어 있는 듯 문은 깨져 있고 빈 감자칩 박스들이 구겨진 강의 노트 종이들 옆에서 바닥 여기저기에 굴러다니고 학생들의 책상과 칠판은 낡을 대로 낡았으며 교실 벽은 녹색과 노란색 칠이 벗겨져 지저분한 모습이다. 기술 과목을 듣는 학생들과 낡은 교무실에 모여 있는 교사들만이 학교에 있었고 나머지 학생은 오늘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결석한 학생들은 개인 교사와 함께 기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학교 교사의 월급은 11유로(계약직 교사의 최저 월급)에서 28유로 사이라고 모함메드 자흐란 알 마타레야의 교사 노조장이 설명한다. 카이로에 있는 ‘비버리 힐즈’처럼 화려한 사립학교에서 화학 교사로 있는 피테르 라티프는 24살로 311유로의 월급을 받고 있다. “아주 잘 받는 거죠. 공립학교에 있을 때는 최대로 많이 받아야 33유로에서 55유로 사이였거든요.” 33유로, 은퇴한 지 1년 된 아랍어 교사 샤디아 하페즈가 1977년에 받았던 월급이다. 샤디아가 박봉에도 공립학교에 계속 남아 있었던 것은 남편이 가계를 책임지고 있어서 부담감이 덜해서였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그만두었을 것이다.
교사들은 월급이 충분하지 않고 일만 많은 학교에서 별로 책임감이 없고 대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개인 과외에 집중한다. 과외 수업료는 천차만별이다. 시간당 5유로를 받는 교사도 있고 그 이상을 받는 교사도 있다. 학부모들 역시 자녀 교육을 위해 전 과목의 전 단계를 과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자녀 교육에 등골이 휘고 기둥이 뽑혀 나갈 지경이다. 은퇴한 엔지니어로 우아함을 지니고 있는 파티마 부인 역시 앞서 언급된 여교사 샤디아 하페즈와 마찬가지로 이집트의 교육 제도가 어떻게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지를 분명히 말해 준다. “제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학교는 체계가 잘 잡혀 있었고 학생들도 교양과 예의가 있었어요. 음악 같은 방과후 활동도 했고요. 제가 다니던 탄타의 학교에는 피아노도 있었습니다. 과외가 등장한 것은 전쟁 전인 1972년부터입니다. 그 후로 공교육의 질은 계속 하락했고요.” 파티마 부인이 안타까운 듯 이야기한다.
이처럼 파티마 부인과 샤디아는 이렇게 교육의 질이 하락한 것은 역대 정치권 뿐만 아니라 교사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개인 과외 비용이 사립 학교 학비보다는 저렴하기 때문에 학부모와 학생들이 많이 몰린다. 따라서 일부 교사들은 과외가 학교 교사들의 일에 악영향을 주고 악순환은 계속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집트에서 개인 과외는 불법이지만 과외를 원하는 학생들이 꽤 된다. 실제로 학생 수는 많은데 이들을 수용할 학교 수가 부족하다. 학생 수가 많다 보니 한 반에 50명에서 70명의 학생들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심할 경우 한 반에 학생 수가 70명을 넘을 때도 있다. “학생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제대로 관리를 하겠습니까?” 피테르 교사가 반문한다.
우매한 국민을 원하는 정부
피테르는 헬루안 국립 대학교에서 4년을 공부하고 졸업했지만 2년째 일주일에 두 번꼴로 공립학교의 강의 보조교사 일을 하고 있다. “학교 돌아가는 꼴이 얼마나 말이 아닌지 믿기 힘들 겁니다.” 피테르가 흥분하며 이야기한다. 학생들은 앉을 자리가 없어 바닥 혹은 책상 앞 쪽에 앉아 있고 여름에 공기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탁하고 겨울에는 한기가 느껴지며 교실 분위기는 폭력적이라고 한다. 피테르는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할 때마다 얼굴 표정이 어두워진다. 교육 자체도 문제다. 학교 수업은 암기가 일상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법과 의견을 전개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자흐란과 무흐히트 교사도 비난한다. 이미 오래 전에 공식적으로 폐기된 이 같은 암기법이 여전히 성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는 국민이 똑똑해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래야 통제하기 쉬우니까요.” 이집트 교육 문제를 걱정하는 모든 교사들이 공통으로 내세우는 이야기다.
한편, 25살의 교사 소자나 사아드는 공립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 것이 다 나쁜 것은 아니고 좀 더 안정된 계약 기간, 안정적인 보험 혜택, 은퇴 시 받는 연금과 같은 장점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자나는 공립학교에서 일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연수 받는 동안 네 살에서 다섯 살의 어린이 70명 반을 여러 개 맡았는데 장난감이 충분하지 않았고 이 많은 아이들을 돌봐줄 교사가 두 명 밖에 되지 않았어요. 아이들을 이렇게 무책임하게 다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부끄럽습니다.” 이집트의 나름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소자나는 외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보통 영어, 불어, 아랍어 문어체를 마스터하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코란 학교들은 여전히 명성을 누리고 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코란을 배울 수 있고 여기서 가르치는 코란의 아랍어는 완벽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코란 학교들은 1970년대부터 부분적으로는 교육 기관으로 등록되었지만 아직 국가 정식 인가기관은 아니다. 따라서 코란 학교 교사는 공무원이 아니고 학부모들이 지불하는 비용을 받는다. 종교재단 와크프(2)와 이슬람 최고 학부 알 아즈하르의 이슬람 대학교(3)의 관리를 받고 있는 코란 학교들은 학생들이 국립학교, 혹은 20세기에 세워진 알 아즈하르 교육기관에 들어갈 수 있게 준비를 시켜 나중에 종교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실력을 키워주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다른 사립학교와 마찬가지로 코란 학교도 공립학교의 공식 교육 과정 프로그램을 기본적으로 따르고 여기에 종교 과목들을 추가하는 식이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이집트의 문맹자 수는 1700만 명이라고 한다. 글을 읽을 수 있는 남성의 비율은 83%에 비해 여성의 비율은 64%에 지나지 않아 여성 문맹률이 더 심각하다. 유니세프는 이집트에서 6~18세의 95.4%가 학교에 다닌다고 발표했다. 이 연령대에서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수치는 학생들의 결석률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유니세프도 이집트의 교육 질이 좋지 않은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기는 하다. 저자 린다 에레라가 연구진 뱅상 바테스티와 프랑수아 아레통의 도움을 받아 집필한 저서 <식민지에서 독립한 이후의 이집트에서>(Dans l'Egypte postcoloniale>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교육은 국가의 경제와 이데올로기를 수립하는 도구였다. 따라서 교육은 새로운 정부의 경제와 정치 해방의 목표와 직접 연관이 있었다. 교육 정책은 인적 자원 형성(교육은 개개인의 생산 능력 개선에 기여)과 정부 국가를 공고하게 하는 데 필요한 의식 형성, 범세계적인 의식 형성과 깊이 관련이 있었다.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1945~70)는 비동맹 국가 운동의 중심인물이었고 발전을 중심 문제로 끌어 올렸다. 이집트는 아랍 국가와 아프리카 국가에 초등학교부터 고급 과정까지 교육을 보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4)
‘더 나은 교육'을 향한 열망의 집약
파티마 부인은 교육을 대중화시킨 나세르 대통령을 그리워했고 모함메드 무르시 전 대통령이 2013년 7월에 권력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교육 개혁을 미처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한다. 소자나와 피테르는 좀 더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두 사람은 2년 전에 권좌에서 쫓겨난 호스나 무바라크 대통령의 예를 잘 기억하고 있다. 학교 건설, 교사 교육, 남학생과 여학생의 동등한 교육, 교육 프로그램 개정, 교육을 위한 계속적인 예산 증액 등 무바라크는 교육에 대한 나름의 개혁을 실시했다. 1981년에 정권을 잡은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집트의 교육 수준을 세계 기준에 맞추고자 1989년부터 개혁을 실시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여학생의 취학률이 2004년에 98%까지 오르긴 했으나 교육 개혁은 충분하지 않았다. 유엔, 세계은행, OECD 등의 압력으로 가장 혜택을 입은 것은 이집트 소녀들이었다. 하지만 국제 사회의 개입은 이집트의 정체성을 해치려는 불손한 간섭으로 취급받을 때도 있었다. 이집트도 개혁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개혁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2011년 1월 혁명이 일어나기에 앞서 교사들이 시위와 파업을 벌였다. 이후로 교사들의 시위와 파업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났다고 모함메드 자흐란이 설명한다. 모함메드는 2012년에 44일 동안 교육부 장관의 사무실 앞에서 연좌데모를 조직했고 이후 10일 동안 단식 투쟁을 한 바 있다. “이 같은 시위와 파업을 통해 저희들의 요구를 언론을 통해 알릴 수 있었고 이제 교사들은 자신의 권리에 대해 인식하고 있고 용기를 내어 권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모함메드가 이끄는 전교조 교사는 수천만 명에 이른다. 모함메드는 국민의회 선거에 후보로 나섰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모함메드는 특정 정당이나 부처에 소속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으며 부정부패 및 공공 기관들의 끈끈한 유착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무르시 대통령이 주요 공직에 ‘무슬림 형제들’의 멤버들을 앉힌 불공정한 처사에 대해 비판한다.
메누피야 지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모함메드 알 후세이니는 교사들의 권리를 높일 수 있도록 소셜 네트워크에서 열심히 조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 덕분에 교사들의 초봉이 50% 인상되었고 기타 다른 수당도 인상될 예정이다. 무르시 대통령 내각에서 교육부 장관으로 있던 이브라힘 고네임 장관은 실제로 무슬림 형제들의 지도자가 내세운 ‘르네상스’ 프로그램에 따라 교육 관련 예산을 늘리고 새로운 정책들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평등한 교육 기회 보장, 학교 건설, 예산 두 배 증액, 문맹률 퇴치, 분권화가 무르시 대통령이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던 개혁조치들이다. 교사이자 국립 교육 연구소의 연구원인 카말 무기트가 이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한다.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앞서 소자나와 피테르가 했던 평가와 일맥상통한다.
2010년 유엔 개발프로그램의 보고서는 이집트에서 고용주 40%가 직원이 직업에 필요한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결과를 발표했고 고네임 장관은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고자 학생이 고용 시장에서 동떨어지지 않고 사회에서 필요한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을 개혁하자는 제안을 했다. 민간 기업의 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교육을 바꾼다는 의미일까? 그러나 카말은 2011년의 일을 상기하며 설명한다. “타흐리르 광장에 나와 혁명을 원하던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질문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젊은이들이 제일 먼저 원하는 것은 부정부패 척결과 더 나은 교육이었습니다.” 2013년 7월에 새로운 혁명이 일어났고 무르시 대통령은 군사 쿠데타로 축출되었다.
글·와르다 모함메드 Warda Mohame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이집트, 아랍 세계’에 관한 기사를 담당하고 있다.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한불상공회의소 격월간지 <꼬레 아페르> 전속 번역. 번역서로는 <엔돌핀 경영> 등이 있다
(1) 2013년 4월 말, 1유로는 9이집트 파운드였다.
(2) 한 개인의 영구 기부로 유지되고 정부가 관리하는 자선단체.
(3) <현재의 이집트>(L'Egypte au présent)를 참조할 것(방생 바테스티, 프랑수아 아레통, Sinbad Actes Sud, 파리, 2011). 린다 에레라의 저서는 이 책에서 일부 정보를 자료로 삼고 있다.
(4) 엑스 마르세유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시아라 디아나의 연구자료를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