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지, 지향점은 어디인가

장하준이 말하는 복지

2013-10-14     장하준


우리나라는 뭐든지 했다 하면 세계에서 1등 아니면 2등이다. 고도 성장기에는 세계에서 경제성장률 1,2위를 다퉜고, 지금도 국제학력평가에서 세계 1-2위를 누비며, 또한 기능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휩쓸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반대쪽으로도 1-2등을 많이 한다는 점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간 노동시간이 세계 1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사이에서도 줄곧 1등을 하다가 최근에서야 멕시코에 그 자리를 물려주었다. 구체적 통계수치로 볼 때는 여전히 남녀 임금격차, 저출산율, OECD 회원국 내 자살률 등은 세계 1위이고, OECD 회원국 내 고용안정성과 복지지출비율은 꼴찌에서 2위에 올라있다.

꼴찌에서 1~2위에 오른 것들은 사실 다 연계돼있다. 출산율이 낮은 것은 육아 및 보육 복지가 제대로 안된 탓이고, 자살률이 높은 것은 일자리 불안 탓이다.  이 같은 통계를 보면 ‘복지’라는 키워드가 상당히 중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 공공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 정도이며, 가장 최근 국제비교가 가능한 OECD 자료에 따르면 9.4% 수준이다(2009년 자료기준). 이 수치는 복지지출이 8%선인 멕시코 덕택에 겨우 꼴등을 면한 수준이다. 멕시코의 국민소득은 우리나라의 반도 채 안 된다. 사실 멕시코는 OECD 회원국이 될 수도 없는 나라지만, 미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 즉 나프타(NAFTA)의 같은 회원국으로서 어떤 정치적 목적으로 넣어줘서 들어간 나라가 아닌가? 2009년 기준으로 OECD 회원국들의 평균 복지지출은 GDP의 22%다. 우리가 흔히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OECD의 초기 16개 회원국들은 평균 복지지출이 GDP의 25%에 달한다. 특히 북유럽 나라들 가운데,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등 몇몇 국가들은 30%를 넘는다.
 
복지 지출을 안한다고 알려진 미국만 해도 19-20%이다. 우리나라에 미국 따라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미국을 따른다면 우리나라 복지 지출을 배로 늘려야 할 것 같다. 앞으로 노령화가 연금과 의료비지출이 많아지면, 지금 수준을 유지할 수가 없다. 노령화에 대처하는 비용만 늘린다고 하더라도 복지지출이 늘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가 생각하는 선진국 수준의 복지를 하려면 복지지출을 GDP 대비 25%로 써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10% 수준이다. 이게 우리나라 복지의 현실이다. 작금의 상황은 서민의 삶이 한계치에 달했다는 거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시장 개방과 함께 자율화의 미명 아래 약자보호법들이 없어지고, 고용은 계속 불안한데, 많은 사람들이 영세 자영업을 힘겹게 하거나 계속 카드 돌려막기를 하면서 살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은 점점 망해가고 가계부채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갔고, 삐끗 잘못하면 정말 아무것도 기댈 데가 없는 신세로 전락할 상황이다. 자살률이 세계 1위에 달할 정도로, 거의 모든 국민이 스스로를 불행하게 여기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10년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자살률은 사망 10만 명당 28명으로, 2위인 일본의 20명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됐나. 물론 자살로 모든 걸 판단할 수는 없지만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나는 더 평등한 사회에 살고 싶고, 우리 국민들이 행복해지면 좋겠다. 이제 우리나라는 복지제도를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성장도 안 되는 단계에 왔다. 보수언론의 얘기대로 주판알을 튕기며 경제성장을 따지고, 먹고 사는 문제를 논하기에는 작금의 상황이 심각하다.  

보편적 복지의 요지는 ‘공동구매'
 
우리나라는 현재 복지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이해와 사회적 합의가 부재하다. 얼마 전 정부에서 연 7000만원을 버는 사람에게 몇 십만 원의 세금을 더 부과한다고 발표했는데 이에 대해 국민들이 격한 반발을 하는 모습은 이러한 ‘세금에 대한 이해’와 ‘합의’가 부재한 탓으로 보인다. 이번 세금 조정안(증세)에 대한 임시적 발표는 우리나라 복지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대한 합의가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없던 일이었다. OECD 평균에서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닌 미국 수준의 복지지출만 따라가려고 해도 현재 우리나라 복지 수준을 두 배로 올려야 하는데, 현 상태에서 증세 없이 복지강국들의 수준을 따라잡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현재 국민들의 세금에 대한 개념은 비뚤어진 채 형성돼 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그러한 경우가 종종 있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심각해 보인다. 조금의 비약을 가미한 유머를 보태자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정부가 세금을 걷으면 그 돈을 어디 묻어버리든지, 바다에 빠뜨리든지 또는 태워버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지금껏 정부가 해왔던 허술한 행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잘 살펴보자. 세금은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재원이고, 우리 노후의 연금이고 의료보험이며 우리가 밟고 다니는 길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가끔 그런 사실들을 망각한다.

나는 보편적 복지를 주장해왔다. 보편적 복지의 요지는 ‘공동구매’다. 연금, 의료 등 사회적 서비스를 공동구매해서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는 제약회사에서 기껏 약을 팔아봐야 그 양은 고작 10만 명분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한꺼번에 약 3500만 명분의 약을 산다고 하면 제약회사로부터 큰 폭으로 할인받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요새 유행하고 있는 ‘쿠팡’이니 ‘위메프’니 하는 중간 판매자를 경유해, 우리가 상품의 반밖에 되지 않는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보편적 복지는 바로 이러한 시스템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바로 월마트가 덩치를 키워 단가를 ‘후려치는’ 방식으로 성공한 원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비용을 절약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보험이다. 이렇게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게 되는 것은 물론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많은 부분을 복지로 해결할 수 있다.

특히 앞서 밝혔듯이 세계에서 1-2위를 다투는 노동시간에 있어서도 그렇다. 복지국가로 가려면 우선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공식 통계상 연 2100시간, 실제로는 연 2500시간을 근무한다. 이러한 통계치는 OECD 가입 국가들 중 최장 노동시간에 해당한다. 유럽인들의 노동시간은 1500~1700시간인데 이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엄청나게도’ 일하는 셈이다. 후진국들은 이런 통계를 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데다 농민들이 많아서 정확히 누가 몇 시간 일했는지 알기 힘들어 뭐라 말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가 산업화된 나라들 중에서는 노동 시간이 세계최장이라는 건 분명하다. 이러한 ‘고달픈’ 현실에서 벗어나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우리에게 복지국가는 절실히 필요하다. 결국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정부가 제공하는 복지 서비스는 우리가 돈을 오른쪽 주머니에 넣고 쓰느냐, 왼쪽 주머니에 넣고 쓰느냐 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오히려 정부에 내는 세금이라는 방식으로 인해 우리가 개별적으로 더 비싼 금액을 주고 구매하는 부분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메커니즘을 얻을 수 있고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사회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가장 위험한 것은
세금을 부담으로 여기는 일

이러한 복지의 ‘맛’을 알지 못한 채 우리가 가지는 인식 중 가장 위험한 것이 세금을 ‘부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담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가 이끌어가고자 하는 복지논쟁에서 패하고 만다. 무조건 세금이 낮은 게 좋을까?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스웨덴은 세율이 아주 높다. 스웨덴에서 살면 일반적으로 소득의 50~60%를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영국은 또 어떤가. 무려 45%를 납부한다. 그러나 자메이카에 가면 소득세율이 평균 5%다. 그런데 왜 스웨덴 국민, 영국 국민 모두가 자메이카로 이민가지 않을까? 그 나라는 세금을 적게 걷는 대신 정부서비스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다. 국민이 걸어 다니는 길 하나 제대로 닦여있지 않고 공무원 월급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못해 행정 서비스도 온전히 돌아가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학교 교육의 질이 낮아 그와 곧바로 연결되는 노동력의 질조차 낮아졌고 생활의 기본이 되는 전력 공급 역시 엉망이라 정전은 일상이다. 현재 한국은 선진국 말석에 간신히 앉아있는 형국이다. 보통 우리가 선진국으로 생각하는 나라들의 연평균 소득은 대개 3만5천 달러에서 4만5천 달러 사이인데 비해 우리나라의 연 평균 국민소득은 2만 달러 정도이다. 국민소득을 더 올리는 데 있어 이제는 더 이상 옛날 1960~70년대 방식으로 많이, 오래,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그 차이를 메우기 어렵다.

이제는 ‘열심히’, ‘많이’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구조 자체를 고도화하여 경쟁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복잡해진 기술을 습득시키는 노동자의 재교육과 재취업의 순환이 굉장히 중요하다. 예전에는 봉제공장에서 일하다 신발공장으로 이직하려면 2~3주의 재교육 과정으로도 충분했으나 이제는 어림도 없는 일이 돼 버렸다. 앞으로 10여년 내에 우리나라 조선 산업과 철강 산업은 사양 산업의 길을 걷게 될 텐데 여기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앞으로 나오는 전자, 생명공학 등 신산업 현장으로 옮겨가려면 2~3주는커녕 3개월 정도는 교육을 받아야만 이직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이는 역으로, 한번 실직하게 되면 그 대가가 너무 크다는 얘기가 된다. 직장을 잃으면 실업보험이 지급되는데 고작 5~6개월 동안, 생활하기 힘든 최저 수준의 금액을 받을 뿐이다. 예를 들어, 스웨덴이나 핀란드 같은 나라는 실직이 되면 최대 2년까지 자기 월급 60-70%의 실업급여를 보장받는다. 이밖에도 기본적으로 의료 및 교육을 함께 보장받는다. 이직의 위험 불안이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재취업을 위한 제대로 된 교육 시스템과 생활 보장이 갖춰져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재취업에 대한 위기의식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전 국민의 보수화가 진행되는 것 또한 이러한 이유에서다.

사회 안전망 부실로 인한 부작용 심각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모두 의대, 또는 법대로 가려고 한다. 당장 지금, 젊은이들은 부모세대가 평생직장으로 믿고 열심히 다녔던 직장에서 해직되고 치킨집 등 자영업으로 전환했다가 장사가 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모습을 봐왔으니, 그들의 희박한 도전정신과 ‘소박한 꿈’만을 탓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의사’라는 직업이 굉장히 중요하고 좋은 직업인 것은 맞지만 우리나라 같이 상위권 성적 학생 80%의 적성이 ‘의대’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예전이라면 전자공학이나 생명공학을 공부해 우리나라 기술혁신에 이바지하고 있을 젊은이들 대부분이 인턴과 레지던트를 하는 현실이다. 이는 국가적 입장에서 좋은 일이 아니다. 특히 박근혜정부는 창조경제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러한 실직의 비용으로 인한 기술혁신에의 저항은 국가적으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선진국들과 경쟁을 하고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개선된 복지제도가 필요하며 이러한 경제구조의 업그레이드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취약한 복지 제도로 인해 초래되는 사회적 부작용 중 다른 하나는 현저하게 떨어지는 계층 간 이동성이다. 사회 계급구조가 고착화되지 않은 예전 시절에는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어려운 환경에 태어나서도 위로 올라가는 즉 ‘개천에서 용 난다’는 일이 가능했다. 70년대 초중반만 해도 흔히들 하는 얘기가 “집이 가난해야 열심히 공부해서 애들이 성공하지”라고들 말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안다. 이러한 현상은 능력 있는 사람이 그에 맞는 자리에 배치가 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타고난 능력이 좋아도 여러 사회적 장벽 때문에 자기 능력에 맞는 자리에 올라가지 못한다. 계층 간 이동을 위해 교육에 대한 과잉 투자를 하게 되고 그조차 받지 못하면 본인의 능력으로 어떤 벽 이상을 뚫고 올라가는 일이 불가능한 현실이다. 어느 선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하면 너무나 괴로운 생활을 해야 하는 현실, 즉 사회적 안전망의 부실이 이러한 과잉투자를 부추기고 있다.

이렇게 부모 능력보다 넘치게, 힘들게 교육에 투자하는 것 역시 전 국민적 차원에서 낭비다. 한두 명에게만 과외를 시키면 과외를 받은 아이들이 잘 하지만, 다 같이 과외를 받으면 결국 다 똑같아진다. 극장에서 안 보인다고 한두 명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면 모든 사람이 일어서서 봐야 하는 현상과 비슷하다. 모두가 일어나서 화면을 보면 결국 다른 사람도 다 일어나서 보기 때문에 화면이 보이는 건 똑같이 돼버린다. 안타깝게도 다리는 더 아프다. 다 같이 앉아있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하나 둘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불안하니 모두가 일어서고 함께 다리만 아파지는 것이다. 사회적 안전망의 부족으로 일어나는 부작용은 이뿐이 아니다. 세계 최저를 자랑하는 출산율, 육아, 교육, 여성의 출산 육아 후 직장 복귀 문제 등이 심각하다. 복지 시스템이 잘 갖춰진 북유럽의 경우에는 아이를 낳으면 유급 육아휴직을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2년에서 4년까지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본인이 원하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것도 가능하다.

출산 때문에 본인이 일하는 분야에서 치명적인 불리함은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단순히 소득 수준만 고려하면 우리나라보다 아이를 덜 낳을 것 같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우리나라보다 출산율이 훨씬 높다는 점이 눈에 띈다. 사회적 복지가 기본적으로 제공된다는 점이 출산율에 끼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최근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분야가 국제적으로 개방되고 그로 인해 세계화도 급속히 진행 중이다. 이것은 외부의 충격에 더 민감해지는 환경이 된다는 말과도 같다. 현재 일하는 직장에서 본인 의지와 다르게 해고되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충격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도 앞서 밝힌 복지, 국가에서 제공하는 안전망이 확충돼야 하고 그 혜택은 누구나 공평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는 우마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에서 시속 80km를 달리는 자동차를 타는 시대가 됐다. 그 시절에는 필요가 없던 교통규칙과 신호등이 필요해졌고 브레이크와 안전 에어백 역시 필요해졌다. 차들이 빠르고 강해졌으니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가 일어나 생명이 위험해진다. 마치 우리 한국경제가 그러한 모습이다. 급변한 경제성장에 맞춰 안전벨트도 필요하고 성능 좋은 브레이크도 필수로 장착돼야 한다. 그래야 더 과감하게 운전해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  한국 경제는 엑셀 성능은 좋지만 브레이크가 장착되지 않은 차와 마찬가지다. 그래서 모두 조심조심하며 안전운행만을 고수하고 있고 과감한 질주는 시도할 수 없다. 그래서 앞서 밝힌 것처럼 직업선택의 폭이 보수화되고 벤처기업도 성장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자칫하면 파산할 가능성이 있고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가능성 다분한데 그에 받쳐주는 안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도전을 꺼리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결국 내가 앞서 제시한 모든 이야기는 결국 ‘복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강조하기 위한 사례들일 뿐이다.

세금을 얼마 더 걷느냐, 대통령이 내세운 공약을 얼마나 지켰느냐 등의 논쟁도 중요하지만 지금 시급한 것은 앞으로 1~2년 내에 복지 개발에 대한 방향을 설정하고 30~40년 동안 진행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되고 그에 맞는 목표와 계획을 설정하고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가장 시급하게 다뤄야 할 사항이다.
그 방향이 정해지지 않으면 최근 보이는 것처럼 계속 복지문제가 정파 싸움의 볼모가 될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한 것이고 그 과정에 집권하는 정부의 성격이 바뀌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한 가지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목표와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다면 국가 재정 상황이 어려워 복지 혜택의 정도에 변화가 있더라도 납득하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 지금은 우리가 함께 볼 수 있는 방향, ‘길’이 없기 때문에 “왜 모두 준다고 했다가 70%만 주느냐”, 혹은 “이러다가 차후에는 아예 지급 안하는 것 아니냐”하는 등의 불만과 불안이 쉽게 터져 나오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당장 시급한 것은 복지 방향 설정

우리가 버스를 탔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버스에 종점이 없다. 버스가 가다가 갑자기 서면 이 버스가 앞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여기 그대로 멈춰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종점을 정해둬야 지금 잠시 멈춘다고 해도 언젠가는 종점으로 가는 버스라는 확신이 있을 것이고 불안하지 않을 것이다. 1~2년 만에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게다가 복지라는 것은 돈만 쓴다고 되는 게 절대 아니다. 설사 우리나라 국민의 마음이 갑자기 확 바뀌어 내년부터 우리가 세금 40%를 납부할 테니 복지를 대폭 늘려 달라고 해도 그렇게 갑자기 확 늘릴 수가 없다. 아동 보육이나 노인 돌봄, 정신 질환자 요양소 같은 것을 운영하려면 전문 인력이 엄청나게 필요하고, 그런 인력을 양성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복지사 훈련은 물론 여러 가지 교육, 의료 등을 담당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하고 훈련시키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도 10년, 20년이 지나야 제도가 정착될 수 있다. 그래서 바로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며 이러한 인력을 점진적으로 늘려나가 ‘복지국가’를 향한 시동을 당장 걸어야 한다.

나는 항상 접근은 점진적으로 하되 과감한 복지국가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나의 주장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많다. 소위 진보진영에서는 “우리나라는 본래 우파 헤게모니가 너무 강해 복지를 하기에는 힘든 환경이다”, 또는 “당신은 스웨덴, 핀란드의 복지를 말하는데 어떻게 인구가 1000만도 되지 않는 작은 나라를 우리와 비교해서 가능성을 논하느냐”고 말한다.

첫째로, 복지가 우파나라여서 안된다고? 아니다. 복지 제도를 처음 만든 게 유명한 우파정치인 비스마르크다. 그는 1871년 산재보험을 도입하고 5-6년 후에 노령연금을 도입했다. 오히려 20세기 초반에는 많은 좌파정당들이, 복지제도라는 것은 우파정책이라고 싫어했었다. 그때는 많은 좌파정당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할 것을 바랬고 혹여나 복지제도가 구축되면 노동자의 혁명 의지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앞섰기 때문이다.
둘째로, 나라의 크기, 인구수를 기준으로 말하면서 우리나라와는 다른 환경이라는 것을 복지를 할 수 없는 이유로 강조하는 경우 역시 말이 되지 않는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인구가 우리나라 인구의 5분의 1밖에 안된다며 그 나라의 복지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말하는데, 그러한 논리라면 우리보다 인구가 다섯 배는 많은 미국에서는 어떻게 복지를 배우겠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결국 이러한 이유들은 복지를 ‘하기 싫으니까’ 억지스럽게 내놓는 핑계에 불과해 보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나라들이 처음부터 화해하고 타협하면서 산 나라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스웨덴이라는 나라는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매우 우파적이고 사회갈등이 심한 나라였다. 그 과정에서 사회당은 ‘주요 생산수단 국유화’라는 강령도 포기했고 재벌은 내부 개혁을 하면서 양측 서로가 뼈를 깎는 타협과 노력을 했다. 이는 193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거의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동안 온갖 정치·경제적 논쟁과 대립 속에서 치열하게 형성된 산물인 것이다. 또한 스웨덴은 정부의 규모면에서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지출이 6%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작아도 너무 작은 정부였다. 게다가 1920년대 세계에서 최고의 파업률을 기록한 이력도 있다. 세계에서 노사관계가 가장 험악했던 나라가 스웨덴이었다. 지금은 소득세가 50~60%에 육박하는 그야말로 ‘소득세 왕국’이지만 1932년 사회민주당이 처음 집권하면서 그때 처음으로 소득세를 도입했다. 세금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었던 미국도 1913년에 소득세를 도입했고 영국은 거의 100년 전이던 1842년에 소득세를 도입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의 복지강국 스웨덴은 1932년에야 도입을 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운 일이다. 중요한 사실은 그러한 나라였는데도 불구하고 1930년대 노사대타협을 통해 복지국가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핀란드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더 심각한 갈등 속에서 어렵게 복지국가를 만들어냈다.

쉽게 이룬 것은 없다. 기본적인 환경이 좋아서? 국민 인식 수준이 높아서? 절대 아니다. 많은 어려움과 갈등 속에서 만들어왔고 우리나라도 안된다고만 말하지 말고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을 이미 해낸 이력이 있다. 1960년대 초,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채 100달러도 되지 않았지만 빠른 시간 안에 2만 달러 시대를 이룩했다. 나라라고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작은 나라 가나의 국민소득 40%밖에 되지 않던 나라가 한국이다. 그런 우리나라가 1960년에 와서 그 당시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법한 휴대폰이라는 물건을 생산해내고 그 상품을 세계로 수출하는 세계적 1~2위 수출국가가 됐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했겠는가. 복지도 그렇게 하면 된다. 물론 스웨덴, 핀란드 등의 북유럽 국가의 모델을 무조건 따라하자거나, 그렇게 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우리나라는 너무 지평이 짧고 국민적 상상력이 제한돼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스웨덴식 복지환경을 부러워하면서도 우리나라에 적용하기는 너무 먼 이야기, 비현실적인 이야기라고만 느끼고, 세금을 몇 만 원, 몇 십 만원 더 올리느냐 마느냐로 온 나라가 떠들썩해진다. 우리는 앞으로 40년을 보고 논의해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합의를 바탕으로 시작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것은 우리사회의 미래, 우리 자식들의 미래가 걸린 문제, 우리나라의 정체성이 달린 문제다. 이러한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어떻게 해서든지 앞으로 2~3년 내에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우리 한국이라는 버스가 가려하는 종점과 노선을 정확히 하길 간절히 바란다. 이러한 합의가 바탕이 된다면 우리도 30~40년 내에 복지선진국이 되고 국민의 대부분이 사회적 안전망의 품속에서 어떤 일이든 다양하게 도전하고, 생계를 위협하는 불안으로부터 떨지 않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정리•공은비

이 글은 지난 8월 13일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장하준 교수가 프레시안의 협동조합 전환을 기념해 ‘그래도 복지다'를 주제로 특별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주최 측 프레시안과 부키 출판사의 협력을 받아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