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게이 시크릿

2013-10-16     로맹 응엔 반

알란 홀링허스트의 소설 <이방인의 아이>에 등장하는 시인 세실 발란스는 매력적이고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남성으로 젊은 여성 다프네와 사귀었고 그녀의 수첩에 시 한 편을 지었다. 사실, 세실은 다프네의 오빠인 조지와 동성애를 즐기고 있었다. 당시 영국 시골에서 동성애는 범죄였다. 세실은 얼마 후 전쟁에 나가 전사하게 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세실의 시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게 된다. 그의 시는 전장에서 사망한 영국 남성들을 추모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되짚어보는 의미를 주게 된 것이다. 1980년대, 전기 작가를 꿈꾸던 평범한 은행원이었던 알란은 <이방인의 아이>를 통해 귀족의 성생활, 그리고 묘지에 묻힌 등장인물들이 생전에 가진 비밀들을 파헤치게 된다.

<이방인의 아이>는 텍스트만으로도 과거의 진실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대사들이 산문으로 절제미를 뽐내며 간혹 에로틱한 장면들이 등장해 짜릿함을 준다. 전작 <수영장-도서관>, <아름다움의 기준선>에 이어 <이방인의 아이>에서 남성 동성애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린다. 알란은 특정 장르의 작가로 갇히는 것을 싫어했지만 그의 작품은 공통적으로 남성 동성애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알란은 테이블 밑에서 비밀스럽게 다리를 비비며 애정을 표시하는 등 당시 이성애와 가부장이 지배하던 영국에서 몰래 동성애를 즐기던 사람들을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20세기 영국의 동성애를 테마로 다룬다. 뿐만 아니라 1970년대 ‘영국식 게이 정신’과 2004년에 통과된 동성애 혼인법의 결과도 다룬다. 알란은 이런 식으로 마이너인 동성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한 귀족과 부르주아 계급의 뿌리 깊은 위선적인 편견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이방인의 아이>는 책, 시, 혹은 몇 마디의 글로 삶이 달라지는 세상을 문학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알란은 문학이 후세까지 남으려면 어떤 요소를 갖추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한다. 또한 <이방인의 아이>에서 제1차 세계대전 시기를 산 영국 시인들이 가진 풍부함을 여러 페이지를 할애해 다루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192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 게이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상류층 유명인들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 지금은 거의 잊혀진 작가들이지만 이 소설에서 다시 살아난다. 애국의 상징이 된 시를 주로 짓고 전사했으며 세실 발란스가 동경하는 모델이었던 시인 로버트 브룩, 소설가 앵거스 윌스, 자기중심적인 시인 이디스 시트웰, 사진작가 세실 비튼 등 영국 동성애 아이콘 문학가와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