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 작품에서 드러난 사회적 아비투스

피에르 부르디외의 '마지막 강연'

2013-11-08     피에르 부르디외

 

 

화가 에두아르 마네는 19세기 말, 국가의 강요를 덜 받는 새로운 형식과 기법으로 예술가 스스로 아카데미 미술을 전복시킨 미적 혁명의 화신이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2년동안 마네의 작품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제도화한 예술의 관료성을 비판하고 예술과 사회의 밀착된 관계에 대해 강의했다. 부르디외의 강의는 11월 7일 <상징혁명,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1998~2000)>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다.
이 강의록의 출판을 계기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일부를 독점 게재한다.

     
 
여러분께 성공적 상징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혁명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혁명 자체와 특이점 그리고 혁명을 불러일으킨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보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상징혁명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상징혁명들이, 특히 성공을 거둔 경우, 유별나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우리가 상징혁명을 인식할 때마저도 그 상징이 만들어낸 구조들을 통해서 인식을 하게 되므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가장 어려운 일이지요. 달리 말씀 드리면, 큰 종교혁명들과 마찬가지로, 상징혁명은 인식 구조에, 그리고 가끔 어느 정도는 사회 구조에 커다란 변혁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상징혁명은 성공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인식 구조를 강요하게 되고, 이 인식 구조가 보편화되고, 전파되어 한 사회의 인식 주체 전체를 지배하므로 결국 자신은 인식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식 카테고리와 평가 카테고리, 그러니까 우리가 현상들과 세계 자체를 이해하는 데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카테고리들은 성공한 상징혁명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이러한 상징혁명에서 비롯된 현상은 당연시 되는 것이지요. 너무나 당연시돼서 마네 작품들이 야기한 스캔들 자체가 놀라움 아니면 스캔들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달리 말씀 드리면, 우리는 일종의 전도 상태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소방관’ 회화와 국가 예술
 
프랑스 제2제정(1852~1870) 하에서 마네가 혜성처럼 나타났을 때, 프랑스는 국가예술이라는 것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미술국전, 학술원, 미술학교, 박물관 등. 요컨대 국민의 취향을 관리하는 관료적이랄까 하는 하나의 시스템이 있었습니다.(1) 이 일체화되고 아카데믹한 제도의 활동은 영예로운 일련의 콩쿠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콩쿠르는 매년 일등 수상자에게 로마에 있는 메디치스 빌라 체류권을 주는 그랑프리 콩쿠르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콩쿠르의 논리는 시스템 전체를 통제합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프랑스 입시준비반 시스템처럼, 집단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집단들을 또 재생산해 내는 시스템들의 모든 특성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2)
 
화실과 신고식

화실에 새로 들어온 신입생은 신고식을 거칩니다. 그 신입생은 이른바 ‘입실신고’ 명목으로 브리오슈 빵과 음료수로 돌려야 했습니다. 쥘리앙 아카데미의 경우 학생들은 학급당 18명에서 25명 정도이고 8시 또는 9시부터 16시까지 학습하는데, 이것 또한 독재적 학교교육기관들의 특징이며, 이 학교교육 기관들은 학교 교육식 습득에 중점을 둔, 매우 집중적 학습을 강요합니다. 서열 순위는 어디나 따라다니며 나타납니다. ‘회계’라고 불리는 학생이 있는데 이 학생은 학생 중에서 선발되었고, 석고상 또는 실체가 될 수 있는 모델을 그릴 때 자기가 좋아하는 위치를 선택했던 반면에, 다른 학생들은 콩쿠르 시험에서 거둔 각자의 성적순위를 기준으로 정해진 위치들을 차지했습니다.

매우 중요한 점은, 입시 준비반에서와 마찬가지로, 서열 순위가 매순간 매겨진다는 것입니다. 모든 학생들은 서열 순위에 따른 자리에 앉습니다. 예를 들면, 모델과의 거리는 전 주의 시험에서 나온 ‘순위’의 표현이 됩니다. 서열 순위에 대한 이러한 주의 환기는 경쟁심에 대한 끊임 없는 주의 환기인 것입니다. 쟝레옹 제롬, 레옹 보나, 구스타브 모로, 윌리앙 부그로와 같은 당대의 거물급 교수들이 정기적으로 화실에 들르곤 했습니다. 당시의 수많은 풍자화들을 보면 한 교수가 학생과 토론을 하거나, 가끔은 그 학생 자리에 앉아 작품에 수정을 가하거나 충고를 주는 모습들을 담고 있습니다. 교수들은 옷을 잘 차려 입은 신사들입니다. 보헤미안 풍의 떠돌이 화가(3)와 완전히 다르죠. 제롬이 주던 충고사항 중에, 청결 지상 명령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붓을 아주 정성스럽게 빨아야 합니다’, ‘물감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등이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미학은 윤리와 어떤 관련이 있으며, 절약의 윤리, 엄밀의 윤리, 성적인 의미와 동시에 윤리적 의미가 내포된 청결의 윤리가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특히 마네의 그림은 더럽거나 또는 쉬운 그림(‘그 여자는 ‘쉬운’ 여자야’ 라고 할 때와 같은 의미로), 그래서 부패했고, 부패시키는, 기본적으로 윤리성이 부재된 그림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사이비 혁명
 
이미 마네와 동시대에, 진행 중인 혁명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간파하고, 적어도 외형적이나마 전환을 꾀하여 얼마 동안은 전통과 전환 두 곳에서 오는 이익을 챙기는 사이비들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다시 보겠지만요, 이중 가장 전형적인 인물은 에밀 졸라(4)의 저서 <작품(L’Oeuvre)>에 나오는 등장인물, 푸주롤이라는 사람입니다; 현실에서는, 그런 인물이 쥘 바스티엥 르파쥬인데, 모든 분야(장, champs, field)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상적 유형의 인물입니다. 예를 들어, 패션의 장(5)에서는 앙드레 쿠레즈와 같은 혁명가가 있고, 이브 생 로랑 같은 완성자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혁명 후에 등장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간파하고 ‘하드’한 혁명을 ‘소프트’한 버전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많은 이득을 취하는 것입니다. 바스티엥 르파쥬는 한때, 마네의 친구들조차도 마네보다 더 선호한 사람이었습니다. 웃을 일이 아니었죠. 마네는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미 벌써, 그의 원숭이들, 천재의 원숭이들이 이득을 취했고 반면에 마네는 여전히 배척당하고 있었으며, 죽을 때까지 배척당했습니다. 저주받은 예술가에 대한 절대 숭배가 있으니까, 죽을 때까지 배척당하는 것은 좋은 징조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일을 겪는 것이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평범에서 스캔들로
 
이제 작품을 다뤄보죠.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풀밭 위의 점심>의 슬라이드 상영 의도를 빨리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요즘은 과자상자에서도 볼 수 있는 이 평범하고도 평범한 작품, 아마 모나리자 다음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 작품은 그래서 가장 많이 보이면서도 동시에 그 진부성으로 그 실체를 가장 못 보는 작품입니다. 이 평범해 빠진 작품이 그렇게 놀라운 스캔들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설명한다는 것이 좀 미친 의도라는 건 분명합니다. 과자상자용 작품이 어떻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격렬한 분노를 폭발시킬 수 있었을까요?

이 그림을 그린 선구적 이단아(6)는 스캔들 효과를 일으키면서 동시에 사회세계 경험 토대의 반석을 이루는 인식구조와 사회구조 사이의 일치, 즉 하나의 상징적 질서를 파괴합니다. 구조는 흔히 이항대립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장르들의 미학적 서열과 관계되는 상위-하위 개념이 있고, 남성-여성 대립, 부르주아-서민 대립관계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들을 말해주면서 독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신경 쓰는 대중적 신문들에 기고하는 ‘포퓰리즘’ 비평가들의 눈에 확 띈 것은 성적 측면에서의 어긋남이었습니다. 옷 입은 부르주아 남성들과 서민 출신 젊은 여공으로 추정되는 나체의 한 여성이 같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그림은 불손한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부적절한 것들’이라고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즉, 이 그림은 그 당시 사람들의 뇌리에 암암리에 각인된, 그러니까 대부분의 관람객들과 예술가들에 의해 인정된 인식범주들, 인식구도들의 관점으로 보면 상충하는 것들로 가득 찼습니다. 예를 들어, 이 그림은 치수가 가로 2.6 미터, 세로 2.08 미터로, 주제에 비해 너무 크다고 지적합니다. 현재 우리는 그런 척도와 특히 예술적 범주들, 그러니까 작품 범주들끼리의 서열 순위와 그림 규모들끼리의 서열 순위의 관계를 모르고 있습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 그림이 풍속화(7)치고는, 특히 매우 특별한 범주에 속하는 목욕 장면으로는 너무 크기가 크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비평가들은 동시대성과 ‘작품의 전원적 성격’ 사이에 모순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목욕 장면으로서는 너무 노골적이고 사실적이라는 것이었죠. 비평가들이 지적한 또 다른 스캔들 이유는 이 그림이 은밀히 판매되거나 또는 신사들의 지갑 속에 넣어 다닐 수 있는 외설적 그림인데 너무 공개적이고 공식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두 종류의 성스러운 것들을 위반합니다. 신성 모독이죠. 우선 특정 분야에서 성스러운 것, 즉 미학적 질서에서의 성스러움을 위반합니다. 이 위반은 이 분야 최고 전문가들, 가장 자기 분야 신뢰가 깊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고발되는데, 이들이 분개를 가장 많이 한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으로 비특정 분야에서 성스러운 것, 성 윤리적으로 성스러운 것을 위반합니다.
 
서열 순위들 사이의 친화성
 
여러분들이 생각할 수 있는 또 다른 상징혁명인 68년 5월 혁명은 근본적인 사회학적 진실, 즉 모든 위계질서들 사이에는 친화성이 있다는 것을 파악한 보수적 직관의 관점으로 보면 주의를 끕니다. 한 서열 순위를 건드리는 것은 다른 모두의 서열 순위들을 건드린다는 것입니다. 또는, 건드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구 위계질서를 뒤엎어버리는 이 무책임한 예술가들이 부르주아와 대중 사이의 위계질서를 건드릴 수 있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마네의 전략이 전적으로 의식하지 않고 나온 것은 아닙니다. 마네는 정말로 물의를 일으키고자 했습니다. 공화주의자에다가 좌파 중 좌파 성향의 마네는 추방판결을 받은 파리 코뮌의 영웅 중 한 명인 앙리 로슈포르를 그린 <앙리 로슈포르의 초상화>(1881)를 미술국전에 출품하게 됩니다. 모든 위계질서에 대한 충돌 전략은 한 방에 아카데미와 부르주아 계층을 가격하는 이중의 타격 전략입니다.

마네는 늘 구성과 원근법을 알지 못한다고 미학적 위반 차원에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조금양심 있는 사람들은 마네가 일류 화실 등에서 (명성이 높고 조금은 반체제 성향으로 알려지기까지 한 쿠튀르 화실에서) 탄탄한 학업을 쌓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문외한으로 마네를 질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네는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니까요. 게다가, 마네는 마치 그림 한 구석에 자기의 우수성을 서명하는 것처럼, 구성 면에서 걸작품인 정물화를 그려 넣어서, 중상모략자들에게 응수하였습니다. 저 자신도 제가 원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라틴어 문장을 인용하곤 합니다.(웃음) 왜 제 이야기가 여기 엮였는지 모르겠네요.(웃음) 그래서 마네는 필연적으로 위계질서적인, 멀면 멀수록 더 작게 표현되는 원근법 대신에 평면적 표현으로 대체합니다. 마네와 사이가 안 좋았던 쿠르베는, 그것이 마치 트럼프 카드의 여왕과 닮았다고 말했었죠. 이 그림에는 기복 형상을 사라지게 하고, 사실주의 효과를 거두며 이상화를 지워내는 정면의 빛처럼 여러 기법을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알렉상드르 카바넬(<비너스의 탄생>, 1863), 윌리암 뷔그로 등의 작품들 속에 있는 조금은 외설적이기도 한 나체 표현 장면들에는, 표현된 인물들(비너스 등)과의 역사적 거리 설정에 의한 방법뿐만 아니라, 기법에 의한 방법으로 완곡한 표현법이 항상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네의 작품 <올랭피아>의 적나라한 사실주의는 그녀를 사실적인 인물로 느끼게 해 줍니다. 이러한 사실주의적 효과는 이 그림이 아니에르에서의 소풍이라고 생각하게 해 줍니다. 만약 그것이 소풍이라면 그 모델에 대해 의문을 던집니다. 왜 그녀가 나체일까? 불순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나? 더군다나 마네는 애초에 자기 그림을 <네 명이 하는 놀이>라고 명명했었던 것입니다.

‘사실주의-형식주의’의 잘못된 대립
 
빛의 정면성은 역설적으로 형식주의 효과를 빚어냅니다. 사실주의에 형식주의를 대립시키는 역사적 전통의 양자택일 방법이 있는데, 이것은 답답한 방법입니다. 마네는 구스타브 플로베르처럼 사실주의자이면서 형식주의자입니다. 에밀 졸라는 마네를 옹호하기 위해서 순수회화의 논거들을 내세웠습니다. ‘형태, 색채, 병립의 채색점들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조형적 결과를 내기 위한 목적으로 오로지 채색 효과만 내기 위해서만 조합된다.’ 이것이 대체적으로 순수회화의 기법입니다. 이 말은 특히 성이 없는 회화임을 의미합니다. 마네가 대중의 저속한 시각에 대치시킨 것은 화실의 순수한 미적 시각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공쿠르 형제의 소설 <마네트 살로몽>에 한 일화가 있습니다. 공쿠르 형제는 화실 등에서 나누는 대화들을 글로 적었는데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합니다.

한 여성 모델이 화실의 남성화가들 앞에서 나체로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외부인이 자기를 쳐다본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그녀는 자기의 나체를 가리기 위해 옷을 가지러 달려갔습니다.(8) 이 일화는 순수하고 미적이며 성이 없고 중성화된 시선, 그리고 성적 시선, 이렇게 두 가지 형태의 시선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흥미로운 것입니다. 마네는 관람객들이 부끄럽고 차마 말할 수 없는 속내를 갖고 카바넬의 나체상들을 보러 온다는 사실을 관람객들에게 상기시켜 예술가와 문외한 사이에는 단절이 존재한다고 알리는 것입니다. 저는 <예술 규칙들>에서 순수예술과 순수한 사랑에 마주한 금전적 예술과 금전적 사랑의 대립이 발상된 시기가 이와 같은 때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9)

그래서 미적 위반과 성적 위반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네는 미적 관점에서 낮은 위치(풍속화, 풍경화, 초상 모방화)와 외설스럽거나 잠재적으로 외설스러운 상황을 나타내는 모든 지표들을 축적해 놓습니다. 당대의 해석으로 이해한 것은 사회적 의미의 상층계급과 하층계급 간의 대립과 남성과 여성의 대립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스캔들로 이해됐던 것은 대학생들과 바람기 있는 여공들, 즉 생물학적 번식(성병)과 사회적 번식(신분이 낮은 사람과의 결혼)에 위협이 되는 품행이 단정치 않은 서민층 여자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뻔뻔한 여인들입니다. 사람들은 마네 작품 속의 시선을 매우 강조했습니다. 한 비평가는 올랭피아(10)를 ‘마네트’라고 명명했습니다. 흥미로운 비평이죠.

마네트는 공쿠르 형제의 소설 속의 인물입니다. 그 소설은, 자기와 사랑에 빠진 화가를 몰락시키는, 직업이 모델인 한 유태인 여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에밀 졸라의 <작품(L’Oeuvre)>은 어느 날 한 젊은 여성을 맞아들여 그녀를 차츰차츰 자기의 정부와 모델로 삼아간다는 한 예술가의 이야기입니다. 끊임없이 대두되는 질문은 그의 창조력이 그의 정력 감퇴를 통하여 쇠잔되지 않는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여자는 상징적 질서와 성별 서열 순위를 위협한다는 의미에서 위협적 존재입니다. 여자는 또한 번식에 위협을 가하여 사회적 질서도 위협합니다. 그리고 상속에까지…….
 
성향 이론
 
저는 미적 이론, 좀 이름이 거창하고, 오만한 거 같아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어쨌든 일종의 미학 이론을 소개했습니다. 이 이론의 바탕은 한 작품을 이해하려면, 특히 획기적 작품일 경우,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이유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러한 반응의 미학, 또는 영향의 미학은 의도가 아닌 성향의 미학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저는 후자의 경우에 중점을 두겠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술사학자, 문학사학자, 법학사학자 등 모든 인문 작품을 연구하는 사학자들에게 대두되는 아주 일반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작품역사 연구 또는 인간 행동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행동의 철학을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항상 역사철학에 대해 말하지만, 행동철학에 대해선 전혀 말이 없습니다. 즉, 행동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론에 관해서 말이 없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자면, 행동한다는 것은 의도를 실행에 옮기는 것인가? 의도에서 나온 행동만이 존재하는가? 의도적이지 않은 행동은 기계적인 것인가 아니면 생각이 없는 것인가? 여기에는 고전적 양자택일 방법이 있습니다. 민속문화학자로서 그리고 사회학자로서 저의 모든 연구 작업은 하나의 행위이론을, 그리고 행위의 반대 이론의 이론까지 정립하는 데 이르게끔 하였습니다. 이론의 이론이 동어반복 같지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 행위이론은 기본원리의 중심을 의식적인 의도 또는 사전 계획이 아니라 성향에 두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명시적 조직 원리가 없는 이런 일정한 방식의 조직적 행위들은 극도로 절차적이고 조직적인 의례의식처럼 제가 성향적이라고 명명한(저 혼자만은 아닙니다), 행위이론에 근거해서만이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론은, 반드시 명시적인 의도들이 아니라 체화된 성향을 행동의 원리에 두고 있습니다. 이 성향은 작동하는 데 의식에의 접근을 필요로 하지 않고, 의식과 의지 없이 작동할 수 있는 행위들의 생성도식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그렇다고 그 행위들이 단순하고 기초적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 성향 이론은 양쪽, 즉 생산자 쪽과 수신자 쪽에 다 적용을 시켜야 합니다. 생산자는 성향을 적용합니다. 이 말은 생산자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가 하는 것 ‘전부’는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수신자도 어느 정도 생산자와 상응될 수도 있는 해석도식을 적용합니다. 그리고 이 도식이 실망을 했을 때, 기대가 어긋났을 때, 또한 성향체계는 기대체계이기 때문에 기다림이 충족되지 못 했을 때, 분노한 감정을 나타낼 수 있는 해석도식을 적용합니다. 예술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의사소통은 의식들의 의사소통보다는 무의식의 의사소통입니다. 나중에 밝힐 수 있을지언정, 의식을 통하여 극히 적은 양만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제가 제시하는 효과(effect)의 미학은 예술작품의 효과가 불러일으킨 반응의 분석이 예술가, 비평가들, 대중이 부분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암묵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 즉 당대의 상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파악하게 해 주므로, 성향미학과 완벽히 양립될 수 있습니다. 이 성향미학은 불일치뿐만 아니라 불일치의 세계에서 특별한 경우에 해당되는 이해도 깨달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이해는 하나의 특별한 경우로, 생산, 행위, 작품, 언사 등에 즉 상징적 생성에 동원된 도식들이 관람객, 수신자, 독자 등이 수신에 동원한 도식들과 상호 일치하는 곳입니다. 이 경우, 즉각적인 이해와 당연한 감정이 듭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감정은 불일치의 경우에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산자 도식과 수신자 도식 사이에 불일치가 너무 많으면, 스캔들의 감정, 분개 등이 일어납니다.
 
정반대 사면
 
행동의 성향이론은 서양의 모든 문화 전통, 데카르트 철학과 칸트 철학의 형태나, 또는 기독교 철학의 유연한 형태로 전해 받은 모든 의식철학과 주체철학 등과의 정반대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의도적 주체의 철학에 젖어있어서, ‘누가 이 그림을 그렸나’를 알기 위한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대부분 필연적으로 ‘한 주체가 그 그림을 그렸다’를 응답으로 요구하는 것입니다. ‘누가 <풀밭 위의 점심>을 그렸나?’라는 질문에, 저는 당연히 마네라고 응답합니다. 즉, 일정한 장소와 날짜에, 일정한 신체를 갖고, 일정한 사회 등에 위치한 한 개인입니다.

그러나, 사회학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 그림을 그린 개인은 서양 전통에 따른 주체가 아니고, 어떤 한 장(champs)에 끼워진 아비투스(habitus)입니다. 아비투스란 사회적으로 구성된 항시적 성향들을 갖는 사회화된 생물적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성향들의 사회적 형성을 설명해야 되며, 마찬가지로, 마네가 쿠르베, 들라크루아, 앵그르 등과 함께 위치한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장의 사회적 형성도 밝혀야 합니다. 성향을 상정하고 의도를 철회하는 것은 ‘창조’, ‘지혜’, ‘행위 절제’, ‘예술’ 등과 같은, 요컨대 우리가 가치를 부여하는 모든 것들을 철회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그것들의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식과 주체 철학에 무의식적인 이해관계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항합니다. ‘우리의 자기애에 가해진 세 가지 커다란 상처들’(11)에 관한 프로이트의 유명한 텍스트의 의미로 말입니다: 코페르니쿠스, 다윈 및 프로이트는 세계관의 중심을 주체에서 세계로 이동시켰습니다. 프로이트는 우리의 행동들의 주체가 진정 우리가 아니라 무의식이라고 말하면서 세 번째의 자기애의 상처를 가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은, 제가 하고 있는 것은 지성인들에게는 매우 특별히 심각한 자기애의 상처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 작품의 주체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아비투스와 역사적으로 구성된 장 사이에 있는 복잡한 관계이고, 그 둘 사이의 관계에서 한 이론, 새로운 화법이 창조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입니다.


글·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

번역·손종규

(1) '소방관(pompier)' 회화라는 용어는 19세기 후반의 아카데미 미술을 지칭한다. 이 경멸적인 표현은 아카데미 회화의 대 벽화에 흔히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이 쓰고 있는 빛나는 투구를 암시하는 것 같다. 또는 이 표현은 표현된 장면들 또는 미술아카데미가 공인한 작품들의 연례적 전시회에 주어진 이름이었던 미술국전(회화와 조각)의 연례적 행사의식이 ‘장중하다(pompeux)’는 특성을 가리킬 수도 있다. 공식 예술을 보여줬던 그 전시회는 파리에서 18세기부터 시작되어 1881년까지 계속 개최되어 왔다.
(2) 편집자 주. 이 문단과 다음 문단은 다른 두 개의 강의에서 발언된 내용을 붙여 놓은 것이다.
(3) 테오필 고티에가 모뮈 까페에 모이던 미술국전에 한 번도 입상하지 못한 미술가들, 주문 못 받는 음악가들, 출판사 없는 작가들의 소수 그룹에 붙여준 이름. 그들은 <보헤미안들의 생활이야기>(1851)의 저자 앙리 뮈르제와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의 덕택으로 후세에 알려진다.
(4) 에밀 졸라는 마네를 옹호했다. 그의 소설 <작품(L'Oeuvre)>은 예술가의 세계와 저주받는 한 화가, 랑티에의 운명을 그려낸다.
(5) 삐에르 부르디외 & 이베트 델소, <의상 디자이너와 그의 손길. 마술의 이론에 대한 논고>, 사회과학 연구지 n° 1, 1975년 3월, p.7~36.
(6) 편집자 주. 이단을 범하는 자.
(7) 일상적이거나 일화적인 성격의 장면들을 그린 회화 유형을 풍속화라고 부른다. 회화 장르의 서열 순위에서 꽤 하위에 위치한 이 그림들은 유럽 미술 아카데미에서 독립적인 교육 과목이 되었다.
(8) 에드몽 공쿠르와 쥘 공쿠르 형제, <마네트 살로몽>, Gallimard, Folio 총서, 파리, 1996[초판: 1867], p.271.
(9) 피에르 부르디외, <예술의 규칙들. 문학 장의 생성과 구조>, Seuil, Paris, 1998 [초판: 1992], p.46-49.
(10) 편집자 주. 스캔들을 일으켰던 마네의 1863년 나체 그림
(11) 시그문드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어려움>(1916), 정신분석이론, 전집, 15권, PUF, Paris, 1996, p.4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