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정책을 위협하는 다국적 기업

2013-11-08     로리 월러치

2008년 시작된 캐나다-EU 자유무역협정 협상이 10월 18일 타결됐다.
유럽과 비슷한 협정을 추진 중인 미국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비밀리에 협상 중인 이 TTIP가 발효되면 다국적기업들은
자유주의의 규칙에 굴복하지 않는 국가들을 법정에 세울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될 것이다.


한 국가가 도입한 정책이 다국적기업의 이윤을 잠식한다는 이유로 정부가 법정에 서게 된다면? 다국적기업들이 지나치게 엄격한 노동법이나 지나친 세금을 요구하는 환경 법규 때문에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고 요구하고, 심지어 그 요구가 관철된다면? 이런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가령, 1995~199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들이 비밀리에 협상을 진행했던 다자간투자협정(MAI) 초안에 이 같은 내용이 분명하게 명시된 바 있다.(1) 협상 막바지에 공개된 협정문 초안은 여러 나라에서 엄청난 반발을 야기했고 결국 빛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후 새로운 외피를 두른 채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2013년 7월부터 미국과 유럽연합 사이에 협상이 진행 중인 범대서양 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은 MAI의 변형된 버전이다. TTIP는 대기업들이 스스로 정한 자유무역 규칙들을 미국과 유럽의 법보다 상위에 놓으려는 시도다. 규칙을 위반한 국가는 무역 제재를 받거나 당사자에게 수백만 유로의 보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다국적 기업의 소송에 직면한 노동법

공식 일정에 따르면, 향후 2년 내에 협상이 타결될 것으로 보인다. TTIP 속에는 더욱 강화된 기존 협정 내용들이 포함된다. TTIP가 발효되면 다국적기업들은 무소불휘의 권력을 얻게 될 것이고 각 정부는 양손이 묶여 꼼짝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 것이다. 정권이 바뀌거나 국민이 반대해도 협정 내용 수정은 불가능하다. 수정을 위해서는 서명국의 만장일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실상 강제법의 성격을 띤다. TTIP는 미국 재계가 열심히 선전한 덕분에 가입국이 12개국으로 확대될 예정인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의 내용과 형식을 고스란히 옮겨왔다. TTIP와 TPP로 완성되는 경제 제국은 그 경계 너머까지 호령하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연합과 무역 관계를 맺고자 하는 국가는 공동 시장 내에 이미 자리 잡은 규칙들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된다.

비상업적 영역까지 헐값에 팔아넘기려는 목적에서 진행되는 TTIP와 TPP 관련 협상은 밀실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미국 협상 대표단에는 다국적기업들이 위임한 600명 이상의 컨설턴트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준비 서류들을 제한 없이 열람할 수 있고 담당 관료들과 접촉할 수 있다. 외부적으로는 철저한 보안이 이루어진다. 기자와 시민들은 필요하다고 판단된 순간에만 접근이 허용된다. 협정 서명의 순간에야 내용을 알게 된다면 반대하기에 이미 늦은 것이다. 전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론 커크는 순진한 어투로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비밀을 지키는 것”이 ‘실리’를 가져다 준다고 역설했다.(2) 그는 최근 초안 작성이 진행 중이던 협정 내용이 대중에 공개되어 협상에 실패했던 경험을 예로 들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확대된 버전인 미주자유무역지대(FTAA)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조지 W.부시 전 대통령이 열정적으로 추진했던 이 협정은 2001년 그 내용이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된 바 있다.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렌은 민주적 검토 과정을 거치지 않은 협정 체결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

미국 유럽 간 자유무역협정 협상 당사자들이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협정 체결이 해당 국가 내의 모든 차원에서 일어날 결과에 대해 시간을 두고 알릴 필요가 있다. 연방 정부의 최고위층에서부터 국무의원들을 거쳐 지역 의회 의원들까지 모두 지금까지 공공 영역으로 남아있던 부분에 대해서도 민간 기업들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공공정책 전반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음식 안전, 유해 물질 규제, 건강 보험, 의약품 가격, 인터넷 상에서의 권리, 사생활 보호, 에너지, 문화, 저작권, 자연 자원, 직업 교육, 공공시설, 이민까지, 일반 이익이 결부된 모든 영역이 제도화된 자유무역의 명령에 따르게 될 것이다. 국민의 대표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현지 기업 혹은 외국기업의 현지 지사들과 주권의 부스러기를 나눠 갖기 위한 협상을 벌이는 것이다.

공공영역조차 민간기업들의 요구에 굴복

협정에는 서명 당사국이 협정 내용에 부합하도록 “자국의 법, 규칙, 절차를 정비할” 의무가 명시된다. 각국은 당연히 이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겠지만, 혹시 반대의 경우가 발생하면 해당 국가는 투자자와 국가 간 분쟁 조정을 목적으로 하는 특별 재판소에 기소되어 무역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런 개념은 이미 발효 중인 무역 협정들의 기본 바탕을 이루고 있다. 작년, 세계무역기구(WTO)는 ‘돌고래 보호 참치(dolphin-safe tuna)’ 라벨이 붙은 참치 캔, 수입산 고기에 대한 원산지 표시, 사탕 맛 담배 금지 조처 등과 관련에 미국에 제재를 가했다. 이 보호 조처들이 자유무역에 방해가 된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유전자변형식품(GMO) 수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수억 유로의 벌금을 물어야 했다. TTIP와 TPP는 여기서 더 나아가, 다국적기업이 협정 체결국이 도입한 정책 때문에 상업적 손실을 입었다고 판단할 경우 그 국가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이제 기업들이 각국의 보건, 환경 보호, 금융 규제 관련 정책에 반대하는 게 가능해졌다. 재판 외 법정에 해당 국가를 제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된다. 세계은행과 UN의 규정에 따라 전문 변호사 3명으로 구성되는 특별법정은 한 국가의 법이 기업의 ‘미래 기대 수익(expected future profit)’을 침해할 경우 엄청난 손해배상을 명령할 권리를 지니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납세자에게 돌아간다. 1998년 MAI 협상이 결렬되면서 동시에 자취를 감춘 ‘투자자 국가 제소’ 시스템은 몇 년 후 슬그머니 재등장했다. 미국이 맺은 다양한 무역협정들에 입각해 지금까지 유독성 제품 금지, 물, 토지, 목재 등의 자원 개발 제한 등을 이유로 4억 달러에 달하는 혈세가 다국적기업에 손해배상금으로 지불됐다.(4) 현재 진행 중인 의약 특허, 오염 방지와 관련된 조처들, 기후변화와 화석연료 고갈에 대비한 법 등 일반이익과 관련된 소송들의 경우 손해배상 요구액이 140억 달러에 이른다.

TTIP의 경우 대서양을 사이에 둔 이해관계가 엄청난 만큼 이런 합법적 강탈의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에 진출한 유럽기업은 총 3300개로 2만 4천 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들 회사는 언제라도 영업이익에 피해를 입을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들이 승소할 경우 받게 될 배상금은 기존의 협약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크다. 반대로, 유럽연합 역시 큰돈을 물어야 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현재 유럽에 진출한 미국 기업은 4400개, 자회사 5만800개로 미국 내 유럽 기업수를 앞선다. 한마디로 총 7만 5천여 개 기업들이 배상금을 놓고 경합을 벌이는 형국이다.

이 체제는 공식적으로는 법체계가 미비한 개발도상국에서 투자자들의 재산권을 보호할 목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유럽연합과 미국은 법체계가 잘 갖춰져 있으며 재산권 보호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국가들이다. 그럼에도 TTIP는 이 국가들을 특별법정의 감독권 아래 포함시킴으로써 본래 목적이 투자자 보호보다는 다국적기업의 권력 강화에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장외의 유권자들은 고려대상 제외

이 특별법정을 구성하는 변호사들은 당연히 어떤 유권자들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그들은 재판관 노릇을 하다가도 간단히 역할을 바꾸어 힘센 고객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도 있다.(5) 국제투자 관련 법률가 집단은 참으로 좁은 세계다. 현재 진행 중인 전체 소송의 55%를 15명의 법률가가 독점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의 결정은 최종판결의 성격을 띤다.

그들이 보호할 임무를 띠는 ‘권리’는 의도적으로 애매한 방식으로 명시되어 있으며, 그들의 해석이 다수의 이익을 옹호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투자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규범적 틀은 미리 마련된 ‘규정’을 따른다. 이에 따르면, 일단 투자가 이루어지면 정부는 기존의 정책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 투자자는 자신의 이익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정부의 법규, 이른바 ‘간접 수용’에 대해서도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동일한 법규가 현지 기업들에 똑같이 적용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또한 더 많은 토지, 자연 자원, 설비, 공장 등을 사들일 권리가 보장된다. 다국적기업은 아무 반대급부도 지불하지 않는다. 국가에 대한 어떤 의무도 지지 않은 채 어디서든, 언제든 원하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자신들의 침해할 수 없는 권리의 영역을 멀리까지 확장시킨다. 최근 유럽기업들은 이집트의 최저임금 인상 조처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고, 미국 회사 렌코는 NAFTA 규정을 이용해 유해물질 배출 제한 조처를 내린 페루 정부를 제소했다.(6) 비슷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거대 담배 회사 필립 모리스는 우루과이와 오스트레일리아의 금연법을 못마땅하게 여겨 특별법정에 제소했다. 미국 제약회사 엘리 릴리는 일부 약품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특허 시스템을 도입한 캐나다 정부를 제소했다. 스웨덴 전력회사 바텐팔은 ‘에너지 전환’ 정책을 채택한 독일 정부를 상대로 수십억 유로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정책은 석탄 화력 발전소 관련 법규를 강화하고 향후 원자력 발전을 중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다국적기업이 특별법정에서 국가를 상대로 요구하는 배상액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작년에 에콰도르는 한 석유회사에 사상 최대 금액인 20억 유로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7) 설사 정부가 소송에서 승리하더라도 매 소송마다 800만 달러에 달하는 소송비용과 각종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물론 모두 납세자들의 돈이다. 정부가 법정까지 가기 전에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이유다. 캐나다 정부는 석유회사들이 사용하는 유독첨가물을 금지하는 법을 서둘러 폐지함으로써 법정 앞에 서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소송 건수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UN무역개발협의회(UNCTAD)에 따르면, 특별법정에 제출된 기소 건수가 2000년과 비교해 10배나 증가했다. 무역중재 시스템은 사실상 1950년대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기소 기록 최고기록을 경신한 작년만큼 그 시스템이 민간 기업의 이익에 복무한 적은 없었다. 이런 붐 덕분에 금융컨설턴트와 무역 전문 변호사 양성 기관들도 덩달아 호황을 누렸다.

미국과 유럽을 아우르는 거대한 공동 시장을 건설하려는 프로젝트는 이미 오래전부터 범대서양기업인대화(TABD)에 의해 추진되어왔다. 오늘날에는 범대서양기업회의(TBC)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조직이다. 1995년 유럽 집행위원회, 미국 무역대표부의 후원으로 설립된 이 대기업 경영인들의 회의체는 양국의 경제 엘리트, 미국과 유럽연합 정부 사이에 생산적인 대화를 매개하는 임무를 띤다. 다국적기업들은 이 상설 협의체를 중심으로 대서양 양편의 국가들에 여전히 잔존하는 일반이익 보호 정책들을 공격하기 위해 공조를 취한다.

이 협의체는 이른바 “무역 장애물”을 제거하고, 공공권력과의 마찰 없이 대서양 양편에 같은 규칙을 부과하는 것을 공식적인 목표로 내세운다. 이들은 각국 정부가 자국 법체계에 위배되는 제품과 서비스를 허용하도록 촉구하기 위해서 “규제 공조”와 “상호 인정”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그러나 범대서양 시장 건설에 앞장 서는 이들은 기존 법의 완화를 요구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직접 새로 법을 고쳐 쓰는 데까지 나아간다. 세계 최대의 경영자 단체인 미국 상공회의소와 비즈니스유럽(Business Europe)은 TTIP 협상자들에게 양국의 대기업주들과 정치 책임자들을 불러 모아 “함께 규칙 초안을 작성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결정된 규칙들은 미국과 유럽연합에서 법적 구속력을 얻게 될 것이다. 무역 규칙을 제정하는 데 굳이 정치인들까지 부르는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다국적기업들은 굳이 속내를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GMO와 관련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주(州)가 식품 내 GMO 첨가 표시를 의무화하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미국 소비자의 80%가 이런 조처를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 농식품업계는 이런 유의 표시를 금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제과협회는, “우리 미국 기업들은 TTIP가 GMO 첨가와 유통경로 의무 표시제를 철폐함으로써 이 문제와 관련해 진일보하기를 희망한다.”며 분명한 입장을 표명했다. 몬산토도 회원사로 가입된 미국 생명공학산업협회(BIO)는 미국에서 판매되는 GMO 첨가 식품이 유럽에서 판매 금지 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새로운 생명공학 제품에 대한 미국의 규제 완화 조처와 유럽의 수입 규제 조처 사이의 간극”을 신속하게 해소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8) 몬산토 등의 기업들은 범대서양 자유무역지대가 열리면 현재 “사용 허가를 기다리는 수많은 종류의 GMO 제품들”을 팔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공공연히 내비치고 있다.(9)

사생활 보호도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닷컴 기업들과 첨단기술 회사들이 모인 디지털무역연맹(DTC)은 TTIP 협상 과정에서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개인 정보 유출을 차단하는 조처를 철폐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로비스트들은 “미국이 ‘적절한’ 사생활 보호 조처를 취하지 않는다고 보는 유럽연합의 현재 관점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불쾌감을 표시한다.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 국가안보국(NSA) 도청·감시 시스템을 폭로한 상황에서 단호하게 이런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다수 기업을 아우르는 미국 국제기업협의회(USCIB)의 선언은 한술 더 뜬다. “TTIP는 안보와 사생활 보호 문제가 가짜 무역 장벽의 구실을 하지 못하도록 예외성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USCIB는 버라이즌과 마찬가지로 NSA에 대량의 개인정보들을 넘긴 바 있다.

식품 품질 기준도 공격의 대상이다. 미국 육류 업계는 닭 염소 소독을 금지하는 유럽연합의 법규를 철폐하기를 원한다. 켄터키프라이드치킨 패스트푸드 체인을 운영하는 윰 그룹은 기업단체들을 동원하여 이 싸움에 앞장서고 있다. 북미육류협회는 “유럽연합은 닭고기를 세척할 때 물과 증기만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또 다른 압력기관인 미국육류연구소는 유럽연합이 “락토파민 염산염(RAC)과 같은 베타-아고니스트가 주입된 고기의 수입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다. 락토파민은 돼지고기나 소고기의 성장촉진제로 쓰이는 약품이다. 가축과 인간의 건강에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이 약품은 유럽연합, 러시아, 중국을 포함한 160개 국가에서 사용이 금지된다. 미국 돈육 업계는 TTIP를 통해 자유 경쟁에 왜곡을 불러오는 이 보호 조처를 시급히 철폐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미국 돈육생산자협회(NPPC)는 “미국의 돈육 생산업자들은 유럽의 락토파민 금지 조처 철폐 이외의 결정은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한편 대서양 건너편에서는 비즈니스유럽을 중심으로 모인 기업들이 “유럽의 대미 수출에 장벽이 되고 있는 미국의 식품안전법”에 문제를 제기했다. 2011년부터 미국의 검역 기관은 이 법에 입각해 감염된 수입 식품을 시장에서 회수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다. 이 법 역시 TTIP 협상자들에게는 백지화해야 할 대상이다.

온실가스와 관련해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항공사들의 집행기구격인 미국 항공운송협회(A4A)는 “항공운송업계의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불필요한 규제들”을 목록으로 작성했다. 물론 이번에도 그 규제들을 제거하는 것은 TTIP의 임무가 됐다. 항공사들에게 탄소 오염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는 유럽의 탄소배출권거래 시스템(EU-ETS)이 목록의 첫머리를 장식했다. 유럽연합은 임시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중단했고, A4A는 ‘진보’를 방해하는 장벽의 완전한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낡은 대처주의의 귀환

시장주의 십자군이 가장 극렬하게 공격하는 곳은 역시 금융 분야다. 서브프라임 위기 발생 후 5년이 지난 지금 미국과 유럽의 협상자들은 금융 규제 의지가 이제 한풀 꺾였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그들은 투자 리스크에 대한 모든 종류의 보호책을 제거하고 시장에 출시된 금융 상품의 규모, 성격, 원천에 대한 정부의 감독권을 약화시킬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단순하게 말하면, 규제라는 말 자체를 사전에서 지우고 싶어 한다. 이 낡은 대처주의로의 대대적인 회귀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런 회귀를 환영하는 대표적인 조직은 독일은행협회다. 이 협회는 2008년 위기 발생 직후 월스트리트가 도입한 소극적인 개혁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가장 적극적인 은행은 도이체 방크다. 그러나 같은 은행은 2009년 미 연준위에게 모기지 채권을 되팔아 수천억 달러를 챙긴 바 있다.(10) 이 독일의 거대 은행은 월스트리트 개혁의 핵심 열쇠라 할 수 있는 볼커 룰이 “외국 은행에 지나친 부담을 지운다.”며 완전 철폐를 원하고 있다. 유럽 보험회사들의 첨병인 인슈런스 유럽은 TTIP가 금융 업계의 레버리지 비율 상승을 제한하는 부수적 규제사항들을 ‘삭제’해주길 희망한다.

도이체 방크가 소속된 유럽서비스포럼(ESF)은 협상 배후에서 외국은행의 영업에 대한 미국 감독 기관의 간섭을 중단시키기 위해 로비를 벌이고 있다. 미국 측은 TTIP가 유럽의 금융거래세 도입 계획 추진을 막는 게 목표다. 유럽집행위원회조차 이 세금이 WTO 규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인정한 터라 실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11) 범대서양 자유무역지대의 창설로 WTO 체제보다 훨씬 강력한 자유주의가 실현될 예정인데다, IMF가 꾸준히 자본이동에 대한 모든 종류의 통제에 반대해온 상황에서, 미국 금융계가 고작 ‘토빈세’에 영향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 규제완화는 금융계의 전유물이 아니다. TTIP는 모든 종류의 ‘비가시적’ 부문과 일반이익과 결부된 분야를 자유화하고자 한다. 협정 체결국은 공공서비스를 상업논리에 개방해야 할뿐더러 자국 시장을 넘보는 외국 서비스업체에 대한 규제도 포기해야 한다. 보건, 에너지, 교육, 수도, 교통 분야에 대한 정부의 권한은 급격히 축소될 것이다. 이민 문제도 상업화 바람을 피해갈 수 없다. TTIP는 국경 관리를 위한 공동정책을 수립할 권리마저 빼앗는다. 상품과 서비스 판매를 목적으로 입국하는 이들에게 배타적 우선권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몇 달 전부터 협상이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이 유럽의 지도자들이 침체된 경기를 회복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의 파기를 포함해서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TTIP를 선전하는 이들의 논리, 즉 탈규제화된 자유무역은 교역을 원활하게 하고, 그 결과 고용을 창출할 것이라는 주장이 사회적 균열에 대한 우려보다 힘을 얻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도 인정하듯이, 유럽과 미국 사이에 아직 남아있는 관세장벽은 “이미 상당히 낮아진” 상태다.(12) TTIP를 추진하는 이들조차 자신들의 우선 목표는 이미 힘을 잃은 관세장벽을 낮추는 데 있지 않고, “필요 이상의 국가 정책들을 축소, 제거, 방지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필요 이상’의 정책이란 금융 규제, 지구 온난화 방지 대책, 민주주의적 절차 등 상품의 이동 속도를 늦추는 모든 정책을 뜻한다.

TTIP의 효과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은 데다가 사회·경제적 파급 효과에 대한 분석이 미약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주 인용되는 유럽 국제정치경제연구소(ECIPE)의 보고서는 마치 경영계의 노스트라다무스라도 되는 양 2029년부터 범대서양 공동시장 내 개인당 매일 3센트의 추가 수입이 보장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런 낙관론과 달리, 같은 보고서는 TTIP 발효의 효과로 유럽과 미국의 GDP가 0.06%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 정도로 추산된 ‘효과’조차도 비현실적이다. 이 보고서는 자유무역이 경제성장을 ‘추동한다’는 가정 하에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여러 차례에 걸쳐 사실이 아님이 증명됐다.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그 정도의 성장은 눈에 띄지도 않을 것이다. 가령, 애플 아이폰5 출시가 이끈 미국의 GDP 상승률은 이보다 8배나 높았다.

TTIP에 대한 거의 모든 연구는 자유무역주의에 우호적인 기관들 혹은 경영자 단체들의 재정지원 하에 진행됐다. TTIP가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이나 수억 명에 달하게 될 직접적 피해자들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는 이유다. 하지만 아직 늦지는 않았다. MAI와 FTAA, WTO의 몇몇 라운드처럼, 무역을 사회보장제도 해체와 경영자들의 독재체제 구축을 위한 트로이의 목마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실패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이번에도 실패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글·로리 월러치 Lori Wallach
법률가, 사회운동가. 세계시민무역감시단 (Public Citizen's Global Trade Watch) 대표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리듬분석> 등이 있다.

(1) ‘Le nouveau manifeste du capitalisme mondial(세계 자본주의의 새로운 헌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8년 2월호.
(2) ‘Some secrecy needed in trade talks: Ron Kirk’, <Reuters>, 2012년 5월 13일.
(3) ‘Elizabeth Warren opposing Obama trade Nominee Michael Froman’, 2013년 6월 19일, Huffingtonpost.com
(4) ‘Table of foreign investor-state cases and claims under NAFTA and other US 'trade' deals’, <Public Citizen>, 워싱턴 DC, 2013년 8월.
(5) ‘Treaty disputes roiled by bias charges’, <Bloomberg>, 2013년 7월 10일.
(6) ‘Renco uses US-Peru FTA to evade justice for La Oroya pollution’, <Public Citizen>
(7) ‘Ecuador to fight oil dispute fine’, <AFP>, 2012년 10월 13일.
(8) TTIP에 관한 언급, BIO 문서, 워싱턴 DC, 2013년 5월.
(9) ‘EU-US high level working group on jobs and growth. Response to consultation by EuropaBio and BIO’, http://ec.europa.eu
(10) ‘Fed opens books, revealing European megabanks were biggest beneficiaries’, 2012년 1월 10일, HuffingtonPost.com
(11) ‘Europe admits speculation taxes a WTO Problem’, <Public Citizen>, 2010년 4월 30일.
(12) 미 무역대표부 대표 드미트리어스 마란티스가 존 보너 미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에게 보내는 서한, 워싱턴 DC, 2013년 3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