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팔레스타인 정책이 실패한 이유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11월 18~19일, 텔아비브와 라말라를 방문한다.
프랑스는 상투적인 담화와 함께, 이스라엘의 점령 행위에 대해 눈 감은 채
협력관계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 유럽연합은 각고 끝에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를 결정했지만,
소극적 대응으로 지속적인 평화 구축에 실패했다.
오슬로 협정 체결 20주년이 되는 시점에 유럽연합은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연속적이고 지속가능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우호적인 공식 입장을 확인하는 첫 걸음을 뗐다. 2013년 7월 발표된 유럽연합 지침에 따르면, 2014년 1월 1일부터, 1967년 영토 너머의 요르단 강 서안 지구와 동예루살렘 정착촌에서 활동하는 이스라엘 기업, 대학, 연구소, 단체는 유럽연합의 자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사해의 진흙과 미네랄 소금을 채취하는 아하바 같은 기업이 더는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현재 팔레스타인 기업들은 사해 접근 권리가 없다. 이스라엘 당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고고학 유물들에 대한 관리, 보관, 전시 등에 대해 거의 독점권을 행사하는 매개기관인 이스라엘 유물관리국(IAA)에 대한 지원도 중단한다. 유럽연합은 2009년 12월, 이스라엘 정부에게 “동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 지구 정착촌 건설을 즉각 중지하고, 2001년 3월 이후 건설한 불법 정착촌을 철거하라”(1)고 촉구했음에도, 선언과 결의안들을 실행에 옮길 능력이나 의지가 없었다. 국제연합 결의안과 제네바 협정에 대한 위반 사실이 확인되고, 국제사법재판소가 분리 장벽 건설을 위법으로 규정했음(2)에도 이스라엘은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 그런 만큼 유럽연합의 이번 결정은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스라엘 점령지역의 시설 비용에
EU 자금 부담
이스라엘이 2국가 해법을 무시하고 팔레스타인 영토를 야금야금 빼앗아 확장한 식민지를 기정사실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요르단강 서안 지구는 이미 분리 장벽으로 조각난 영토들이 열도처럼 늘어선 모양이 되어 버렸다. 이스라엘은 이 장벽 건설로 팔레스타인 영토의 10%를 잠식했으며, 60%에 대해 완전한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른바, ‘C지구(Zone C)’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는 이미 135개 정착촌에 35만 명의 이스라엘 정착민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의 팔레스타인인 인구는 180만 명이다. UN 인도주의 업무조정국(OCHA)은 이스라엘 정착민들의 폭력 행위가 갈수록 심해지고, 이스라엘 행정 당국이 팔레스타인 측에게 건설 허가증을 발급하지 않거나 ‘무허가’ 건축물들을 철거하는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지원하에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예외는 아니다. 유럽연합은 심지어 이스라엘군이 파괴한 인프라의 재건을 위한 자금을 대기도 한다. 이중에는 가자의 항구와 공항,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행정부와 치안기관 건물에 대한 지원이 포함돼 있다. 유럽연합이 3천만 유로를 지원하여 나블루스와 예닌에서 재건 중인 두 개의 정부 건물(mouqata)은 2014년 초 완공 예정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농촌 기반 시설도 포함된다. 이스라엘군과 정착민들은 심지어 인도주의적 목적으로 설치된 텐트, 대피소, 간이화장실 같은 간이 건물들을 파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떤 배상 요구도 제기된 적이 없다. 2013년 유럽 인도지원사무국(ECHO)이 서면으로 손해 배상을 요구한 게 전부다. 그러나 이스라엘 정부는 그 시설들이 당국과 협의 없이 세워졌다는 이유를 들어 배상을 거부했다.
이런 사건이 유럽의 외교관들이 연루된 경우를 포함하여 자주 발생하지만, 외교적 마찰을 피하려는 유럽 정부들은 쉬쉬하고 넘어가는 때가 많다. 그러는 중에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제도적 강화를 위한 지원은 계속되어 왔으며, 지원금에 대한 자치 정부의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유럽연합이 한 해 동안 자치 정부 공무원 봉급으로 지원하는 금액이 1억 5천만 유로에 달한다. 수(水)자원은 언제나 중요한 문제다. 수자원 공유 문제에서도 팔레스타인은 상당히 불리한 입장이다. 공동수자원위원회(Joint Water Council)는 양자 간 합의를 도출하는 임무를 띠지만, 대수층을 건드리는 팔레스타인의 프로젝트를 제한하려는 이스라엘 측에 이용당하고 있다. 현재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수자원 중 팔레스타인 측이 사용할 수 있는 비율은 20%에 불과하다. 나머지 80%는 이스라엘 몫이다.(3) 팔레스타인인들의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은 이스라엘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유럽연합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이스라엘 점령세력이 부과하는 제약 사항들 때문에 더욱 비싸진 물처리 시설 건설 프로젝트 비용을 고스란히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스라엘 당국은 예루살렘 동쪽 지역의 3분의 1을 빼앗아 ‘자국 영토’라고 선언했다. 2013년, 구시가 혹은 역사유적지, 도시 주변을 동심원 모양으로 둘러싼 도회 단지 등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한 이스라엘인은 25만 명에 달한다. 이제 문화, 역사, 유적마저도 이스라엘 당국의 치밀한 통제 대상이 된다. 이스라엘 정부는 관광 안내원 자격증을 발급하고, 고대 유물과 문서를 수집하고, 고고학 발굴 작업을 관리한다. 예루살렘 주재 유럽외교사절단 대표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이런 행위는 “고고학을 이용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대인의 역사적 연속성을 주장하고,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영원하고 불가분한 수도라는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다.”(4) 이처럼 명확한 결론이 담긴 보고서가 유럽 각국 정부에 전달됐음에도, 유럽연합은 이스라엘에 몇 가지 조처를 촉구했을 뿐이다. 2000년까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본부 구실을 했던 오리엔트 하우스(Orient house), 팔레스타인 상공회의소 등 동예루살렘에 위치한 공식기관들을 다시 열도록 하는 조처가 대표적이다.
EU 사절단, 가자 지구 출입금지
2010년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로 통하는 모든 통행로를 차단했다. 그 중 제한된 통행만 허용된 에레즈를 제외하면, 통행이 가능한 곳은 케렘 샬롬이 유일하다. 이곳으로 유입되는 몇몇 수입품은 하마스에게 매우 소중하다. 몇몇 품목을 제외하고 수출은 금지된다. 400㎢의 면적에 200만 명이 모여 사는 가자 지구는 이미 세계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곳임에도 이스라엘 당국은 분리장벽 안쪽의 100~500m 구역을 완충지대(buffer zone)로 설정하여 주민의 접근을 막고 있다. 경작 가능 면적의 3분의 1, 전체 면적의 17%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바다도 예외가 아니다. 팔레스타인 어부들의 조업은 시기에 따라 3~6해리(海里) 내로 제한된다. 참고로 오슬로 협정에는 20해리로 명시되어 있다.(5)
유럽연합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케렘 샬롬 국경 검문소 인프라 확장을 위해 1500만 유로를 추가로 지원했다. 공식적으로는 이스라엘에 봉쇄 철회를 촉구하면서,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안보 시설 확충을 위해 자금을 대고 있는 셈이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상황은 더 나빠졌다. UN의 통계에 따르면 1948년, 1967년 전쟁 당시 고향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인은 500만 명에 달한다. 그 중 3분의 1은 여전히 가자 지구, 요르단강 서안 지구,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지의 ‘임시’ 난민 캠프에 거주한다. UN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 사업 기구(UNWRA)가 제공하는 기본적인 보건, 교육 서비스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인구가 350만 명에 달한다. 유럽연합은 UNWRA에 연간 3억 유로를 지원하고 있지만, 이 지역 정세가 불안해지고 내전을 피해 몰려드는 시리아 난민들로 인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 현상유지(statu quo)는 오직 말뿐이다. 지속적인 평화를 위한 조건을 창출해내지 못하는 유럽연합의 무능만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6) 우선, 유럽연합은 기왕에 발표한 지침을 공염불로 만드는 대신 새로운 계기로 삼아야 하며, 유럽연합 사절의 가자 지구 출입을 금지한 이스라엘과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 유럽은 이스라엘의 제1의 무역 상대국으로서, 교역량이 연간 300억 유로에 달하며, 이스라엘 수출의 4분의 1을 흡수한다. 따라서 2000년 체결된 제휴협약(Association Agreement)을 근거로 이스라엘에 경고를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 가령, 이미 실효 중이거나 협상 중인 특정 협약을 동결하거나 제휴협약 강화를 목적으로 한 모든 협상을 잠정적으로 중단할 수도 있다.
<메이드 인 이스라엘> 관세 면제
이스라엘은 현재 지중해경제개발원조(MEDA)의 최대 수혜국이다.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생산되거나 조립된 제품의 수입을 중단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22개 비정부기구(NGO)의 공동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곳에서 유럽연합으로 수출되는 제품의 총 가치는 2억 3천만 유로에 달한다. 유럽으로 수출되는 팔레스타인 제품의 15배나 된다.(7) 그러나 상품 수입은 직접 지원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유럽연합의 최근 지침과 무관하다. 또한 점령 지역에서 생산되었음에도 간단히 ‘메이드 인 이스라엘’이라고 표기된 제품들은 관세를 면제받는다. 현재 13개 유럽 국가에서 소비자들에게 원산지를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는 표시 방식의 도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아일랜드를 비롯한 몇몇 국가는 이런 조처만으로 해당 상품의 수입을 금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과의 무기 교역과 관련된 조처가 가능하다. 유럽연합의 행동규칙(code of conduct)은 “자국민에 대한 탄압, 국제분쟁과 지역 불안을 야기하는” 권력기관들과 모든 종류의 군사장비 교역을 금하고 있지만, 이스라엘과의 교역은 오히려 늘어만 가고 있다. 유럽 무기의 수입, 유럽연합으로부터 부분적 지원을 받는 무기연구 투자, 최근 가자 지구에서 진행된 잔인한 군사작전 덕분에 이스라엘의 무기 수출은 증가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가자지구의 군사작전이 첨단 무기의 성능을 실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2012년 이스라엘은 53억 유로의 무기를 수출하며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4위의 무기 수출국 자리에 올랐다. 유럽연합이 작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시점이다.
글·로랑스 베르나르 Laurence Bernard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리듬분석> 등이 있다.
(1) 유럽연합 외교위원회(FAC) 의견, 2009년 12월 8일.
(2)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는 장벽 건설이 국제법상으로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William Jackson, ‘Détruire ce mur illégal en Cisjordanie(요르단 강 서안 지구의 불법 장벽 철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4년 11월호.
(3) 물의 지정학에 대한 프랑스 국회의 보고서(2011년 12월)를 참조할 것. 이스라엘의 ‘신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고발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www.assemblee-nationale.fr
(4) 동예루살렘 주재 유럽연합 사절단 보고서, 2013년 2월.
(5) 조안 데아스, ‘가자지구 어민으로 산다는 것(A Gaza, la mer rétréci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8월호.
(6) ‘Failing to make the grade. How the EU can pass its own test and work to improve the lives of Palestinians in Area C’, Association of International Development Agencies(AIDA), 2013년 5월 10일, www.oxfam.org 참조.
(7) ‘Trading Away Peace: How Europe helps to sustain illegal Israeli settlements’, 국제인권연맹, 파리, 2012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