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 인종 학살에 관한 논쟁

2013-11-08     미셸 갈리

잊혀진 인종학살? 500만 명에 달하는 콩고민주공화국의 사망자는 이렇게 그냥 잊혀지게 되나? 콩고와 국제 단체들(1)이 1993년 이래 아프리카 대호수를 둘러싼 분쟁의 희생자 수를 두고 갑론을박을 거듭하며 이에 관한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비정부 기구로 널리 알려진, 1933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창설한 국제구조위원회(IRC)의 주도로 논쟁은 인종학살의 성격규정에 관한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국제구조위원회는 2006년부터 현재까지 사망자 수가 400만 명에 이른다고 주장하며 ‘인종 학살’(2)을 언급해왔다.

국제연합 인권 고등판무관실이 2010년 8월 25일 반기문 사무총장에게 제출한 보고서에 기재된 내용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카리타스(Caritas, 교황청 산하 자선단체) 같은 단체는 이 내용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 이후 희생자 수는 부풀려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희생자 수가 500만 명에 이른다고 하고,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통계에 따르면 350만 명, 많게는 600만 명으로 추산하는 무시무시한 경우까지 다양하다. 600만 명이라는 수치는 1930~1940년대 유럽에서 유태인 학살 희생자 수에 근접하는 수치다. 몇몇 인터넷 사이트는 희생자 수가 1200만 명에 달한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런 수치는 근거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고무줄처럼 들쭉날쭉한 희생자 수

인종 학살이라는 용어가 갖는 강한 정치적, 법률적, 정서적 비중을 고려할 때, 콩고민주공화국의 인종 학살은 객관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아프리카 자원강국들이 보유하고 있는 풍부한 광산자원을 둘러싼 이 지역 국가들, 특히 콩고민주공화국과 르완다의 힘 겨루기의 성질을 띠고 있다. 르완다는 인종 학살자들을 추적한다는 구실로 콩고민주공화국에 군대를 파견했고, 그곳에 장기간 머물며 콩고의 자원을 약탈했다.(3) 이는 르완다의 투치 족 학살의 성격을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었고, 폴 카가메 대통령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국제기구들이 대호수 지역의 인종 학살로 인정한 것은 1994년 르완다의 투치족을 학살한 경우뿐이다. 이 인종청소로 80만 명에서 100만 명이 학살됐다. 르완다 반체제 인사들은 1994년 봄부터 카가메 군대가 후투족을 학살한 것을 두고 ‘이중 인종 학살’이라 부른다. 이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많지만, 콩고 내의 후투족 활동가들이나 콩고 과격민족주의자들은 이 주장을 되풀이하곤 한다. 대호수를 위한 유럽연합 전 특임대표인 알도 아옐로는 “투치족 학살과 병행해 벌어진 후투족 학살을 제쳐 놓는 것은, 이전, 과정, 이후에 벌어진 일을 이해하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말한다.(4)

인종학살의 시기와 공간은 광범위

인종 학살이 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와 공간의 범위는 시각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1993~2003년 사이, ‘아프리카 대전’(5) 동안, 특히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여러 나라(6)의 정치, 군사 조직 6개가 대치했다. 무엇보다도 키부호 주변, 르완다에서 콩고민주공화국으로 건너온 후투족 난민들(르완다 측에서는 이들을 ‘인종 학살자들’로 통칭한다)이 주 희생자지만, 이들 뿐만 아니라 콩고 시민들도 희생자에 포함된다. ‘콩고 인종 학살’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군 대치 상황에서, 또는 총격으로 사망한 사람은 드물다. 희생자들은 현재 콩고민주공화국 서쪽 숲 지대로 어쩔 수 없이 밀려났고, 굶어 죽거나 질병으로 사망했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월별 사망률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평균 사망률의 40%를 상회해, 1000명당 2.1명 수준이다.(7)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희생자들의 죽음

희생자들에 대한 조사, 말하자면 부검이 행해졌을까? 인도주의 활동가들이나 공식 관측 임무를 띤 활동가들이 시체안치소나 무덤을 확인한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다. 벨기에 인구통계학자들은 동료 통계학자나 국제구조위원회가 발표한 높은 수치들을 상대적 시각에서 바라볼 뿐만 아니라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국제구조위원회의 앙드레 랑베르와 루이 롤레-타르는 콩고 내전 사망자 수를 규정보다 많게 평가했고,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평가할 때 적대행위로 사망한 희생자 수는 183,000명이다.”(8) ‘인종 학살’이라는 주장은 카가메 정권을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잊혀진 인종 학살’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흔히 카가메의 정적들과 관련돼 있고, 르완다 반체제 인사들은 콩고 사망자들을 정권 반대수단으로 이용한다.

인종 학살을 주장하는 이들은 인구통계를 바탕으로 그들의 논지를 펼쳐나간다. 그런데 1948년 제네바 협약에 의하면 “(행위로서의) 인종 학살(또는 대량학살)은 국가, 민족, 인종 또는 종교 집단 전부 혹은 일부를 말살할 목적으로 행해진 것을 말한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희생자 수로 인종 학살을 규정할 수는 없다. 인종 학살을 저지른 사람들의 의도가 결정적 요소다. 내전으로 발생한 후투족 난민과 콩고 민간인 사망자들은, 그들을 집단으로 간주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진 분쟁의 피해자이다. 그들은 이 ‘집단 학살’ 역사의 일부다. 그 학살에 대한 기억은 불분명하고, 지금까지도 다양한 이념 조작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글·미셸 갈리 Michel Galy
주요 저서로 <말리전, 사헬과 사하라 위기 이해하기> 등이 있다.

번역•김계영 canari62@ilemonde.com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화사>(2006), <키는 권력이다>(2008) 등이 있다.

(1) www.digitalcongo.net 같은 단체를 예로 들 수 있다.
(2) “콩고민주공화국의 사망률. 위기는 계속된다”, IRC, 뉴욕, 2006. www.rescue.org
(3) 콜레트 브리크만, “승자 없는 민주콩고공화국 전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1년 4월호 참조.
(4) <쿠리에 앵테르나시오날>, 파리, 2010년 12월.
(5) 필립 레인티엔, 아프리카 대전. 중앙아프리카 지역의 불안, 폭력, 국가의 쇠퇴. (1996~2006), 레 벨 레트르, 세계의 소리 시리즈, 파리, 2012년.
(6) 앙골라, 부룬디, 나미비아,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 르완다, 차드, 짐바브웨.
(7) “콩고민주공화국의 사망률. 전국 조사”, <랜싯>, 367호, 런던, 2006년 1월 7일.
(8) <르몽드>, 2008년 12월 31일.


'지성의 창',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monde Diplomatiq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