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성 시비에 늘 시달리는 노벨경제학상

2013-11-08     장시복

지난 10월 14일,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시카고대의 유진 파머 교수와 라스 피터 핸슨 교수, 예일대의 로버트 실러 교수 3명을 공동 선정했다. 그리고 노벨위원회는 이들이 자산가격의 기초를 만들었고 실증분석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된다며 이번 노벨경제학상의 선정 배경을 밝혔다.


잘 알려진 대로 파머 교수는 시장의 우위를 강조하며 효율시장가설을 주창한 경제학자다. 그가 주창한 이 이론에 따르면 자산시장, 특히 주식시장에서 모든 정보를 반영한 주가는 시장을 항상 효율적으로 만든다. 다시 말해서 효율적인 시장에서 모든 가격들은 항상 정확하게 결정되고 시장 펀더멘탈을 반영한다. 따라서 주가는 시장 펀더멘탈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발생할 때에만 변해야 하며 정의상 예측하기 불가능한 ‘임의행보’를 따른다.

지동설과 천동설을 동시에 인정한
무개념의 노벨경제학상

핸슨 교수는 파머 교수가 주창한 효율시장가설을 실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계량경제학자다. 그는 흔히 ‘일반화 적률계산 방법론(GMM)’이라 알려진 계량기법을 만들었으며, 이 모형을 사용해 계량경제학자들은 자산가격의 변동성이 크다는 실증결과들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이 결과들은 파머 교수의 효율시장가설에 대한 실증적 비판으로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 실러 교수는 주류이론으로 인정받던 효율시장가설을 강력하게 비판한 학자다. 효율시장가설에 따르면 주가가 배당의 현재가치를 적절하게 예측한다면, 근본가치는 장기적으로 내재가치의 추세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그는 미국 주식시장에 대한 실증연구를 통해 주가는 급등했다가 급락하는 현상이 나타나며, 이는 주식시장에서 발생하는 투기나 심리적 변동 등 ‘야성적 충동’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 세 학자들은 자산가격의 예측과 관련한 이론적·실증적 기여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런데 눈치 빠른 독자라면 벌써 알아챘겠지만, 이들은 공통된 이론기반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특히 효율시장가설의 주창자인 파머 교수와 이 이론에 대한 강력한 비판자인 실러 교수는 정반대의 진영에 서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노벨경제학상의 선정 결과는 연구주제가 같다는 이유로 정반대 진영에 속해 있는 학자들에게 상을 공동 수여한 의아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에 관해 영국 런던 정경대 존 케이 교수는 이들의 공동수상을 “천동설을 주장한 프톨레마이오스와 지동설로 이에 반기를 든 코페르니쿠스가 노벨 물리학상을 함께 받은 것과 같다.”며 신랄하게 꼬집었다. 그는 “자연법칙에서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코페르니쿠스가 옳다면 프톨레마이오스는 틀린 것”이라며 올해 노벨위원회의 결정은 경제학에 합의되고 확립된 지식체계가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도 비판했다. 케이 교수의 신랄한 비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반대 입장에서 선 사람들이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하는 경우는 흔한 일은 아니다. 이를 의식했는지 노벨위원회는 이들 세 학자가 서로 모순되는 주장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자산가격 예측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공동 수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부가적으로 밝혔다.

끊이지 않는 잡음에 휘말려온 역대 수상자

그런데 노벨경제학상 수상과 관련한 논란이 이번에만 제기된 것은 아니다. 2009년 올리버 윌리엄스와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엘리너 오스트롬 교수는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다. 이를 두고 호사가들은 노벨‘경제학’상임에도 정치학 전공자에게 상을 수여할 수 있느냐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또 2012년 노벨경제학상은 미국의 앨빈 로스 하버드대 교수와 로이드 샤플리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에게 돌아갔는데, 그 때에도 미국발 세계대공황이 한창인 시절에 수학에 바탕을 둔 미시이론 연구자가 수상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무릇 어떤 상이든 논란의 여지는 늘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 상을 받으면 누군가는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상을 받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르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객관적이고 합당한 이유를 찾기는 불가능하다. 상을 탄 사람에 대한 엇갈린 평가는 늘 따라붙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란은 노벨경제학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상이나 평화상 등에도 있었다. 그런데도 유독 노벨경제학상에 논란이 많은 이유는 이 상의 태생적 한계와 수상자들의 편향성때문이다.

사실 노벨경제학상은 1895년 스웨덴의 발명가이자 실업가인 알프레드 노벨이 남긴 유언과 헌납한 재산을 바탕으로 제정된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학·의학상, 문학상, 평화상과는 달리 1968년 노벨을 기념하기 위해 스웨덴 중앙은행 리크스방크가 별도로 신설한 것이다. 쉽게 말해 노벨경제학상은 노벨상의 ‘막내’라고 할 수 있지만, 노벨상의 ‘적자(嫡子)’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노벨경제학상은 늘 정통성 시비에 시달렸으며, 심지어 1997년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경제학상이 당초의 5개 시상부문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노벨재단에 폐지안을 제출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경제학자들의 외면 속에 차려진
그들만의 잔칫상

노벨경제학상과 관련해서는 이러한 정통성 논란뿐만 아니라 여러 논란들이 늘 따라 다닌다. 우선 노벨상은 노벨의 유언에 따라 ‘지난 해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수여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노벨경제학상은 이 같은 원칙과는 다르게 ‘지난 해’에 경제학에 공헌한 학자에게 수여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경제학자 중 경제학에 공헌한 자에게 수여된다. 매년 발표되는 수많은 논문 중에서 경제학에 공헌한 이론을 찾아내는 작업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의 특성상 이론적 기여는 시간을 두고 평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와 함께 가장 큰 비판이 되는 또 다른 한 가지는 수상한 경제학자들의 대부분이 영미권 출신이라는 것이다. 1969년 이후 지금까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학자들은 74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당대에 쟁쟁한 경제학 이론을 개발한 학자들이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폴 새뮤얼슨(1972년), 밀턴 프리드먼(1976년), 제임스 토빈(1981년), 로버트 솔로(1987년), 조지프 스티글리츠(2001년), 폴 크루그먼(2008년)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은 영미권의 경제학자들이다. 1969년부터 2013년까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경제학자는 51명으로 전체의 68.9%에 달하며 영국의 경제학자는 8명으로 10.8%에 달한다. 이 두 나라를 합치면 59명(79.7%)에 이를 정도로 노벨경제학상에서 영미 경제학자들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나아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주류경제학의 입장을 고수하는 학자들이다. 다시 말해 이들 대부분은 신고전학파와 케인스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들이다. 특히 주류경제학자들 내에서도 시카고학파로 불리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수상 비율이 단연 압도적으로 높다. <국민일보>의 보도(2013.10.15)에 따르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4명 중 1명 이상이 미국 시카고대에서 학위를 받거나 교수와 연구원을 지냈다. 지금까지의 수상자 중 시카고대에서 학위를 받거나 교수를 지낸 사람은 18명(24%)이었으며, 이 대학 소속 연구원 경력을 포함한 이수자는 20명(27%)에 이른다. 물론 시카고대와 관련이 있다고 모두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전통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학문적 기반을 가진 학자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발원지로 알려진 이 대학에서 노벨경제학상의 수상자가 많다는 것은 이 상에 담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편향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영미 경제학의
편향성에서 벗어나야

이러한 논란과 편향성 시비에도 불구하고 노벨경제학상은 경제학계의 최고의 권위의 상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당대의 저명한 경제학자로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인 것도 여전한 사실이다. 그러나 1969년 이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이 상이 다양한 이론적 지형을 가진 경제학의 성과들을 불편부당(不偏不黨)하게 반영하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 들어 노벨경제학상에서는 새롭게 발전하는 경제학 분야의 학자들을 수상자로 결정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02년 버논 스미스와 다니엘 카너먼은 실험경제학 분야를 개척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또한 2005년 로버트 오먼과 토마스 셸링은 게임이론 분야에서 갈등과 협력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의 경제학은 새로운 방법론을 사용한 연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노벨경제학상도 이에 보조를 맞춰 새로운 경제학 분야를 인정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경향은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결과이며, 기존 주류경제학의 문제점이 두드러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향후 다양한 이론영역에서 수상자가 증가하느냐의 여부가 주류경제학 일색인 노벨경제학상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노벨경제학상이 영미권 경제학자들이나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대한 편향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변화의 기준점이 될 것이다. 전후 세계경제를 호령해왔던 미국에서 노벨경제학상이 많이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풍미하던 시대상이 노벨경제학상에 투영된 것에 대해 수긍할 수 있는 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 세계대공황은 영미식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번 공황에서 이들 경제학자들은 아무런 해법도 제시하지 못하고 침묵했으나, 이후 정부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늘어나자 침묵을 깨고 ‘긴축’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현실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든 그렇지 않든, 이번 대공황으로 이들의 이론적 한계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다. 앞으로 노벨경제학상이 주류경제학의 한계를 어떻게 반영하는가의 여부가 변화의 또 다른 시금석이 될 것이다.


글·장시복
장시복은 2008년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목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초국적기업, 초국적 금융자본, 세계공황 등 세계경제의 역사와 구조적 이해에 대해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 및 번역서는 <자본의 반격>(2006), <마르크스의 공황이론>(201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