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불법전쟁, 세계시민 이름으로 단죄해야

합법적인 방어라고 수긍할 어떤 동기도 없어

2009-04-04     리처드 포크

 


이스라엘 총선에서 우파와 극우파가 승리를 거둔 것에 대해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스라엘 노동당과 예후드 바라크 국방부장관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 정책과 가장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띤 노선을 추종한 대가를 값비싸게 치렀다. 극우 민족주의자 베냐민 네탄야후가 총리 자리에 오르면, 이스라엘에 대한 도덕적 비난과 가자지구에 대한 공습 책임자를 법정에 세우려는 국제적 압력은 더욱 배가될 것이다.


리처드 포크  유엔 특별인권조사관



1948년 건국 이래 처음으로, 얼마 전 이스라엘은 전 세계의 저명한 인사들에게서 전쟁 범죄자라는 신랄한 비난을 받았다. 유엔의 반기문 사무총장도 주권 국가들의 문제, 특히 국제사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국과 관련된 국가의 문제에 대해선 신중한 자세를 견지해왔던 태도에서 벗어나 이스라엘 범죄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다.

사실, 지난해 12월 27일 자행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은 과거 이스라엘이 무력을 행사했던 전례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사용된 무기가 달랐고, 자위 능력이 없는 주민들을 무참히 살해한 것도 끔찍했다.

총 1330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13명의 이스라엘인으로 인해 살육을 당했다. 100 : 1 꼴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와 그 동맹국들은 적의 공격에 대한 ‘보복’과 ‘자위권’을 들먹이지만, 대부분 국가의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말조차 입에 담길 주저한다. 분명, 이스라엘의 행위는 ‘대량 학살’, ‘전쟁 범죄’, ‘반인륜 범죄’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공습은 명백한 반인륜 범죄


과거에도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은 특히 아랍 국가들로부터 유엔 헌장을 위반했다고 광범위하게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 등 상당수 국가는 이스라엘이 전쟁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력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에 대한 비난은 대개 아랍의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 및 급진주의 세력으로부터 나왔다. 이 지역의 초창기 무장 분쟁은 이스라엘과 그의 동맹국, 그리고 이스라엘을 인정하길 거부하는 이웃 아랍 국가들 사이에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여러 국가들이 대립 관계에 놓였다. 1967년 분쟁 당시, 이스라엘은 자신의 군사력을 과시하면서도 국제정치의 룰을 따르는 전략을 구사했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저지른 전쟁이 불법적이기는 했지만 범죄적이지는 않다고 여겼다.

1982년 레바논 전쟁과 함께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남(南) 레바논에 터를 잡은 게 당시 이스라엘이 내세운 전쟁 이유였다. 우리는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났는지 똑똑히 기억한다. 사브라와 샤틸라 난민 캠프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비무장 팔레스타인들이 살육을 당했다. 비록 이 범죄가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의 작품이기는 했지만, 이스라엘이 공범이라는 사실이 곧 판명되었다. 그러나 이 범죄는 비난을 낳기는커녕, 군사 작전의 테두리 내에서 벌어진 하나의 ‘오점’으로 간주되었다. 적대적인 그룹이 자기 영토를 사용하는 것을 저지하지 못하는 레바논 정부의 무기력을 이스라엘은 군사 작전을 통해 정당화시켰다. 이스라엘은 1982년 남 레바논을 무력으로 점령하였으나 이에 대한 반발로 헤즈볼라와 무장저항 조직이 생겨나, 마침내 2000년의 불명예스러운 철수로 이어진다.

1982년에 자행된 이스라엘의 침공과 남 레바논 점령은 끝없는 분쟁을 촉발한다. 이스라엘의 적 구실을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대신해 헤즈볼라가 떠맡았다. 시아파 조직을 궤멸시키려 시작된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은 피치 못하게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끼쳤다. 이스라엘은 무기를 갖춘 정규군이 아니라, 자위력 정도의 수단들을 구비한 단체와 맞서 싸우면서 뛰어난 첨단 무기를 동원했고, 그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오히려, 헤즈볼라는 전쟁을 통해 더욱 강해졌다.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자국 군대의 명성을 훼손하고 남 레바논의 황폐화를 초래하는 전쟁을 기를 쓰고 한 것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군사적 선택을 동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됐다.


‘합법적 방어’의 여지 없는 이스라엘의 만행


최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공세는 이러한 의혹을 더욱 짙게 해준다. 이스라엘은 국가가 아닌 무장투쟁 조직을 상대로 살육전을 벌이면서도, ‘범죄’ 가 아닌 ‘전쟁’이라는 단어를 부각시키려 했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은 국제법상의 곤란한 문제, 즉 자신이 행사한 무력이 도에 지나쳤는지에 대해 스스로 골몰하고 있다는 인상을 외국의 매스컴과 외교관들에게 부각시키면서 ‘범죄’란 표현을 피하려고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여기에 중대한 문제점이 은폐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법률적 측면에서 ‘방어적’이었는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전개된 상황을 검토해보면, 이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2008년 6월 19일 이후 발효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임시 휴전에 힘입어 ‘국경’에서의 전투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이슬람 운동단체들은 향후 10년 동안 전쟁을 하지 말자고 여러 차례 반복해서 휴전 연장을 제안했다. 휴전이 깨지고, 전쟁이 재개된 것은 이슬람 세력의 미사일 공격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2008년 11월 4일 이스라엘의 갑작스러운 공습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 전투원 6명이 사망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스라엘의 만행에는 합법적 방어라고 수긍할 만한 그 어떤 동기도 없다. 이스라엘이 공격을 받지 않았고, 설사 공격을 받더라도 유엔헌장이 권고하는 것처럼, 상대방의 무력에 대한 외교적 해결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도에 지나쳤는지’가 아니라, 그 공격이 유엔이 금지하는 ‘평화를 침해하는 범죄’ 행위를 위반하지 않았는지 여부로 논의가 집중되어야 한다. 뉘렌베르크 전범재판소는 이스라엘이 저지른 범죄 같은 만행을 ‘최고 범죄’로 규정짓고 있다.

하지만 가자지구의 상황은 전쟁과 범죄 사이의 구별을 어렵게 만든다. 접경지역인 데다가 인구가 밀집한 지역이라 팔레스타인 투사들이 필연적으로 민간인과 뒤섞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과 미사일 발사를 위주로 한 하마스의 반격이 정규전의 한계를 훨씬 넘어섰을지라도, 양 진영은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간주될 수 없다. 이스라엘은 합법적인 근거가 없이 마을을 황폐화시키고 민간인들에게 고통을 가하면서 가자지구에 대한 작전을 펼쳤다. 가자지구를 ‘응징’하려는 군사적 방식은 본질적으로 범죄이다. 그 방식은 전쟁 관련 규칙들을 위반하면서 반인륜 범죄로 귀결되었다.

이스라엘의 침공을 비난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가 있다. 이미 18개월 전 이스라엘이 공격을 시작한 때부터 가자지구 주민들이 감내하고 있는 도시 봉쇄는 집단 처벌에 버금간다. 그것은 민간인에 대한 점령국 행위를 규정한 제4차 제네바협약 33조와 55조1)를 위반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반인륜 범죄로, 그리고 인도주의와 관련된 국제법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으로 광범위한 비난을 받았다. 봉쇄 정책은 주민들에게 심각한 영양 손실과 심리적인 장애를 초래했는데, 이스라엘이 지상과 공중, 해상에서 전개한 ‘충격과 공포’ 작전 때문에 주민들이 심각한 불안 상황에 빠진 것이다.


국제 재판소, 전쟁 책임자들 단죄해야


이스라엘은 민간인들의 피난을 금지한 상태에서, 이 곳 가자지구를 파렴치한 방식으로 공격하였다. 200 명에 달하는 외국 출신 신부들만이 영토를 떠날 허가를 받았는데, 이는 아이, 여자, 병자, 노약자, 장애인들을 폭격 지역에 감금한 범죄적 성격을 더욱 뚜렷이 부각시켰을 따름이다. 간접적인 인종 차별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팔레스타인인이 아닌 여성들만이 떠날 허가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보다 간헐적인 또 다른 전쟁범죄는 현장에서 자행되었다. 인권 운동가들이 현지에서 채집한 증거들에 따르자면 민간인 목표물에 대해 사격이 가해졌고, 부상당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해서는 의료 지원이 거부되었으며, 구급차의 접근이 차단되었다. 이스라엘군의 범죄 행위를 정식으로 적시한 고소장에는 백기를 흔들고 있는 여성과 아이들에게 이스라엘 병사들이 사격을 가한 20개의 사례가 적혀 있다. 고밀도 금속폭탄(Dime)이라는 이름을 한 잔인한 신 무기와 화약 폭탄을 주거 지역에 사용한 것에 대해서도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고밀도 금속폭탄의 경우 너무나 강력해 신체가 산산조각 찢어진다.

전쟁 범죄의 생생한 증언들은 더욱 심층적인 조사를 토대로 명확해질 것이다. 그에 따라 이스라엘 쪽 학살 당사자, 지휘관, 정치 지도자들을 법정에 세울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민간인 목표물에 대한, 그리고 ‘인간 방패’를 동원한 하마스 투사들을 대상으로 한 미사일 공격에 대해 이스라엘을 고소할 수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보충적인 조사 없이도 전쟁 범죄에 대한 비난은 충분한 근거가 있다. 가자지구 봉쇄, 공격 자체의 범죄적이고도 비방어적인 특성, 전쟁 지역에서의 민간인 격리 등 비인간적 상황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하마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그들의 변명을 듣는 유용한 절차를 토론하기 이전에 범죄 행위에 대한 법률적인 검토를 훨씬 더 필요로 한다.

이에 대한 여러 의문들이 즉시 대두된다.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에 대한 토론은 순전히 형식적인 것이 될 것인가? 이스라엘을 고소한 후 책임을 지고, 처벌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의 범죄행위에 대해 적용 가능한 법률적 메커니즘은 어떤 것일까?

이스라엘 정부는 자국 군대의 전쟁 범죄와 관련된 모든 종류의 고소, 고발에 맞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정치 논리에 의해 실종된 국제 정의


이스라엘의 범죄 행위에 대한 가장 논리적인 접근 방식은 2002년에 창설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권한을 내세우는 것이다. 사건을 검토하기 위하여 검사가 직접 방문조사한다 할지라도, 그러한 요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스라엘은 규정 서명국이 아니며2), 팔레스타인은 국제형사재판소 위상에 걸맞은 국가나 지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은 아직 그런 위상을 얻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뒤늦게 그리고 약간은 기습적인 방식으로, 팔레스타인자치기구는 1월 19일 휴전 이후 국제형사재판소를 설립한 로마 규정에 가입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이 받아들여진다 할지라도(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가입 날짜 이전의 사실에 대한 법적 행동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스라엘이 증거를 수집하거나 증인이나 용의자들을 확보하려는 재판소에 결코 협력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사법적 절차를 위태롭게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두 번째 가능성은 1990년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다. 유고슬라비아의 해체 혹은 1994년 르완다에서 자행된 학살과 관련된 전쟁 범죄들을 심리하기 위해 그랬던 것처럼 특별 국제형사재판소를 구성하는 방식이 그것이다.3) 물론, 이런 방법은 거부권을 갖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일부 상임이사국들에 의해 쉽게 결정되긴 어렵다.

인권 옹호가 유엔의 주요 권한 중 하나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유엔 헌장 22조가 규정한 것처럼, 이론적으로는 유엔 총회가 그와 유사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유엔 내부의 역학관계가 그러한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을 어렵게 만든다. 또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봉쇄를 풀라고 주장하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요구에 쉽게 답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국제 시민사회의 압력이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지휘관과 병사들이 고소당한 당사국의 적극적 협력이 없다면 이러한 성격의 재판소가 작동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유고슬라비아와 르완다 경우가 그랬다. 이스라엘 당국은 자신의 전쟁 범죄를 검토할 책임을 맡은 국제기구의 활동을 틀림없이 방해할 것이다.

들끓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유엔 내부에서든 아니면 바깥에서든 간에 국제적 차원에서 이스라엘을 법정에 세우려는 정치적 노력은 실패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사담 후세인이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법정에 세우는 논리가 있다면, 조지 부시나 예후드 올메르트를 단죄할 수 있는 또 다른 논리도 존재한다. 뉘렌베르크 전범재판 이후, 전쟁에서 승리한 강대국을 위해 행동한 자들이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은 자명하다. 가까운 미래에 이러한 사실 관계를 뒤흔들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으며, 이러한 현실이 국제 정의를 세우려는 국제법의 영향력을 상당히 약화시키고 있다.


인류의 이름 아래 준엄하게 재판해야


이러한 조건들 속에서, 우리가 고려해 볼 수 있는, 설득력이 가장 큰 방식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근거한 준엄한 재판이다. 이 원칙은 일부 전쟁 범죄를 국내 법정에서 다룰 수 있도록 한 국가들의 재판소의 권한과 연결된다. 실제로, 스페인, 벨기에4),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등 10여 개국의 법은 이런 원칙을 담고 있다.

예컨대, 스페인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부재할 경우 고소장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정치적 압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이 접수한 이스라엘 군대의 여러 고위직 장교들에 대한 고소를 받아들인다고 판결했다.5)

이는 1998년 스페인 재판소가 칠레의 옛 독재자인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고발한 바로 그 사법 절차이기도 하다. 피노체트는 영국에서 체포되었는데, 스페인 판사들은 그를 스페인으로 소환하려는 범인인도 판결을 최종적으로 내렸다. 그럼에도 피노체트는 범인으로 스페인에 인도되지 않았고, 재판을 받을 만한 건강이 아니라는 이유로 칠레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피노체는 자신의 조국에서 형사상의 절차가 포기되기 이전에 숨을 거둔다.6)

하지만 국제재판소가 스페인 등 국내 재판소에 가자지구에서 자행된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심리할 증거나 수단들을 제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국내 사법절차는 외부의 압력에 의해 포기될 공산이 크다. 독일 재판소가 1년 전 미국의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부 장관이 이라크에서 저지른 고문 및 범죄 행위에 대해 명백한 증거가 있었음에도, 그에 대한 고소장을 거부하는 모습을 우리가 목격한 바 있다.

게다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근거한 준엄한 재판’은 전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다. 범인 인도를 요청하기 위해선 각국 정부 간의 협력이 중요하다. 문제는 어느 특정국가에서 용의자를 추적하고 체포하는 일이 가능할 것인가의 여부다. 그러나 이러한 끔찍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가치를 내세운 재판은 가장 희망적인 접근 방식이다. 구체적 혐의가 없는 경우에도, 단순한 고소 행위만으로도 전쟁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자유로이 여행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수 있으며, 관련 당사국의 정치적 입지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수 있다.

항복하는 민간인들에게 총을 발사한 사례처럼 전쟁터에서 저지른 개인적 행위의 경우 이론적으로는 당연히 이스라엘 형사재판소에 고소할 수 있다. ‘브첼렘’(B'Tselem)과 같이 존경받는 인권단체들은 현재 이와 관련된 증거들을 수집 중이며, 이스라엘 재판소뿐 아니라, 여러 국가에서 소송과 관련된 무수한 국제적 요청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구체적 결과가 뒤따르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러한 조처는 다른 재판소들에서 그러한 범죄들을 고소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믿게 해줄 것이다.

더욱이 시민사회 쪽의 고소 참여는 순전히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재판소의 설립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성격을 지닌 재판소들이 베트남 전쟁 때 설립된 적이 있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버트란트 러셀이 당시 ‘러셀 재판소’를 가동한 것이 그 것이다. 그 이후 로마에 소재한 상설 민중재판소가 유엔이나 그 어떤 정부도 다루지 못할 여러 문제들을 대상으로 20개 이상의 재판을 연 바 있다.

 

2005년 이스탄불에 소재한 이라크 국제재판소는 54명 증인들의 증언을 청취한 후 대단히 탁월한 고소장을 작성했다. 인도의 여성 소설가 아룬다티 로이가 주재했던 재판부는 양심선언문을 발표했는데, 이라크를 침공하고 점령한 죄목으로 미국과 영국에 유죄 판결을 내리고, 이 두 나라의 지휘관들을 형사 소추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러한 활동은 중동에서 커다란 반향을 낳았다. 반면, 그러한 시도는 편파적이거나 법적 무게감이 없다는 이유로 서구 매스미디어들로부터 공격받거나 무시되었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국제기구의 공식적인 절차와 결정이 부재하는 공백을 메워줄 뿐 아니라, 비폭력적인 반전 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참여를 가져온다.

결국, 우리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저지른 전쟁범죄가 왜 심각한지, 만약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를 억누르는 질문을 갖게 된다.


합법적인 전쟁에서 패배하는 이유


합법적인 전쟁은 무엇이고, 그 전쟁에서의 패배와 승리는 무엇을 의미한가? 미국은 베트남 전쟁 동안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전쟁에서 패배했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반도와 알제리에서,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동일한 운명을 겪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고수하던 체제와 마찬가지로 이란의 샤 체제는 붕괴했다. 그들은 합법적인 전쟁에서 패배를 당했다.

이스라엘은 형식적인 사법 재판을 모면할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 여론이 자신에게 쏟아 붓는 비난, 차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재연시킨다는 비난에 직면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해 전 세계 시민들이 광범위하게 공유하고 있는 인식은 향후 보이콧, 투자 철회, 경제 제재 캠페인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또 각국 정부와 기업들에게 이스라엘을 도와주지 말라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고, 팔레스타인의 대의명분이 합법적이라는 생각을 상기시켜줄 것이다. 이러한 풍경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 철폐를 위해 전개되었던 무수한 국제 캠페인을 연상시킨다. 팔레스타인인들이 합법적인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다 할지라도 그들이 가까운 미래에 독립을 쟁취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런저런 방식으로 정치 방정식을 변화시킬 것임에 틀림없다.


번역 이상빈 malraux21@ilemonde.com


각주

1) 33조는 개인의 책임, 집단 고통, 약탈 및 탄압에 관련된 것이며, 55조는 점령지 주민의 식량 배급과 관련을 맺고 있다.

2) 재판소는 1998년 7월 17일 유엔의 지원 아래 로마 규정에 따라 설립되었는데, 2002년 4월 11일 이후 정식 기관이 되었다.

3)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827조에 의해 1993년 5월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설립되었다. 반면 르완다 국제전범재판소(ICTR)는 동 결의안 955조에 따라 1994년 11월 8일 설립되었고, 탄자니아의 아루샤에 소재하고 있다.

4) 1993년 만장일치로 통과된 ‘보편적 권한 법률’은 벨기에로 하여금 국제 정의를 위한 투쟁의 모델이 되게 했으나, 미국의 압력 아래 그 후 폐지된다.

5) 팔레스타인인권센터(PCHR)는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베냐민 벤 엘리에젤 및 6명의 군부 고위 책임자를 고소 대상으로 삼았다. 그들은 2002년 7월 22일 가자지구 알-다라지 구역에 1톤의 폭탄을 투하한 것에 연루되어 있다. 이 사건은 하마스 지도자로 추정되는 인물과 14명의 민간인 사망, 150명 이상의 부상자를 냈다.

6) 건강상의 문제로 형사재판을 받기에 부적절하다고 산티아고 재판소가 판단했기에, 피노체트는 사기 사건 외에는 더 이상 고소를 당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