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인가 기업인가

2013-11-08     크리스티앙 라발, 루이 베베르

최근 프랑스 교육부 장관 뱅상 페이옹은 학교가 기업들의 요구에 순응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내비치며 “교육계는 재계와 업계의 요구에 신속히 부응하고자 학위의 내용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프랑스에서는 사실 신자유주의가 교육 부문에서만큼은 기를 펴지 못했었다. 여론의 거부감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2년 뤽 페리가 교육부 장관을 맡으면서 이러한 자중적인 태도도 끝이 난다. 다만 그는 이중적인 어법을 구사했을 뿐이었다. 당시 뤽 페리 전 교육부 장관은 “최근 몇 년간 학교 간부들의 활동 지침으로 채택된 모델”이 기업 운영 방식의 모델과 같아졌다며 유감을 표했는데,(1) 이는 “신임 장관직과 그의 지방 세력 및 지역 협력자들 간의 새로운 균형”을 즉각적으로 도모하기 위함이었으며, “효율성을 보여준 지역 주체들의 책임감을 고취”시키려는 의도였다. 더욱이 2003년 3월 21일, 전국 대학 학장 회의의 연례 심포지엄에서 “경쟁력을 높이려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교육이 제공되어야 할 것”이라고 짚어주었다. 이는 비단 말만 바꾼 것이 아니라 교육의 상업화라는 사고방식까지 차용한 것이었다.

기업 위한 서비스 기관으로 전락

정부 윗선에선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교육 제도 운영에 관한 기술 평가를 우선시 해오던 뤽 페리는 국내의 교육 및 연구 부문을 총괄하는 정부 내 수장으로서 2002년 당해 연도 보고서를 통해 표현의 수위를 높였다. “교육 부문은 여러 분야 가운데 하나로서 직업 세계의 한 주체에 불과하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따라서 교육계는 “교내 학위 이외에도 필요한 경우 다른 곳에서 발급받는 학위, 특히 실제로 취업의 판로를 제공해주는 경제 활동 부문에서 발급하는 학위를 함께” 구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가 기업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업의 직업 훈련 목표를 강요하며, 기업의 자체 학위를 제정해주고 기업 내부의 자체 학위 심사단도 꾸리도록 한다는 건데, 일찍이 교육부 장관이 이렇게까지 멀리 나간 적은 없었다.

세계 각국에서는 물론 나름의 고유한 학교 교육 제도를 꾸려나가고 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의 각급 위원회와 회의석상에선 전 세계 차원의 정책이 마련되고 있고,(2) 유럽위원회와 세계은행 보고서에서도 국제 정책이 수립되고 있다.(3) 조금씩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들 정책은 기본적으로 같은 전략적 노선을 따르고 있으며, 정책을 설명하는 표현 방식에 있어서도 대동소이하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와 같은 국제노선 및 표현 방식을 따라가고 있으며, 제시하는 논거도 동일하고 생각하는 방식도 동일하다. 심지어 이에 대한 ‘확신’ 또한 똑같이 갖고 있고, 각국 정부의 활발한 참여도 수반된다. 이 전 세계적인 차원의 ‘개혁’이 추구하는 바람직한 학교의 모습에는 두 가지 주된 특징이 있다. 하나는 경제 논리에 예속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 좀 더 정확히는 부모의 요구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생각하는 지식이란 무언가를 함에 있어 유용한 도구이자 사회적 성공을 위한 수단이어야 하며, 미래의 수입을 늘리기 위한 개인적인 자산이어야 한다.

경제논리 ‘인적 자본’ 육성으로서의 교육

‘인적 자본’이란 말은 교육 방식 일체와, 한 발 더 나아가 교육의 정신 자체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데에 사용되는 주요 용어이다. 자유주의 정신에 입각한 교육이란 고객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며, 선택권을 가진 고객은 반대로 공급 그 자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공공 서비스의 개념마저도 왜곡될 수 있는데, 이에 따라 학교는 ‘효율적으로’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용역 업체로 전락하고, 소비자는 자신의 실리를 따져볼 수 있는 상황이 되고 만다.

경제 전면에 걸쳐 경쟁력의 원천이자 주요 원자재로서의 기능을 하는 지식 분야에 있어서도 자본주의 논리가 맹위를 떨칠 기세다. 어쨌든 이는 OECD와 세계은행, 유럽 집행위원회에 있어 개인적 차원에서나 사회적 차원에서나 교육에 대한 투자를 유일하게 정당화해주는 이유이다. 이에 따라 학교는 생산성과 그 논리 앞에서 맥을 못 추게 됐다. 나이와 직업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광범위한 교양을 함양할 수 있는 권리를 실질적으로 실현시켜 주는 평생 학습이란 개념은 직업 훈련과 고용 자격을 긴밀하게 지속적으로 연계시키기 위한 교육 개혁 전략의 하나로 전락했다.

기업들의 유연성 요구에 부합하는 교육제도

산업 생산 인력과 소비자를 양성한다는 두 가지 목적에서 이와 같이 교육이 경제적 명령에 복종하는 상황은 실제로 학업 과정 전반으로 확대되어 있다. 유럽 연합은 “기업 정신과 관련한 개인의 역량은 교육에 입문하는 최저 연한에서부터 대학에 이르는 기간 동안 교육되어야 한다.”(4)고 한다. OECD 역시 개인이 경쟁력을 갖추고 채용되기 위한 필요 요건 중 하나가 ‘시장의 유연성’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학교를 끌어들인 기본 인식의 변화를 전제한다. 따라서 가장 좋은 건 학교 자체를 일종의 기업으로 정의한 뒤, 전체 생산 과정에서 학교가 하나의 기능을 담당하도록 하여 인적 자본으로서의 역량을 키우고 직업 훈련을 담당하는 주체로 자리 잡게 만드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의 방법론이 강조되는데, 기업의 경영 ‘문화’가 우선시되고 기업식 언어와 기업 내 관행이 부각되는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이 같은 움직임은 삼십여 년 전부터 있어왔다. 다른 인력보다도 일단 학교장들에 대한 교육이 우선적으로 이뤄졌으며, 이들은 이제 ‘경영진’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교사라는 직업의 특수성을 생각하게 만드는 부문은 점차 사라져갔고, 대신 교사들을 ‘교육 기술자’ 혹은 ‘관리자’ 정도로 치부하는 개념 정의들이 생겨났다. 이렇듯 학교는 점차 민간 기업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법적인 측면에서나 재정적인 측면에서는 100%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학교가 내부적으로 하나의 시장과 같은 형태로 변질됨에 따라 이러한 경향이 눈에 띈다. 시장으로 변질된 학교에서는 학생들 개개인 간, 그리고 점점 더 심해지는 학교 간의 경쟁이 하나의 기본 규칙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방 분권화 정책은 보다 수준 높은 교육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나 교육 접근성 확대에 대한 대응책이 되지 못한다. 이는 현지의 고용 논리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맞춤식 직업 교육을 시행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특히 분권화 정책은 재정 지원 면에 있어 무시 못할 수준의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요인이다. 2012년 4월 회계 감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정부가 파리 지역 학생 한 명을 교육하는 데에 지출한 비용은 크레테유나 베르사유 등 교외 지역 학생 한 명의 교육 지출 비용보다 47%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5) 이렇게 되면 교육 우선 지역과 같이 취약 계층이 받는 지원 금액은 보잘 것 없는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 같은 정책을 시행하는 데에 유럽 연합 기구들이 상당한 역할을 맡고 있다. 공식적으로 유럽연합은 교육 부문에 있어 그 권한이 매우 제한적이지만,(6) 최근 몇 년 사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유럽이사회는 학제 분야의 통일을 꾀하도록 적극 장려했다. 집행위원회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인적 자본’의 역할을 중점 전략으로 삼았고, 2000년 3월에는 리스본의 유럽이사회가 이 같은 방향성을 가장 극명히 드러내 보여주었다. 정상회의의 결과 보고에서 학교 교육과 직업 교육이 고용 정책과 경제 정책을 위한 도구 수준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교육제도의 경우, 새로운 기술적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야 하며, 유럽 기업계가 요구하는 역량과 유연성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어쨌든 세계무역기구 쪽에서는 교육의 내용에 대해 직접적인 관심을 두지 않는다. WTO의 관심이 있는 건 오직 교육 서비스업 부문의 잠재적인 시장 규모이다. 사실 전 세계에서 매년 1조 유로 이상이 교육비로 지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교육 분야에서도 역시 세계무역기구가 추구하는 목표는 바로 시장 자유화를 통해 교육 부문 민간 기업이 최대이익을 실현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다.


글·크리스티앙 라발 Christian Laval 루이 베베르 Louis Weber
라발은 <신흥 자본주의 학교(Nouvelle Ecole capitaliste)>, <학교는 기업이 아니다. 공교육을 위협하는 신자유주의(L'Ecole n'est pas une entreprise : Le néo-libéralisme à l'assaut de l'enseignement public)> 등의 저자이고, <탈 세계화란?(Démondialiser?)>의 저자이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피에르 라비의 자발적 소박함> 등이 있다.

(1) 2002년 9월 2일 기자회견.
(2) 뱅상 게옹Vincent Gayon, ‘OECD, 사냥개들의 성채Au château de la Muette, enquête sur une citadelle du conformisme intellectue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7월 기사 참고.
(3) <세계무역기구, 세계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 유럽집행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세계 교육계의 새로운 질서Le Nouvel ordre éducatif mondial. OMC, Banque mondiale, OCDE, Commission européenne>, Nouveaux Regards - Syllepse, Paris, 2002.
(4) 정책제안서 ‘유럽의 기업 정신L'Esprit d'entreprise en Europe’ 참고(Bruxelles, janvier, 2003).
(5) 마릴린 보마르Maryline Baumard, ‘학교 재정 지원으로 불평등 문제 심화Ecole: les moyens attribués renforcent les inégalités’, <르몽드>, 2012년 4월 12일.
(6) 유럽연합의 교육 부문 개입 권한은 유럽연합 조약 149조와 150조에 정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