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미디어의 달콤한 유혹

2013-11-08     필립 리비에르

“어린이집에서부터 정보통신기기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고, 유치원에 다니면서 전자메일을 사용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인터넷을 서핑하고, 중학생이 되면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공부를 한다.” 클로드 알레그르 전 프랑스 교육부 장관의 이런 의도는 1997년 3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모든 중등교육기관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스펙 쌓기에서 소프트웨어 산업 보호의 필요성에 이르기까지, 교육기관에서의 정보통신기기 사용법을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시급한지 수없이 쏟아지는 각종 자료들이 역설하고 있다. 미래 구직활동에 필요한 ‘스펙’에서 정보통신기술 사용 능력이 차지하는 중요성부터 소프트웨어 산업 보호의 필요성까지 실리주의적 이유를 내세우는 각종 분석 자료와 함께 교육기관에서 정보통신기기 사용법을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시급한지 강조한다. 매 수업에서 정보통신기술을 바탕으로 한 ‘멀티미디어’ 또는 ‘상호적’ 교재를 활용하는 교사 또는 교육기관과 자매협력을 맺는 등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다양한 사례 또한 이런 움직임을 부추긴다. 게다가 컴퓨터가 없는 가정에서는 자신의 아이들만 뒤처져 ‘컴맹’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학교에서 정보통신 과정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렇게 교육기관 정보화를 요구하는 동시다발적 목소리들은 의심할 여지를 없게 만들었다. 동기는 분명하다. 실용주의와 우리만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다급한 마음이 교실마다 컴퓨터를 들여놓게 만들었다. 학교는 ‘지성의 전쟁’(1)에서 첫 번째 싸움터가 되었다. 정보통신 분야는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분명히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정보통신 능력이 있다고 반드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970년대 교육을 받은 애널리스트-프로그래머들의 높은 실업률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정보통신 분야는 이제 문학에서부터 시각디자인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을 쌓아 진취적이고 기존의 것을 각색하거나 쇄신하는 능력이 있는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한다.

 어떤 소프트웨어(교육 프로그램, 전문 애플리케이션, 운영체계)와 정보통신 기술도 순식간에 구형이 돼버린다는 점은 학생들을 고용에 대비해 교육시키겠다는 프로젝트를 가로막는 두 번째 장애물이다. 정보시스템이 이렇게 급변하는데 학교에 다니면서 습득한 능력을 차후 몇 년이나 활용할 수 있을까? 학교가 끝없이 이어지는 신기술 추구 경쟁에 동참해야 하는가? 하드웨어는 2년만 지나면 구형이 되고 5년이 지나면 사용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구비된 장비도 벌써 낙후됐다. 장비가 구식이 돼 교체하려고 하면 교체 비용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그때마다 교사를 새로 교육시켜야 하고 지속적인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 

언어, 그림, 음악, 시청각, 구두표현, 신체표현 등 다른 통신 매개체와 마찬가지로 정보기술과 인터넷은, 기술과 기술이 제공하는 교류가능성에 대한 전반적인 소양을 어떻게 키워줄지 고민하면서 독립적인 과목으로 가르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접근법은 프랑스에서만 ‘1200만 명에 달하는 어린이 소비자’가 잠재된 시장이 개방되길 바라는 거대 민간기업의 구미를 자극한다. 그들은 “학교에 우리의 기술을 공급한다면 미래의 고객을 사로잡는 황금 같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멀티미디어를 이용하는 그들의 습관을 형성하고 더 나아가 나중에 어떤 제품을 선택할지 유도할 수 있다.”고 했다.(2) 미국이나 유럽의 호의적인 정부에 힘입어 기업들은 이 시장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1997년 10월 8일 당시 마이크로소프트 CEO인 빌 게이츠의 후원을 바탕으로 영국 학교 3만2천 곳에 인터넷을 설치하는 1억 파운드(약 1700억 원)에 달하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3) 

 현재로서는 단기간에 큰 수익을 기대하지 않고 시장을 누가 먼저 점유하느냐를 겨루는 전쟁이다. 그래서 어떤 시도도 허용된다. 그러니 천문학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찾고 있는 거대 기업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자리를 내준 소형 업체들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프랑스에서 진행되는 ‘멀티미디어 꿈나무(Graine de mulimedia)’ 프로젝트에 매년 3백만 프랑(현재 구매력을 고려했을 때 약 6백만 유로(86억 원))을 투자했다. 책임자인 알랭 팔크는 이 프로젝트가 “학교 설비구축에 제동을 거는 구조적 장애물을 연구하는 연구소”라고 했다.(4) 각자의 야심과 추천하는 도구는 다르다고 하더라도 정보기술을 통해 교육방법을 효과적으로 개선해보자는 데는 모두 공감한다. 앞서 본 성공사례는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외진 시골 학교, 점자표기 시스템 덕분에 어마어마한 도서관을 갖게 된 시각장애 아이들, 낙후된 지역이지만 최신 기술을 경험해볼 수 있게 된 중학교 등 종종 무엇인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뤄낸 성과이다. 물론 이 경우에 정보기술이 보조기구로써 유용하게 사용됐지만 학교시스템 전반적으로 본다면 특이한 케이스에 해당한다. 토드 오펜하이머는  일 년에 걸쳐 미국 학교의 정보화에 대해 조사하고 각종 인터뷰를 진행해 “254건의 연구서를 종합하여 자주 인용되는 메타분석을 포함해 (미국에서 발표된) 대부분의 보고서에는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필요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5) 또 <산호세 머큐리 뉴스>는 정보기술 투자와 캘리포니아주 학교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간 상관관계를 조사했지만 “과학적으로 어떤 이득도 검증하지 못 했다.”(6)고 전했다. 캘리포니아주 우드랜드에 자리 잡은 ‘러닝 인 더 리얼 월드(Learning in the Real World)’ 단체는 “투자금액과 투자처가 결정되기 전에 교육 분야에 있어서 정보기술의 혜택과 비용을 합리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캐나다 정부에서 1994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흔히 생각하는 바와 달리 정보기술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학생들의 성취도가 높아지지는 않으며 정보기술의 운영 및 활용 방법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요인들이 학업성취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애플사가 고용한 교육전문가 제인 데이비드는 교사가 “연단 위에서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옆에서 인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식’ 교수법이 학교의 정보화를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다고 진단했다. 결국 학생들이 얼마나 배우느냐는 “컴퓨터보다 교육방식에 달려있다”는 말이다. 또한 “교실에서 컴퓨터가 사라져도 우수한 교육은 꾸준히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학교 정보화 물결은 미국이 프레네 교수법을 재발견하는 기회가 됐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유럽에도 정보기술을 바탕으로 한 수업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보여주는 보고서가 없다. 효율성이 입증되지 않았으니 신중하게 접근하며 시험적 운영을 해볼 필요가 있다. 학교마다 정보기술 장비를 구비하는 일은 비용도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이미 걱정스러운 학교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사진이 해야 할 일이 늘어나면서 다른 중요한 사안을 뒷전으로 밀어낼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 애플 공동설립자는 과거 “교육의 문제는 기술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 바 있다. “모든 지식을 CD에 담을 수는 있다. 학급별로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 수도 있다. 이 모든 일이 근본적으로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자칫하면 이런 식으로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2011년 타계한 정보사회의 선구자는 경고했다.


글·필립 리비에르 Philippe Rivière
이 글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자매지인 <마니에르 드 브와르> 2013년 10·11월호 ‘교육’ 특집에 수록된 것으로, 1998년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4월호에 게재된 바 있다.  

번역•서희정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있다.

(1) 아스드라드 토레스, ‘한 걸음 늦은 프랑스에 대한 찬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8년 1월호 참조.
(2) 안 드니스, ‘멀티미디어 산업, 학교로 침투하다’, <레제코>, 파리, 1998년 1월 15일자.
(3) <플라넷 인터넷>, 파리, 1997년 11월호.
(4) 안 드니스가 인용, op. cit.
(5) 토드 오펜하이머, 'The computer delusion', <The Atlantic Monthly>, 뉴욕, 1997년 7월.
(6) <산호세 머큐리 뉴스>, 산호세(캘리포니아), 1996년 1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