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디플로>의 ‘사유'를 읽는다
미숙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디플로')의 지면에서 너의 이름을 부르니 참으로 기쁘다. 우선 네가 친구의 말을 믿고 <르디플로>를 선뜻 구독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르디플로>를 처음 만난 것은 불과 몇 개월 전이지만, <르디플로>를 읽을수록 지식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뿌듯한 느낌이 든다. 인터넷이 일반화된 현대사회에 우편발송이라니….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밀려온다. 대학을 졸업하고, 밤늦게까지 취업 준비를 하면서도 매달 중순쯤이면 설레는 마음으로 아파트 현관문을 들어서. 우편함에 삐죽 얼굴을 내민 르디플로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 아마 너도 몇 달이 지나면 내 심정을 이해할 거야.
솔직하게 말한다면, <르디플로>는 내게 버거울 정도로 난해한 게 사실이야. 처음엔 구겨질까봐 책상에 펴놓고 조심조심 봤지만 얼마 전, 1년 정기구독자에게는 지금까지의 모든 기사가 PDF파일로 제공된다는 사실을 알고선 빨간 볼펜이나 색연필로 밑줄까지 치면서 탐독하고 있어. <르디플로>는 포장만 번지르르하게 ‘소장’하는 잡지가 아니라 당장에 ‘탐독’하며 읽고 실천하는 잡지라 생각해. 얼마 전, 10월호의 슬라보예 지적 글을 힘들게 읽으면서 이렇게 르디플로와 함께한다면 나의 1년 후는 어떻게 바뀔까하고, 상상해봤어. 지금보다 더 주체적이고, 똑똑하고, 분별력 있는 여자가 되지 않을까라고.
영상 위주의 멀티미디어 시대를 맞아, 우리 영화나 TV가 한류 붐을 이끌고 있지만, 나는 글을 너무 멀리하는 우리 현실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져.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어. 하긴, 신문이나 잡지, 책들도 스마트폰으로 읽는 세상이니, 꼭 그걸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겠지. 하지만, 아무리 현대 미디어 도구의 편의성을 감안한다 해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오늘도 난 지하철에서 <르디플로>를 자랑스레 펼쳐들고 진지하면서도 도도한 표정을 지어 보였어. 더러 옆자리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에서 눈을 뗀 채 르디플로를 바라보는데, 이럴 땐 제호를 살짝 보여주는 친절함을 과시하곤 해. 가끔씩, 무가지나 친재벌 신문을 읽던 독자들이 <르디플로>를 힐끔거리곤 하는데, 그때마다 난 묘한 우쭐함 느끼곤 하지. 현란한 번역체와 다소 생소한 내용 탓에 읽기가 어렵다고? 물론 나도 그 견해에 동의해.
하지만, 어쩌면 우리들이 읽기 쉬운 대중매체나 인터넷의 자극적인 흥미로운 글에 너무 인이 박힌 탓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어. 대학 진학을 위해 논술 공부를 했다지만, 책 읽을 시간조차 아까워서 시험에 나올 만한 책들의 내용만 훑어보고, 거의 모범답안만 줄줄 외웠지. 오히려 나는 속독, 다독의 경쟁에서 벗어나게 해준 <르디플로>가 너무 고마워. 그런데 <르디플로>의 미덕이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취업준비생의 처지에서 보기에는 가격이 약간 부담스러운 게 솔직한 마음이야. 카페에서 친구들과 만나 한잔에 5,000~6,000원짜리 음료를 마실 때는 그리 아까운 줄 모르겠는데, 책이나 잡지를 살 때는 왠지 주저하게 되지.
처음엔 학교도서관이나 동네도서관에서 짬짬이 읽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경쟁자들이 생기더군. 곰곰 따져보니, 낱권에 1만원이지만 정기구독 시에는 권당 8,300원이어서 음료수 한 잔을 참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과감하게 질렀어. 내 손으로 직접 내가 원하던 출판물을 선택한 것은 <르디플로>가 처음이었고, 그 때문에 얼마나 설렜는지 몰라. 아마 너도 나랑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 같아. 광고도 거의 없이 빽빽한 글씨로 가득한 지면, 아무리 읽으려 해도 쉽게 다가오지 않는 글들, 국제정치, 문화, 예술, 교육, 사회 등 다방면의 세계적 석학들이 풀어헤친 현란한 문체, 그렇다고 어디 친절하게 부연설명도 덧붙이지 않는 무뚝뚝한 편집방식….
처음엔 <르디플로>를 받아보고 황당했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르디플로>야말로 내가 지금까지 접한 최고의 매체라는 생각이 들더라. 가끔 알바를 하겠지만 아직 부모님에게서 용돈을 받아쓰는 우리 같은 20대들에게는 1만원도 부담스러운 가격인 게 사실이야. 내 돈을 쓰지 않고 <르디플로>를 읽으려면 가까운 공공도서관 홈피에 구독 요청을 해서 읽어보는 방법도 있어. 그러다가 돈을 좀 아껴서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의 생일 때 ‘꽃보다 <르디플로>’를 선물하면 더욱 좋고 말이야.
<르디플로>를 읽다보니, 나는 누구이고, 내가 왜 공부하고, 또 왜 취업해야 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됐어. 솔직히 말해서 그동안 모든 게 막연했거든. 우리가 당면한 인류적·지구촌적 고민과 관련한 지식인들의 사유와 성찰이 담긴 글들을 읽으면서, 나의 파편적이고 다소 이기적인 삶을 되돌아보게 됐어. <르디플로>를 통해 나보다는 이웃, 독점보다는 공유, 그리고 인권, 평등, 다양성, 관용과 배려, 공동체, 민주주의, 시민정신과 희생의 가치를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 거지.
처음엔 프랑스의 유력일간지 <르몽드>의 자매지 정도로 생각했는데, <르디플로>를 읽을수록 국내 여느 매체보다도 심도 있고 통찰력 있는 내용에 감탄하고 있어. 이제는 <르디플로> 필자들의 이름을 거의 외울 정도야. 특히 삼성과 하나원 문제를 심도 있게 잘 짚은 마르틴 뷜라르 기자의 글은 빠짐없이 읽으려고 하지. 지난 10월호에선 슬라보예 지젝의 글 ‘자본주의의 위선’을 읽고, 그에게 그만 반해버렸어. 두 페이지에 걸쳐 빼곡히 이어진 글을 모두 읽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인터넷 지식검색을 통해 잘 모르는 부분을 찾아서 이해하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더라. 11월호에는 그의 두 번째 글과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글이 나온다는데, 이번에도 역시 머리를 싸매고 읽어야겠어.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안락한 삶의 길만 생각했을 뿐, 법의 정의에 대해 고민한 적이 없는 나로서는 <르디플로>의 글이야말로 이성적 감성이 빈약한 사회과학도에게 꼭 필요하다고 느꼈어. 학교생활도 충실히 하며, 공부도 제법 열심히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 늘 뭔가 허전했거든. 가끔 내가 왜 대학에 진학해서 그토록 많은 돈을 써가면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거기서 내가 얻는 배움은 무엇인지 정말 답답할 때가 많았어. 이제 생각해보니, 그건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탓이었던 거야.
솔직히 바쁜 생활 속에서 틈틈이 <르디플로>를 읽으면서, 비로소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걸 알게 됐어. 초중등학교에선 부모님이나 학원 선생님에게 끌려 다녔고, 대학교에서는 알바와 학점과 취업의 노예가 되다시피 살다보니, 내 나름의 주체적인 가치관을 갖기가 참 힘든 일이야. 독립적인 주체로서 나름의 가치관을 갖기란 힘들겠지만, <르디플로>를 꾸준히 읽다보면 도움이 많이 될거라 생각해. 요즘엔 주위 친구들에게도 <르디플로>를 권하고 있어. 나는 친한 친구 5~6명을 모아서, 스터디 그룹을 만들 생각이야. 아마도 우리가 함께 읽고 토론하면 서로 생각지 못한 현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누게 될 것이고,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또 다른 다양한 ‘배움’을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아.
<르디플로>.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결정한 신문이야. 그동안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뉴스사이트를 검색하거나, 지하철 무료신문을 읽으면서 사회이슈를 접해왔는데, 너무 피상적인 내용들이어서 늘 갈증을 느껴왔었지. 때로는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정보의 포화 속에 혼란스럽기도 했어. 제대로 엄선된 글, 기사를 접할 수 있는 유료신문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던 차에 우연찮게 도서관에서 만난 <르디플로>는 내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지.
처음 접한 베를리너 판형의 <르디플로>는 신문도 아니고 잡지도 아니고, 그냥 ‘별종’ 그 자체였어. 또 내용은 왜 그리 어려운지. 도무지 읽는 속도에 진도가 나가지 않더라. 부모님이나 주위 친구들에게 사전에 묻지 않고, 충동 구매한 듯싶어서 사실 약간 후회스러웠지. 정기구독을 질러놓고서 앞으로 1년 동안 <르디플로> 지면에서 정신적 고문을 당할 걸 생각하니 지레 겁이 났어. 심호흡을 하고, 찬찬히 목차를 들여다보니 몇 가지 글의 제목들은 나의 관심사항이었고, 막상 읽고 보니 그리 어렵지 않고 무척 흥미로웠어.
이젠 <르디플로>의 페이지를 넘길 땐 아예 진지하게 공부하는 자세로 읽고 있지. 나중에 알고 보니, 프랑스나 독일에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이 논술준비용으로 자주 읽는 잡지가 <르디플로>였어. 물론 그곳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탐독하는 매체 역시 <르디플로>라는 거야. 그건 <르디플로>가 국제관계의 다양한 쟁점뿐 아니라 인권이나,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보편적인 가치관의 문제, 그리고 문화, 예술, 철학, 교육 등을 심도 있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르디플로>가 이곳 한국사회에서는 해외 라이센스 잡지라는 이유만으로 비주류 취급당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르디플로>는 프랑스 르몽드의 자매지면서도 자유주의적 성향의 르몽드에 대해서 비판적이고, 프랑스 정치권의 탈(脫) 톨레랑스 경향을 지적하며, 미국과 유럽의 서구중심주의를 힐난하고, 헐벗은 지구촌 곳곳에 한없는 관심과 배려의 눈길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거대신문사에 비해 부족한 면도 많겠지만, <르디플로>의 본질적 가치는 날카로운 비판성, 지적인 참신성과 주제의 다양성, 그리고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은 독자들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내 친구 미숙아, 늘 건강하고 다음번에 만날 땐 각자 빨간 펜으로 밑줄 친 <르디플로>를 서로 교환하며 수다를 떨자. 그리고 약속하자. 우리 둘 중 남자친구가 먼저 생기면, 꽃보다<르디플로>를 선물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