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게임 속 ‘유토피아’ 또는 시뮬라크르
20년 전 비디오 게임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빌려왔다면, 이제는 그 반대 현상을 흔히 볼 수 있다. 비디오 게임 산업이 문화적으로 공인(公認) 받은 징표 가운데 하나이다.
1960년대 초, 미 MIT공대에서 몇몇 컴퓨터과학에 열광한 학생들에 의해 개발된 비디오 게임은 이후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1930년 조르주 뒤아멜이 영화를 일컬어 ‘문맹자들의 취미’라고 일갈했던가. 이 대중문화가 점차 심미적으로 인정받는 단계로 들어 온 과정을 돌이켜 보면 오늘날 비디오 게임은 바로 그 전환점에 놓여 있는 것 같다.(1) 이제 비디오 게임은 다른 모든 형태의 문화와 마찬가지로 산업 생산과 대중 창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문화가 되었다.
이는 문화사와 대중문화의 관점에서 의미를 가지는데, 영상과 픽션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과 아울러 오락을 즐기는 방식의 변화에 있어 중대한 방향전환을 보여준다. 그러나 비디오 게임은 유희적인 놀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비디오 게임은 좋건 나쁘건 현대사회에서 기술권력의 중심에 있는 컴퓨터과학으로 행해지는 유일한 문화 형태이며 세계를 ‘숫자화’한다.(2) 비디오 게임의 실체는 프로그램과 데이터베이스, 그리고 시뮬레이트된 시스템이다.
비디오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것은 우선 대중 운동의 결과이다. 콘솔과 컴퓨터, 태블릿 PC,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은 오늘날 프랑스인들 사이에 가장 널리 퍼진 문화 활동 가운데 하나이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6명이 최근 12개월간 최소 한번은 비디오 게임을 했다고 한다.(3) 영화를 보는 빈도와 비슷한 수치다. 이러한 현상은 성별, 연령별, 직업별, 지역별 등 다양한 계급에서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기 때문에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청소년이라는 정형화는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이 같은 포괄적인 데이터에는 몇 가지 미묘한 뉘앙스가 있다. 게이머의 대부분은 어쩌다 한 번 우연히 게임을 하는 것일 뿐이며 게임중독자는 많지 않다. 성인 10명 중 1명만이 ‘매일 또는 거의 매일’ 게임을 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영화와의 비교가 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에 가지만 매일 영화관에 가는 영화 마니아는 많지 않다. 게임을 하는 사람과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는 것은 다양한 게임 행동유형을 이해하기에 충분치 않다. 게임의 장르, 장소, 이용 매체, 게이머의 사회성이 모두 다 다르다. 특히 연령과 성별을 보면, 게이머의 80%가 25~34세이고 45~59세의 비율은 그보다 훨씬 낮은 50%, 60세 이상은 40%가 채 안 된다. 결국 남성 10명 중 4명이 매주 게임을 하는 반면 여성의 경우에는 10명 중 3명에 불과하다. 고정 관념과 달리 최근 연구에서 비디오 게임이 어린이와 어른에 상관없이 필연적으로 다른 문화 행동유형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게이머들은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만큼이나 영화관이나 미술관에 가며, 스포츠나 음악 활동을 하는 사람도 많다.
‘문화현상'이 된 비디오 게임
행동유형의 현실 그리고 현상이 대중적으로 나타나는 모습 간에 존재했을 수 있는 명백한 간극은 이제 점차 줄어들고 있다. 오랫동안 비디오 게임에 관한 담론은 정신적 공황 상태와 연결되는 중독, 폭력 혹은 주의력 장애 문제로 치우쳤다. 세대를 거쳐 영원히 계속되는, 지표가 없는 젊은 세대의 두려움으로 치부되었다. 엄마가 게임에 빠지면 남편과 아이들을 굶어 죽일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파리 게임 위크에 관한 France 2 방송 보도(2013.11.3)는 이 같은 미디어적 담론의 충격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담당 기자는 “비디오 게임은 열정, 중독보다 더하다.”며 프랑스 의학 아카데미와 과학 아카데미의 최근 보고서를 무시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어떤 연구도 현재 특히 청소년에 관련한 모니터 중독이 있다고 확언할 수 없다.”(4)
비디오 게임이 완전한 문화 현상으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은 특히 비디오 게임 관련 전시회를 통해 알 수 있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비디오 게임 관련 전시회가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프랑스 국립공예원(CNAM)에서 열린 뮈제오게임즈, 그랑 팔레의 게임스토리, 파리의 복합문화공간인 라 개떼 리리크의 플레이 더 게임, 라빌레트 과학산업관의 비디오 게임 등이 있다. 해외도 마찬가지이다. 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열린 비디오 게임의 예술, 베를린의 컴퓨터 슈필르무지움,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최상의 디자인 등 관련 전시가 줄을 잇고 있다. 영미계의 게임 스터디즈를 필두로 한, 이 주제에 관한 인문사회과학 연구의 발전은 비디오 게임을 완전한 문화 형태로 보는 또 다른 강력한 징표이다.
이 같은 커다란 변화는 상업적 이용 이외에 타이틀 보존과 보관, 비평 용어 창조, 영화산업의 톱니바퀴 같은 요소들에 대한 전문적 지식, 영화감독에 대한 토론 등 영화애호가들이 영화사(映畵史)에서 했던 역할을 떠올리게 하는 게이머들이 스스로 ‘문화화한’ 거대 운동에 힘입은 것이다. 비디오 게임 현상은 게이머와 모니터의 마주보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게임 커뮤니티들의 노력의 결과다. 이들은 프랑스 거의 전역에서 게임 페스티벌을 열고 슈퍼플레이(무대에서 최고의 게이머가 게임 장면을 시연)나 스피드 런(게임을 끝내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 찾기) 공연을 추진하고, 렛츠 플레이 비디오(인터넷상에서 볼 수 있는 해설을 넣은 비디오)를 제작하거나 심지어 콘서트에서 게임음악을 들려준다. 픽스앤러브(프랑스의 레트로 게임 잡지-역주) 출판사의 활동은 열정적인 게임 행동유형과 게임 역사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연계하는 팬 문화가 현재 얼마나 열광적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사이언스 픽션 같은 여타 하위 문화의 경우에서처럼 말이다.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게임 세계
여기서 영화의 역사가 문화 형태의 변화를 예측하는 가치를 지니게 된다. 비디오 게임과 영화의 시간과 궤적의 흐름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두 가지 모두 초기에 기발한 새로운 기술의 부산물로, ‘미래가 없는’ 기술과학의 호기심으로 등장했다(앙뚜완 뤼미에르의 표현). 이어 저잣거리에서 보여지고 행해지던 단계를 지나 진정한 문화산업의 형태로 발전했고 결국 심미적, 학구적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5)
이는 부분적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창조적인 현대 비디오 게임 제작에 기인한다. 현재의 ‘황금기’는 넓게 볼 때 독립 스튜디오의 힘이 커진 덕분이다. 주요 제작사와 게임 콘솔 생산업체의 오프라인 판매에서의 지배력을 감소시킨 디지털 유통의 대두 혹은 아주 최근에 등장한 킥스타터(Kickstarter) 같은 집단 파이낸싱 시스템에 대한 매력이 소규모 게임 개발자가 살아갈 수 있는 틈새시장을 존재하게 했다. 심미적 사안은 전략적 사안과 분리될 수 없다. 문화상품의 제작과정에 마케팅 부서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미치면서 블록버스터 논리로 검증된 동일한 방법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와는 반대로 제작부서의 자율성은 심미적 차원에서 창의성을 발휘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데 있어 본질적인 조건이다.
노치라는 가명으로 유명한 프로그래머 마커스 페르슨이 홀로 개발한 마인크래프트의 엄청난 성공은 가장 훌륭한 예라 할 수 있다(3천만 개 이상 판매). 초보적인 그래픽이 특징인 마인크래프트는 게이머들이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하게 한다. 자신들이 만든 몇 가지 도구, 곡괭이, 삽, 도끼로 무장한 게이머들은 주변 세계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 마인크래프트의 세계는 여러 물질(모래, 돌, 석탄, 다양한 광석 등)로 된 큐브로 이루어져 있는데, 게이머들은 이 물질들을 추출, 변형해 다른 자재와 블록을 만든다. 그리고 게이머는 이렇게 만들어진 자재와 블록을 자기 방식대로 조립한다. ‘오픈 월드’ 또는 ‘모래 용기’라고 불리는 이 게임을 둘러싸고 게임 벽돌을 이용해 음악 로봇을 만드는 것부터 블록을 쌓고 쌓아 고대 로마를 재건축하기까지 가장 놀라운 창조물 만들기에 헌신하는 거대한 커뮤니티가 결집되었다.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독립 개발은 컴퓨터과학의 역사를 특징지어온 개인 소유와 집단 개발 간의 변증법적 상황에서 다시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비디오 게임은 1960, 70년대 미국 대학이나 고등학교에서 15년 이상의 기간 동안 코드 공유와 협력적 혁신의 논리 하에 시장 밖에서 만들어진 문화상품의 예라 할 수 있다.(6) 최초의 상업적 게임은 1972년 퐁의 성공을 필두로 등장한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나 팩맨과 함께 불어온 아케이드 게임방의 인기는 수익성과 지적재산권 보호라는 두 가지 요구를 최초의 해커식 제작방식으로 대체했다. 그러나 모드(기존 게임을 변형)나 마시니마(machinimas(machine과 cinema의 합성어-역주) : 게임 엔진을 이용해 만든 영화) 같은 아마추어적인 행위의 중요성이 여전히 비디오 게임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다. 독립 개발자를 넘어서서, 우리는 안나 안트로피의 선언서 <비디오 게임 잡지 제작자의 증가>(7)의 계보 안에서 만화의 팬 잡지 문화를 모델로 삼아, 가능한 미래가, 각자가 기존 소프트웨어 벽돌을 끌어내면서 자신의 영상을 이용해 훨씬 짧고 단순하면서도 훨씬 친근한 비디오 게임을 제작하는 비전문적인 개발의 편에 있는 것이 아닌지 자문할 수 있다.
비디오 게임 영역의 무한 확장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비디오 게임은 이제 유일한 오락의 틀을 넘어서 지금까지 비디오 게임과 아무런 연관이 없던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비디오 게임은 가장 다양한 이유와 당사자를 위한 전 방위 커뮤니케이션 도구 역할을 한다(게임화에 관 한 기사 참조). 이에 따라 경영관리를 연구하는 바이론 리브즈와 라이튼 리드는 콜센터 직원의 업무를 ‘게임화’할 것을 생각해냈다. 아침에 일터에 도착한 콜센터 직원은 자신의 아바타에 접속해 온라인 역할게임에서처럼 오늘 할 일을 고르고 어플리케이션에 게시된 업무능력에 따라 업무팀을 구성하고 수행한 각 업무마다 가상 경험을 쌓는다.(8) 이 시스템은 업무의 정보화를 ‘게임’의 매체로 만들어 재미있는 유토피아를 이용해 생산성을 무제한 증가하고자 하는 욕망을 부정하게 감춘다.
스티븐 클라인, 닉 다이어-위드포드, 그리그 디 포이터는 비디오 게임을 현대 자본주의의 ‘이상적인 상품’이라 정의할 수 있다고 제안했던 바 있다.(9) 다시 말하면 생산방식의 기술적, 조직적 특성뿐만 아니라 특정한 가치와 정서에 집중시킨다는 것이다. 미국 교외의 표준화된 자동차나 개인 주택이 포드주의에서 이 역할을 한 바 있다. 디지털을 상징하는 오브제이자 세계화된 생산 라인의 결과물, 그리고 일관성 없는 마케팅 및 광고 논리를 겪어온 비디오 게임은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우수한 후보자가 되고 있다.
비디오 게임은 계산기와 모니터라는 ‘제어장치가 설치된’, 경험의 독창적인 형태를 만들어낸다. 컴퓨터공학 도구 및 시뮬레이트된 세상과의 긴밀한 관계는 비디오 게임의 가장 독창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최악의 경우 비디오 게임은 컴퓨터과학이라는 기술권력에 굴복 그리고 재미라는 미사여구로 포장돼 표준화된 일을 가장한, 의욕을 저하시키는 같은 업무의 반복에 불과하다. 최선은 비디오 게임이 디지털 장치에 대한 우리의 투자를 검토하고 좌절시킬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그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글·마티유 트리끌로 Mathieu Triclot
벨포르-몽벨리아르 기술대학교 조교수. <비디오 게임의 철학> 저자 (Zones, Paris, 2011), 파리 라빌레뜨 과학산업관 (Cité des sciences et de l’industrie) <비디오 게임> 전시회 커미셔너 (2013-2014).
번역·조승아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통번역
(1) 조르주 뒤아멜 Georges Duhamel, <미래 삶의 장면들 Scènes de la vie future>, Fayard, Paris,1930.
(2) 알랭 데스로지에르 Alain Desrosières, <Big Numbers의 전략 La Politique des grands nombres>, La Découverte, Paris, 1993.
(3) 뱅쌍 베리, 사뮈엘 꼬아부, 사뮈엘 뤼파, 호빅 테르 미나씨안 Vincent Berry, Samuel Coavoux, Samuel Rufat et Hovig Ter Minassian, ‘프랑스의 비디오 게임 게이머들은 누구인가 Qui sont les joueurs de jeu vidéo en France’, 올리비에 레자드, 마티유 트리끌로 <비디오 게임 제작소>에서 발췌 Olivier Lejade et Mathieu Triclot (sous la dir. de), La Fabrique des jeux vidéo, La Martinière, Paris, 2013.
(4) 장 프랑수아 바흐, 올리비에 우데, 삐에르 레나, 세르주 티쓰롱 Jean-François Bach, Olivier Houdé, Pierre Léna et Serge Tisseron, <어린이와 모니터. 과학아카데미의 견해 L’Enfant et les Ecrans. Avis de l’Académie des sciences>, Le Pommier, Paris, 2013.
(5) 얀 다레 Yann Darré, <프랑스 영화의 사회적 역사 Histoire sociale du cinéma français>, La Découverte, 2000.
(6) 마티유 트리끌로 Mathieu Triclot, '연구소에서 놀기 : 대학교에서의 비디오 게임(1962~1979) Jouer au laboratoire : le jeu vidéo à l’université(1962~1979)', Réseaux, n° 3-4, Paris, 2012.
(7) 안나 안트로피 Anna Anthropy, <비디오 게임 잡지 제작자의 증가 : 괴짜, 보통사람, 아마추어, 예술가, 꿈꾸는 사람, 중퇴자, 동성애자, 주부 그리고 당신 같은 사람들이 예술 형태를 되받아 들이는 방법 Rise of the Videogame Zinesters : How Freaks, Normals, Amateurs, Artists, Dreamers, Drop-outs, Queers, Housewives, and People Like You Are Taking Back an Art Form>, Seven Stories, New York, 2012.
(8) 바이론 리브즈, 라이튼 리드 Byron Reeves et Leighton Read, <전적인 개입 : 게임과 가상 세계를 이용해 사람들의 작업 방식과 사업의 경쟁 방식을 변화시키기 Total Engagement : Using Games and Virtual Worlds to Change the Way People Work and Businesses Compete>,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 Boston, 2009.
(9) 스티븐 클라인, 닉 다이어-위드포드, 그리그 디 포이터 Stephen Kline, Nick Dyer-Witheford et Greig de Peuter, <디지털 플레이 : 기술, 문화 마케팅의 상호작용Digital Play : the Interaction of Technology, Culture, and Marketing>, McGill University Press, Montréal,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