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가 낳은 자본주의 '제3의 길'
G20의 개혁의지 믿기 어려워... 자유주의 지키며 부작용 개선 가능할까
금융위기의 재앙은 임계치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케인스의 말처럼 "정치 지도층이 자신들의 원칙과 모순되는 조처들을 도입함으로써 심각한 실수를 만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예상 가능한 조치들은 주류 경제학에도, 비주류경제학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 능력을 오늘날 어떤 이들은 '실용주의'라 부른다.
사실, 긴축예산을 채택하고2)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부차적인 효과’를 피한다는 명목으로 더 엄격한 통화정책을 적용하고3) ‘유럽 금융 통합’을 완성하려4) 했던 이들이 3∼4년 만에 갑자기 은행 시스템에 막대한 유동성을 투입하려고 한다. 또한 정치 지도층의 압력 아래 사상 유례없는 수준으로 거의 일시에 금리를 인하하고 은행에 대한 자본 참여, 나아가 영국과 미국을 필두로 국유화까지 단행하려 든다.
여기에다 거의 10% 이상의 재정적자를 초래할 정도의 엄청난 경기부양책을 실시하고, 자동차 산업에 대한 직접적인 금융구제는 물론, 황금낙하산(퇴직보상금) 억제, 배당금 지급 합리화, 연봉상한제 도입 등을 추진할 준비를 하고 있다. 가히 이들의 실용주의가 놀랍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중앙은행이 화폐 발행을 통해 직접 공공 부채를 해결하는 방안을 고려하기까지 한다. 어제만 해도 불법으로 낙인찍혔던 비주류 교과서를 지도층들이 갑자기 뒤적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와는 달리 주류 예산정책으로 신속하게 회귀할 것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의 뜻에 따라 이미 헝가리와 라트비아가 주류 예산정책으로 회귀했고, 루마니아도 이 대열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또한 보호주의적 유혹을 예방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5) 그러나 파도가 암초에 부딪쳐 돌아오는 경우를 논하기에 앞서 어쨌든 파도로 인해 자유주의 교리의 파편 몇 개가 떨어져나갔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한다.
자유주의 교리의 파편 떨어져 나가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케인시언”6)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을까? 어떤 의미에서는 그러하다. 단, 시대가 케인스 ‘할아버지’의 해법을 발굴해 급하게 ‘긴급조치’의 성서를 만들려 한다는 의미로 이 말을 이해할 경우에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케인스를 언급하는 것이 봉쇄전략의 일부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숲이 다 타버린 후에 화재를 진압한답시고 부르는 소방수 명단에 이름 하나 추가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요리는 요리법을 훨씬 뛰어넘는 그 이상의 것이다.”7)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조절은 단순히 케인시언 ‘입력 버튼’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30년에 걸친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구성된 세상에 엄청난 돈을 투입하는 것은 밧줄을 잡아당겨 나귀를 모는 것과 같다. 오늘날 사회가 케인스의 유산을 받기에는 산업정책, 노조의 구실, 누진소득세, 공공서비스의 평등한 공급, 국토발전, 외환정책, 대외무역의 사회적·환경적 규칙 등이 부족하다. 케인시언 정책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 조직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그저 공포에 사로잡혀 ‘케인스의 부활’을 운운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케인스의 장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케인시언”6)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을까? 어떤 의미에서는 그러하다. 단, 시대가 케인스 ‘할아버지’의 해법을 발굴해 급하게 ‘긴급조치’의 성서를 만들려 한다는 의미로 이 말을 이해할 경우에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케인스를 언급하는 것이 봉쇄전략의 일부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숲이 다 타버린 후에 화재를 진압한답시고 부르는 소방수 명단에 이름 하나 추가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요리는 요리법을 훨씬 뛰어넘는 그 이상의 것이다.”7)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조절은 단순히 케인시언 ‘입력 버튼’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30년에 걸친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구성된 세상에 엄청난 돈을 투입하는 것은 밧줄을 잡아당겨 나귀를 모는 것과 같다. 오늘날 사회가 케인스의 유산을 받기에는 산업정책, 노조의 구실, 누진소득세, 공공서비스의 평등한 공급, 국토발전, 외환정책, 대외무역의 사회적·환경적 규칙 등이 부족하다. 케인시언 정책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 조직에 대한 문제제기 없이 그저 공포에 사로잡혀 ‘케인스의 부활’을 운운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케인스의 장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금융 분야의 구조적 재정비 필요
우리는 경기 후퇴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거시금융적 조처들뿐만 아니라 금융 분야에서 구조적 재정비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4월 초 런던에서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회담의 핵심 쟁점이다.8) 물론 금융의 잠재적인 모든 해악을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고 첫눈에 G20의 주요 참가국들의 개혁 의지를 판단함으로써 까다롭게 굴어서는 안 될 것이다. G20은 △조세 천국, 은행의 비밀 엄수, 이윤 및 고소득 은폐에 사용되는 ‘해외’ 기지들을 공격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헤지펀드’를 더 효과적으로 통제하며 △은행 파산을 앞당겼던 회계 규준들, 예컨대 자산의 ‘공정가치’ 기록 부활을 추진하고 △금융기관이 경기 변동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같은 신중성 원칙을 재검토하려 하며 △시장참여자들이 ‘좋은’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도록 이들의 보수를 재조정하려 하고 △이해관계 갈등을 피하기 위해 신용평가기관들을 더욱 잘 제어하고 △IMF의 대부 기능을 강화하며 △심지어 ‘건전한 기초 위에 자산유동화 메커니즘을 재구축’하는 것을 논한다.9) 18개월 전에는 아무도 이와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대안 세계화 운동가들의 선전 삐라를 모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개혁 의지를 너무 쉽게 믿지 말아야 할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지도층 사이에 어떤 분야를 우선 다룰지, 어느 정도로 깊이 있는 해법을 검토할지, 구체적으로 어떤 조처들을 적용할지 등 의견이 분분하다. 둘째, 제도적 위기 관리 국면이 어쨌든 매우 자유주의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특히 위기 관리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리스크’를 ‘관리’하는 수준의 접근에 그치고 있다. 즉, 단순히 투명성 제고, 유인 체계 통제, 신중한 조절, 감시, 지배구조 강화, 리스크 관리 맥락에서 여러 조처들이 도입됐다. 이런 것들은 자유주의 교리는 그대로 둔 채 단지 부작용을 개선하려는 기술적·정치적 조처이다. 기업 자유의 이름으로 위험을 창출한 이들이 그 피조물이 제기하는 위협에 직면하자 이 위험한 동물을 길들이려고 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 관리의 중대한 의미
이런 관점에서 글로벌 금융을 통제하는 제도·규칙·규준은 ‘사회주의적 유혹’이 부활해 낳은 산물이 아니라, 유치원에 벵골 호랑이를 전시하려 할 때 세워야 할 우리의 높이를 말해주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의 이 소소한 보수공사의 특성 하나하나는 자유주의 교육에 찬성하는 부모들이 무모한 위험을 감수하는 청소년 자녀들을 다루는 태도와 유사하다. 만약 당신의 자녀가 아침마다 노트르담성당의 두 탑을 연결한 밧줄 위에서 밧줄타기를 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면, 자녀에게 시작 시간을 미리 알리고(정보의 투명성), 밧줄타기가 끝나면 전화하고(보고), 밧줄타기를 하기 전에 몸을 풀고 밤에는 건너지 말며(리스크 관리), 텔레비전 카메라를 거부하고(합리적인 리스크 감수를 위한 유인 체계 재구축), 보행자들이 놀라지 않도록 밧줄 위에서 몸을 흔들지 말 것이며(경기 선행적 움직임 회피), 믿을 수 있는 친구가 옵서버 구실을 하도록 하고(감시), 어린 여동생을 밧줄타기에 데려가지 말라고 한다면(시스템 리스크 관리)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금융의 유용성 성찰해야
비록 오늘날 현대 금융의 해악이 어느 정도 잘 알려져 있다 해도, 금융의 유용성의 근간을 이루는 기능들이 무엇인지는 모호한 측면이 있다. 정치적 차원에서 금융의 유용성과 금융 기능을 ‘강화’하거나 ‘개선’해야 할 이유를 성찰하기보다 “신뢰 회복을 위해 글로벌 금융과 경제체제를 재구축”하기 위한10) 조처들이 도입됐다.
자유시장 경제에서 금융의 본질적 기능은 무엇인가?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저축의 유동성 보장, 생산적 투자와 임금 및 중간재 지출의 재원 마련, 산업구조조정 촉진, 장기 투자와 관련된 금리 및 환리스크 헤지가 금융의 본질적인 기능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자문을 통해 우리는 성찰의 기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금융의 본질적 기능들을 가장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제도의 유형은 무엇인가? 이를 위해선 현 금융 구조의 어떤 부분이 필요할까? 이 작은 의문에서 시작해 더 멀리 나갈 수도 있다. 즉, 전세계에서 수십만 명의 두뇌집단이 일하고 있고, 총소득 및 이윤에서 과도한 부분을 가져가는 금융 부문이 그 사회적 효용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분위기가 변했고, 따라서 금융의 옹호자들도 더 이상 일상적인 특권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글•로랑 코르도니에 = 프랑스 릴-1대학 조교수. 주요 저서로 <부랑배들에게 동정심을 주지 말라>(2000) 등이 있다.
번역 = 박수현
<각주>
1) 존 메이너드 케인스, 1934년 가을 라디오 연설에서 발췌.
2) 2008년 5월,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는 2012년까지 균형예산 정책으로 복귀할 계획을 발표했다.
3) 2008년 9월 4일,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ECB의 금리 인하 거부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부차적 효과들의 출현을 걱정한다”고 설명했다.
4)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05∼2007년에도 유럽 주택담보 대출시장 통합을 위한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5) 2008년 11월 워싱턴에서 열린 G20 회담 선언문을 참조하라. 세르주 알리미, ‘빈 수레만 요란한 G20’,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8년 12월.
6)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이자 전 세계은행 수석경제학자 마틴 울프의 예를 보라. <르몽드> 2009년 1월 6일.
7) 1996년 출간된 셰프 알랭 샤펠의 저서 제목.
8) 남아프리카공화국, 네덜란드, 독일, 러시아, 멕시코, 미국,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스페인, 아르헨티나, 호주, 이탈리아,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체코공화국, 캐나다, 터키, 프랑스, 한국(총 21개국 가운데 네덜란드·스페인·체코를 뺀 19개국과 유럽연합의장국(현재는 체코)이 원래 G20이지만, 이번 런던 회담에는 네덜란드와 스페인도 초청됐다. 편집자).
9) 프랑스 경제재정산업부 장관 크리스틴 라가르드에 따르면 단지 “은행들이 자산유동화 채권 총액의 일부, 예컨대 5% 정도를 보존하는 것”에 불과하다. <레제코> 파리, 2009년 3월 12일.
10) 런던 회담 공식 사이트(www.londonsummit.gov.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