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유럽이냐 러시아냐

2013-12-10     세바스티앙 고베르


11월 말, 유럽연합과 연합협정 서명을 며칠 앞두고 있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압력에 갑작스럽게 협상을 중단했다. 유럽연합에게는 거대시장이며 러시아에게는 지정학적 요충지인 우크라이나의 권위주의적 정권은 두 강대 세력 사이로 난 좁은 틈새에서 살 길을 모색하고 있다.

“11월 28일은 우크라이나에게 최후의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10월 어느 날 아침, 빅토르 유셴코는 우크라이나의 향후 전략적 전환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다.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11월 28~29일 개최될 동방 파트너십 정상회의를 몇 주 앞둔 시점에 맞춰 중대 발언을 한 것이다. 유셴코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의가 우크라이나가 유럽 편에 서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09년 출범한 동방 파트너십은 옛 소련의 6개 공화국과 유럽연합이 정치, 경제, 제도적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연합협정이다. 6개 국가들 중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벨라루시는 협상이 거의 진척되지 않았다. 반면, 오래전부터 유럽연합 가입을 희망해온 조지아와 몰다비아는 협정 체결에 적극적이다.

유럽연합 귀속 vs 친러시아 움직임

우크라이나의 경우 이미 2012년 협정 체결이 결정되었고 서명만을 남겨둔 상태다. 우크라이나는 동방 파트너십 소속 국가들 중 가장 협상 진척도가 높을 뿐 아니라 나라 규모 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유럽의 관문에 위치한 인구 4600만의 우크라이나는 경제, 농업, 에너지 분야에서 큰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유셴코는 “우크라이나는 향후 5~10년 안에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오렌지 혁명’의 주역은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과거 전례 없는 개방과 현대화에 앞장섰음에도 자신의 임기 중에 이 ‘최후의 심판’을 맞이할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2004년 유셴코의 정치적 파트너로 활약했지만 그 후 “위험한 정치적 모험가”로 낙인찍힌 율리아 티모셴코는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의 막후 협상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에 권력 남용 혐의로 2011년부터 구속되어 있는 그녀의 출국을 허락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재밌게도, 친러파로 알려진 그녀의 정적 빅토르 야누코비치 현 대통령은 유럽연합 가입을 주요한 외교적 목표로 설정했다.

2010년 하르키우 협정을 통해 2042년까지 러시아 흑해 함대의 세바스토폴 항 사용권을 연장해준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모든 이들의 예상과 달리 ‘큰형 러시아’가 벨라루시, 카자흐스탄과 맺은 관세동맹에 우크라이나를 끌어들이기 위해 제안한 온갖 특혜들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러시아 정부는 온갖 위협을 가했지만 야누코비치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러시아 정부는 가스, 금융, 문화 분야에서 고조되는 긴장 상황에 대해 경고하는 차원을 넘어서, 자국 내 우크라이나 산 초콜릿 판매를 금지하기도 했다. 이 분쟁은 8월 중순에 이르러 전반적인 무역제재로까지 확대됐다. 세르게이 글라지예프 러시아 대통령 고문은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과의 연합협정이라는 ‘자살 결정’을 내릴 경우 지속적으로 엄격한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합협정은 광범위한 자유무역지대 구축을 목표로 한다. 유럽연합과 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곧 러시아가 주축이 된 관세동맹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러시아의 유라시아 통합계획에 우크라이나가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우크라이나 의회(최고회의) 내 다수당인 지역당 소속 의원 블라디미르 올리니크는 “그런 식의 행동은 파트너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 몇 달간 우크라이나 엘리트들이 보여준 늑장과 망설임을 보면 유럽통합을 향한 그들의 진심이 의심스럽다. 언론에 의해 일반적으로 확산된 개념과 달리 문제는 단순히 우크라이나가 서쪽과 동쪽 사이에서 어떤 전략적 입장을 취하느냐에 그치지 않는다.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이른바 ‘도네츠크(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클랜’으로 불리는 측근들, 대부분의 경제 엘리트, 심지어 야당 인사들조차도 경제 문제에 관해서만은 민족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그들은 유럽연합과 러시아 어느 쪽에도 지배권을 내주기를 원치 않는다.” 워싱턴의 폴 니츠 고등국제학대학(SAIS) 연구원 타라스 쿠지오의 설명이다. “그들은 모스크바와 브뤼셀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세계화 이전의 국가에서 살기를 원한다.”

어디에도 속하고 싶지 않은 독립의지

우크라이나는 국민 1인당 구매력이 2013년 GfK 조사 기준으로 2206 유로로 유럽에서 가장 약한 국가 중 하나지만, 리나트 아크메토프, 빅토르 핀추크, 드미트로 피르타슈 등 유럽 최고의 부호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재산을 불렸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어쨌든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의 규범을 따르든지, 러시아의 지배자들과 치열한 경쟁관계에 돌입하든지 이 부호들의 특권이 줄어들 것은 확실해 보인다.

상당수 연구 결과들은 우크라이나가 자유무역지대에 진입함으로써 생산체제의 현대화와 경영 합리화를 통해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예상한다. 그러나 동시에 유럽연합이 상당한 재정 지원의 반대급부로 요구하는 구조조정과 시장개방에 착수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키예프 주재 유럽 외교관은 “연합협정은 상대 국가들의 차이를 무시하고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면에서 일종의 식민주의적 사고방식을 숨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럽 공동체의 기존 규범에 적응하고 시장을 개방하라는 요구는 우크라이나 경영자보다 유럽의 투자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권위적인 야누코비치 정권에 유착된 ‘패밀리’는 지난 몇 달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해왔다. 경제, 정치, 법률 등 모든 차원에서 그들이 그동안 획득한 성과를 쉽게 포기할 리 만무하다. 정부는 티모셴코를 둘러싼 문제 처리에 늑장을 피우는 동안 우크라이나 사회를 좀먹는 근본 문제들을 외면하고 있다. 국제 엠네스티 우크라이나 대표 테티아나 마주르 는 “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시민들에게 일상적인 고통을 안겨주는 부패와 경찰의 권력 남용이 일소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회악들을 척결하기 위해서는 ‘최후의 심판’ 이상의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글·세바스티앙 고베르 Sébastien Gobert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리듬분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