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태풍재해’ 희생양 찾기

2013-12-10     장 크리스토프 가이야르, 제이크 롬 카닥

필리핀은 사상 최악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재난 수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난 대책이 잘 되어있기로 유명한 나라임에도,
이 곳 정치 지도자들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희생양을 찾고 있는 듯하다.


재난역학연구센터 자료(EM-DAT)에 따르면, 1950~2012년 필리핀은 큰 재해(1)를 536회 겪었다. 이에 덧붙여, 필리핀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크고 작은 산사태나 홍수 등을 겪으며 식량 부족, 건강 악화, 자녀 교육 문제 등에 직면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누군가를 탓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때는 자연이, 어떤 때는 악당 혹은 빈곤층이 표적이 된다.

필리핀은 지리적으로 불안하고 매년 20여 개의 태풍이 지나는 경로에 위치해 있다. 더욱이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기후 변화까지 감안한다면 과학자, 언론, 정치 지도자들의 상당수가 자연을 원인으로 지적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스페인 식민 지배 말기부터 축적해온 지리, 기후 데이터를 살펴보면 태풍, 지진, 화산 분화, 쓰나미 등은 오늘날보다 19세기 말에 더 자주 발생했다. 가령, 1881~1898년 매년 평균 21개의 태풍이 필리핀을 지나간 반면, 20세기 후반에는 연간 평균 15개였다.

대부분의 재해와 함께 발생하는 홍수가 더 잦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강수량 증가나 급격한 해수면 상승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가정용수와 농업용수 공급을 위한 지하수층 개발이 늘어나면서 주요 강 삼각주가 매우 빠른 속도로 침강한 것(침전물 퇴적)이 원인이다. 산사태가 예전보다 더 잦아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규모 산림 벌채와 토양 침식 때문에 발생한 인재지 자연재해가 아니다.

‘악당’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이들도 있다. 공산 반군 신인민군(NPA)이나 산림을 훼손하여 산사태를 야기하는 불법 벌목꾼 등 국가에 저항하는 이들이 악당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벌목꾼들이 제멋대로 나무를 베어갈 수 있는 것은 지역 정치인들이 뒤를 봐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이 몸소 정계에 진출할 때도 있다. 그리고 NPA는 무엇보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며, 환경 보호는 그들에게 중요한 혁명적 요구사항이다.(2)

‘악당들’ 중에는 국가와 동맹 세력인 교회가 내세우는 도덕적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이들도 포함된다. 많은 필리핀인들은 종교적, 윤리적 가치들을 위배하면 신의 형벌을 받는다고 믿는다. 1995년 재해가 휩쓸고 지나간 후 종교 지도자 에디 빌라누에바는 “우리나라를 덮친 모든 재해는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라 신의 말씀 속에 담긴 진리를 거역한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3)

필리핀 정부와 언론은 재해의 원인으로 빈곤층을 지목하기도 한다. 무허가 거주 지역 주민들이 마구잡이로 쓰레기를 버려 배수로와 도랑을 막기 때문에 홍수가 발생하며, 산속 거주민의 화전 경작과 땔감용 나무를 구하기 위한 벌목 때문에 대규모로 산림이 줄어들고 토양이 침식된다는 것이다. 2009년 마닐라 대홍수 당시 정부의 한 고위 책임자는 “판자촌 거주자 40만명을 위험 지역 밖으로 이동시키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4)고 강력히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이 위험지역에 살면서 자연재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단을 갖추지 못한 채 환경을 훼손한 것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계절 변화에 따른 강의 범람, 산사태, 10년 주기로 발생하는 화산 분화 등의 문제에 대처하는 것보다 당장 먹고살 일이 막막한 이들이다.(5)

그들이 일상 필수품을 확보하고 자연재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는 것은 지식 부족 때문이 아니라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 때문이다. 이는 재해가 닥칠 때마다 가난한 이들이 훨씬 큰 피해를 보는 이유다. 똑같은 재해를 당해도 어떤 건물은 멀쩡한데 어떤 건물은 무너져버리고, 어떤 이들은 생존하지만 어떤 이들은 목숨을 잃는다. 이번에 태풍 욜란다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도 그랬다. 재해는 집과 식량, 정치적 발언권을 획득하는 데 겪는 어려움을 더욱 심화시킨다. 부와 보호수단의 불평등한 분배는 식민지배의 잔재, 정부의 정치·경제적 전략, 국제적 상황에서 오는 압박 등에서 비롯된다.

3세기 반 동안의 스페인 식민지배가 이어지는 동안 소수의 필리핀 엘리트들은 국토와 자원의 대부분을 장악했다. 스페인이 물러가고 반세기 가량 미국의 지배가 이어졌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21세기 초 상황을 보면, 필리핀 상위 10% 가구가 전체 부의 33.9%를 소유한 반면 최하위 10%는 고작 2.4%를 차지했다. 불평등은 농촌 지역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전체 3분의 1의 농민이 남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땅 없는 농민 중 상당수는 대지주에게 수확량의 50~75%를 소작료로 갖다 바칠 바에는 차라리 평야를 떠나 산사태의 위험이 상존하는 산속이나 화산 경사지에 살며 노동의 대가를 누리기를 원한다. 예전에는 위험지역이라 피했던 지역으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필리핀 정부의 정치·경제적 전략 역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다.(6) 1960년대 이후 집권 세력들은 사실상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해왔다. 1990년대 수도와 전기 민영화를 비롯해 공공서비스의 상당 부분이 민영화됐다. 이익을 본 쪽은 권력의 측근들이었으며, 빈곤층은 사회적 보호망에서 더욱 소외되었다. 특히 수출 지향 정책으로 정권과 결탁한 무역업자들이 큰 이익을 보았다. 사실상 대부분의 산사태는 산림자원의 대규모 약탈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농식품 분야를 포함한 다국적기업에 국경을 개방하자 환경 파괴가 가속화되었고, 소농과 원주민 공동체가 경작지를 잃고 생존이 막막한 상태로 내몰리게 되었다.(7)

1979년부터 필리핀에 구조조정 계획이 강요되었다. 값싼 수입 농산물이 밀려들고 자급시장이 문을 닫자 많은 농부들은 생존을 위해 환경 파괴를 무릅쓰거나 자연재해의 위험에 노출된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다. 더욱이 2000년대부터 부채 상환 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달하는 상황에서 보건과 교육 예산은 삭감될 수밖에 없었다. 무역이 세계화되고 원자재와 식료품 가격이 급격히 등락하면서 소작농들은 생존을 위해 갈수록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가령, 쌀과 같은 기초 식량 가격이 급등하자 섬 주민들은 거친 파도를 무릅쓰고 목숨을 건 조업에 나서는 일이 잦아졌다. 식민지배의 잔재와 현재의 정치·경제적 구조 속에서 빈곤층이 근본적인 개선책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식, 노하우, 자급 수단들을 총동원하여 자연재해에 맞서고 있다.(8) 과거의 경험뿐 아니라, 연대 네트워크, 계, 전통 건축과 의학, 사냥·낚시·채집 기술, 비정부기구(NGO)의 지원 아래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각종 공동체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이 단체들 대부분은 페르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독재에 대항한 투쟁 속에서 탄생했다. 반정부 투쟁의 다양한 영역을 계승한 이들은 특히 사회적 불평등 비판에 앞장선다. 이들의 활동 덕분에 필리핀은 자연재해 피해를 줄이기 위한 활동에 주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9) 하지만 이런 참여 프로젝트는 아직 안정적인 제도로 자리 잡지는 못했다. 정부의 강력한 개입 없이는 나라 전체로 제도화되어 운영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다양한 지역 단체들이 등장하고 사회적 압력이 커지자 2010년 5월 국제적으로도 모델이 될 만한 새 법이 도입되었다. 이 법은 정부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갈수록 비중이 커지는 비정부기구와 지역 공동체의 참여를 적극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정부는 지역 당국에게 재해예방을 위한 공공기금과 인력을 지원하도록 되어 있다. 이런 조처들이 균형 있게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기안, 사마르, 산프란시스코 섬, 세부 인근에서 제도적 혜택을 본 지역 공동체들은 태풍 욜란다로 인한 피해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비정부기구들의 활발한 활동과 강력한 제도적 수단만으로 빈곤층을 더욱 큰 위험 속에 노출시키는 사회적 불평등을 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림 파괴에 대항한 싸움이 좋은 예가 된다. 벌목을 금지하기 위한 법률과 법령은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나라 전체는 불법 벌목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아동을 비롯하여 불리한 입장에 있는 사회적 집단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무색하게도 산사태로 인한 재해들과 비슷한 양상으로 계속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태풍 욜란다가 몰고 온 엄청난 재난이 혁신을 위한 충격으로 작용하기를 바랄 뿐이다.


글·장 크리스토프 가이야르 Jean Christophe Gaillard
    제이크 롬 D. 카닥 Jake Rom D. Cadag
각각 오클랜드 대학 교수, 몽펠리에 개발연구소(IRD)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필리핀>(William Guéraiche 편, 현대동남아시아연구소(IRASEC), 방콕, 2013)에 실린 ‘Sa kandungan ng kalikasan: 필리핀의 재해, 환경, 개발’을 함께 썼다.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리듬분석> 등이 있다.


(1) 사망자 수가 10명 이상이거나 피해자 수가 100명 이상, 혹은 국제적 원조를 필요로 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2) Philippe Revelli, ‘착취와 수탈의 땅 필리핀(Philippines, terre à l'enca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10월.
(3) Eddie Villanueva, ‘RP's disasters not incidental occurrences’, <Philippines Star>, 마닐라, 1995년 10월 7일.
(4) Cecil Morella, ‘400,000 lakeshore squatters key to fixing floods’, <Philippine Daily Inquirer>, 마닐라, 2009년 10월 8일.
(5) <People's response to disasters: vulnerability, capacities and resilience in Philippine context>, Center for Kapampangan Studies, 앙헬레스, 2011.
(6) Walden Bello, Herbert Docena, Marissa de Guzman, Mary Lou Malig, <The Anti-Developmental State: the Political Economy of Permanent Crisis in the Philippines>,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Department of Sociology, 케손시티, 2005.
(7) Robin Broad, John Cavanagh, <Plundering Paradise: the Struggle for the Environment in the Philippin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버클리, 1993.
(8) Greg Bankoff, <Cultures of Disaster: Society and Natural Hazard in the Philippines>, Routledge, 런던, 2002.
(9) Annelies Heijmans, Lorna P. Victoria, 'Citizenry-based and development oriented disaster response: experiences and practices in disaster management of the Citizens' Disaster Response Network in the Philippines', Center for Disaster Preparedness, 케손시티,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