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조세 정책이 초래한 불공정사회
장마르크 애로 프랑스 총리는 최근 조세 정책 개혁을 다시 한 번 공론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번 증세 계획은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대선 당시부터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이지만, 각종 압력단체의 반대로 인해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조세 정책의 성패는 전반적인 재정 상황 회복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에 비길 만한 농민폭동은 현대사회 들어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 경제일간지 <레제코>의 논설위원 장프랑시스 페크레스는 최근 일어난 프랑스의 ‘붉은 모자 혁명'을 14세기 과도한 세금에 대항해 일어났던 농민 폭동인 ‘자크리의 난'에 비추어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프랑스는 지금 또 한 번의 자크리의 난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그는 또한 “얼마 전 브르타뉴 지방에서는 환경세 반대 시위가 있었고, 저축성 예금과 생명보험에 15.5%의 세금을 부과하는 이자소득세 소급 적용에 대해서도 반란이 일어났으며, ‘비둘기 군단’, ‘털 깎인 양떼’ 등의 시민운동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부당한 조세 압박에 대항하는 시위의 불꽃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1) 하지만, ‘반란’, ‘시위’, ‘억압’과 같은 일련의 단어들이 정말 조세 문제로 인한 프랑스의 현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는 것일까?
세금에 대한 ‘성난 민심’은 그가 주장한 것처럼 부당한 조세 정책 때문에 나타났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최근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오다가 올 가을 들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긴축정책이 지속됨에 따라 일부 가계는 실질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평균으로 따지면 큰 폭은 아니지만 2012년과 2013년 사이 소득세 세율과 납세자수가 모두 증가했으며, 조세 정책이 소수 계층만을 위한 불공평하고 차별적인 정책이라는 인식도 점차 확산되면서 반감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언론 매체들이 이러한 반감을 바로 '폭동'으로 둔갑시키며 거드는 덕분에 정부는 손끝만 스쳐도 쉽게 굴복할 상태가 되었고, 이제는 압력단체들이 정부로 하여금 조세 정책을 포기하도록 하는 직전 순간까지 이르렀다.
세금 징수 공정성에 대한 물음표
지난 10월 15일, <르몽드>에서 발표한 한 설문조사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프랑스 국민, 조세 정책 반대하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이 조사 내용에 따르면, 응답자 중 72%가 세금 수준이 ‘과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도대체 무엇에 비해 어떤 기준으로 과하다는 것인가? 이 문제를 다루려면 보다 심화된 질문을 사용했어야 한다. 실제로 같은 설문 결과 내에서 응답자 중 57%가 ‘납세는 시민의 의무’라고 답했고, 75~85%가 부유세, 소득세, 법인세 등의 누진세 적용이 ‘정당하다’ 또는 ‘매우 정당하다’고 응답했다는 내용도 찾아볼 수 있다. 동일한 주제에 대한 기존의 여론조사 결과에 비해 감소한 수치이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긴 어렵다.
그러므로 전 국민이 조세 정책과 소득 재분배 효과, 사회 연대적 체계, 수준 높은 공공서비스, 공공기관의 자금출자 등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물론 일부 납세자들이 불만을 표출하고 있고 이로 인해 조세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약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불만은 세금에 대한 두 가지 고전적 문제제기로 이어지는데, 첫째는 재정 지출의 적절성과 정당성, 즉 ‘어디에 쓰일 것인가’라는 의문이며, 둘째는 ‘누구에게 부과할 것인가’와 ‘어떤 비율로 매길 것인가’라는 세금 징수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수를 증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부채의 대부분이 애초부터 부당한 것이 아니었나?’(2), ‘그리고 부채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인 공공서비스를 희생하면서까지 긴축 정책을 시행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부작용을 불러온 것은 아닌가?’와 같은 반문이 당장 터져 나온다. 더군다나 이 부채란 것이 왠지 지난 수년간 지켜온 긴축 정책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늘어만 가고 있다.
또 다른 예로 2013년 한 해 동안 납세대상자가 100만 명 이상 증가한 사실을 들 수 있다. 이는 2011년 말 당시 프랑수아 피용 전 총리가 2년간의 과세표준 동결을 결정하면서 생긴 결과로, 현 정부도 이를 이어받아 오는 2014년 말까지 과표 구간을 그대로 유지할 예정이다. 사실 예정보다 일 년쯤 일찍 폐지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기업들에게 대가없는 선물을 퍼주고자 ‘경쟁력 제고 협약’을 내놓았다. 이 협약에 따르면 프랑스는 ‘고용 안정 및 경쟁력 제고를 위한 세액공제제도(CICE)’를 통해 2014년에는 100억 유로를, 그 이듬해부터는 200억 유로의 공제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 제도의 재원 일부는 부가세 인상을 통해 채워지는 것으로, 덕분에 2014년에는 가계들이 세금 인상으로 인한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결국 기업들의 세금 부담을 줄이려다가 도리어 국민의 분노를 불러오게 된 셈이다.
고소득층만 배려하는 세금 정책
한편 경제학자 토마스 피케티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소득층이 중산층 이하에 비해 더 적은 세금을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3) 고소득층에게는 세금을 피해 빠져나갈 다양한 방법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로 각종 탈세 및 조세회피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데, 그 금액이 연간 최소 600~800만 유로에 달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 대부분의 국민들도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다. 약 90%가 세금으로 충당되고 있는 국가 재정 수입의 GDP 대비 비율이 1980년대 이후 2009년까지 큰 폭으로 하락해왔고 최근에 들어서야 소폭 상승했을 뿐이라는 점이다.
GDP 대비 재정수입은 1980~1987년 22%이었지만 1990~2001년에는 평균 20%, 2009년에는 최저점인 15.3%를 기록하다가 2012년에야 16.8%로 미미하게나마 회복세를 보였다. 물론 경제위기로 인한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실은 경제위기 훨씬 이전부터 분명한 하락세가 나타났다. 2000~2001년 당시엔 로랑 파비우스 전 재정경제산업부 장관(현 외무부 장관)이 스스로를 ‘세금 삭감 일인자’라고 일컬을 정도였다. 그는 1999년 8월 25일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좌파가 우파에 질 위험은 없지만, 세금에는 질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2년 들어 다시 정권을 잡게 된 우파 진영은 피할 길을 찾고 가공할 만한 온갖 수단들을 동원해 도주로 확보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세금 회피 방법과 공제안을 내놓고 과표 구간을 조정하는 등 각종 방법을 통해 대기업과 상위 10% 고소득층, 그 중에서도 최고 1%를 위한 길을 부지런히 닦아나간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의 최고소득세율은 1986년 65% 수준에서 큰 폭으로 하락해 현재 40%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동기간 법인세 세율이 45%에서 33%로 떨어진 데 비하면 아주 큰 하락폭임을 알 수 있다.(4) 반면 법인세 33%도 이론상의 수치일 뿐이다. 대기업들은 각종 부담금으로부터 몸을 피할 훌륭한 마술 상자를 지니고 있다.(5) 현재 프랑스 내 소형 기업들은 28%의 법인세를 내야 하는 반면, 파리 증시 CAC40에 상장된 우량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부담하는 세율은 8%에 그친다.
최고소득세와 법인세가 줄어든 동안 지방세 항목의 세율은 상승했지만, 2009년 이전까지 지속되어온 재정 수입의 하락폭을 채우기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결국 1980년에서 2009년 사이 GDP 국가 재정 수입은 약 3%p 감소했으며, 그 금액은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약 6백억 유로에 달한다. 이는 2012년 한 해 동안 소득세로 거두어들인 수입과 동일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전반적으로 볼 때 국가 재정 대비 세수가 1980년 이후 지속적으로 이렇게 분명한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언론의 과장은 차치하더라도 터무니없지만은 않은 세금 인상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왜 나타나는 것일까?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2000년에서 2009년 사이 세금이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할 때 그 수혜를 얻은 것은 결국 상위 10%의 고소득층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 대부분이 지난 세금 인하를 의식조차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또 다른 이유로 국가 재정 수입이 2009년 최저점을 찍은 이후 소폭 상승을 기록했던 것을 들 수 있다. 부분적인 회복에 그쳤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재정 수입 증가로 나타나 고소득층이 빠져나갈 수 있는 분명한 핑계거리를 제공한 셈이기 때문이다.
공정한 조세정책은 허황된 꿈
세금을 통한 사회연대를 기대하는 국민들로서는 이러한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것이다. 또한 중저소득층 국민 대부분이 사면초가의 상황에 봉착해있는 지금의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공공분야와 급여 모두 긴축 상태에 들어간 지 오래고, 주택, 연료, 교통 및 각종 비용 등 필수 지출 항목의 물가는 상승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금 문제까지 떠안게 된 마당에, 기업들에게 각종 혜택을 주겠다는 2014 재정안에 대한 뉴스까지 나오니 ‘해도 해도 너무 하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국민들에게는 과거의 세금 하락과 최근의 세금 인상 모두가 숫자화되어 나타날수록 오히려 더 불합리하고 부당하게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금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종종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세금 자체의 불공정성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 1차 소득(근로소득 및 재산소득) 분배의 불평등이라는 중요한 사항을 놓치게 된다. 세금의 재분배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이는 근본적인 1차 분배 기준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득분배가 보다 평등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에서는 조세 정책을 크게 수정할 필요가 없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세금의 누진성(6)이 점점 약해져 심지어 상위 1% 최고소득층에게는 역진세처럼 적용되고 있는 현 상황의 원인은, 고소득층에 유리하게 세금 인하와 조세 절감 등을 적용한 정책적인 부분에 있을 뿐만 아니라 애당초 평등하지 않았던 소득 분배 문제가 심화되어 일어난 현상이기도 하다. 불평등이 이미 확대되었기 때문에 재분배 단계가 점점 효력을 잃어가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소득의 격차 앞에서는 그 어떠한 조세 정책이나 부의 재분배도 무의미하다. 75%의 부유세를 적용하더라도, 최고소득층이 그로 인한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두 배가 넘는 수입을 새로 거둬들인다면 이를 막을 길은 없는 것이다.
2013년 출판된 책 <평등이 답이다-왜 평등한 사회는 늘 바람직한가>의 공동저자인 리차드 윌킨슨은 세금을 통한 불평등 해소를 기대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은 토마스 피케티의 의견과도 일맥상통하다. 그는 “물론 누진세는 꼭 필요한 제도이며, 탈세를 막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불평등 해소에 접근하는 것에는 수많은 허점이 있기 마련이다. 정책을 내놓아도 다음 정권이 집권 한 달 만에 무산시켜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조세 제도에 매달리기 이전에 경제와 기업의 민주화를 통해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이 보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경제를 민주화하고 협동조합 및 공제조합 등의 분야를 발전시켜야 하는 까닭”이라고 설명했다. 보다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자면, 재정 문제 해결, 배당소득 상한 적용, 환경적·사회적 변혁, 적당한 수준의 최저소득 및 최고소득 제한, 완전고용을 위한 주요 수단으로서의 일자리 공유 등의 전략과 더불어 근본적인 경제 민주화 전략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략 없이 동떨어진 조세 개혁만 내놓는다면, 비록 그것이 올바른 방향성을 지녔다 할지라도 틀림없이 불완전하고 미미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최악의 경우 국민들의 ‘분노’가 쌓여 폭발해 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불공정한 사회 시스템에서 공정한 조세 정책을 세우는 것은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공정한 조세 정책을 평등사회 구현을 위한 다양한 정책 중 하나로서 구사해 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승부수가 될 것이다.
글·장 가드레 Jean Gadrey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고려대 불문과 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레제코>, 2013년 10월 28일자
(2) ‘도대체 무슨 빚이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6월호
(3) Thomas Piketty, Emmanuel Saez, Camille Landais, <Pour la révolution fiscale>( 조세혁명을 위하여), Seuil, 파리, 2011
(4) 최고소득세율이란 납세자 중 최고소득층에게 적용하는 소득세율을 의미한다.
(5) ‘누가 내 월급에 손을 대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2년 11월호
(6) 누진세란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에 더 높은 비율을 적용하는 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