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권을 우롱당하는 아랍 여성들
아랍 여성들은 그들이 태어나 자라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키워낸 땅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다. 아랍연맹의 23개 회원국은 친자관계, 결혼, 귀화, 이중국적, 속지주의와 속인주의 절차에 따라 국적을 할당한다. 이런 절차 속에서 국적법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아랍 여성들은 오늘도 아랍 남성에게는 ‘당연히’ 주어지는 권리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40세의 레바논 여성 건축가 리나(1)가 말한다. “1996년, 저는 프랑스인 기욤을 만났어요. 그는 레바논에서 군복무를 하며 공부했어요. 우리는 항상 같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 관계는 순탄치 않았다. “저는 무슬림이고, 그는 기독교인이었어요. 우리는 레바논에서 결혼할 수 없었어요. 레바논엔 민법상의 결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2000년, 저는 그와 키프로스에서 식을 올렸어요.” 곧이어 부부는 베이루트의 레바논과 프랑스 당국에 혼인신고를 했고, 1년 후 리나는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하지만 이들은 레바논에 체류하고 있다. 비록 행정적인 제약이 이들의 삶을 짓누르지만, 기욤은 이곳이 좋다. 45세의 이 부동산 컨설턴트는 체류증을 해마다 갱신해야 한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모든 행정절차가 힘들어요. 미칠 지경이죠.”
2004년, 첫 아들이 태어났을 때, 리나는 자신들이 앞서 경험한 것들이 앞으로 경험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레바논인 엄마가 레바논에서 낳은 내 아들은 마치 외국인처럼 체류증이 필요했어요!” 왜냐하면 레바논의 경우, 쿠웨이트, 카타르, 시리아, 오만, 수단, 소말리아에서처럼 생부가 누군지 모를 때를 제외하고 자녀에게 어머니의 국적을 물려줄 수 없기 때문이다.
신분증도, 국적도 가질 수 없는 그들
이제 두 아들을 둔 부부는 다음과 같은 큰 아들의 질문에 답변해야 한다. “나는 뭐야? 왜 나는 레바논 여권을 소지할 수 없는 거야?” 리나는 이 같은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며 부당함을 느낀다. “넌 레바논인이긴 하지만 다른 애들과는 달라.” 아버지는 자식들 때문에 “절망스럽다”고 말한다. 두 아이는 공립학교와 보건 시스템을 이용할 수도 없고, 재산취득이나 창업도 불가능하며, 일부 직업도 가질 수 없다. 그리고 이 같은 불합리한 신분은 대물림 된다. 2011년, 카롤 만수르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모두가 국가를 위한다>에서 내레이션을 맡았던 제나브도 신분증이 없다. 그는 레바논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러나 이집트인인 그의 아버지는 그를 이집트에 이집트인으로 등재하기 전에 사망했다. 그래서 그는 레바논 호적에 올라있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어머니는 자녀들을 고아원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국적이 없어 무상교육은 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 속에서, 레바논 여인과 결혼해 두 아들을 둔 이집트인 변호사 아델은 레바논에서의 자신의 추방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또 레바논의 체류증 장사도 거론한다. 프랑스인인 기욤에겐 무료지만 그에겐 그렇지 않다. 특히 그에겐 체류증 취득이 거부될 수도 있다. 체류증 취득이 거부된 남편과 가장들은 며칠 내로 가족과 함께 레바논 영토를 떠나야 한다. 아랍연맹의 23개 회원국(2)은 친자관계, 결혼, 귀화, 이중국적, 새로운 국적 취득을 위한 국적 포기, 속지주의와 속인주의 절차에 따라 국적을 할당하고 있다. 여성들은 이런 절차 속에서 국적법으로 인한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더군다나 1981년 유엔 여성차별 철폐협약(CEDAW)이 발효됐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이들 국가는 여성과 관련된 제 2조항과 자녀의 국적승계를 명시한 제 9조항에 대해선 유보를 표명했다. 따라서 여성단체들은 동등한 권리를 주장한다. 실제로 남성들은 출생지와 무관하게 본인의 국적을 외국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 아랍인과 결혼한 외국 여성은 외국인과 결혼한 현지 여성에 비해 더 많은 권리를 누리면서 제약도 덜 받는다. 수지 카일 여사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1977년 애리조나 투손 대학에서 아드난 카일을 만났다. 수지는 25세의 미국인이고, 아드난은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12년 후, 그들은 결혼한다. 이들은 아들 아담을 얻고, 아들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에 한 번도 거주한 적이 없었지만 자동적으로 사우디 국적을 취득한다.
'신분'을 얻기 위한 고난의 싸움
이들은 만난 지 30년 후, 제다로 이주한다. 수지 여사는 국적을 취득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는 국적취득 절차를 밟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특별한 신분을 의식하며 이렇게 말한다. “국적이 주는 혜택은 없어도 돼요. 내 처지는 외국 남성들과 결혼한 사우디 여성들의 처지만큼 심각하지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 남편에게 무슨 일이 닥치면 난 어떻게 될까?” 하는 자문을 한다. 긴 협상 및 초국가적인 계도 캠페인 후, 이들 국가의 일부 법률은 변경됐다. ‘내 국적 찾기’ 캠페인이 펼쳐진 이후, 해마다 갱신하던 레바논 체류증은 3년마다 갱신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2012년, 사우디 내각은 처음으로 국적문제를 의제로 정했다. 한편, 알제리 여성들이나 이라크 여성들과 결혼한 외국 남성들은 각각 2005년과 2006년부터 본인은 물론 자녀들도 알제리나 이라크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 모로코와 이집트에서는 2008년부터 어머니의 국적취득이 가능해졌고, 튀니지와 리비아에선 2010년부터 가능해졌다. 하지만 남편이 무슬림이어야 한다는 등 일부 특정 자격조건이 있다. 모로코 여성민우회(ADFM)의 회원이자 회장인 아미나 로트피가 설명한다. “여기까지 오는데 20년이나 긴 여정이었어요.” (국적취득 문제에 있어서) 이 같은 개선은(사법, 노동 등) 모든 부문에서의 보다 광범위한 개혁과 특히 소위 무다와나(Mudawana)(3)라 일컫는 가족법 개정과 연관이 있다. 로트피는 “민우회에 무다와나 제도의 폭력성을 알린 것은 여성들이었다”고 한다. 이후 민우회는 왕이 임명한 위원회에 무다와나 개정안을 제출했다. 2001년부터, 무다와나 개정에 대한 대대적인 자문과 캠페인이 실시됐다. 그는 덧붙여 “우리는 보수단체의 항의에 맞서, 연대를 했죠. 2002년 우리는 ‘평등의 봄’을 창설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아랍의 봄’ 이전에 ‘봄’을 맞은 셈이죠.”라고 말한다. 결국 2007년 모로코 정부는, 1958년에 발효된 국적법을 개정했다. 7년 이상 계속된 무다와나 개정 캠페인이 이룬 성과였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랍 ‘혼혈'
이 개혁은 2002년 튀니지인과 결혼한 모로코 여성, 아미나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태어날 때부터 심각한 병마에 시달리던 그의 딸은 정기적으로 큰 수술을 받았다. “딸아이가 튀니지 국적밖에 없어서 병원비를 내야 했어요.” 아미나는 치료비를 내기 위해 진이 빠지도록 파출부 일을 한다. 가난한 이들 부부는 과중한 병원비 때문에 파산 직전에 내몰렸다. 딸은 현재 10세다. 법원은 두 달에 걸쳐 이 사건을 심리한 끝에 아이에게 국적을 부여했다. 아미나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인터뷰를 끝냈다. “우리는 여전히 가난하고, 딸은 여전히 아픕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딸은 모로코인이에요. 무상으로 치료받을 권리가 생긴 거죠.” 그러나 현재까지도, 여성들은 자신의 요구에 늦게 처리되는 행정에 불만을 토로한다. 말리인 남편과 같이 사는 모로코의 한 가정의 어머니, 일함 S부인이 그런 경우이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요르단, 에리트레아, 모리타니, 차드, 코모로 등도 국적법을 완화했다. 2001년부터, 아랍 에미리트 연방의 여성들은 중동 지역에서 처음으로 이른바 국제결혼으로 탄생한 자녀에게 자신들의 국적을 물려줄 수 있게 됐다. 아랍 에미리트 시스템이 훨씬 간편하긴 하지만, 혼혈아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처럼 18세에 국적을 신청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이들은 출생과 동시에 아랍 에미리트 국민과 동일한 권리를 지녔지만, 법은 여전히 적용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들이 이 법안을 다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캠페인이 지속되고 있다. 리나는 “과거 선거를 치렀지만, 이 법안을 개정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개정이 어려울 것”이라고 외친다. 하지만 리나는 자신이 없다. 선거를 볼모로 캠페인을 주도했지만 법안의 의무이행 문제에 종지부를 찍지 못한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랑할 자유조차 위협하는 법
프랑스의 중동지역연구소(IFPO)의 연구원이자 국제위기그룹(ICG)의 중동 지역 분석가인 클레르 보그랑이 설명한다. “최근 몇 년 간 국적취득과 관련된 문제 때문에 많은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가족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치기 문제이기 때문이죠. 서류상 신분이 심각한 차별을 낳고 있어요. 법안 개정의 결과는 가변적이에요. 국적승계법안 개정은 인구 구성의 변화에 길을 열었어요. 특히 인구 구성문제가 심각한 레바논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점차 결혼을 통해 레바논 국민에 통합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요. 게다가 특히 중동에서는, 정부가 문화와 인종이 같은 사람과의 국적 취득만 제한적으로 합법화하고 있어요. 이런 것들이 내국인 간 결혼을 부추기고 있죠. 이는 남성들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위협은 결국 대부분 정치적인 것이죠.”물론 코란이나 종교적 율법은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보그랑이 덧붙여 말한다. “종교적 율법을 들먹이는 것은 잘못이지만, 관성 때문에 율법을 거론할 수밖에 없어요. 문제는 이 율법이 잘못됐다고, 일관성이 없다고 규탄하려는 것이 아니라, 왜 이 율법이 특정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에요. 아랍 세계에서는 개인의 신분을 결정하는 법률이 종교적 원칙에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종종 가부장 시스템을 문제 삼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에요. 남성들이 장악한 의회가 법안을 의결할 때는 특히 그렇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식민지화와 국경 조정, 전쟁, 종교적 갈등(레바논)이나 인종적 갈등(수단)으로 인한 식민지 해방과 위태위태한 사회적 균형 등, 수많은 요인들이 이 지역과 이 지역의 법률들을 혼란에 빠트렸다. 많은 중동 국가들은 팔레스타인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은 국가를 건설하거나 본국으로 귀국할 이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 주장하며, (이들에 대한) 제한적인 국적 부여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국적법 개정 캠페인을 벌이는 레바논 단체는, 통계에 따르면, 외국 남성과 결혼한 레바논 여성 중 팔레스타인 남성과 결혼한 여성 비율은 단지 6%밖에 되지 않는다며 이 같은 주장을 규탄한다.
‘아랍의 봄’이 국적 문제에 영향을 미쳤을까? 리나는 주장한다. “나를 위해 프랑스에서의 삶을 희생한 남편에게 국적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최소한의 배려예요.” 그는 레바논 무료 체류증을 신청하러 갔다가 둘째 아들의 레바논 입국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고 했다. 리나는 정부 직원에게 따졌다. “우리 애는 여기 출신입니다. 아이 몸속에 내 레바논 피가 흐르고, 레바논인인 내가 낳은 애란 말이에요. 여기가 분명 레바논 영토가 맞아요?” 직원이 응수했다. “애는 외국인이라, 돈을 내야 합니다.” 법은 법이다.
와르다 모함메드 | 언론인
2011년부터 카이로에 머물면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TV5> 등의 매체에 이집트와 아랍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특히 아랍사회의 문화적 변동에 관심이 많다.
번역 | 조은섭 chosub@ilemonde.com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로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강의 중.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1) 인터뷰에 응한 일부는 익명을 원했다.
(2) 알제리,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코모로,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에리트리아, 이라크, 요르단, 쿠웨이트, 레바논, 리비아, 모로코, 모리타니, 오만, 팔레스타인, 카타르, 소말리아, 수단, 시리아, 차드, 튀니지 및 예멘. Algérie, Arabie saoudite, Bahreïn, Comores, Egypte, Emirats arabes unis, Erythrée, Irak, Jordanie, Koweït, Liban, Libye, Maroc, Mauritanie, Oman, Palestine, Qatar, Somalie, Soudan, Syrie, Tchad, Tunisie et Yémen 등.
(3) Wendy Kristianasen, <이슬람 땅에서 여성 간의 논쟁> 참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4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