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없이 창조경제 가능할까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한 지 6년 반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경제의 정상화는 요원해 보인다. 사실상 선진국 경제는 ‘좀비화’가 진행 중이다. 일부에서 미국 경제의 회복을 거론하고 있지만 회복의 실상은 모르핀(통화 프린트)에 연명하는 환자에 불과하다. ‘장기 침체’를 ‘새로운 정상(the new normal)’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배경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S : Federal Reserve System)의 자산 규모가 위기 이후 4배 이상으로 증가했음에도 통화 프린트(양적 완화)를 중단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천문학적 규모의 통화 완화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경제가 디플레이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금융위기의 근본원인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지난 200년 넘게 산업사회 속에서 유지, 발전해온 선진국의 주요 시스템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물이다. 무엇보다 산업화 완료와 더불어 제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이 약화되면서 성장잠재력이 약화되고 소득불평등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가계 소비지출가율이 가처분소득 증가율을 앞서면서 가계부채가 증가하였다.
이에 대한 자본의 대응이 노동시장 유연화를 구실로 한 사회보장의 후퇴와 금융의 일탈(그림자금융의 성장) 등 신자유주의 반동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발생한 ‘고용 없는 성장’은 신자유주의식 노동시장의 유연화 실험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미국의 경우 고용과 연계된 의료보험과 최대 6개월까지만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 등으로 장기실업자는 생존의 위협에 직면했고, 그 결과 노동자는 눈높이를 낮추어서라도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80년대 이후 미국 노동시장이 유럽에 비해 유연해진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회복 후에도 높은 실업이 장기간 지속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미국 고용시스템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이에 대한 정치권과 월가 등의 대응은 소득이 취약하고 주택이 없는 계층에게 주택금융의 지원, 즉 빚을 내 주택을 구입케 한 ‘신자유주의 포퓰리즘’이었다. 여기에 궤도를 이탈한 금융이 결합되면서 주택시장의 거품을 만들었고, 그 결과가 금융위기였다.
탈산업화에 따른 새로운 경제 필요
이처럼 탈공업화에 따른 고용시스템의 약화가 사회보장-금융-주거 등 주요 시스템의 일탈로 이어졌다. 금융위기 이후 대규모 재정 투입과 통화 완화 등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이다. 즉 제조업의 역할과 비중이 축소되면서 제조업이 더 이상 일자리 공급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2012년 기준 미국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1.9%에 불과하고, 전체 노동력에서 고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밑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금융위기 이전처럼 금융은 성장동력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상황은 대공황 이후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 1930년대에 비해 40년대에는 중화학공업의 발흥으로 제조업의 고용 규모가 6백만 명 이상으로 증가할 정도로 제조업은 일자리 창출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였다. 게다가 전체 소득의 50%까지 차지했던 상위 10%의 소득 비중은 뉴딜개혁으로 32%까지 하락할 정도로 소득불평등이 크게 개선되었다. 반면, 금융위기 이후에는 제조업을 대체할 산업도 존재하지 않고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0%를 넘어설 정도로 소득불평등은 위기 이전보다 오히려 악화되었다. 마이너스(-) 실질금리와 노동비용의 하락으로 기업의 세후 이윤이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30% 이상이나 증가했음에도 GDP 대비 투자 비율이 오히려 하락한 배경이다.
탈공업화의 함정과 일자리 위기에 빠진 주요국들의 대안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 새로운 경제 만들기다. 예를 들어, 유럽집행위원회(2010년 3월)가 유럽의 향후 10년을 준비하는 Europe2020에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문화와 창조산업의 잠재성을 주목하였고, 일본 역시 신성장전략의 실천계획(2010년 9월)에서 신성장 주도 전략분야 중 하나로 문화산업 중심의 창조산업을 포함하였고, 미국 역시 국민의 창조성과 상상력에 투자하여 새로운 일자리와 산업을 창출하겠다는 미국혁신전략(2011년 2월)을 발표했다. 창조경제 담론은 제조업 과잉에 빠져 장기불황에 진입한 일본경제의 전략으로 ‘창조사회’를 노무라연구소가 1990년 제기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997년에는 선진국 중 제조업 고용 비중이 가장 낮은 영국에 상륙하였고 그 후 여러 나라로 확산되었다. 특히 ‘창조경제보고서’를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UN을 포함하여 ILO, WTO 등 국제기구들도 창조경제 관련 논의와 정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은 올해 2분기부터 무형자산을 포함시켜 GDP의 규모와 구성을 고쳐 쓰기 시작했다. 무형재의 비중과 경제유발효과가 커진 결과이다. 비즈니스위크는 이를 ‘무형재 경제의 발흥’이라 불렀다. 이러한 연장선에 있는 것이 박근혜 정부가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하는 창조경제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역시 문화 예술을 중심으로 한 업종에 과학기술과 ICT 등을 결합시켜 고용률 70% 달성 및 중산층 사회를 복원하기 위한 새로운 성장동력과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제조업적 사고로는 불가능한 창조경제
이처럼 성장동력과 일자리 만들기 전략으로 제기된 창조경제 혹은 창조산업은 탈공업화 이후 성장과 일자리 위기에 대한 대응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러 나라에서의 창조경제 프로젝트는 실패했거나 성과가 불확실하다. 예를 들어, 2010년 유럽연합의 창조산업은 GDP의 4.5%와 850만명 고용을 담당했으나 2012년에는 GDP의 3.3%와 670만명으로 축소되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창조경제를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이라 규정하면서 여전히 제조업적 사고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창조경제를 산업화 시대, 정보화 시대, 지식기반경제를 잇는 새로운 경제로 이해하면서 사고와 제도 등은 산업사회의 방식과 유산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창조경제의 핵심은 창조형 인재양성이라 하면서도 교육은 산업화 시대의 형식과 방식 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 경제에서 성장의 원동력은 토지·노동·자본·기술이었던 반면, 창조경제는 ‘새로운 아이디어’에서 찾는다. 심지어 정보와 지식 등은 창조경제에서 활용 대상에 불과하다. 아이디어의 중요성은 스티브 잡스 시절 애플의 비즈니스 모델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모바일 부문에서 경쟁 상대인 삼성전자는 제조업체인 반면 적어도 스티브 잡스 시절의 애플은 아이디어 업체였다. 스티브 잡스 시절의 애플은 핵심가치의 창출을 기존의 비즈니스 패러다임과 달리 공동창조(co-creation) 방식에 의존하였다. 애플의 아이디어(앱스토어)와 기업 밖의 아이디어(앱)를 결합한 것이다. 즉 전통적으로 기업의 수익은 자신이 고용한 직원이 만들어준 것이라면 애플의 경우에는 기업 밖의 다중(多衆)에 의한 것이었다.
이는 아이디어를 결합시킬수록 가치가 증대하는 아이디어의 특성에서 비롯한다. 아이디어 집약적인 무형재를 협력재라 부르는 이유다. 산업화 시대의 일반적인 상품(유형재)은 한 사람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소비를 막는 성질(경합성)과 대가를 지불해야만 그 재화를 사용할 수 있는 성질(배제성)을 갖는다. 반면, 아이디어 집약적인 무형재는 상품의 생산에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상품의 가치를 증가시키는 반경합성(역경합성)과 포괄성의 성질을 갖는 협력재다. 그 결과 아이디어 집약적 무형재의 경우 시장은 자원배분에 실패하고, 경제주체 간 협력과 핵심자원의 공유가 가치창출의 핵심원리로 작용한다.
글로벌 기업에서 제조업의 폐쇄형 혁신 원동력인 연구개발(R&D) 지출과 기업 수익성 간 상관성이 약화되는 배경이다. 경쟁과 사유재산권의 원리에 기초한 산업사회의 사고로 창조경제가 꽃을 피울 수 없는 까닭이다. IT 혁명 이후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했던 2000년대에 미국에서 혁신이 실종된 이유이다. 창조경제를 육성하려면 지적재산권의 강화보다는 사람들이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분위기 조성이 우선이다. 미국 내에서 특허시스템이 특허 남발을 초래하여 ‘특허를 위한 특허’를 노리는 ‘특허 괴물’을 잉태하는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이다. 게다가 아이디어의 가치는 다름(차이)에서 비롯한다. 이스라엘이 창조경제를 꽃피우기 위해 “모든 의견에 반대해보는 ‘NO 교육’”을 시행하듯이 문화산업과 창조산업을 육성하려는 국가들이 창의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양질의 아이디어에 기초하는 창조경제는 다름과 다양성이 존중되고, 협력과 공유의 문화가 발달한 사회에서 꽃피울 가능성이 높다.
민주주의 위기는 창조경제의 위기
소통과 공감의 중요성이 확산되는 배경이다. 즉 산업화가 최고의 인재 확보와 물적 자본의 동원 역량 등에서 결정되었다면, 창조경제는 자기 고유의 컬러를 갖는 인재 확보와 협력·신뢰·연대 등 사회자본의 풍부성에 달려 있다. 이처럼 탈공업화 함정과 일자리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서 산업경제에서 창조경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경제운영원리와 사회문화, 교육 방식 등이 바뀌어야만 가능하다. 즉 창조경제라는 새로운 경제 만들기는 자율과 협력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업그레이드와 문명사적 전환을 의미한다. 즉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업그레이드되었듯이 아이디어로 기존 산업들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창조경제는 산업사회에서 창조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이러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구호로 그칠 수밖에 없다. 사실 창조경제로의 전환은 박근혜 정부만의 국정과제일 수는 없다. 탈공업화 함정과 일자리 위기에서 벗어나는 일은 정권을 초월한 국가적 과제다. 창조경제의 성패는 무엇보다 양질의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의 확보와 협력을 통한 문제해결 역량이 관건이기에 교육의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 표준화된 지식을 최대한 많이 습득시키려는 현재의 경쟁 방식의 교육으로는 창조경제에 필요한 인재는 기대할 수 없다. 산업화를 이룬 국가들에서 청년실업 문제가 심화되는 이유도 표준화된 지식습득자의 공급에 목표를 두고 있는 산업화 시대의 교육시스템의 실패와 관련이 있다. 2000년 이후 미국에서조차 대학교육과 대졸자 노동력의 직무 간 연관성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두 번째로 아이디어의 원천인 ‘다름'을 소중한 사회적 자산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 민주주의가 더 후퇴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소통의 위기로 이어지고, 소통의 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다름은 질식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상호작용과 협력, 신뢰를 약화시켜 사회자본과 문제해결의 역량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바로 창조경제의 위기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글·최배근
미국 조지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안경제 이론과 대안경제 시스템 문제를 연구하고 있으며 교육·지역자치·통일운동 분야의 사회활동에도 관심이 높다. 현재 경제사학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