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게임 업체들의 새로운 메카

2013-12-11     윌리스 베르주롱, 장프랑수아 나도

   
▲ <케이블>, 1998-밀토스 마네타스

‘비디오 게임’이라고 하면 통상 미국이나 일본을 떠올리게 마련이지 캐나다를 떠올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러나 게임 업체에 세제 혜택이라는 특전을 부여해줌으로써 캐나다는 이제 독립 개발사 및 메이저 개발사의 ‘간택’을 받게 된다.


전 세계 컴퓨터 비디오 게임의 두 강자가 올 가을 서로 앞 다투어 내놓은 흥행 관련 보도가 투자자들의 환심을 샀다. 화제의 두 게임은 바로 ‘콜 오브 듀티’와 ‘그랜드 테프트 오토(이하 GTA)’이다. 먼저 ‘콜 오브 듀티’의 경우, 2차 대전을 배경으로 설정된 가상공간에서 가장 많은 수의 적군을 쏴 죽여야 하는 FPS(1인칭 슈팅게임)이다. 이번에 다섯 번째 시리즈가 발매된 GTA에서 플레이어는 LA로 착각할 만큼 비슷한 공간을 무대로 범죄가 들끓는 대도심의 범죄자 역을 맡는다. 9월 중순, 테이크 투 인터렉티브 소프트웨어에서는 GTA V가 발매 24시간 만에 8억 달러(한화 약 8,480억원)의 매출을 돌파했다고 경제 매체에 알렸다. 그로부터 3주 후, 콜 오브 듀티의 퍼블리셔인 액티비전은 게임 발매 하루 만에 10억 달러(한화 약 1조 600억원)의 판매고를 올렸다며 신이 났다. 참고로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크게 흥행을 거둔 영화 중 하나인 ‘아바타’는 상영 19일째가 되고 나서야 10억 달러의 흥행 수입을 돌파했다. 2012년 한 해에만 비디오 게임 부문의 산업은 630억의 매출을 달성하며 호황을 누렸다.(1) 이는 영화 산업보다도 규모가 크며, 음반 업계의 수입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되는 수치다.

이렇게 상당한 돈을 끌어 모으고 있는 게임 분야에서 캐나다가 의외로 선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모든 일은 1997년 몬트리올에서 시작했다. 당시 퀘벡 재무 장관이었던 베르나르 란드리는 멀티미디어 도시 건설을 주창하고 나섰다.

캐나다 정부의 전폭적 지원

란드리 장관의 이 같은 꿈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이 분야의 기업들은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자신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건물을 내어줄 것, 그리고 자신들이 보기에 아직 매우 답답한 수준인 세금 분야에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어 세금이라는 먹구름이 젖히고 훤한 시야가 확보되도록 해줄 것, 두 가지였다. 그리고 캐나다 당국은 이 두 가지 조건 모두를 받아들인다. 이에 (어쌔신 크리드, 레이맨, 파 크라이, 스프린터 셀 등을 내놓은) 프랑스 게임 개발사 유비소프트는 여러 해외 게임 업체 중 맨 처음 캐나다에 자리 잡은 초창기 멤버 중 하나였다.

몬트리올로 이전하기 전, 유비소프트는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질 때마다 3년간 매해 일자리 하나 당 2만 5천 CAD(한화 약 2,515만원)를 요구했다. 정부는 이러한 요구사항 역시 들어주었다. 똑같은 대접을 받지 못한 퀘벡 현지 게임 업체들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정부의 정책은 그대로 강행됐다. 당시 멀티미디어 컨소시엄 CESAM 대표였던 루이스 페라스 씨는 업계에서의 총체적인 불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현지 업체들은 망각하고 그 같은 프로젝트를 꾀하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우리는 퀘벡 기업들도 유비소프트에 제공되는 만큼의 돈을 지원받으면 얼마든지 같은 수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주로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조세 천국 수준의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건 형평성에 위배되며, 이에 따라 전도유망하지만 아직은 기반이 취약한 게임 산업 분야가 불안정해질 수도 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퀘벡 당국에서는 세제 혜택을 게임 산업 분야 전체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로써 장차 눈부신 성공을 거둘 초석이 마련된다. 몬트리올에 유비소프트가 발을 내딛은 것을 시작으로 이제 하나의 경제 모델이 캐나다 전역으로 가지를 뻗어 나간다. 17.5%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40%의 공제 혜택을 주는 온타리오에 이르기까지, 퀘벡 주에 이어 다른 주에서도 임금에 대한 관대한 세제 혜택을 지급하며 게임 산업 유치에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도시 자체에서 지급하는 혜택도 더해진다. 최근까지도 몬트리올 시에서는 유비소프트 직원들에게 300대의 주차 공간을 제공했다. 시내에서 가장 혼잡한 구역 중 하나였다.

수많은 정책에 힘입어 캐나다는 이제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의 비디오 게임 강국이 되었다. 향후 2017년까지 게임 분야에서의 매출액은 연간 6.5% 증가하여 870억 달러(한화 약 92조 3천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캐나다에는 325개 이상의 게임 개발 스튜디오가 있으며, 워너, 유비소프트, 일렉트로닉 아츠 등 초대형 게임 개발사 외에도 가멜로프트, 액티비전, 펀컴, 에이도스 등 규모가 그리 어마어마하게 크진 않아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게임업체가 대거 포진해있다.

캐나다 게임 시장의 빛과 그림자

몇 십 년 전 일본에서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캐나다 내에서도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게임 동호회와 게임 문화가 발달한 상황이다. 이 정도 수준에 이르기 위해 기업들은 갖은 노력을 다 기울였는데, 가령 유비소프트 사의 경우, 미래 고객층의 기호를 파악하고 이들의 꾸준한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여름 12~25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다양한 여가 활동 체험을 위한 여름학교를 개최한다. 이 회사의 기획 사업 책임자인 필립 튀르프 씨는 2012년 이후 ‘아카데미아’라는 교육센터를 조직하고 있다. 이곳에서 참가자들은 각자 자기만의 게임을 개발하되 명확한 요구 사항에 부응해야 하고, 회사의 제약 조건도 준수해야 한다. 제작 기간이라든가 납품 기한 등을 맞추는 것이다. 하지만 유비소프트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2011년 이 회사는 몬트리올 대학과 함께 공동으로 산학연 연계 강좌(NSERC-Ubisoft)에 재정 지원을 했다. 이 강좌에서 지향하는 바는 기업의 수요에 맞는 유능한 인력을 양성하고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게임 업체들은 캐나다에서 2만 7천개 일자리가 직접적으로 게임 산업 분야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게임 제작 스튜디오 한 곳의 평균 임금은 약 7만 2000 CAD(한화 약 7200만원) 수준으로, 퀘벡 지역 내 다른 직장인들의 일반 급여 수준보다 2.5배가 더 높다. 몬트리올의 게임 오디오 부문 전문 업체 ‘게임 온 스튜디오’의 공동 창업자 사뮈엘 지라르댕 씨에 따르면, “(게임 개발 인력은) 식도락을 즐기며 전시 및 공연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젊은 전문 인력으로, 쉽게 말해 돈을 쓰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경제가 돌아가게 만든다. 결국 이들은 담세자가 된다.” 달리 말하면 시장의 요구에 맞게 맞춤형으로 선택된 인구인 셈이다.(2)

퀘벡에서 시작된 이 같은 유치 작전은 결국 스스로에게 칼을 겨누게 될 수도 있다. 워너 브로스 게임사나 THQ 사와 같은 거물급 기업이 몬트리올에 발을 들이면서 채용 주기가 빨라지고 다른 업체에서 인력 빼내오기 현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유비소프트 사에서는 몬트리올의 신규 제작사 유치를 중단하고 기존에 상주해있던 업체들의 생존을 보장해야 한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심지어 유비소프트 몬트리올의 대표인 야니스 말라 씨는 2011년 겨울 상공회의소 연설 자리에서 고급 경력 사원의 부족 문제로 여러 스튜디오가 문을 닫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가령 그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서 2천 개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예를 들었다. “무작정 개발 스튜디오 오픈을 추진하고 속도만 앞세워 지속적이지 못한 성장을 부추기면서 밴쿠버 게임 산업이 우수 인력 개발을 담보하지 못했고, 밴쿠버에서 제작되는 게임의 질에 있어서도 직접적인 영향이 감지됐다. 내가 괜히 흉흉한 소문을 퍼뜨리는 것으로 보이는가? 그보다 나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 제작 스튜디오들이 찾아 헤매는 이 ‘베테랑’ 인력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현재로서는 대부분 해외에서 인력을 들여오고 있는 실정이다. 게임 회사들은 대개 선임급 경력직을 해외 채용으로 충당한다. 가장 규모가 큰 기업들은 이 같은 전문 인력을 붙들어놓기 위해 안정적인 급여 외에 복리후생까지 지급한다. 가령 유비소프트 몬트리올의 경우, 2400명의 직원들이 보육원과 디지털 자료실, 헬스장, 병원 등의 편의 시설을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캐나다 내 비디오 게임 관련 업체의 수가 증가 추세에 있다고는 하나, 파이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여전히 초대형 기업들이다. 10년 전에는 이 분야의 일자리 중  3분의 1이 이른바 ‘메이저’ 기업에서 창출됐는데 오늘날 이 비율은 90%까지 올라간다. 컴퓨터와 콘솔 게임기의 성능이 좋아질수록 소규모 기업들은 새로운 플랫폼으로 전향해야 하는 처지다. 제작비가 보다 적게 소요되는 휴대폰 및 태블릿용 게임들은 애플 앱 스토어나 윈도우 스토어 같이 게임 보급 네트워크상의 제약이 있긴 하나, 그래도 독립 스튜디오들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미래로 여겨지고 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캐나다에서도 역시 게임 시장은 두 진영으로 분화되는 추세인데, 우선 첫 번째는 GTA V와 같이 초대형 개발사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제작하는 AAA급 고 퀄리티 게임 시장이다. 지난 9월에는 몬트리올 시민들에게 비키니 차림의 풍만한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거대한 광고판으로 게임 발매일을 알렸다. 물론 이 게임의 발매 소식은 파리나 런던 시민들에게도 전해졌다. 자그마치 2억 7천만 달러(한화 약 2865억원)의 예산으로 개발된 게임이었다. 이어 두 번째는 태블릿과 모바일 플랫폼 기반의 게임 시장으로, 규모가 좀 더 작은 업체들의 활력이 되어주는 시장이다. 비디오 게임 부문에서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진일보의 한 걸음은 재원이 한정적인 업체들의 깨알 같은 도약을 발판으로 이쪽 시장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태블릿 및 모바일 플랫폼 기반의 게임 시장에서는 게임 실행 중 소액 아이템의 소비를 부추겨 얻게 되는 수익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가령 ‘캔디 크러시 사가’나 ‘어드벤처 퀘스트 월드’ 같이 단순하고 대중적인 게임이 대표적이다. 플레이어가 원정을 떠나며 몬스터를 죽이는 게임인 어드벤처 퀘스트 월드에서 플레이어는 온라인 스토어에서 파는 갑옷을 살 경우 좀 더 쉽게 몬스터를 무찌를 수 있다. 매우 단순한 형태의 이 같은 게임은 현재 전 세계 게임 산업 매출액의 10%를 차지한다. 이보다 규모가 큰 고전적인 게임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도 부분적으로는 이로써 설명된다. 점점 더 늘어나는 휴대폰 앱과 태블릿 시대가 오기 이전에 구상된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유비소프트)도 그 여파로 난관에 부딪힌 경우였다. 2010년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영화로 제작되기까지 하였으나 이 게임은 휴대폰과 태블릿 시장에 밀려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태블릿 판매량은 작년 한 해만 78% 증가치를 보였고, 시장 조사 기관인 IDC에 따르면 총 1억 2,800만 대가 판매됐다고 한다. 스마트폰의 판매량도 폭발적으로 급증하여 2013년 판매량은 10억 대를 넘어섰다. 따라서 게임 개발사들이 수익성 기대를 걸고 주력하는 분야는 (PS나 X box 등) 콘솔 게임기 위주의 고전적인 고가의 게임 시장이라기보다 폭발적 증가 추세에 있는 태블릿 및 모바일 게임 시장 부문이다.

게임시장의 세계적 지각변동

모바일 시장의 경우, 여성과 장년층을 주축으로 한 새로운 고객층을 끌어들이면서 업계에 새로운 숨통을 터주고 있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모바일 게임은 강한 자극을 추구하는 청소년들만의 영원한 전유물이 아니다. 북미 지역에서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35세이다. 이제는 여성과 성인이 전형적인 플레이어의 모습이 됐다.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은 전통적인 게임 제작 채널도 변화시켰다. 지라르댕 씨의 설명에 따르면, “AAA급 게임의 개발사들 가운데 일부는 미국 드라마 제작사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운영된다. TV 파일럿 에피소드처럼 정규편보다 짧게 제작된 에피소드를 ‘체험’용으로 선출시하여 현장에서 실사용자의 반응을 살핀 뒤 투자 및 연구 개발 업무를 진행해가는 것이다.” 2012년에는 유명한 게임 ‘워킹 데드’의 시즌1 게임 중 다섯 개 에피소드가 8개월에 걸쳐 순차적으로 출시됐다. 이 같은 방식을 활용함으로써 개발사인 텔테일 게임스는 각 에피소드 발매 후 접수된 유저 후기에 따라 타깃을 수정한다. 기술적으로 점점 더 복잡해지는 양상의 이 시장에서 하도급은 이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작년 한 해 캐나다 기업의 40%가 게임 제작 일부를 외주 회사에 맡겼으며, 그 가운데 해외 외주 건수는 11% 수준이다. 해외 외주의 경우 주로 미국이나 동유럽, 중국, 영국 등을 대상으로 업무 발주가 이뤄진다. 퀘벡에서는 30여개 외주 업체가 하도급을 받고 있는데, 게임의 핵심 부분이나 디자인 방향은 퀘벡에서 개발이 이뤄지고, 이후 제작과 관련한 다양한 부분들이 해외 다른 스튜디오로 업무 발주가 이뤄진다. 하도급 업무는 내부적 차원에서의 하청 형태를 띠기도 하고, 아예 외주 제작사에 업무를 맡기기도 한다.

하도급 업무에는 상위 단계의 하도급도 있고 하위 단계의 하도급도 존재하는데, 가령 게임이 실제로 잘 돌아가는지 테스트해보는 단순 작업도 하도급으로 맡겨진다. 이런 작업의 경우 “대개는 최저 임금을 받는 젊은 인력을 대상으로 한 일자리에 해당한다.”는 게 아딜 부킨드 씨의 설명이다. 기자이기도 한 그는 몬트리올에 온 직후 이 같은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수 시간 동안 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게임의 여러 가지 측면들을 테스트해야 했다. 부킨드 씨는 직원들 다수가 프랑스어 사용자임에도 업계 내에서의 업무가 대부분 영어로 진행된다고 했다.

생산 과정의 일부를 아시아로 이전하려는 경향은 점점 더 두드러지는 추세이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임금 수준이 다섯 배에서 열 배 가량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가령 미국 프로그래머 한 사람의 연봉이 약 5만 5000달러(한화 약 5840만원)에 해당한다면, 인도의 게임 개발자 연봉은 4700달러(한화 약 498만원) 수준이다. 6만 6000달러(한화 약 7천만 원)를 받아가는 미국 디자이너가 수행하는 디자인 업무 역시 이 지역에서는 7천 달러(한화 약 742만원)만 주면 된다. 그러니 지난 몇 년간 인도의 비디오 게임 산업 분야가 2006년 5천만 달러 수준에서 2012년 2억 7700만 달러 수준으로 뛰며 급성장세를 기록한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글로벌 회계 컨설팅 기업 KPMG에서는 인도가 향후 5년간 연평균 22%의 성장세를 지속적으로 기록하여 7억 7600만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도는 머지않아 새로운 비디오 게임 천국으로 거듭날 것인가?

지라르댕 씨는 “하도급 측면에서는 다른 모든 제조업에서의 양상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일본의 경우, 이미 개발사의 80% 가까이가 제작 과정 중 하나 이상의 단계를 다른 국가로 이전해 둔 상태다.(애니메이션 65%, 프로그래밍 58%, 디자인 47%) 본사에서는 각 업무를 연계하는 신경 중추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며, 여기에서는 주로 게임 크리에이터들이 활동한다. 경쟁이 심화되고 생산비가 올라가는 것에 더해 (기업들이 정해놓은) 높은 수익률 압박까지 가중되면서 개발사들은 이제 고전적인 자본주의 관행에 따라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

확실한 점은 이제 게임 업계에서의 흐름이 과거에서처럼 그렇게 아시아 지역에서 주도하는 대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이른바 아케이드 게임의 황금기였던 이 시기에는 기술력에서 앞서 있던 일본이 게임 시장의 패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전용 게임기로 플레이를 하는 일본풍의 고전적인 게임들은 머지않아 고배를 마시며 쓰러질 것이다. 이 분야에서 일본이 차지하고 있던 시장 점유율은 2002년 50%에서 오늘날 10%라는 보잘 것 없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아마도 매우 정교한 게임 중간 중간에 일본 특유의 요소들이 녹아들어가서 서구의 플레이어들이 거부감을 느끼면서 일본 게임을 기피한 게 아닐까? 더욱이 서구에서도 이제는 풍부한 상상력과 조화를 이루는 게임 세계가 열리면서 서구 유저들이 입맛에 맞게 골라 즐길 수 있는 상황이다.

과거 캡콤의 개발 총괄 본부장으로 ‘메가맨’이라는 유명한 게임 시리즈를 만들어낸 개발자 케이니 이나후네 씨는 2010년, 일본이 업계에서 최소한 5년 정도 뒤쳐져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게임이 서양에서 예전처럼 대중화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건 스시와도 비슷한 상황이다. 서양에서는 모두가 스시를 좋아하지만, 일본에서 나오는 것 같은 스시는 내놓을 수 없다.” 

글·윌리스 베르주롱 Ulysse Bergeron
 장프랑수아 나도 Jean-François Nadeau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피에르 라비의 자발적 소박함> 등의 역서가 있다.

(1) 로이터 통신, 2013년 6월 10일.
(2) ‘비디오 게임 – 퀘벡 주의 혁신 사업 Jeux vidéo : une industrie innovante pour nos territoires’, 앙드레 카톨랭 André Gattolin 및 브뤼노 르타이오 Bruno Retailleau 상원 조사보고서, 2013년 9월 18일, 퀘벡. 
 

 


 

지금은 여가 활동 중

인터넷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1주일에 평균 13시간씩 비디오 게임을 한다. 이 시간은 텔레비전 앞에서 보내는 시간과 같고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 데 할애하는 시간보다 많다.
 (Ian Bogost, <Persuasive Games. The Expressive Power of Videogames>, MIT Press, Cambridge, 2010)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가 2004년에 출시된 이후로 사람들이 이 인터넷 게임을 하느라 보낸 시간은 모두 합쳐 593만 시간이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의 천만 명에 달하는 비디오 게임 마니아들은 1주일에 최소 20시간씩 이 게임에 매달린다. 5백만 명이나 되는 미국의 비디오 게임 마니아들이 이 게임을 하느라 보내는 시간은 1주일에 45시간이나 된다.  
(Jane McGonigal, <Reality is Broken. Why Games Make Us Better and How They Can Change the World>, Penguin Books, New York, 2011)
프랑스의 경우에는 게임을 하는 사람 중 25%의 게임 시간이 1주일에 한 시간이 안 되는 반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같은 스타일의 온라인 게임 마니아들은 1주일에 22시간 이상 게임에 열중한다. 프랑스에서도 역시 13개월 된 자기 아이가 욕조에 빠져 죽은 것도 모르고 페이스북에서 게임을 한 어느 미국 여성에서부터 비디오방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40시간 동안 계속 ‘디아블로(Diablo)III’를 하다가 지쳐서 죽은 대만 청년에 이르기까지 신문 사회면에 실릴 만한 사건들이 비디오 게임 중독과 관련한 논란에 정기적으로 불을 지핀다. 몇 년 전부터 일반 언론매체들은 ‘오타쿠(현실에서 도피하여 만화나 비디오 게임 같은 취미에만 빠져 사는 일본 젊은이들)’에 관한 보도를 되풀이해왔다. 극단적인 경우에 이들은 심지어 ‘히키코모리’라고 불리는 사회심리학적 질병으로 고통 받는다. 즉 자기 부모들 집에 들어박힌 채 방에서 나가려고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도 하려 하지 않고, 음식물도 먹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Blaise Mao, <비디오 게임(Les Jeux vidéo)>, 10/18, coll. <올드 세대를 위한 유행가이드>(Le monde expliqué aux vieux), Paris, 2013)

번역·이재형
한국외국어대 불어학과 박사과정 수료. 전문번역가.



아제로스 평원의 농부들

“나처럼 외톨이에 빈털터리입니다.” 30대의 사진작가인 마티유 드루에는 ‘월드 오프 워크래프트(WoW)’라는 가상의 세계에 사는 자신의 분신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동시에 게임을 하는 이 인터넷 역할게임’에 회원으로 등록(1)한 770만 명 중 하나다. 수천 명의 게이머들이 인터넷을 통해 중세 판타스틱 세계의 등장인물로 둔갑, 연기를 하는 이 유형의 게임은 한 개인이 인터넷 접속을 끊어도 이야기는 계속 흘러간다. WoW는 이 분야의 단연 일인자라 할 수 있다. 이 게임에서 게이머는 이런저런 미션을 수행하고 대결을 거듭하며 자신의 창조물을 변화시키고, 이 창조물은 규모가 점점 더 커져가는 전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는 능력과 아이템들을 얻게 된다.
정말 열심히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경작하면서 (비디오 게임에서 어떤 장소를 오랫동안 탐사하는 것-역주)’ 파괴력을 지닌 부적과 무기를 사는 데 필요한 사이버머니를 모으기 위해 같은 전투와 미션을 지겹도록 되풀이한다.(2) 하루에 평균 15분 정도만 이 인터넷 게임을 하는 드루에는 몇 달 동안 기다린 끝에 자신의 ‘토랭 샤먼’을 가장 높은 단계인 90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만일 그가 덜 ‘외톨이였다면’ 그는 확실히 더 빠른 기술에 의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즉 진짜 돈으로 사이버머니를 사는 것이다. 실제로 수십 개의 인터넷 사이트를 들어가면 WoW라는 압인이 찍힌 ‘사이버머니’ 1만 개를 2013년 11월 시세로 8.84 유로(한화로 약 1만2000원)에 살 수 있다.
일단 판매가 이루어지면 그 돈은 풀타임으로 ‘경작을 하고’ 돈을 받는 프로들에게 맡겨진다. 세계은행은 사이버경제에 관한 보고서에서 이 농부들은 주로 아시아, 특히 중국인들이며 1만 명 정도라고 추정하고 있다.(3) 이들은 서로 다른 규정에 따라 규모가 매우 다양한 기업에 고용되어 1주일에 60시간 이상을 화면 앞에서 보내는데, 법으로 정해진 최저임금을 받으며 식사는 간단하게 하고 잠은 공동침실에서 잔다. 그들의 노동이 2009년 당시 30억 달러로 추정되었던 이 시장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적 노동 분업이 사이버 세계에서도 적용되는 셈이다. 부유한 나라는 수익이 별로 나지 않는 일을 하청으로 넘긴다.

하지만 몇 가지 다른 점도 있다. 꼭 노동조건에 대해서만 그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WoW 가입자들 가운데 비판적인 사람들은 게임의 균형을 잃게 하는 인플레이션 행위들을 비판한다. 아시아의 게이머들이나 영어를 잘 못 하는 게이머들에 대한 멸시에서부터 ‘골드 파머(게임머니와 아이템을 팔아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인터넷 게임을 하는 사람-역주)’로 의심받는 인물들에 대한 박해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보복 조처들은 여기서도 역시 현실생활의 즐거움을 모방한다. 이 같은 창조적 경쟁에 맞서기 위한 새로운 방법들을 정기적으로 찾아내려 애쓰는 WoW의 판매업자 블리자드 사는 상황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입자 수가 줄어들자(2011년 가입자 수가 1200만 명이었다) 이 회사는 가입자 수를 유지하기 위해 게임을 서서히 변화시키고 있다. 드루에는 “그들은 서툰 사람들이 게임을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정된 시간의 섬’이라는 게임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블리자드 사는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이버머니를 파는 가게를 열어 직접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글·기욤 바루 Guillaume Barou

 

번역·이재형
한국외국어대 불어학과 박사과정 수료. 전문번역가.

(1) 한 달에 최소 11유로.
(2) Julian Dibbel, <The life of the Chinese gold farmer>, New York Times Magazine, 17 juin 2007.
(3) <Knowledge map of the virtual economy>, Infodev, avril 2011, www.infodev.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