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카스의 인플레 현상

2013-12-11     안 비냐


일반적으로는 물자부족 현상이 빈곤계층에 더 큰 영향을 미치지만, 베네수엘라에서는 그 반대인 것 같다. 이 나라에서는 사회계급의 사다리를 더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자주 가는 슈퍼마켓의 생활필수품 진열대가 더 빨리 빈다.

카라카스 동쪽의 부자 동네인 알타미라 역. 알레한드라는 오늘 벌써 네 번째 슈퍼마켓으로 장을 보러 간다. 어머니가 방금 전화를 해서 ‘그 슈퍼라면 분명히’ 화장지가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렇게 덧붙였다. “혹시 거기 옥수수 가루도 있을지 모르니, 보거든 최대한 많이 사 오렴!” 정말 슈퍼 안에는 두루마리 휴지가 이동식 상품진열대 한가운데에 꼭 전리품처럼 높이 쌓여 있었다. “아, 드디어 찾았다!” 알레한드라는 미친 듯이 기뻐하며 즉시 어머니에게 승리의 문자를 보냈다. 국가가 판매를 규제하는 이 상품의 가격은 그녀가 정상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공정가보다 네 배나 비쌌다. 이 슈퍼마켓을 이용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알레한드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쇼핑용 짐수레에 열두 개씩 포장된 두루마리 휴지를 실을 수 있는 만큼 싣고 원래 밀가루가 놓여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는 진열대를 한 번 재빨리 쳐다본 다음 계산대로 향했다.    

이미 슈퍼에 들어와 있는 다른 손님들 모두가 입을 모아 지금의 상황을 ‘인플레이션’과 ‘배급’, ‘부정직’이라는 세 단어로 요약하였다. 한 손님이 소리쳤다. “도대체 이 인플레이션은 언제나 멈출까요?”(이 나라의 중앙은행에 따르면 2012년도의 물가상승률은 20%를 넘어섰다.(1)) 옆에 있던 여자 손님이 대답했다. “정부가 바뀌면 멈추겠지요.” 세 번째 여자 손님도 맞장구를 쳤다. “가게에 물건이 다 떨어지면 꼭 정부를 바꿔야 해요. 곧 그렇게 될 거예요.” 이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손님들도 웃음으로 동조한다. 이곳에는 정부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사실상 전부 다 수입되고 있는) 잘 팔리는 소비재의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기업주들이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일부러 물자부족 현상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알레한드라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슈퍼마켓 손님들은 15년에 걸친 차베스 통치 이후에 야당이 다시 권력을 잡게 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카운터의 여성 계산원은 아무 말 없이 상품들의 바코드를 찍는다. 개중에는 그녀의 한 달 급여에 해당하는 3600볼리바르(61만원 정도)짜리 위스키나 샴페인도 있다. 그 동안 손님들은 툭하면 물이나 전기가 끊겨 자신들의 가전제품이 작동을 멈춘다며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카라카스 도심에 있는 플라자 베네수엘라 역은 중산층의 요람이다. 2011년 이후 국가 소유가 된 비첸테나리오는 판박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파리 교외의 전통적인 하이퍼마켓을 꼭 닮았다. 이곳에는 없는 게 없다. 아니, 그보다 없는 게 거의 없다고 해야 맞다. 샴페인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2013년 6월에 찾아갔을 때만 해도 진열대는 화장지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가격표에는 정부 규제가격과 똑같은 가격이 적혀 있었다. 두루마리 화장지 열두 개 한 세트가 51.56볼리바르, 즉 8700원이었다. 손님들은 이 두루마리 휴지 세트를 많아야 두 개밖에 사지 않았다. 쇼핑용 짐수레를 두루마리 휴지로 가득 채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그중 한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두루마리 휴지를 더 많이 사지 않나요? 그가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전에 먹을 게 진짜 없을 때는 아무도 우리를 위해 걱정해 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들 휴지가 부족하다며 가슴 아파 하는군요!” 사실, 국제 언론이 베네수엘라에 관해 쓴 기사들 중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기사는 거의 없다. 

아구아 살루드 역은 빈민가인 카라카스 서쪽, 이 수도의 가장 큰 서민 동네 중 하나인 에네이로 23구역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다. 산허리에 건설된 이 도시 안의 또 다른 도시라고 말할 수 있는 이곳의 고르지 않은 계단을 올라가면 갈수록 사회 피라미드의 계단을 내려가는 셈이 된다. 정부가 2003년에 설립한 체인형 슈퍼마켓 중 하나로 상품에 보조금이 지원되는 메르칼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다. 매달 그렇듯이 이번 달에도 일체의 경쟁을 무시한 가격에 배급이 이루어진다. 베네수엘라 전역에는 소규모 채소 가게부터 중간 규모의 슈퍼마켓까지 규모가 다른 메르칼 슈퍼마켓이 있다. 이 메르칼 슈퍼마켓은 광고도 안 하고 세일도 안 한다. 손님들이 이 슈퍼마켓을 보통의 슈퍼마켓만큼 많이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술도 안 팔고 메이커 제품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슈퍼마켓에는 식품(곡물, 육류)이나 위생 용품(샴푸, 기저귀, 비누) 등 가격 통제를 받는 모든 상품을 살 수가 있다.

에네로 23구역에 있는 메르칼 슈퍼마켓에서는 여성들(여기서는 남성들이 눈에 잘 안 띈다)이 23유로를 내면 닭고기와 쌀, 식용유, 우유, 그리고 여섯 개짜리 두루마리 화장지로 쇼핑용 짐수레를 채울 수가 있다. 그들은 한 달에 한 번, 때로는 두 번씩 이 슈퍼마켓을 찾는다. 이 동네에서 건강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미리암 마우라 부인은 생활이 어려운 가족을 찾아내기 위해 길게 늘어서 있는 줄을 살펴본다. 그녀는 나이든 사람뿐만 아니라 아이가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도 조심스럽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잘 지내요? 장 볼 돈은 있어요? 걱정 말고 얘기해 봐요.” 젊은 엄마들은 봉급과 연금을 보충하는 모든 슈퍼마켓에서 받아주는 식료품 배급권으로 계산을 한다. 그러므로 이 여성들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남편 앞으로 나온 식료품 배급권을 받아온 게 아니라면). 마우라 부인이 설명한다. “지금이야 굶어 죽는 일은 없어요. 돈이 없어도 먹을 수는 있는 거죠.” 돈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장바구니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공짜인 이 장바구니들은 사회복지사와 상담을 하고 난 뒤에 가져갈 수 있다.    

알레한드라는 트렁크를 두루마리 휴지로 가득 채운 다음 4X4 승용차에 올라타면서도 계속 비관적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를 걱정시킨 것은 연극이었다. 그녀가 설명한다. “차베스가 집권하고 나서 카라카스 연극 페스티벌이 중단되었어요. 예술과 문화 분야의 상황이 안 좋아진 거죠. 이제는 외국 책을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난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결론짓듯 말했다. “꼭 쿠바 같아요.” 그렇지만 베네수엘라 카페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정부가 설립한 체인형 서점 중 한 곳인 수드 서점이 금방 눈에 띄었다. 라틴아메리카 문학과 시, 연극, 정치평론의 고전들…. 커피 한 잔 값에 해당하는 3.4볼리바르만 주면 이런 책들을 살 수 있다. 서점의 판매원 한 사람이 말했다. “여기서는 휘발유를 세계에서 가장 싸게 살 수 있다고 늘 말하지만, 책도 세계에서 가장 싸게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건 잊어버리지요.”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외국 책도 그럴까? “사실 외국 출판물은 비싸서 찾기가 힘들지요.” 문화행사로 말하자면, 연극과 영화, 콘서트를 보는 데는 커피 두 잔 값밖에 안 들고 모든 미술관은 무료다. 연극 페스티벌은 폐지된 것인가? 알아보니 이 페스티벌이 열렸던 공간이 그곳에 예술실험대학을 세우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페스티벌은 사설 재단 덕분에 다시 시작되었으며, 요금은 여전히 매우 비싸다.

루이스(23)는 흥분해서 말한다. “부모님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난 이 사회주의가 지겨워요! 이 나라에서는 무엇 하나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고요! 제약이 지나치게 많고, 모든 게 너무 비싸요!” 상황이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다. 젊은 층의 95%가 휴대폰을 갖고 있으며,(2) ‘소비의 자유’는 흔히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된다. 특히 중산층은 더더욱 ‘소비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자기가 친구 세 명이랑 같이 최근에 ‘정부를 속여먹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들은 파나마를 여행한다는 핑계를 대고 정부에서 외화를 사들였지만(“각자 3000달러씩 바꿨는데, 3000달러면 정말 큰돈이죠.”), 파나마에서 그들이 구경한 것은 쇼핑센터뿐이었다. 거기서 전자제품을 산 것이다. “달러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1년에 딱 한 번뿐이에요. 내년에도 또 올해처럼 할 겁니다. 전자제품을 되팔아서 꽤 많이 남겼거든요.” 프랑스에서 살았고 프랑스 아내와 두 아이를 둔 안토니오는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는 꼭 상류층만 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 중류층도 여행을 할 겁니다. 이곳에서의 실제 생활은 사람들이 이 나라에 대해 갖는 이미지와는 많이 달라요.” 그는 저널리스트이고, 그의 아내는 대학교수다. “나는 6000볼리바르(100만원)를 벌지만, 건강 보조금으로 1000볼리바르를 받고 식품비와 사보험, 탁아 보조금 명목으로 1200볼리바르를 받습니다. 아내는 4000볼리바르(68만원)를 버는데, 아이 한 명당 500볼리바르의 보조금과 여러 가지 사회보조금을 받지요. 아이들에 대해서는 탁아소와 학교, 의료 등 모든 게 다 무료입니다.”

베네수엘라의 최저임금은 여전히 낮아서 2700볼리바르(45만원)이고, 1600볼리바르에 해당하는 식료품 배급권을 추가로 지급한다. 그런데 카라카스에서는 집세가 평균 1500~2000볼리바르 사이다. 식료품 배급권을 포함해서 전문노동자는 한 달에 약 6000볼리바르를 벌고 초등학교 교사는 5200볼리바르를 받는다. 서민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월급을 알려주는 걸 망설이지 않는다. 반대로 알레한드라가 사는 동네에서는 대부분 자기 월급이 얼마인지 말하기를 거부한다. 크레프트 푸드라는 회사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한다. “월급이 가장 중요한 건 아니에요. 의료와 교육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 우리의 일상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공장이나 동네에서 조직을 결성할 수 있다는 사실, 이런 사실들 덕분에 이 나라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거죠.” 그렇다면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다들 알레한드라처럼 불행할까? 최근에 콜롬비아 대학이 발표한 ‘세계의 행복지수’(논란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는 이 질문에 대해 대답할 수 있도록 해준다. 즉 이 나라는 전 세계 150개 나라 중 19위를 차지한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행복지수는 코스타리카(세계 12위, 라틴아메리카 1위)에게는 뒤지지만, 멕시코(24위)와 브라질(25위), 아르헨티나(39위) 그리고 프랑스(23위)에 앞선다.

글·안 비냐  Anne Vigna

번역·이재형
한국외국어대 불어학과 박사과정 수료. 역서로 <프로이트 평전> 등이 있다.

(1) ‘Inflación en Venezuela cerró 2012 en 20,1%’, Ultimas Noticias, Caracas, 2013년 1월 11일자.
(2) Xavier Bringué Sala, Charo Sádaba Chalezquer et Jorge Tolsá Caballero, La Generación Interactiva en Iberoamérica 2010. Niños y adolescentes ante las pantallas, Fundación Telefónica, coll. «Generaciones Interactivas», 마드리드,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