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일하다?

2013-12-11     외제니오 렌지


지난 10월, 수개월에 걸친 논의 끝에 프랑스 영화기술자들의 임금을 관리하는
단체협약에 관한 합의가 최초로 이루어졌다. 기존의 협약 내용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이 협약이 경제위기로 이미 취약해져버린 작가주의 영화와 영세 제작자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이 협약은 영화인을 존중하지 않는다. 이 협약은 부도덕하고, 나의 창작의지와 자유, 그리고 나의 영화에 대한 비전을 마비시킨다. 작가나 화가에게 어떤 작품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1) 대체 어떤 끔찍한 제약이 <아델의 이야기>로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의 창작 영감을 위협하는 것일까? 정부가 영화인에게 영화의 주제를 강요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심의위원회가 무례한 장면들을 삭제하겠다고 나서기라도 하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영화사 주인들이 직원들을 착취하지 못하게 하는 임금협정을 말하는 것이다. 노동계에서 영화산업은 예외 분야에 속한다. 먼저 영화촬영에는 고도로 전문화된 기술자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은 한정된 기간에 집중적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식으로 고용된다. 그런 이유로, 수많은 국가에서 영화제작 관계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규정하는 단체협약은 특별한 법제를 따르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프랑스 정부와 배우를 제외한 영화제작에 관여하는 여러 직종의 대표자들은 강도 높은 협상을 진행해왔다. 2012년 1월, 드디어 단체협약이 체결됐다. 2013년 7월 1일 법령에 의해 프랑스 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계약이 모든 고용자들에게 적용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다소 불분명하지만 단체협약의 효력 ‘확장’이라 부르는 것이다.

영세 제작가들이 반대하는 단체협약

협약에 의하면 법정 근로시간은 35시간이며, 기본 근로시간을 초과한 시간외 근무와 야간근무는 기본급에서 가산된다. 이 협약에 따라 처음으로 영화감독은 최저임금(5개월 이하의 계약 시 주당 2818.52 유로)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특히 255만 유로 이하의 예산으로 제작되는 영화에 대해서는, 감독의 임금을 반 이상 깎을 수 있다는 식의 예외조항이 들어있다. 이 협약은 프랑스 영화방송산업기술노동자 노동조합(SNTPCT)의 2012년 투표에서 40%의 찬성을 얻어 통과됐고, 영화방송산업 관련 종사자들의 15%가 가입해있고, 감독들도 포함돼 있는 스피악-세제테(SPIAC-CGT, 방송 및 영화 산업 노조-프랑스노동총동맹)의 승인도 받았다. 독립제작자협회(API) 또한 협약을 승인했다.

독립제작자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이 협회에는 고몽, 파테, UGC, MK2 등의 대형 프랑스 제작-배급사가 속해 있고, 전체 영화의 10%를 제작한다. 하지만 프랑스민주노동동맹(CFDT)은 협약을 승인하지 않았으며, 독립영화제작자노조(2) 역시 단호하게 거부했다. 세드릭 클라피시와 로베르 게디기앙이 속한 영화제작자 모임은 지난 봄 ‘난관을 벗어나기 위한 호소문’(3)을 내고 협약의 확장은 “모든 분야에 재난을 초래할 것이며 결국 기술전문가 자신에게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불분명한 단체협약

단체협약 적용 유보를 요구하는 정서는 상당히 강했다. 이에 대한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은 분명히 역설적이다. 전문기술자들이 대기업 편이라는 것일까? 영화사 주인들이 ‘노동비용’ 상승에 만족한다는 것일까? 많은 감독들과 소형제작사들이 중요한 사회적 진보로 여겨지는 결정에 반대한다는 것일까? “급여 구간 재평가 + 모든 사람에게 노조 최저임금 지급 의무 + 시간외 수당 지급의무와 기본급 가산.” 자크 오디아르, 로랑 캉테, 기욤 카네, 프랑수아 오종 등 수많은 사람들의 서명을 얻어낸 호소문이 요구하는 내용은 분명하다.

그들은 이 ‘추가경비’에 항의하고, “70유로의 예산으로 제작된 <톰보이>(첼린 시아마 감독, 2011년) 같은 초저예산 영화가 있는가 하면 90만 유로의 예산으로 제작되는 영화가 있고, 6200만 유로를 들여 제작한 <아스테릭스>(로랑 티라르 감독, 2012년)까지, 영화제작 예산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편차가 크다는 점을 고려해 줄 것”을 요구한다. 협약이 독립영화 제작자들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한 연구에 따르면, 이 협약 시행으로 매년 “영화 및 광고계의 비정규직 2만 자리와 장편영화 70편, 단편영화 600편, CF 180편”이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대형제작자들이 영세제작자들을 쫓아내고 프랑스 영화 시장 100%를 나누어갖게 되지 않을까? 그렇지만, 많은 기술자들이 협약을 승인한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독립영화인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예술적으로 프랑스 영화계가 대체로 세 권역으로 나뉘어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상업영화는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어낸다. 이런 영화들은 대부분 TV 방송사가 중심이 되는 민간투자로 제작되고, 대체로 수익을 올린다. 그 반대편에, 때로 우스꽝스러울 정도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지는, 장인정신의 영화가 있다. 이 영화들의 재정 상태는 프랑스 국립영화센터(CNC, Centre national du cinéma)가 제시하는 기준을 준수할 수 없고, 따라서 지원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 두 범주 사이에 자급자족을 이루는 상업적인 영화, 사람들이 ‘중간 영화’라 부르는 종류, 즉 “대담한 내러티브와 미장센을 갖추고, 충분한 재정수단 없이는 제작하기 힘든,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는 작가주의 영화”(4)가 위치한다. 이 세 가지 종류의 영화의 경계를 명확하게 규정짓기는 힘들다. 대부분의 영화, 그리고 그런 영화를 제작하는 제작사는 회색지대에 위치한다. 상업영화와 중간영화 사이 혹은 중간영화와 대단히 허약한 ‘독립’영화 사이에 위치하는 것이다.

‘미봉책’을 넘어서는 ‘전망’이 필요

원칙적으로 중간영화는 기준에 맞춰 제작되기에 CNC의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이상적으로는, 영화제작 프로젝트에 대해 제작자가 시나리오 작가에게 임금을 일괄 지급하고, 차차 제작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비용을 부담한다. 이런 지출을 근거로 제작자는 제작, 포스트프로덕션(편집, 사운드트랙 삽입 등 촬영 종료 후 상영까지의 제작 과정), 배급에 필요한 경비의 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지원금이 주된 재원이 된다. 프로젝트에 비해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영화를 제작하는 영세제작자들은 대개 기술자들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한다. 기술자들은 곡예에 가까울 정도로 근무시간을 조정해 비정규직 지위 확보에 필요한 시간을 얻어낸다. 그렇게 되면 업주 대신 비정규직 기금에서 임금을 지급한다. 가까이서든 멀리서든, 자금이 부족한 영화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이런 방법을 알고 있다. 일부 영화인은 대기업에 고용돼 충분한 월급을 받기보다 영세제작사를 살리고 작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쪽을 선택한다. 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창작에 일조한다는 마음이 보수의 한 형태가 되는 것이다. 상호협력과 교감의 관계 속에서 일정부분의 임금 희생은 감내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위기와 함께 ‘회색 지대’의 경제는 그들의 생존가능성을 위협할 정도로 악화됐다. 대부분의 영세제작자들은 간신히 물 위에 머리만 내밀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100명의 영화인과 배우들이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2013년 9월 30일 자)는 모든 종사자에게 단체협약을 확대 적용하는 것은 ‘극단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협약의 확대적용은 “영화분야가 갖는 예술적 특성과 영화 창작에 필요한 유연성을 부인”하는 것이자, “특히 촬영기간의 제약 추가는 영화의 질에 유해하다.”고 주장한다. 최악의 상황은, “프랑스 영화가 역사적으로 유지해 온 예술적 부분과 산업적 부분의 균형이 회복할 수 없게 엉망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협약의 확대적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저예산(때로는 극도로 적은 예산) 영화나 중간 규모 예산의 영화가 해외에서 프랑스 영화의 영광을 만들어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 이유로 정확하게 예산에 근거해 단체협약을 채택할 것을 제안했다. 결국 지난 10월 8일 밤, 세 가지 체제를 확립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조항이 추가되었고 어느 정도의 만족을 가져왔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취약한 영화(추정예산 100만 유로 이하)는 6개월의 유예기간을 갖는다. 예산 300만 유로 이하의 영화의 경우 추가근무로 인한 임금가산을 하향 조절할 수 있고, 급여 구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영화들, 특히 그 유명한 ‘중간 영화’는 협약의 적용을 받는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재정문제를 임금으로 확대한 것이 하나의 진보라고 할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영화를 시장에 등록시켜 사회최저임금과 연결시키고, 문화적 예외라는 명목으로 사회적 예외를 주장하는 것이 전진이라 할 수 있는지 또한 확실치 않다. 추가조항은, 각각의 제작이 나름의 ‘특수성’을 갖는다는 것, ‘다양성의 영화’를 보존하고 무엇보다도 작가주의 영화를 ‘보호’하겠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 이 위기는 경제적이자 예술적인 것이며 그 원인은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전망, 다시 말해 정책이다.

글·외제니오 렌지 Eugenio Renzi

번역•김계영 canari62@ilemonde.com
파리4대학 불문학 박사. 저서와 역서로 <청소년을 위한 서양문화사>(2006), <키는 권력이다>(2008) 등이 있다.

(1) <리베라시옹>, 2013년 10월 5~6일.
(2) 이 명칭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는 힘들다. 독립영화제작자노조(SPI)는 “모든 배급사와 이동통신으로부터 독립해있는” 제작자들의 모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3) <리베라시옹>, 2013년 4월 28일.
(4) 파스칼 페랑, “중간 영화를 걱정한다”, <르몽드> 2013년 4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