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도시, 상생의 공간으로

취임 2주년 박원순 서울시장 인터뷰

2013-12-11     한국판 편집부

 

강남과 강북, 부자와 빈자, 젊은이와 노인…. 우리를 갈라놓는 수많은 요인들이 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소통과 화합이 요구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가장 갈등이 심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한 갈등의 중심에 ‘서울’이 있다. 첨단 문명과 그 짙은 그늘이 공존하는 곳이 서울이다. 이 양극화의 도시에서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을 발휘하겠다”고 나선 박원순 서울 시장이 취임 2주년을 맞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그를 만나 그간의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 ‘인권’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이 대두되고 있다. 그것은 현재 우리 사회가 인권 보호에 그만큼 취약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서울시가 최근 발표한 ‘인권 정책 기본계획’의 골자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나에게 인권은 곧 ‘사람다움’, 인간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다.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인권을 누릴 수 있는, 이 당연한 명제가 지켜지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바로 이번 서울시 ‘인권 정책 기본 계획’의 핵심이다. 장애인 정책의 패러다임을 시설보호 위주에서 탈(脫)시설 중심으로 전환하고 장애인을 ‘베푸는’ 대상이 아니라 권리 주체이자 사회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철거민, 노숙인의 주거권 보장, 열악한 근무환경, 고용불안 등에 시달리는 여성, 어르신 노동자 인권 보호 대책, 또한 이주민을 시 인권정책 영역으로 포함하는 이주민 정책 등 서울시정 전반을 인권 관점에서 재설계해 가는 작업에 한창이다.”

-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이러한 노력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나와 너, 우리에 대한 권리와 관심, 배려를 회복해 갈 때 사그라져 가던 인권감수성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인간다움의 상식이 회복됨과 함께 폭력과 범죄, 비리 역시 조용히 사라지리라 믿고 있다.”

- 경제적 차원의 양극화는 물론 문화적 양극화 현상 역시 아주 심각하다. 경제적 양극화 현상은 단지 눈에 보이는 소유재산의 차이를 떠나 문화적 향유의 권리마저 박탈해가고 있다. 음악, 영화 등 전반적인 예술 분야에서 양극화 현상이 무섭도록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이러한 간극을 줄일 수 있는 ‘문화 복지’ 역시 다른 분야의 복지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서울시는 이와 같이, 문화 향유의 소외계층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나.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문화자본’ 이론을 통해 현 시대가 부의 축적만으로 계층의 이동이 가능한 ‘경제 자본의 시대’에서 개개인의 문화적 취향, 소양이 사회적 위치를 결정하는 ‘문화자본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음을 역설한 바 있다.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문화 정책, 문화 인식은 ‘문화=돈 있는 사람의 전유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편견의 벽을 깨는 것이 바로 문화적 양극화, 나아가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는 길이다.
이에 서울시는 시민이면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와 축제를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걸어서 10분’이라는 동네 프로젝트를 통해 공원이나 도서관 등의 문화콘텐츠를 어디서나 걸어서 10분 이내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광장, 거리 축제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하이서울페스티벌’의 주제를 ‘거리축제’로 지정해 가림막 없이, 시민 모두가 문화를 일상화 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접촉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또 앞으로는 영화관에서만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공원에서 영화를 보고, 지하철을 전시장으로, 시민의 생활공간을 예술의 장으로 활용해 서울시민의 문화지수를 높여가는 등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 복지 문제 중에서 특히 ‘주거’에 집중해서 이야기 해봤으면 한다. 현재 1인 또는 2인 가구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추세와는 반대로 서울 도심지의 아파트는 기본적으로 4인 이상의 가족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최근 가족 수 변화에 비춰보면 소형아파트조차 너무 크다는 의견이 있다. 서울시가 가진 소가족 대책이 있다면.
“서울시는 ‘공유’에서 그 답을 찾고 있다. 서울시는 앞으로 1~2인 가구가 더 급증할 것이라 보고, 10년 후, 20년 후를 내다보며 인구 변화에 맞춰 소형 주택 비율을 늘려가며 그 필요성을 주민들에게도 설명하고 있다. 실제 지금 서울 인구의 절반(46.7%)이 1~2인 가구다. 그러나 지적하신 바와 같이 지금 서울시의 주거형태를 보면 여전히 70년대의 4인 가구 체제가 대부분이다. 앞으로의 주택 공급은 ‘1~2인 소형가구’ 중심으로 한다고 해도 기존 중대형 주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여전히 고민이다. 도시 재생에 들어간다고 해도 최소 5~10년은 소요된다. 이에 서울시가 이 불균형을 바로 잡을 해법으로 주목한 것은 ‘소통과 공유의 주택문화’다. 즉, 기존의 중대형 주택을 1인 및 2~3인 가구의 여러 세대가 함께 살면서 거실, 주방 등을 공유하는 신(新)주거유형인 셰어하우스(share house) 주택으로 리모델링해 공급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주거와 가구 유형의 불균형을 맞춰가는 한편, 압축 성장 과정에서 붕괴된 공동체 문화까지 회복, 진정한 주거 안정을 도모할 것이다.”

- 목동 등 일부 아파트 주민들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행복아파트’ 조성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 이기주의도 비난받을 수 있겠지만, 일각에서는 오히려 ‘구분 짓기’를 조장하는 구조와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있다. 경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수록 계층-신분 가르기 없이 모두가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소셜믹스(social mix)’가 절실히 필요한 때 ‘행복아파트’ 건설은 오히려 ‘소셜믹스’의 취지에 역행하는 방식이라고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유럽 임대주택(사회주택)의 입주 자격은 별도의 기준에 따라 결정하지만 그 외 세대, 연령, 계층, 가구 형태는 분리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특정 지역에 세대나 계층이 몰리는 ‘쏠림현상’을 제거하고 공공임대에 대한 반대, 슬럼화 역시 발붙일 수 없게 한다. 그에 반해, 지금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행복주택’은 이른바 ‘부촌’ 안에 포함된 행복주택의 거주 대상을 신혼부부, 대학생, 사회초년생 등으로 한정했다. 이렇게 되면 장애인, 저소득층, 노령층 등은 외곽의 행복주택이나 임대주택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임대주택 주민들을 보이지 않는 벽 안에 가두는 폐해를 낳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서울의 한 영구임대주택에서 주민 1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사건이 발생했다. ‘임대주택 거주=저소득 취약계층’이라는 박탈감과 사회적 분리 때문이었다. 이에 서울시에선 한 단지 내에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적 소셜믹스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행복주택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 행복주택에 대한 주민 반발을 줄이기 위한 조치도 필요하지만 행복 주택이 진정으로 서민 주거 안정을 도모할, 또 더불어 사는 주거 공동체로 안착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좀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 역대 정권에서 공간효율성을 중시하는 재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서울시의 외형적 모습이 우리가 기억하는 장소와 추억으로서의 위상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많은데.
“‘로마는 조상 덕에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제대로 기억하고 보존하며 가꿔낸 역사는 당대를 넘어 후대의 삶을 지켜주는 든든한 토대가 된다는 것을 로마가 입증하고 있지 않나. 그에 반해 우리는 어떤가? 지난 반세기 동안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백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가치들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서울시는 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서울의 근현대 유산을 보존하는 ‘미래유산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시대가 변해도 훼손되지 않을 지속가능한 서울 건축의 기본원칙을 담은 ‘서울건축선언’도 발표했다. 또한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 건축혁신방안을 추진해 서울의 정체성이 담긴 건축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노력들을 계속 해나가 장기적으로는 ‘서울 역사도심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해 600년, 아니 2000년 수도 서울의 골격을 복원하고 서울을 세계적 역사문화 거점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 서울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발전된 도시지만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소수자가 가장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성 노동자’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는지.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 문제가 한때 이슈가 됐고 현재도 여기저기서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보호, 지지하는 운동도 진행되고 있다. 2004년 만들어진 성매매특별법은 오히려 성매매를 하는 여성을 인권의 사각지대로 몰아넣는다는 비판도 많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시장님의 의견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정책은 동전의 양면처럼 음과 양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성매매특별법 역시 마찬가지다. 불법 성매수를 단속, 근절하겠다는 취지 자체는 옳다고 본다. 하지만 성매매를 사회적, 경제적 약자이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여성들도 있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성매매특별법의 취지는 지키되, 사회적 약자의 보호차원에서 성매매 여성을 일방적 처벌의 대상으로만 여길 게 아니라 이들을 위한 사회적 일자리를 늘린다든지, 사회적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보다 새로운 관점에서 논의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 프랑스에서는 사실혼 관계가 법적결혼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권리를 얻을 수 있게 해주는 팍스(PACS) 법안이 있다. 이는 도시 주택난 해소책의 일환으로도 진행되고 있다. 얼마 전 유명 영화인들의 동성결혼식이 화제가 됐는데 앞서 언급한 프랑스의 팍스 법안처럼 동성결혼, 또는 동성끼리의 동거에도 주택 인센티브를 주는 문제에 대한 시장님의 의견은?
“우리 헌법은 차별 받지 않을 권리를 기본 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특히, 국가인권위원회법 등을 통해 성적지향 등 구체적 차별 금지 대상을 명시하고 있지 않은가. 즉, 동성부부, 동성 커플을 위한 주택 인센티브까지는 어려울지 몰라도, 최소한 서울에서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거나 부당한 피해를 받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이는 단순히 나, 개인의 생각을 넘어 대한민국의 헌법 및 법률이 규정한 권리다. 사회적 인식에서 아직은 보편화되지 않았지만 함께 서로가 ‘다름’을 존중해주고 인정해주는 건강한 사회, 도시가 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 시장님은 스웨덴과 독일의 복지 모델을 자주 언급하시면서도 이를 모방하기보다는 ‘한국형 복지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신 바 있다. 시장님이 생각하시는 ‘한국형 복지모델’은 어떤 모습인지?
“스웨덴과 독일은 복지와 미래경쟁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사회로 평가받고 있다. 정치나 행정이 내 편, 네 편으로 대립, 갈등을 유발하기보다는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며 부족한 부분을 메워가는 과정을 통해 이 사회가 국민의 편이라는 신뢰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그들은 다수결로 일방적 결정을 하기보다는 서로를 설득할 때까지 끊임없는 토론과 대화를 시도한다. 실제로 독일의 중산층은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는데도 조세저항이 심하지 않은데, 그 이유는 바로 사회적 합의에 대한 믿음과 사회적 신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압축 성장과 급속도의 민주화를 거치면서 한 사회의 잠재력을 응집시키는 신뢰가 상당히 약화돼 있지 않은가. 그런 만큼, 복지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논쟁 이전에, 먼저 시민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듣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복지 수준 자체도 중요하지만 앞서 밝힌, 시민의 요구에 먼저 귀 기울여 토론하는 과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그 모습이 서울시는 물론 한국이 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이다.”

대담·임상훈 편집장 정리·공은비 기자